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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2012 신춘문예 당선작 詩

by 한국의산천 2011. 12. 31.

임진년 새해 福 많이 받으십시요  

 

신춘문예 詩 부문 당선시/ 당선자/ 심사평 소개 [정리:한국의산천]

 

[만물상] 신춘문예에 비친 세상 - chosun.com / 김광일 논설위원
 

춘호는 빚에 몰려 있다. 시골로 이사 온 뒤 땅뙈기를 얻어 일구려 해도 생전 못 보던 사람이라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다. 춘호는 서울로 갈 차비를 마련하려고 아내에게 몸을 팔게 한다.

남편 닦달에 못 이긴 아내는 평소 추근대던 이 주사를 찾아간다.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김유정 소설 '소낙비'의 줄거리다. 그가 쓴 '안해' '가을' '산골 나그네'도 비슷한 얘기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식민지의 바닥 삶을 그렸다.

 

▶43년 전 윤흥길의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회색 면류관의 계절'에는 1960년대 후반 암담했던 시절이 녹아 있다. 주인공은 군복무를 하다 갑작스레 부친 별세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가족을 도와줄 방법이 없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탈영을 꿈꾼다. 뒷날 작가는 "그 당시 내가 겪었던 지독한 절망과 분노는 나 혼자 속에 담아두고 있으면 큰 고질병이 될 것 같았다"고 했다.

 

 ▶2012년 벽두에 발표된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다 보니 가슴이 섬뜩할 만큼 '실직'과 '자살'이 주된 소재다. 조선일보 소설 당선작 '삼각조르기'는 실직 위기에 내몰린 직장인의 삶을 격투기 선수의 처절한 훈련과정에 빗댔다.

희곡 당선작 '그들의 약속'은 구직에 실패한 30세 여성과 파산당한 중소기업의 40대 남자가 자살 사이트를 통해 여관에서 만나는 얘기다. 남자는 여자를 설득해 돌려보낸 뒤 약을 들이켠다.

 

▶동아일보 소설 당선작 '치킨 런'은 통닭·피자 배달 청년이 주인공이다. 인생 막장에 내몰린 통닭 손님이 자신의 자살을 확실하게 도와주면 5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경향신문 소설 '방', 한국일보 희곡 '모기'도 비슷하다. "서민과 젊은 세대의 피를 빨아먹는 사회 시스템"에 분노를 쏟아놓는다. 당선작 열 작품을 읽었는데 아홉이 똑같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87년을 헤아리는 우리나라 신춘문예 역사에서 응모작들은 언제나 그때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窓) 역할을 했다. 현실 문제를 부각시키는 세태소설과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인생소설이, 역사적 비극을 소재로 삼는 이념소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도 올해처럼 한쪽으로 쏠린 적은 드물었다.

한 심사위원은 새해 신춘문예 경향을 '꿈꾸기를 멈춘 사람들을 향한 위로'라고 했다. 정치가 손 놓아버린 일을 새내기 작가들이 대신한 셈이다.

 

◆ 2012 조선일보 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시…조련사 k

 

 

새로운 문학으로의 비상을 꿈꾸며.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왕십리역 광장 날개벽화 앞에서 각오를 다지고 있다. 왼쪽부터 정상미 안숙경 한명원 최태림 김영두 양해열 홍옥진 이석씨. / 이태경 기자

 

 

▲ 일러스트 이철원 기자 

 

 

 조련사K

               - 한명원

 

그는 입안에 송곳니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두 발로 걷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어 혼자 있을 때 네 발로 걸어도 보았다. 야생은 그의 직업이 되었고 조련은 가늘고 긴 권력이 되었다.

 

모든 권력은 손으로 옮겨갈 때 가벼워진다. 눈치를 보는 것들의 눈빛은 언제나 심장을 겨냥하는 법. 다만 두려운 것은 손에 들려 있는 권력일 뿐이니까.

 

조련사 k. 그는 아침마다 동물원을 한 바퀴씩 도는 순방이 있다. 금빛 은행잎이 k의 머리 위로 왕관처럼 씌워진다. 철조망에 갇힌 초원이 펼쳐져 있다. k는 손을 흔들거나 휘파람을 분다. 잠자던 맹수가 눈을 뜨더니 달려온다. 무릎을 꿇는다.

