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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인제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봉평 메밀꽃밭

by 한국의산천 2012. 9. 12.

우리는 산 자징구타고 높은 산을 오르고 너른 들판을 달리는 사이에 벌써 가을이 성큼 성큼 다가옵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기승전결 희노애락 춘하추동 ~ 아 또 가을이구나~

 

 

이 가을에 어디로 떠날까?

지도를 펴놓고 가슴 벅찬 즐거운 고민하다가 그냥 시간만 흘러가더이다 ~

 

 

인제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글·사진 김혜영 여행작가]

 

3.5㎞ 탐방로 옆엔 야생화도 한창… 시간은 숲 안에서 정지되고, 바닥에 누인 팔다리는 나무뿌리가 되어 자연과 하나 된다

 

▲  자작나무는 하얗고 매끄러운 외모를 지녀‘숲의 여왕’이라 불린다. 순백의 줄기와 싱그러운 초록잎이 한데 어우러진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 숲에 들어서는 순간, 심신에 쌓인 시름과 피로가 깨끗이 풀린다

 

시베리아를 무대로 한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멋진 자작나무숲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에 있는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다. 그 숲에 머무는 동안에도 우리나라의 풍경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국적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하얀 자작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숲길을 걷다 보면 온갖 시름과 피로가 말끔히 씻어지는 듯하다.

 

자작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에서 주로 볼 수 있다. 태백 삼수령이나 평창 대관령을 자동차로 넘다 보면 산기슭에 빼곡하게 들어선 자작나무숲이 눈길을 끈다. 워낙 가파르고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이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먼발치에서 눈으로 감상하는 숲이 아니다. 산책로를 따라서 울창한 숲을 가로지르며 잘 자란 자작나무들을 쓰다듬어 보거나 안아볼 수 있어 자작나무숲의 매력을 오감(五感)으로 즐기는 곳이다.

 

이 자작나무숲은 원래 인제국유림관리소가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해 1974~95년 자작나무 138ha를 조림한 곳이다. 2008년 숲의 일부를 '숲속유치원'으로 꾸며 아이들이 숲선생님과 함께 타잔 놀이, 외나무다리 걷기, 꽃 이름 알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근래에 이곳이 TV와 사진가들을 통해 알려지면서 일반 탐방객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숲을 관리하고 있는 인제국유림관리소도 탐방객을 유치하고 숲을 보호하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올여름에는 자작나무숲으로 들어가는 임도의 위험 구간을 정비하고 야외 교실, 작은 연못, 수목 표찰 등 체험시설을 확충하는 공사를 마무리했다.

자작나무숲에 가려면 약간의 발품을 팔아야 한다. 초소에서 숲까지 3.2㎞ 구간은 걸어 들어간다. 초소를 지나자마자 언제부턴가 자작나무숲 길잡이견을 자처하고 있는 진도개 두 마리가 나타나 탐방객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안내한다. S자 모양으로 구불거리는 임도는 콘크리트 포장도로와 파쇄석이 깔린 길 그리고 운치 좋은 흙길이 번갈아 나타난다. 양쪽 길가에는 활엽수가 울창하고 길섶에는 물봉선, 마타리, 당귀, 동자꽃, 닭의장풀, 층층이꽃, 거북꼬리 등 야생화가 한창이다.

 

한 시간 정도 임도를 걷다 보면 왼쪽에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 새겨진 나무 조각상이 보인다. 조각상 뒤로 새하얀 줄기에 싱그러운 초록 잎이 우거진 자작나무숲이 펼쳐진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멋진 자작나무숲이 있다니! 사람마다 탄성을 지른다. 숲이 울창해서 한 무리의 탐방객들이 자작나무들 사이로 빨려 들어간 듯이 금세 사라지고 만다.

 

숲 속에는 세 개의 탐방로가 있다. 1코스인 자작나무코스(0.9㎞), 2코스인 치유코스(1.5㎞), 3코스인 탐험코스(1.1㎞)이다. 총길이 3.5㎞의 이 탐방로는 한 사람만 걸을 수 있는 너비여서 아늑하고 조붓한 느낌을 준다.

 

숲 한가운데에는 작은 쉼터와 광장이 마련돼 있다. 광장에는 숲속유치원 시설인 자작나무 그네와 정글, 외나무다리 등이 놓여 있다. 탐방객들은 나무 그네에 매달려 보기도 하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보기도 한다. 어느새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어른들의 웃음 띤 얼굴이 아이처럼 해맑다.

 

숲은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는 두메여서 잠시나마 번잡한 세상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쉼터에 자리를 펴고 한참 동안 앉아 있어도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햇살이 새하얀 수피(樹皮)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바닥에 누워 따사로운 가을볕이 얼굴을 간질이는 느낌도 즐겨 본다. 시간은 숲 안에서 정지되고, 바닥에 누인 팔다리는 나무뿌리가 되어 자연과 하나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한다.

 

 여행수첩

■트레킹코스: 원대리 산림감시초소~위쪽 임도(원정도로)~자작나무숲~아래쪽 임도(91원대)~초소(순환코스, 자작나무숲에서 아래쪽 임도를 거쳐 초소로 되돌아오는 거리는 약 5㎞)

 

■찾아가는 길: 경춘고속도로를 거쳐 춘천동홍천고속도로 동홍천IC에서 44번국도를 타고 인제 방면으로 향해 가다가 남전교를 지나기 직전에 우회전하여 인제종합장묘센터를 지나 10분 정도 더 가면 오른쪽에 아이올라펜션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 뒤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원대산림감시초소가 나온다. 초소에서 5분 정도 걸으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원정도로(자작나무숲) 방향으로 간다. 3.2㎞쯤 가다보면 왼쪽으로 자작나무숲이 보인다. 초소 부근에 주차 공간이 있다.

