계양산 둘레길 강추 [2013년 1월 13일 포근한 일요일 계양산 둘레길 트레일 - 운산의봄 & 한국의산천 2名]
계양산 둘레길은 계양산 산사면 중간을 지나는 걷기좋은 산길입니다.
코스:계양산 연무정 출발 ~ 육각정 ~ 하느재쉼터 (사거리에서 우측사면으로 내려감)~ 임학공원에서 오는길과 만나는 삼거리 ~ 무당골약수터~ 솔밭 ~ 피고개 ~ 징메이고개 ~ 중심성지 ~ 산림욕장 ~ 계양문화회관 앞길(벽화) ~ 경인여대 ~ 연무정입구 원점회기.(휴식시간포함 약 3시간)
▲ 이규보 기념비 앞에서 ⓒ 2013 한국의산천
※ 계양산 둘레길의 북사면은 응달이므로 아이젠은 필수입니다.
▲ 2006년 강화 이규보선생 유택답사시에 ⓒ 2013 한국의산천
이규보 선생 상세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8483258
이규보(1168~1241) 고려시대의 문신, 문인으로 본관은 황려, 호는 백운거사, 지헌, 시호는 문순이다.
주요저서로는 '동국이상국집' , '백운소설'이 있다.
시, 술, 거문고를 좋아한다 하여 삼혹호선생이라고도 하며, 만년에 불교에 귀의했다.
1189년(명종 19) 사마시(司馬試), 이듬해 문과에 급제, 1199년(신종 2)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고 1202년(신종 5) 병마녹사 겸 수제(兵馬錄事兼修製)가 되었다.
1207년(희종 3)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권보직한림(權補直翰林)으로 발탁, 참군사(參軍事)·사재승(司宰丞)·우정언(右正言)을 거쳐 1219년(고종 6)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지방관의 죄를 묵인하여 계양도호부부사(桂陽都護府副使)로 좌천되었다.
1220년(고종 7) 예부낭중(禮部郞中)·한림시강학사(翰林侍講學士)를 거쳐 30년 위위시판사(衛尉寺判事)가 되었으나, 팔관회(八關會) 행사에 잘못을 저질러 한때 위도(蝟島)에 유배되었으며 1232년(고종 19) 비서성판사(??書省判事)에 승진하고, 이듬해 집현전대학사(集賢殿大學士)·정당문학(政堂文學)·참지정사(參知政事)·태자소부(太子少傅) 등을 거쳐 1237년(고종 24)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감수국사(監修國事)·태자대보(太子大保)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호탕 활달한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는 유명하다.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써 격퇴한 명문장가였다. 시·술·거문고를 즐겨 삼혹호선생이라 자칭했으며, 만년에 불교에 귀의했다.
저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
작품: 시(詩)에 '천마산시(天摩山詩)', '모중서회(慕中書懷)', '고시십팔운(古詩十八韻)', '초입한림시(初入翰林詩)', '공작(孔雀)', '재입옥당시(再入玉堂詩)' , 초배정언시(初拜正言詩)', '동명왕편(東明王篇)',
문(文) : '모정기(茅亭記)'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 등이 있다
▲ 비 내리는 중에도 농사짓는 사람을 보고 써준 글 ⓒ 2013 한국의산천
자오당터
자오당(自娛堂)은 계양도호부의 관사로 계산동 769번지 근처에 있었다. 고려 고종 때의 대문호로 계양도호부 부사로 좌천되어 온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가 붙인 당호(堂號)이다.
이규보가 지은「자오당기」에 이르기를「고종 6년(1219) 초여름에 내가 대사간 지제고(大司諫 知制 )로부터 계양부사로 귀양왔다. 고을 사람들이 깊은 산 옆 나무 덤불 속에 쓰러질 듯 한 깨어진 달팽이집 같은 것을 태수의 처소로 삼았다. 들보와 기둥을 아무렇게나 얽어매어억지로 집이라고 이름한 것으로서 쳐다보면 머리를 들 수 없고 구부리면 무릎도 펼칠 수 없다. 더위를 만나 그 속에 있으려면 깊은 시루 속에 들어가서 찜질을 당하는 것 같다. 처자와 노비들이 머리를 내두르며 모두 거기에 거처하려 하지 않으나 나는 홀로 기뻐하여 깨끗이 쓸고 거처하며 인하여 그 집에 써 붙이기를 자오(自娛)라 하였다.」고 밝혀 놓았다.(중략)
「내가 성랑(省郞)이 되었을 때는 나가면 누른 옷입은 앞잡이가 길에서 외치고 집에 들면 맛있는 음식이 큰상에 가득하였으니 이 때를 당하여 고량자제에 있어서는 비록 부족할 것 같지만 나에게는 크게 과한 것이었다. 갑자기 "유사"의 모함을 입어 이 궁벽하고 황폐하여 비습한 땅이 떨어졌으니 아마도 하늘이 시킨 것이지 사람의 힘은 아니다.」등등으로 미루어 보아 지나친 과장으로도 보이나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처세를 바르게 한 인걸이었다.