 

k는 맹수의 꼬리를 목에 두르고 맹수코트를 걸치고 곤봉을 휘두르는 자신을 상상하곤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k의 얼굴에 구레나룻이 생기고 몸에 털이 자라고 손톱은 길어졌다. 모든 모의謀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다. 말 안 듣는 맹수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채찍을 휘두르며 맹수보다 더 맹수처럼 사나워져갔다.

 

얼마 전 야생의 모의謀議가 철조망을 빠져나갔다. 그 후 k의 통장으로 감봉된 월급이 들어왔다. k는 자기 목을 조르는 조련사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몸에 털이 빠지고 손톱이 빠졌다.

 

조련으로 청춘을 보낸 k는 결국, 야생을 놓치고 말았다.

 

새로운 조련사들이 들어오고 그들은 맹수들과 더 빨리 친해졌다. 동경하던 야생은 저 쪽에서 어슬렁거렸다. 이빨 빠진 맹수 한 마리가 다른 맹수 눈치를 보며 어슬렁거렸고 금빛 왕관은 가을 저 쪽으로 다 날아가 버렸다. 얼마간 퇴직금의 조련을 받는 힘없는 맹수가 되어 있었다.

 

[당선 소감] "초심으로 돌아가 세상에 소외된 것들을 노래하겠습니다"

 

 

▲1965년 서울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학원 논술강사·여성회관 독서논술지도 강사

 

아, 저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군요. 연말 캐럴 송을 들었지만 올해의 캐럴은 유난히 따뜻한 음절로 들립니다. 상처받으면 혼자 공상하고 중얼거리는 것을 좋아하던 제가 이렇게 보상을 받는군요. 세상의 모든 관계들과 사물들에게 감사합니다.


  한명원 집 근처에 있는 동물원으로 아이와 손을 잡고 자주 갔었습니다. 방학 때마다 개최하는 동물교실을 수강 신청했습니다. 염소에게 풀도 주고 물개들에게 생선도 던져주며 동물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련사를 보면 동물들은 달려왔고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아이는 어느새 컸고 삶이 힘들고 버거울 때마다 나는 여전히 동물원을 찾았습니다.

새장 속 독수리, 철창 속 호랑이, 돌 위에서 앞만 멍하게 바라보는 곰 식구들. 그들은 나의 친구였고 나였기에 야생을 그리워하는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동물원 입구에 서 있던 나뭇잎이 휘날리고 머리 위로 나뭇잎 왕관이 씌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동물원을 다 돌고 나올 때가 되면 어느새 마음이 편해져 겸손한 내가 오만했던 내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미흡한 제 글을 뽑아주신 조선일보와 조정권, 문정희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문학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용기를 주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이승하 선생님께도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열심히 쓰겠습니다.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친구 미정, 옥련, 미선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나와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제자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신이 내린 축복 같은 딸 수연과 오랜 시간 묵묵히 견디어준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초심으로 세상에 소외된 것들을 노래하겠습니다.

 

 

문정희(왼쪽), 조정권 시인.

 

[심사평] 치밀한 관찰과 묘사… 섬뜩한 시적 투시력 보여

본심에 올라온 8명 응모자들의 작품을 읽고 선자들은 갈수록 장황해지고 난삽하고, 모호해지는 오늘날의 시의 흐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시 본연의 길을 추구하는 시로서 시의 고전적 규범이라 할 언어의 함축미와 새롭게 삶을 성찰하고 투시하는 상상력의 결핍이 심화되어 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논의를 거듭하며 검토한 결과 최종적으로 3명의 작품이 남게 되었다.

 

먼저 ‘창밖이 푸른곳’등 3편을 투고한 김은지의 경우 ‘뿔의 냄새’가 눈길을 끌었지만 아쉽게도 이미 과거에 응모했던 동일 시를 계속 투고하고 있다는 점이 신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는 점과 다른 두 편의 시적 사유도 평면적이란 점이 못내 아쉬웠다.

'조련사k’ 등 3편의 작품을 투고한 한명원의 경우 산문적 진술을 꾀하며 그 안에 극적 구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거슬리지만 삶의 구체성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묘사가 눈길을 끌었다.