 

 

 

■맛집: 원대리에 있는 원대막국수(033-462-1515)는 소문난 맛집이다. 아이올라펜션(033-463-5334)은 주인장이 직접 기른 유기농채소와 나물로 산채비빔밥을 내놓는다.

■주소·문의: 강원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 산75-22번지, 인제국유림관리소(033-460-8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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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 메밀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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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담아 하얀 꽃에 숨막힐 듯 그 무렵…
지금 절정… 봉평 메밀꽃밭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입니다. 해마다 메밀꽃 필 때면 여기저기서 간단없이 흘러나오는 문구지요. 달 뜬 밤, 메밀꽃밭을 거닐자면 이효석의 묘사가 얼마나 정확하고 또 아름다웠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달빛 받은 메밀꽃이 별처럼 반짝이는 풍경, 상상이 되시나요. 그 메밀꽃이 지금 강원 봉평에 가득합니다. 전국에 메밀밭은 많습니다. 하지만 문학의 향기가 깃든 메밀밭은 봉평이 유일할 겁니다.

 

▲ 달빛을 받아 흰 소금처럼 빛나는 창동리 산자락의 메밀꽃밭.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허 생원이 보았던 풍경도 이와 같았을 게다.  (서울신문)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 전문은 아래에 있습니다  

 

메밀은 희다. 반면 껍질은 검다. 예전엔 맷돌에 그냥 갈았다. 껍질과 알곡을 함께 빻았으니 메밀가루도 거무스름할 수밖에. 요즘엔 도정 방식이 개량됐다. 껍질 가운데를 잘라 메밀만 쏙 빼낸다. 그래서 요즘 메밀은 희다. 하지만 뜻밖에 사람들은 흰 메밀을 믿지 않는다. 빛깔도 탁하고, 맛도 덜한 옛것만 찾는단다.

구황식물이었던 메밀이 볼거리가 될 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너른 들녘이며, 비탈진 산허리, 심지어 집 텃밭까지 흰 메밀꽃 천지다. 봉평의 메밀 재배면적은 66만㎡(약 20만평)에 이른다고 한다. 과장을 좀 보태면, 봉평 땅 전체에 메밀꽃 하얀 융단이 깔린 듯하다.

 

  가산 이효석(1907∼1942)이 읊조렸던 그 문장에 가장 걸맞은 풍경을 품은 곳은 봉평면 창동리의 ‘효석 문학의 숲’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줄거리를 재현한 숲속문화 체험공간이다. 전체 면적은 52㏊에 이른다. 장돌뱅이 허 생원이 나귀 몰아 향했던 봉평장터, 동이와 허 생원이 상봉한 주막집인 충주집, 허 생원이 성씨 처녀를 통해 일생 처음으로 여자를 알게 된 물레방앗간 등이 조성됐다. 주변엔 자작나무와 소나무 등을 심어 운치를 더했다. 500m의 소설길과 2.7㎞의 등산로 등을 조성하고, 돌배나무와 벌개미취 등도 식재했다.

 

  메밀꽃밭은 문학의 숲 초입과 산자락 중턱 등 두 곳에 조성됐다. 거추장스러운 부대시설 없이 자연 그대로의 수수한 메밀꽃밭과 마주할 수 있다. 특히 산허리에 조성된 메밀밭이 장관이다. 멀리 회령봉 등 1000m가 넘는 고산준령들이 아련하고, 그 안쪽의 산촌마을 위로 메밀꽃이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문학의 숲은 오후 6시가 넘으면 문을 닫는다.

 

  봉평은 이효석이 나고 자란 곳이자, 그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곳이다. 소설의 무대였던 현장들도 재현되어 있다. 봉평면소재지에서 남안교를 건너면 효석문화마을이다. 공원에 세워진 이효석 동상 뒤로 충주집이 보인다. 장돌뱅이들이 술추렴을 하던 주막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오래전 실재했던 충주집은 이효석이 학창시절에 도시락을 맡겨놓았다가 점심을 먹곤 했던 곳이라 전해진다. 실제 집터는 봉평장터 옆 주택가에 표지석으로만 남았다.

남안교 옆은 물레방앗간이다. 손으로 돌리던 재래식 탈곡기와 먼지가 내려앉은 방아가 여행객을 맞고 있다. 효석문화마을 산자락엔 복원된 이효석의 생가와 그가 평양에서 살던 푸른집 등도 조성되어 있다. 언덕 위의 이효석 문학관엔 그의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효석 문학의 숲’에선 소설 속 주요 장면들을 재현한 조각상들을 만날 수 있다.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소설의 향기 좇아 걷는 길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장돌뱅이 허 생원은 흥정천을 따라 밤길을 걸었다. 봉평에서 장평을 거쳐 대화에 이르는 팔십 리 길이다. 이효석이 생전 걸었던 길도 그와 닮았다. 봉평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대처였던 평창에서 초등학교를 마쳤다. 필경 평창에서 하숙을 했을 텐데, 일요일이나 방학 때면 허 생원이 다녔던 그 길을 따라 평창과 봉평을 오갔을 게다. 대화는 봉평과 평창 사이에 있다.