시·술·거문고를 즐겨 삼혹호(三酷好)선생이란 별호가 있던 이규보는 유시로부터 작문에 능했고 경사·백가·불교 등 모든 문헌을 모두 섭렵하여 한번 읽고 기억하는 기발한 재사로 기개와 성격이 강직해서 조정에서는 인중룡(人中龍)이란 평을 받았다. 명종 20년(1190) 진사에 합격한 후 벼슬길에 올라 52세 때 계양도호부사로 좌천되어 오는 길에 한강 하구인 조강나루(祖江津)을 건너면서 그의 심화를 달래는 유명한 조강부(祖江賦)를 지었고 계양부에 부임하여「자오당기」를 지어 심화를 달랬던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초기의 학자 서거정은 이규보를 가리켜 동방의시호(詩豪)라 극찬했고, 몽고군의 침입을 진정표 한 장으로 물리친 려말의 대표적인 시인인 동시에 문장가로 그 호탕 활달한 시풍은 당대를 풍미하였다고 전한다. 시호는「문순공(文順公)」으로 묘소는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吉稷里)에 자리하고 있다.
▲ 계양구청근처 연무정으로 오르는 길 ⓒ 2013 한국의산천
계양산은 해발 395m로 인천을 대표하는 진산으로 1986년에 도시 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지정되어 현재 조성중에 있는 인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원으로서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계양구 방축동, 목상동, 다남동, 계산동과 서구 공촌동에 걸쳐 있으며 면적은 주변녹지를 포함하여 약 3,836천㎡에 이르고 있다.산으로 접어들면 회양목 등 수목이 매우 울창하다.
또한 계양산은 계양산성, 봉월사터, 봉화대의 유적지와 고려시대의 대학자 이규보가 거쳐하던 자오당터와 초정지가 위치한 곳으로 역사성과 유서가 깊은 곳이다.
계양산은 한강과 그 주변이 한눈에 들어와 국방의 요새로 중요한 산이었다. 또 백제 초기부터는 현재의 공촌동 지역에서 생산된 소금을 이 계양산 징매이고개를 넘어 서울 신정동 토성을 거쳐 지나던 소금통로 구실도 했다고 한다.
전해지는 얘기로는 계양산 건너편 강화도에 마리산과 마주했는데 마리산을 형산, 계양산을 아우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곳 마리산 반쪽이 떠내려가서 계양산이 되었다는 얘기다. 또한 계양산에 구름이 뜨면 반드시 비가 내리고 해풍이 몰아치면 비가 개인다고도 전해 온다.
고려시대 대학자 이규보가 거처했던 자오당터와 초정지는 유서가 깊은 곳으로 학생들의 훌륭한 교육장소가 되고 있다. 그의 저서 '망해지'에는 "길이 사면으로 계양지경에 났는데 오직 한면만이 육지를 통하고 삼면은 물이다."라고 계양산을 예찬한 구절이 나온다.
계양산 연무정에서 출발하여 하느재를 지나고 피고개를 지나서 다시 출발지인 경인여대까지 느긋하게 2시간 30분 소요됩니다 (식사는 아라뱃길 건너 장기리 추어탕집에서 했습니다)
계양산 둘레길2 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5636
▲ 경인여대 또는 연무정에서 출발하여 원점회기 (약2시간20분소요) ⓒ 2013 한국의산천
생명을 가진 것들의 색깔은 '빨강'이나'노랑' 또는 초록색으로만 고정되어 있는것은 아니다. 겨울의 색깔은 단연 백색이니 말이다.