그의 시는 오늘날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그러나 시적 발상이나 화법이 새롭다기보다는 유형화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응모자 중에서 인간과 현실에서 삶의 남루함을 포착하는 섬뜩한 시적 투시력을 보여준 유일한 작품이란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불통을 어루만지다’외 3편을 투고한 정지우의 경우 시적 표현은 응모 시 중에서 가장 세련되어 보였지만 ‘뒷문의 형식’이나 ‘사춘기’와 같이 시를 거의 관념에서 끌어오고 있다는 점이 아무래도 불안해 보였다.

 

두 선자는 당선작을 최종적으로 가리는 과정에서 유형화된 시적 틀에 갇힌 시라는 다소의 불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삶을 관찰하는 한명원의 ‘조련사k’가 보여준 힘없는 맹수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단단한 말의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합의했다. 시라는 것은 삶과 현실에 대한 성찰과 열정의 산물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문정희·조정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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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2012]그들, 작가인생 징검다리에 서다

 

 

 

“한국 문단에 신고합니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당찬 출발을 알렸다. 왼쪽부터 시나리오의 전호성, 단편소설의 김혜진, 동화의 이진하, 시의 안미옥, 희곡의 신비원, 시조의 황외순, 중편소설의 김영옥, 영화평론의 김정(본명 김혜란) 씨. / 원대연 기자

 

태어나 처음 쓴 희곡 작품으로 당선의 영광을 안은 대학교 1학년생, 20년 동안 미용실을 운영하며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습작을 해온 미용사, 7년 동안 단편소설로 신춘문예에 지원하다 중편으로 바꿔 지원한 첫해에 당선된 작가….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당선 뒷이야기를 들으면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 같다.

 

이번 신춘문예 지원자 2426명 가운데 당선의 영광을 차지한 사람은 단 8명. 시, 단편소설 등 총 9개 부문에서 경합을 벌였지만 아쉽게도 문학평론 부문은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기념촬영을 위해 12월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은 당선자들은 아직도 당선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당선자들의 나이는 20대 4명, 40대 4명으로 양분됐다.

 

○ 느닷없는 당선 통보,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

희곡 당선자인 신비원 씨(23)의 당선작은 기말고사 과제였다. 서울예대 극작과 1학년인 신 씨는 ‘희곡 작품 하나를 신춘문예에 투고하고 택배 영수증을 제출하라’는 조광화 교수의 엄명에 부랴부랴 3주 만에 초고를 탈고했다. 하지만 일이 생겼다. 원고가 들어 있던 노트북을 분실한 것. PC방에 틀어박혀 일주일여 만에 다시 원고를 완성해 간신히 신춘문예에 지원할 수 있었다. 물론 난생처음 쓴 희곡작품이다.

 

학교 앞 PC방에서 대학 동기들과 카트라이더를 하다 당선 통보를 받은 신 씨의 첫마디는 “나 어떡해∼. 진짜 동아일보 맞아요?”였다. 같이 게임하던 친구들의 반응은 “이럴 수가!!”

 

신 씨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해 드라마 대본, 단편 소설, 시나리오 등을 습작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발표한 것이 없었다. 아직도 꿈결 속에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4학년인 동화 당선자 이진하 씨(24)는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졸업 선물을 받게 됐다. 지난해 12월 대산대학문학상 동화 부문에 당선된 그는 걸출한 수상 경력을 안고 사회에 나서게 됐다.

“엄마와 칼국수를 먹다가 당선 전화를 받았어요. 깜짝 놀라 젓가락을 내려놓았는데 손이 덜덜 떨리더군요. 졸업 전에 등단이 돼서 기쁘지만 부담도 돼요. 만족하지 않고 계속 발전해 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시 당선자인 안미옥 씨(28)는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지원하기 전 서류봉투 10개를 샀다. ‘봉투를 다 사용하기 전에 꼭 등단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것. 한꺼번에 산 봉투가 무색할 정도로 ‘작심하고 지원한’ 첫해에 당선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써온 그는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거쳐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며칠째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다 잠결에 전화를 받았어요. 꿈속인 것 같아 처음엔 덤덤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심장이 막 뛰었죠. 제대로 준비해 신춘문예에 응모한 것은 처음인데 매우 기뻤습니다.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깊게, 꾸준하게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영남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소설을 쓰고 싶어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다시 입학해 졸업한 김혜진 씨(29)는 단편소설에 당선됐다. 소설 쓰는 게 생각보다 너무 괴로워서 고민도 많이 했다는 김 씨는 통보를 받고 ‘아, 이제는 어쩌지’ 하는 막연한 걱정부터 들었다고 했다.