 

  평창군에서 ‘효석문학 100리길’을 조성하고 있다. 이효석과 허 생원이 걸었던 봉평에서 평창까지 49.2㎞에 이르는 길이다. 현재는 5개 코스 가운데 제1구간인 ‘문학의 길’(7.8㎞)만 열렸다. 봉평관광안내센터를 출발해 흥정천교~팔석정~백옥포마을∼용평여울목까지, 소설의 향훈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길이다. 난이도는 높지 않다. 자박자박 걸어도 채 3시간이 안 걸린다.

 

  이 길에서 만나는 뜻밖의 풍경이 팔석정이다. 강릉부사 양사언이 빼어난 경치에 반해 정사를 멀리한 채 8일간 노닐었다는 곳이다. 바위 여덟 곳에 석대투간(石臺投竿·낚시하기 좋은 바위) 등의 글을 새겨 놓아 팔석정이라 불린다. 맑은 흥정천이 적송이 어우러진 팔석정을 휩쓸며 흘러가는 모양새가 제법 도도하다.

평창효석문화제(www.hyoseok.com)가 오는 16일까지 봉평면 효석문화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효석문학 100리길 걷기’ ‘효석백일장’ 등 다채로운 문학행사가 줄을 잇는다. 이효석문학관에서는 1968년 제작된 영화 ‘메밀꽃 필 무렵’을 감상할 수 있다. 마당놀이·인형극 등 풍성한 공연도 마련된다.

 

▲ 서울에서 강릉까지 달리던중에 시속 30~35km의 속도로 봉평을 지나갔다. 아쉬웠지만 갈길이 멀어 현지답사는 패스~ ⓒ 2012 한국의산천

 

●봉평장에서 만나는 넉넉한 풍경들

봉평장을 둘러봐도 좋겠다. 봉평장은 매달 2, 7일로 끝나는 날에 선다. 여느 재래시장과 달리 ‘신식’ 건물로 지붕을 이지 않아 흐릿하게나마 옛 정취가 살아 있다. 봉평장은 예부터 대화, 진부장 등 보다 규모가 크기로 유명했다. 요즘엔 메밀축제나 스키 시즌에 외지인들이 놓치지 않고 들르는 관광지가 됐다. 봉평에 전을 차린 상인들은 내일이면 진부, 모레는 대화, 글피에는 평창이나 둔내에 같은 전을 다시 펼친단다.

수수 부꾸미 하나 입에 넣고 장터를 기웃댄다. 메밀 모주와 막걸리를 거푸 들이켜 불콰해진 어르신이며, 메밀 전병과 메밀전을 앞에 놓고 자지러지게 웃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모습들을 보자니 시간이 옛날로 회귀한 느낌이다. 장터에 각설이 노래판이 빠지랴. 이들이 해학 넘치는 ‘트로트 메들리’를 이어갈 때면 손님들의 입가엔 웃음꽃이 매달린다.

 

  장터에서 가장 많은 건 역시 메밀 관련 제품들이다. 삼천포 왕쥐포, 계절의 진미 전어 등 갯것들도 눈에 띈다. 봉평장에선 ‘글로벌리즘’도 유효하다. 제법 너른 좌판을 깐 외국인들이 눈에 띈다. 케냐에서 왔다는 모자는 다양한 목각 소품들을 전시했고, 터키에서 온 남정네는 연신 ‘형제의 나라’를 강조하며 케밥을 ‘강매’하고 있다. 수수 부꾸미로 배를 채웠고, 주전부리로 산 옥수수 알들은 입안에서 청포도처럼 터지니, 이보다 더한 호사가 없다.

서울신문 / 글 사진 평창 손원천기자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출발한다면 영동고속도로 장평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좋다. 구불구불 옛 국도를 따라 천천히 가겠다면 면온나들목도 좋다. 평창군청 문화관광과 330-2771. 우리테마투어(www.wrtour.com)는 23일까지 매주 금~일요일 서울에서 봉평, 대관령 양떼목장 등을 다녀오는 당일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3만 3900원.

맛집:봉평 읍내 미가연(335-8805)은 메밀음식 특허를 3개나 보유한 식당. 메밀싹 육회 비빔밥·쓴메밀 국수·메밀싹 주스 등 별미를 맛볼 수 있다. 평창한우마을(334-9777)에서는 30% 이상 싸게 한우숯불구이를 즐길 수 있다. 상차림비 4000원은 별도다.