▲ 요즘은 자전거복을 입고 산에 오른다. 겨울에는 자전거복장이 매우 따듯하고 방풍, 방한 보온이 매우 잘되는 의류이다. ⓒ 2013 한국의산천
▲ 하느재쉼터 사거리에서 계양산정상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오른쪽 하산길이 방축동에서 시작되는 둘레길의 시작입니다 ⓒ 2013한국의산천
피톤치드(방향성 물질)
피톤치드는 수목이 내뿜는 방향성 물질인 테르텐 계통의 유기화합물이 주를 이루지만, 향기가 그 전부는 아니다. 피톤치드를 구성하는 수십 가지의 물질 중에는 향기와 무관한 성분도 있다. 피톤치드에는 휘발성인 테르펜류 이외에도 알칼로이드, 배당체, 플라보노이드, 페놀성 물질 등 비휘발성 물질도 다량 있다
피톤치드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식물에 함유되어 있는 물질로서 미생물의 번식이나 생장을 억제하는 모든 물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수목(식물)은 이동할 수 없어 주위의 적으로부터 공격이나 자극을 받아도 피할 수 없다. 때문에 식물은 자기를 방어하는 물질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일례로 나무의 가지가 강풍 등으로 부러졌을 때 더 많은 피톤치드를 발산한다. 이러한 사실은 나무의 속살이 해충이나 미생물의 침입에 취약해짐에 따라 방어체계를 긴박하게 가동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수목들이 주위의 해충이나 미생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공기 중에 또는 땅 속에 발산하는 방향성의 항생 물질을 총칭하여 피톤치드라 한다.
도심을 탈출하여 자연 경관을 감상하며 기분을 전환하고 시각적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것을 넘어서, 건강증진과 치유적인 효과를 거두겠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산을 찾는 웰빙족이 늘어나고 있다. 삼림욕을 다른 말로 녹색샤워(Green Shower)라고도 한다. 삼림욕은 숲과 나무가 주는 녹색효과(Green Effect)-뇌의 알파파 증가, 녹색의 심리적 안정 효과 등을 몸으로 체험하는 자연건강법 입니다. 삼림욕을 통해 우리는 숲의 정기를 온몸으로 마시고 접한다. 삼림욕의 효과는 활엽수보다는 소나무, 잣나무, 편백나무 같은 침엽수 숲에서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언론매체에서 삼림욕의 효능에 관해 소개할 때, 거의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피톤치드라는 물질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삼림욕은 곧 피톤치드를 마시는 일로 인식되다시피 했다.
숲이 인간의 건강에 주는 이로운 요소로 깨끗한 공기와 음이온 그리고 피톤치드를 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것은 피톤치드 이다. 깨끗한 공기가 있는 환경은 산소를 다량 함유 시키거나 불순물을 거르는 필터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고, 음이온 역시 인위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러나 산소와 음이온은 적정량을 넘어서면 도리어 인간의 건강에 해로운 부작용도 있다. 피톤치드는 나무와 숲의 정수이다. 그래서 산림욕의 핵심적인 기능을 피톤치드를 흡수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피톤치드(Phytoncide)는 그리스어로 ‘식물’을 의미하는 Phyton=Plant(식물)과 ‘살균력’을 의미하는 Cide=Killer(살인자)를 합성한 말로서 “식물이 분비하는 살균 물질”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1930년 레닌그라드대학의 B. P. 토킹(Tokin) 교수가 마늘이나 양파 소나무 등에서 나오는 냄새나는 물질이 아메바 등 원생동물과 장티푸스, 이질, 결핵균등을 죽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물질을 피톤치드라고 명명한 이후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톤치드가 주목을 끄는 것은 자신을 위협하는 각종 해충, 병균, 곰팡이, 박테리아 등을 나무 자신이 자기방어하기 위하여 품어내는 독약 역할을 하지만 인간에게는 도리어 이롭게 작용한다. 피톤치드는 화학합성 물질이 아닌 천연물질이고, 인간의 신체에 무리없이 흡수되며, 인간에게 해로운 균들을 선택적으로 살균한다. 피톤치드는 항균작용, 소취작용, 진정작용, 스트레스 해소 작용 등 수많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피톤치드의 효능에 대해 밝혀진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다.
우리는 산속을 걷는다.
숲에 들면 차가우며 상쾌한 ....코끝에 닿는 공기의 냄새부터 다름을 느낀다.
▲ 장기동 황어장터 3·1 운동 기념탑 앞에서 ⓒ 2013 한국의산천
▲ 아라뱃길 황어상 앞에서 ⓒ 2013 한국의산천
계양산 둘레길2 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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