“박기동 선생님(서울예대 교수)께서 소설 안에서 인물들이 놀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소설과 소설 속 인물, 소설을 쓰는 저를 아주 많이 좋아하고 싶고, 성실하게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시조 당선자인 황외순 씨(44)는 지난해 말에 운이 없었다. 10여 년간 경북 경주시 외동읍에서 운영하던 미용실인 ‘내가 잘 가는 미용실’이 도시 재정비 사업으로 도로가 나면서 지난해 11월 철거됐다. 당선 통보를 받기 몇 시간 전에는 집안에 작은 화재가 났다.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생긴 가운데 당선 통보를 받아 더 기뻤어요.”

 

미용 경력 20년인 황 씨는 손님이 없는 틈틈이 미용실 한편에서 습작을 했다. 경주문예대에서 1년간 문학 기초를 닦은 것이 전부. “미용실 일을 하면서 자리를 비우기 힘들어 취미 삼아 시를 쓰기 시작한 게 등단까지 이어졌다. 즐기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일상과 동떨어지지 않은 주변 이야기, 그 속에 산재해 있는 따뜻함을 시로 풀어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황 씨는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도 당선돼 2관왕에 올랐다.

 

김영옥 씨(47)는 중편소설 당선으로 재등단하게 됐다. 4년 전 한 지역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지만 청탁은 1년에 한 번 받기도 힘들었다. 다시 중앙일간지 신춘문예를 노크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단편만 쓰던 김 씨는 첫 중편에 도전했고 이번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단 한 줄이라도 용기를 얻는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장르를 넘나들다 작가의 길을 걷게 된 당선자들도 있다. 영화평론 당선자인 김정(본명 김혜란·46) 씨는 서울대 동양화과, 서강대 대학원 영상학 석사를 거쳐 연세대 대학원 영상예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미술과 영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겸손하게’ 풀어내는 솜씨에 심사위원으로부터 “당장 평론계로 나와도 손색없다”는 극찬을 받았다. 김 씨는 “창작과 비평을 겸해온 일련의 군단(누벨바그 등)으로부터 깊은 감흥을 받아 많은 습작을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치열하고, 사려 깊고,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캐나다 유학 때 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지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했던 전호성 씨(43)는 시나리오에 당선됐다. 영화를 만들었던 그는 자연스레 시나리오에 관심을 갖게 됐고, 혼자 간직하던 글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생겼던 것. 귀국해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간 그는 시나리오와 소설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남의 일로만 여겨졌던 게 내게도 일어나는구나 싶었어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 이면에 있는 것들에 관한, 울림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 황인찬 기자

 

◆ 2012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나의 고아원

 

 

 

나의 고아원

                                                      - 안미옥
                                             

신발을 놓고 가는 곳. 맡겨진 날로부터 나는 계속 멀어진다.

쭈뼛거리는 게 병이라는 걸 알았다. 해가 바뀌어도 겨울은 지나가지 않고.

집마다 형제가 늘어났다. 손잡이를 돌릴 때 창문은 무섭게도 밖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벽을 밀면 골목이 좁아진다. 그렇게 모든 집을 합쳐서 길을 막으면.

푹푹, 빠지는 도랑을 가지고 싶었다. 빠지지 않는 발이 되고 싶었다.
마른 나무로 동굴을 만들고 손뼉으로 만든 붉은 얼굴들 여러 개의 발을 가진 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 이상했다. 집을 나간 개가 너무 많고

그 할머니 집 벽에서는 축축한 냄새가 나. 상자가 많아서

상자 속에서 자고 있으면, 더 많은 상자를 쌓아 올렸다. 쏟아져 내릴 듯이 거울 앞에서

새파란 싹이 나는 감자를 도려냈다. 어깨가 아팠다.

 

식탁에서
                                            -  안미옥

 

내게는 얼마간의 압정이 필요하다. 벽지는 항상 흘러내리고 싶어 하고
점성이 다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어 한다.