잘 곳:평창 북쪽에 용평리조트(1588-0009), 휘닉스파크(1588-2828) 등 대형 리조트가 있다. 봉평 쪽에서는 W모텔(333-2004)이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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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을 품은 '宮'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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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프로젝트' 19일부터]
고종의 슬픔 담긴 함녕전, 순종이 아내 잃은 석어당… 조형·영상으로 운명 담아내
 

영욕의 조선 왕실史 표현

"궁궐과 현대미술 접목 처음"
 

덕수궁 석어당(昔御堂)은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피란 갔던 선조가 서울에 돌아와 머문 곳이다. 전쟁으로 피폐한 도성과 백성을 보며 한숨짓던 선조가 세상을 떠난 곳도 바로 이곳. 순종은 황태자 시절 석어당에서 첫 아내를 잃었다. 작가 이수경은 순탄치 않은 삶을 지켜본 이 건물에 '눈물' 조각을 설치한다. 눈물 한 방울이 응결된 것 같은 이 조각에 수천 개의 LED 조명이 비치면서 슬프지만, 아름다운 모양이 탄생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사람의 운명을 그려냈다는 설명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 4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덕수궁이 우리 현대미술과 만난다. 19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의 문화유산을 재해석한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덕수궁 프로젝트'전이다. 중화전, 함녕전, 덕홍전, 석어당 등 덕수궁의 6개 전각과 후원,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다. 서도호, 정영두, 이수경, 임항택, 김영석, 정서영, 류한길, 류재하, 하지훈, 성기완, 최승훈, 박선민 등 현대 미술계의 작가, 디자이너, 무용가, 음악가 12명이 참여한다.

 

▲  작가 이수경씨가 덕수궁 석어당에 설치한 조각‘눈물’. 석어당을 거쳐 간 왕들의 슬픈 운명을 표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옥을 모델 삼아 천으로 집을 지어 세계 곳곳에서 전시회를 가진 '집의 작가' 서도호는 함녕전에 도전한다. 고종이 1907년 강제퇴위당한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침전(寢殿)이 함녕전이다. 서도호는 아내를 잃고 나라까지 빼앗긴 군주의 외로움을 담아내려 했다. 먼저 함녕전 동온돌 바닥을 깨끗이 닦고, 마름꽃 무늬가 있는 능화지(菱花紙)로 깔끔하게 도배해, 주인 잃은 침실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고종이 잘 때, '보료 세채'를 깔았다는 상궁 증언에서 영감을 얻어 안무가 정영두와 함께 고종 침실에서 일어났을 일을 퍼포먼스로 재현했다.

 

  서도호는 "고종이 먼저 세상을 뜬 명성황후와 엄비를 생각하며, 보료 세채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한다. 이 과정을 담은 영상작품을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하고, 함녕전에도 퍼포먼스를 기록한 비디오를 설치했다.

 

  함녕전 바로 옆 군주의 집무공간인 덕홍전은 원래 명성황후의 신주를 모시던 경효전이 있던 곳이다. 일본이 한국을 강제병합한 후인 1912년 덕홍전으로 바꿔 불렀다.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은 은빛 크롬으로 마감한 의자를 바닥 가득 깔았다. 벽과 천장의 무늬가 울퉁불퉁한 의자 표면에 비치고, 다시 반사하면서 왜곡과 변형이 증폭된다. 관객이 안을 서성거릴 때, 사운드 아티스트 성기완의 음악과 함께 여인의 흐느낌, 찻잔 부딪치는 소리,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고층 빌딩이 까마득하게 올려다보이는 덕수궁 연못가 숲에선 그림자놀이가 펼쳐진다. 이곳엔 원래 궁궐 업무를 맡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1930년대 덕수궁 공원화 사업 때문에 건물은 대부분 철거됐고, 1960년대엔 연못 일대에 스케이트장이 들어서기도 했다. 작가 최승훈과 박선민은 이 숲 속에 그림자놀이 영상을 설치한다. 창문 틈으로, 또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여유를 체험하게 해준다.

 

  전시회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국내에서 궁궐과 현대 미술을 접목시킨 사례는 거의 없었다"면서 "덕수궁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예술가의 상상력과 해석으로 풀어냄으로써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

 

 

▲ 홍유릉 뒤편 영원에 자리한 묘비에는 ' 대한 덕혜옹주지묘 (大韓 德惠翁主之墓)" 라고 쓰여있다 ⓒ 2012 한국의산천

※ 옹주(翁主) : 왕녀의 의미로 어머니가 측실(후궁)인 경우에 사용합니다 (어머니가 정비일때는 공주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잠드신 홍릉 뒤쪽에 자리한 덕혜옹주묘역

그래도 아버지(고종황제)와 오빠(영친왕)가 곁에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누가 떠나고 누가 남는가

위대한 사람들의 무덤을 바라볼 때
마음속 시기심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미인들의 묘비명을 읽을 때
무절제한 욕망은 덧없어진다.

아이들 비석에 새겨진 부모들의 슬픔을 읽을 때
내 마음은 연민으로 가득해진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부모들 자신의 무덤을 볼 때
곧 따라가 만나게 될 사람을 슬퍼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가를 깨닫는다.

쫓겨난 왕들이 그들을 쫓아낸 사람들 옆에
묻혀있는것을 볼 때
또 온갖 논리와 주장으로 세상을 갈라놓던
학자와 논객들이 나란히 묻힌것을 볼 때
인간의 하잘것없는 다툼, 싸움, 논쟁에 대해
나는 슬픔과 놀라움에 젖는다. -조지프 에디슨. 웨스트 민스트 대성당에서 쓴 글-   

 

 

▲ 덕수궁 그리고 홍유릉 뒤편에 자리한 영원의 자리한 덕혜옹주묘를 찾아갈 때. 그때가 지난해 12월이었찌 ... ⓒ 2012 한국의산천 

 

■ 기울어가는 왕실에서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조선의 마지막 皇女 덕혜옹주

 

덕수궁과 대한제국 덕혜옹주 관련글 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4425

홍유릉 영원에 영면하신 덕혜옹주 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5277

 

 

▲ 홍유릉.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홍릉(洪陵)에서 ⓒ 2012 한국의산천

홍릉(洪陵)은 조선 제26대 왕이며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高宗皇帝, 1852~1919, 재위 1863~1907)과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 민씨의 동봉이실 합장릉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 홍유릉지구에 있다.

