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뱃길, 계양산 솔밭 라이딩 2
함께 달린 사람들 : 브라보님/ 흰구름님 / 따듯한 가슴님 / 한국의산천 4명.
집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를 마치니 비가 내린다. 옛 추억처럼...
▲ 계양산 목상동 솔밭길 라이딩 후 아라뱃길 갑문을 향하여 빛의 속도로 달려 갑니다 ⓒ 2012 한국의산천
▲ 계양산에서 다시 아라뱃길과 합류후 갑문쪽으로 이동합니다 ⓒ 2012 한국의산천
▲ 왼쪽부터 한국의산천/ 따듯한가슴님 / 브라보님 / 흰구름님 -4명 - ⓒ 2012 한국의산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곳이 없네 내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한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없네
▲ 달려라 힘차게 밟아라 그리고 거친호흡 한숨을 돌려라 ⓒ 2012 한국의산천
▲ 우리가 잠시 머물렀던 자이와 그 너머로 도크와 서해바다로 나가는 갑문이 보입니다 ⓒ 2012 한국의산천
▲ 브라보님 ⓒ 2012 한국의산천
▲ 따듯한 가슴님 ⓒ 2012 한국의산천
▲ 흰구름님 ⓒ 2012 한국의산천
▲ 한국의산천 ⓒ 2012 한국의산천
▲ 황어동상 ⓒ 2012 한국의산천
3.1만세의 현장 ‘장터동’
아라뱃길이 된 굴포천의 한 줄기가 이곳까지 닿았는데 황금빛을 띈 커다란 잉어가 많아 고려 때부터 황어향(黃魚鄕)으로 불렸다. 향(鄕)이란 토호들의 자치권이 상당히 보장되는 지방자치기구였다. 부평 이씨(계양 이씨)의 시조가 되는 이희목이 향어향 목상동 사람이었다
아래뱃길 옆에는 커다란 황금잉어가 솟아오르는 형상의 조각을 세워 놓았다. 안내판에 이곳이 ‘황어장터’였음을 알리고 있다. 어르신들이 아니고서는 이 지역 주민조차 잊은 황어장터.
이 지역의 이름은 계양구 장기동(場基洞)이다. 장터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조선 초부터 20여 년 전까지 이 일대에서 가장 큰 장(場)이었다 한다. 3일, 8일 열리는 3, 8장이었다는데 특히 우(牛)시장 규모는 하루에 500~600두나 거래되던 장이었다고 한다. 1987년 우시장이 철폐됨으로써 시장의 기능을 잃고 이제는 고도(孤島)와 같은 동네가 됐다.
▲ 황어장터 3 ·1 만세운동 기념탑 ⓒ 2012 한국의산천
황어장터에서 장기동으로 가는 길 우측에는 이은선 지사가 순국한 자리를 알리는 표석을 세워 놓았고 동네 안으로 작은 공원에 ‘황어장터 3.1만세운동 기념탑’을 조성해 놓았다.
1919년 기미년 3월에 이 황어장터에서 큰 일이 일어났다. 24일 오후 2시경 천도교도 심혁성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3.1독립만세의 열기가 전국으로 뻗어나가던 때였는데 특히 천도교도들이 중심이 된 결속력은 이 어두운 시대에 가장 파워풀한 응집력을 갖고 있었다. 불교는 쇠퇴하고 기독교는 초창기 발붙이기 시작한 시절이었기에 자금력으로나 응집력으로나 3.1운동에 끼친 천도교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기미독립선언 33인 중 천도교 인사가 15인이나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런 상황은 충분히 알 수 있다.
황어장터는 많은 군중이 모이는 곳이라서 심혁성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나눠주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모였던 많은 군중들이 따라 만세를 불렀는데 순사들이 나타나 심혁성을 포박하고 끌고 가려 하였다. 심혁성을 구해내려고 한 이은선(李殷先)은 칼에 맞아 숨지고 윤혜영은 머리에 자상을 입는 등 평화로운 만세운동이 피로 얼룩지게 되었다.
다음날까지 여러 사람들이 나서 통문을 돌리고 만세운동을 선도하였는데 100여 명이 체포되고 32명이 인천경찰서로 압송되었다. 이 중 6명이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출소 후 심혁성은 가산을 정리하고 고향을 떠나 방랑하면서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독립만세를 외쳤던 이들이 후손들이 많이 살고 계시는곳이기도하다
▲ 태풍 전야는 '고요의 바다'라고 말하듯이 붉은 노을을 활짝 펼친 아름다운 저녁 하늘이다 ⓒ 2012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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