냉장고를 믿어서는 안 된다. 문을 닫는 손으로.열리는 문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옆집은 멀어질 수 없어서 옆집이 되었다. 벽을 밀고 들어가는 소란.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게

다리가 네 개여서 쉽게 흔들리는 식탁 위에서. 팔꿈치를 들고 밥을 먹는 얼굴들. 툭. 툭. 바둑을 놓듯

[신춘문예 2012]시 ‘나의 고아원’,‘식탁에서’ 심사평
     
.남다른 상상력 때묻지 않은 목소리

 

 

장석남(왼쪽) 장석주 씨

두 심사자가 예심에서 넘어온 16명의 시 80여 편을 각각 읽고 난 뒤 정지우의 ‘납작한 모자’, 김복희의 ‘매일 벌어지는 놀랄 만한 일’, 윤종욱의 ‘서툰 사람’, 김양태의 ‘흐르는 돌’, 종정순의 ‘알람들’, 조선수의 ‘분홍손’, 안미옥의 ‘나의 고아원’ 등을 당선작으로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글쓰기를 “어떤 것의 존재를 지우면서도 그것을 읽기 쉽게 유지하는 몸짓의 이름”이라고 했다. 시 쓰는 것도 낡은 존재를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존재를 세우려는 몸짓일 테다. 나날의 현존과 시적 현존은 섞이고 스민다. 그렇게 상호 삼투하는 나날의 현존과 시적 현존은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시적 현존을 세우는 데 상상력이라는 화학작용이 불가피하게 개입하는 까닭이다.

 

두 심사자는 안미옥을 당선자로 세우는 데 흔쾌하게 동의했다. 다만 어떤 작품을 당선작으로 할 것인가 하는 데는 의견 조율이 필요했다. 고심 끝에 두 작품 ‘나의 고아원’과 ‘식탁에서’를 골랐다. 익숙함 속에서 익숙하지 않음을, 하찮은 것에서 하찮지 않음을 찾아내는 눈이 비범하고, 현존의 혼돈을 뚫고 그 눈길이 가닿은 지점에 어김없이 생의 기미들과 예감들이 우글거렸다. 남다른 상상력과 때 묻지 않은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신춘문예라는 통과의례 이후의 작품들에 대한 신뢰를 크게 더하게 한다. 험난한 시업(詩業)의 길에 들어선 것을 축하드린다.

장석주 시인, 장석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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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시…물푸레 동면기

 
물푸레 동면기
             

                     - 이여원(李如苑)


물푸레나무 찰랑거리듯 비스듬히 서 있다

양손에 실타래를 감고 다시 물소리로 풀고 있다

얼음 언 물에 들어 겨울을 나는 물푸레

생각에 잠긴 척

바위 밑 씨앗들이 졸졸 여물어가는 소리를 듣고 있다

얼룩무늬 수피가 물에 닿으면 물은 파랗게 불을 켰었다 바람은 지나가는 분량이어서 몸 안에 들인 적 없고 팔목을 좌우로 흔들어 멀리 쫓아 보냈었다

손마디가 뭉툭한 나무는 실을 푸느라 팔이 아프다

나무의 생채기에 서표(書標)를 꽂아두고

녹아 흐르는 물소리를 꽂아두고 말린다

푸른 잎들은 물속 돌 밑에 들어 있고

겨울 동안 잎맥이 생길 것이다

추위가 가득 엉켜 있는 물가, 작은 샛길이 마을 쪽으로 얼어 미끄럽다

빈 몸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들

모두 봄이 오는 방향 쪽으로 비스듬 마중을 나가 있다

날짜를 세는 가지는 문맹(文盲)이다

개울이 키우고 있는 것이 물푸레인지 물푸레가 키우고 있는 것이 개울인지 알 수 없지만

나뭇잎 하나 얼음 위로 소금쟁이처럼 떠 있다

 

◆ 당선소감    

 

 

◀ 이여원(필명)

약력 1957년 진주 출생

주소:서울 양천구 신정7동

직업:주부

 '힘든 세상, 환한 불빛 아래 서기 두렵지만…'

세상은 이렇듯 힘든데, 환한 불빛 아래 당선소감문 쓰기가 두렵고 송구합니다. 시는 말씀의 집을 규모 있게 짓는 것이라는데, 집을 지을 재료는 풍성한지 있기는 한지 내심 불안하고 난감할 뿐입니다. 추운 겨울날 얼음의 뜰을 얼려두고 서 있던 그 물푸레나무가 생각납니다. 아무리 곧은 나무라 할지라도 겨울엔 햇살 쪽으로 그 몸이 조금 기울어진다고 합니다. 좋은 공부 진정성이 있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마음가짐을 다짐해봅니다.