 

가을 캠핑, 해본 사람만 안다 [춘천=글 김기환 월간 山 기자] 

 

진짜 캠핑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가을… 춘천 굴봉산 캠핑장을 가보다
모닥불 피워 놓고~ 수다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가을 밤
 

 

▲ 나무로 기둥 삼고 숲을 지붕 삼아 대자연에서 보내는 초가을의 하룻밤.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숲 속에 파묻히는 가을 캠핑은 편안한 휴식을 즐기며 추억을 만드는 가족 나들이로 적당하다.

 

  새벽이면 코끝에 닿는 바람이 제법 차다. 얼마 전까지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옛 기억'으로 물러서고 있다. 성가시게 달려들던 날벌레도 사라졌다. 한층 부드러워진 한낮의 햇볕이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다. 바야흐로 '하늘 높고 물 맑은 계절', 가을이 찾아왔다.

 

 야외 취침을 즐기는 오토캠퍼에게도 가을은 축복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기온과 안정된 날씨 덕분이다. 게다가 가을이 되며 한적해진 야영장에서 즐기는 여유로운 캠핑은 확실히 만족도가 높다. 피서객들이 몰리는 여름보다 훨씬 편안하다.

"고수들은 한여름 성수기에는 캠핑을 쉰답니다. 오히려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가을에 진짜 캠핑 재미를 느낀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이달 초 만난 강원도 춘천 굴봉산 캠핑장의 홍경희 대표는 한바탕 전투를 치른 장수처럼 약간 지쳐 보였다. 경춘선 굴봉산역 부근의 캠핑장은 한 달 전만 해도 많은 이가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서울에서 가까운 데다 계곡에서 물놀이하며 더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캠핑객(캠퍼)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올해 처음 개장해 시설이나 운영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캠핑장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환경이 장점이자 테마입니다."

그의 말대로 굴봉산 캠핑장의 첫인상은 약간 거칠었다. 손을 많이 보지 않아 깔끔한 맛은 없었다. 캠프사이트 구획도 없어 나무 사이 적당한 공간에 텐트를 쳐야 했다. 취사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약간 허술했다. 하지만 캠프장을 둘러싼 병풍 같은 산자락과 울창한 숲은 훌륭했다. 바로 옆으로 전철이 지나가지만 깊은 산골과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캠핑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적당한 자리를 골랐다. 큰 나무 밑은 그늘이 좋지만 활동공간이 좁았다. 오히려 주차장 근처의 넓은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여러 사람이 모여 놀기에는 트인 공간이 더 낫기 때문이다. 해가 지기 전 숲 전망이 좋은 널찍한 풀밭에 텐트를 설치했다. 바로 옆에 타프(그늘막 텐트)로 커다란 지붕을 만들어 밤이슬에 대비했다.

 

 

▲  선선한 가을밤, 화로에 구워 먹는 소시지 맛은 어디에 비할 수 없는 일품이다. 모닥불을 피우고 가족과 친구끼리 이야기꽃을 피우며 추억을 만드는 밤이다. /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일교차가 큰 가을철에는 해가 진 후 대개 찬 이슬이 내린다. 가랑비처럼 온 세상을 축축하게 적시는 이슬을 피하기 위해 채비를 단단히 했다.

아이들은 캠핑장에 도착할 때부터 물가에서 어슬렁대더니 결국 계곡에 뛰어들었다. 작은 그물을 들고 고기를 잡겠다며 물속을 이리저리 휘젓고 돌아다녔다. 피라미 한 마리를 포획하는 작은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입고 있던 옷이 흠뻑 젖어 엉망이 됐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 캠프로 돌아온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고 불가에 모여 앉았다.

모닥불 피우기는 캠퍼들의 놀이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도시에서는 엄두도 못 낼 독특한 체험이기 때문이다. 특히 밤 기온이 크게 떨어지는 가을부터 모닥불은 필수다. 젖은 몸을 말리거나 숯불을 이용해 바비큐 요리를 즐기며 밤 시간을 보내는 낭만을 즐길 수 있다. 모닥불은 캠핑장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모닥불을 피울 때는 밑불을 잘 만들어야 한다. 야영장 구석에 쌓여 있던 커다란 장작을 가져와 도끼로 잘게 쪼갰다. 그리고 번개탄에 불을 붙인 뒤 소나무 가지와 작은 불쏘시개를 그 위에 올렸다. 순식간에 짙은 연기가 야영장에 깔리며 솔향기가 퍼져 나갔다. 자연의 냄새를 맡으며 캠핑장의 밤을 준비했다.

 

  테이블과 의자까지 타프 아래 설치하니 숲 속에 근사한 집이 완성됐다. 편히 쉴 곳이 마련되니 잊고 있던 시장기가 밀려왔다. 급히 아이스박스 속에 굴러다니던 소시지를 꺼내 화로 위에 올렸다. 뜨거운 석쇠 위에서 익어가는 소시지가 너무도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입맛을 다셨다. 캠핑장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특별한 것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평소에 즐기던 것들도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맛의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먹는 즐거움을 빼놓고 캠핑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모닥불가에 모여 앉아 요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슬그머니 해가 졌다. 산골의 밤은 도시와 달리 무척이나 어둡다. 특히 여러 겹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유난히 밤이 짙었다. 랜턴을 밝혀 텐트 주변의 어둠을 멀리 쫓았다. 화로에 올린 커다란 장작에 불이 붙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추위에 굳어진 몸이 녹으니 마음도 편안해진다. 조용하고 따뜻한 캠핑장의 가을밤이 좋다.

 

여행 수첩

굴봉산 캠핑장은 경춘선 굴봉산역에서 남쪽으로 4km가량 떨어진 산속에 자리하고 있다. 올해 처음 개장한 곳으로 아직은 기본적인 편의시설을 갖춘 수준이다. 깔끔한 캠핑장에 익숙한 이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깝고 전철로도 접근이 가능한 입지가 장점이다. 또한 캠핑장 인근에 레일바이크, 산악오토바이, 자전거, 서바이벌게임, 수상레포츠 등 레저 기반시설이 즐비하다. 오토캠핑과 체험 레포츠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베이스캠프의 적지로 꼽을 만하다. 4인 기준 오토캠핑장 이용료(전기 제공) 1일 2만5000원(성수기 3만5000원). 010-7150-7508. 

 

 

 

 

 찾아가는 길

서울 상봉역에서 출발해 굴봉산과 강촌, 김유정역을 거쳐 춘천으로 운행하는 경춘선 전동차(05:10~23:00)가 15~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춘천행 'ITX-청춘' 고속열차는 강촌역에서만 정차한다. 다른 역으로 가려면 강촌에서 내려 일반 열차로 갈아타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서울에서 양평을 거쳐 춘천으로 이어지는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강촌IC에서 강촌역이나 굴봉산역으로 접근한다. 김유정역은 남춘천IC로 나와 접근하는 것이 가깝다.

 

캠핑장 인근 즐길거리

 

 

 

경춘선 전철이 개통되며 캠핑장 인근에서 폐철로를 이용한 레일바이크<사진>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지난 8월 18일 운행을 시작한 경춘선 레일바이크는 북한강을 조망하며 철길을 달릴 수 있다. 굴봉산역에서 가까운 옛 경강역에서 가평역을 왕복하는 7.2㎞ 코스와, 김유정역에서 강촌역, 강촌역에서 김유정역을 잇는 8㎞ 편도 코스가 운행 중이다.

 

그 중 김유정역에서 강촌역으로 이동하는 코스가 내리막 구간이 많아 편안하게 옛 경춘선의 낭만을 즐기기 좋다. 김유정역에서 출발하는 레일바이크는 주말 낮 시간이면 매진될 정도로 인기다. 철길을 따라가며 중간에 거치게 되는 터널에 설치한 다양한 전시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김유정역과 강촌역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레일바이크가 출발하며, 1시간 30분 걸린다. 요금은 4인승 기준 3만5000원. 전화(033-245-1000~2) 예약도 가능하다. railpark.co.kr

 

맛집

강촌역 주변에는 춘천의 명물 닭갈비와 매운탕 등을 취급하는 곳이 많다. 강촌토종닭갈비(033-261-5949), 닭갈비자존심(033-264-7100), 춘천명동닭갈비(033-261-5174), 명물닭갈비(033-262-8692), 산골식당(261-4521), 토속촌옛날옛집(262-2333) 등이 있다.

 

가을 캠핑 조심할 것들

1. 가을에는 불을 다룰 일이 많다. 모닥불을 피울 때 항상 어른이 옆에서 지켜보며 불이 번지지 않도록 감시한다. 불 옆에는 반드시 소화기를 비치한다.

2. 땅벌 같은 해충이나 독사를 주의해야 한다. 특히 수풀이 우거진 곳에 캠프 사이트를 설치할 때는 사전에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3. 텐트 속에 난로를 피울 경우 질식 사고에 주의한다. 수시로 환기하고 잠잘 때는 반드시 불을 끈다.

4. 침낭에 뜨거운 물을 담은 물통이나 핫팩을 넣을 경우 저온화상에 조심한다. 특히 감각이 둔한 노약자나 피부가 약한 어린아이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5. 가을은 모닥불 옆에 모여 술을 마시며 즐기는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음주나 소란으로 주변 캠핑객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삼간다.

 

▲ 굴봉산 주변 지형도 ⓒ 2012 한국의산천

굴봉산 주변에는 산행지로서 좋은 곳이 많다. 새덕봉, 유계봉, 검봉, 한치령을 지나서 봉화산 오르기 등등...

 

▲ 굽이 굽이 아름다운 길. 한치령 ⓒ 2012 한국의산천   

홍천 11사단에서 3년간 군대생활을 하면서 춘천 의암댐 폭파 훈련중에 한겨울에 넘었던 한치령. 그 후로 등산을 하며 걸어서 넘고 자전거를 타고 자주 가는 곳이 되었다.

 

▲ 굴봉산역에서 한치령을 올라 봉화산을 지나서 문배마을과 구곡폭포를 지나서 강촌역 그리고 강변도로를 따라서 백양역을 지나 다시 굴봉산역으로ⓒ 2012 한국의산천  

 


메밀꽃 필 무렵 [이 효석 ]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뭇군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윳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떼도 장난군 각다귀들도 귀치않다. 얽둑배기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에게 낚아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봉평장에서 한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 있을까.내일 대화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
“오늘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 필과 주단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바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장이도, 엿장수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된다. 장판은 잔치 뒷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군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찢어졌다. 장날 저녁은 정해놓고 계집의 고함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 충줏집 말야.”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연소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렇지두 않을걸. 축들이 사족을 못쓰는 것두 사실은 사실이나,아무리 그렇다군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같이 충줏집을 후린 눈치거든.”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가지구 나꾸었나부지. 착실한 녀석인줄 알았더니.”
“그길만은 알 수 있나……궁리 말구 가보세나그려. 내 한턱 씀세.”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 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얽둑배기 상판을 쳐들고 대어 설 숫기도 없었으나 계집 편에서 정을 보낸 적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버린다. 충줏집 문을 들어서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 된 서슬엔지 발끈 화가 나버렸다. 상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군인데 꼴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서면서부터 책망이었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딪칠 때, 얼결김에 따귀를 하나 갈겨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고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없이 마음먹은 대로는 다 지껄였다??어디서 주워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겠으나, 네게도 아비 어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면 맘 좋겠다. 장사란 탐탁하게 해야 돼지, 계집이 다 무어야. 나가거라, 냉큼 꼴 치워.
그러나 한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두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짓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손님이면서두 아무리 젊다구 자식 낳게 된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 셀 것은 무어야 원. 충줏집은 입술을 쭝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 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나 하고 그 자리는 조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면 죄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담도 생긴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거나해짐을 따라 계집 생각보다도 동이의 뒷일이 한결같이 궁금해졌다. 내 꼴에 계집을 가로채서는 어떡헐 작정이었누 하고 어리석은 꼬락서니를 모질게 책망하는 마음도 한편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지난 뒤인지 동이가 헐레벌떡거리며 황급히 부르러 왔을 때에는, 마시던 잔을 그 자리에 던지고 정신없이 허덕이며 충줏집을 뛰어나간 것이다.
“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에요.”
“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뒤를 따라 장판을 달음질하려니 거슴츠레한 눈이 뜨거워질 것같다.
“부락스런 녀석들이라 어쩌는 수 있어야죠..”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은 그냥 두지는 않을걸.”
반평생을 같이 지내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가스러진 목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곱을 흘렸다. 몽당비처럼 짧게 쓸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아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목덜미를 어루만져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거리고 입을 투르르거렸다. 콧물이 튀었다. 허생원은 짐승 때문에 속도 무던히는 썩였다. 아이들의 장난이 심한 눈치여서 땀밴 몸뚱어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좀체 흥분이 식지 않는 모양이었다. 굴레가 벗어지고 안장도 떨어졌다. 요 몹쓸 자식들, 하고 허생원은 호령을 하였으나 패들은 벌써 줄행랑을 논 뒤요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호령에 놀래 비슬비슬 멀어졌다.
“우리들 장난이 아니우. 암놈을 보고 저 혼자 발광이지.”
코흘리개 한 녀석이 멀리서 소리를 쳤다.
“고녀석 말투가……”
“김첨지 당나귀가 가버리니까 온통 흙을 차고 거품을 흘리면서 미친 소같이 날뛰는걸. 꼴이 우스워 우리는 보고만 있었다우. 배를 좀 보지.”
아이는 앙토라진 투로 소리를 치며 깔깔 웃었다. 허생원은 모르는 결에 낯이 뜨거워졌다. 뭇 시선을 막으려고 그는 짐승의 배 앞을 가리어 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아이의 웃음소리에 허생원은 주춤하면서 기어코 견딜 수 없어 채찍을 들더니 아이를 쫓았다.
“쫓으려거든 쫓아보지.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이 하나도 후릴 수 없다. 그만 채찍을 던졌다. 술기도 돌아 몸이 유난스럽게 화끈거렸다.
“그만 떠나세. 녀석들과 어울리다가는 한이 없어.장판의 각다귀들이란 어른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인걸.”
조선달과 동이는 각각 제 나귀에 안장을 얹고 짐을 싣기 시작하였다. 해가 꽤 많이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드팀전 장돌림을 시작한 지 이십 년이나 되어도 허생원은 봉평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지방도 헤매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 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는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것같지는 않았다.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반날 동안이나 뚜벅뚜벅 걷고 장터 있는 마을에 거지반 가까왔을 때 거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더구나 그것이 저녁녘이어서 등불들이 어둠 속에 깜박거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건만 허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든지 가슴이 뛰놀았다.
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 돈푼이나 모아본 적도 있기는 있었으나, 읍내에 백중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고 하여 사흘 동안에 다 털어버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이었으나 애끓는 정분에 그것만은 이를 물고 단념하였다. 결국 도로아미타불로 장돌림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는 없었다. 짐승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해 나왔을 때에는 너를 팔지 않기 다행이었다고 길가에서 울면서 짐승의 등을 어루만졌던 것이었다. 빚을 지기 시작하니 재산을 모을 염은 당초에 틀리고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러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호탕스럽게 놀았다고는 하여도 계집 하나 후려보지는 못하였다. 계집이란 쌀쌀하고 매정한 것이었다. 평생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신세가 서글퍼졌다.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꼭 한번의 첫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번의 괴이한 인연!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의 일이었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 없어.”
허생원은 오늘밤도 또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조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렇다고 싫증을 낼 수도 없었으나 허생원은 시치미를 떼고 되풀이할 대로는 되풀이하고야 말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생원의 이야기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줏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나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팔자에 있었나부지.”
아무렴 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를 아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었다.구수한 자줏빛 연기가 밤기운 속에 흘러서는 녹았다.
“날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팽이가있는 것두 아니었네. 처녀는 울고 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으나 성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날 판인 때였지. 한집안 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겠나? 좋은 데만 있으면 시집도 보내련만 시집은 죽어도 싫다지……그러나 처녀란 울 때같이 정을 끄는 때가 있을까. 처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정 있을 때는 누그러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었네……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어.”
“제천인지로 줄행랑을 놓은 건 그 다음날이렷다.”
“다음 장도막에는 벌써 온 집안이 사라진 뒤였네. 장판은 소문에 발끈 뒤집혀 고작해야 술집에 팔려가기가 상수라고 처녀의 뒷공론이 자자들 하단 말이야. 제천 장판을 몇 번이나 뒤졌겠나. 허나 처녀의 꼴은 꿩궈먹은 자리야.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었지. 그때부터 봉평이 마음에 든 것이 반평생을 두고 다니게 되었네. 반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수 좋았지. 그렇게 신통한 일이란 쉽지 않어. 항용 못난 것 얻어새끼 낳고, 걱정 늘고 생각만 해두 진저리가 나지……그러나 늙으막바지까지 장돌뱅이로 지내기도 힘드는 노릇 아닌가? 난 가을까지만 하구 이 생계와두 하직하려네. 대화쯤에 조그만 전방이나 하나 벌이구 식구들을 부르겠어. 사시장천 뚜벅뚜벅 걷기란 여간이래야지.”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
산길을 벗어나니 큰길로 틔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총각두 젊겠다, 지금이 한창 시절이렷다. 충줏집에서는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꼴이 되었으나 설게 생각 말게.”
“처 천만에요. 되려 부끄러워요. 계집이란 지금 웬 제격인가요.자나깨나 어머니 생각뿐인데요.”
허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 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수그러진 것이었다.
“아비 어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없어요.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걸요.”
“돌아가셨나?”
“당초부터 없어요.”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원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우길 수밖에는 없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정말예요. 제천 촌에서 달도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집을 쫓겨났죠. 우스운 이야기나,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고 있는 고장도 모르고 지내와요.”
고개가 앞에 놓인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내렸다. 둔덕은 험하고 입을 벌리기도 대근하여 이야기는 한동안 끊겼다. 나귀는 건듯하면 미끄러졌다. 허생원은 숨이 차 몇 번이고 다리를 쉬지 않으면 안되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이가 알렸다. 동이같은 젊은 축이 그지없이 부러웠다. 땀이 등을 한바탕 쪽 씻어내렸다.
고개 너머는 바로 개울이었다. 장마에 흘러버린 널다리가 아직도 걸리지 않은 채로 있는 까닭에 벗고 건너야 되었다. 고의를 벗어 띠로 등에 얽어매고 반 벌거숭이의 우스꽝스런 꼴로 물 속에 뛰어들었다. 금방 땀을 흘린 뒤였으나 밤 물은 뼈를 찔렀다.
“그래 대체 기르긴 누가 기르구?”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의부를 얻어가서 술장사를 시작했죠. 술이 고주래서 의부라고 전 망나니예요. 철들어서부터 맞기 시작한 것이 하룬들 편한 날 있었을까. 어머니는 말리다가 채이고 맞고칼부림을 당하고 하니 집 꼴이 무어겠소. 열여덟살 때 집을 뛰쳐나서부터 이 짓이죠.”
“총각 낫세론 동이 무던하다고 생각했더니 듣고 보니 딱한 신세로군.”
물은 깊어 허리까지 찼다. 속 물살도 어지간히 센데다가 발에 채이는 돌멩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나귀와 조선달은 재빨리 거의 건넜으나 동이는 허생원을 붙드느라고 두 사람은 훨씬 떨어졌다.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었던가?”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 해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봉평, 그래 그 아비 성은 무엇이구?”
“알 수 있나요. 도무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디었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버렸다. 허위적거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으나 흘렀었다. 옷째 쫄딱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 속에서 어른을 해깝게 업을 수 있었다. 젖었다고는 하여도 여윈 몸이라 장정 등에는 오히려 가벼웠다.
“이렇게까지 해서 안됐네. 내 오늘은 정신이 빠진 모양이야.”
“염려하실 것 없어요.”
“그래 모친은 아비를 찾지는 않는 눈치지?”
“늘 한번 만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지금 어디 계신가?”
“의부와도 갈라져 제천에 있죠. 가을에는 봉평에 모셔오려고 생각 중인데요. 이를 물고 벌면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죠.”
“아무렴, 기특한 생각이야. 가을이랬다?”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 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진종일 실수만 하니 웬일이요, 생원.”
조선달이 바라보며 기어코 웃음이 터졌다.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했던가. 저 꼴에 제법 새끼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릉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쫑긋 세우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새끼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까. 그것 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를 도는 때가 있다네.”
“사람을 물에 빠뜨릴 젠 딴은 대단한 니귀새끼군.”
허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나귀에겐 더운 물울 끓여주고, 내일 대화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MBC드라마 계백 촬영지 우음도에서

 

 

人生 뭐있어?

떠나는거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