가장 추운 바람 속에서도 시적 영감을 나에게 준 물푸레나무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그때 바위 밑에서 들리던 졸졸 물소리를 씨앗으로 삼겠습니다.

희망이란 단어를 컴퓨터 위에 붙여두고 글을 쓰던 시간들이 행복했습니다.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끝이 없음을 오히려 다행이라 여깁니다. 덜 여문 시를 세상으로 밀어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그리고 맹문재 교수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글쓰기의 고통을 함께하는 문우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힘들 때 꽃을 보라시던 어머니가 많이 생각납니다. 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사랑하는 남편 태규 씨와 날카로운 비판을 아끼지 않는 지혜로운 딸 수란과 곁에 있기만 해도 든든한 아들 준영이와 함께 기쁨을 나누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심사평
치밀한 묘사력·견인주의적 시각 돋보여 
  

 

◀ 도광의

 

◀ 박형준
 
대개 오늘날의 새로운 경향의 시는 상관관계가 멀게 느껴지는 이미지의 조합이나 산문적인 형식의 실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말의 상투적인 틀을 해체하고 인간의 감성을 새롭게 드러낸다고 하여 어불성설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전적으로 자유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은 꽃의 개화(開花)도 후에 관찰해보면 어떤 법칙이 내재해 있다. 그러므로 읽히지 않는 시라고 하여 다 난해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 까닭에 시가 난해하기는 해도 어불성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물들에서 상관관계를 보는 참신한 시각과 그에 따른 보편성의 획득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신춘문예는 참신성과 패기가 새로운 보편성을 창출해나가는 신인들의 미래 문법이 각축을 벌이는 축제의 장이다. 예심을 통과한 21명의 작품 중에서 최종심에서 논의된 것은 이재흔의 '크라이오닉스', 이해존의 '유목의 방', 이여원의 '물푸레 동면기'와 '난청' 등 4편이었다.

'크라이오닉스'는 발상이 참신하지만 언어의 경제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실패한 은유들이 더러 눈에 띈다. '유목의 방'은 말미의 비약이 아쉽다. 이 시는 고시원이라는 막막한 삶의 공간을 대초원이라는 상상적 공간으로 재해석해낸다. 그러나 말미의 ‘고시원 휴게실’과 앞에서 펼쳐낸 ‘몽골 사내’의 이야기가 어떻게 연관을 맺을 수 있는지 좀 더 치밀하게 접근했어야 한다. 세상에 완벽한 시는 성립할 수 없다지만 불가능한 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능력은 시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결국 이여원의 두 작품에서 하나를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이견 없이 합의했다. '물푸레 동면기'는 얼음물에 떠 있는 겨울의 물푸레나무를 치밀하게 묘사해가면서 서정시의 깊은 완성도를 보였다. 또한 '난청'은 사물을 포착하는 감성이 신선하다. 그만큼 두 작품 모두 각각 완성도와 참신성이라는 양측면에서 잘 빚어냈다. 그의 두 작품 중에서 '물푸레 동면기'를 당선작으로 선정한 것은 아포리즘의 도움 없이 세밀하고 실제적인 묘사만으로 새롭게 열어 보이는 서정의 창출이 읽을수록 착착 감기는 감칠맛과 더불어 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얼음물 속에서 동면하는 물푸레에서 견인주의적인 접근을 통해 “푸른 잎들은 물속 돌 밑에 들어 있고/ 겨울 동안 잎맥이 생길 것이다”라는 성숙한 견자의 시각을 이끌어내는 점도 인상적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우리 시단에 서정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길 기대한다.(도광의`박형준)  

예심: 송종규`장하빈

본심: 도광의`박형준 -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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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풍경 재봉사


 

 

▲  일러스트=이정학기자 
 

풍경 재봉사

                                          - 김민철 

 

수련 꽃잎을 꿰매는 이것은 별이 움트는 소리만큼 아름답다

공기의 현을 뜯는 이것은 금세 녹아내리는 봄눈 혹은

물푸레나무 뿌리의 날숨을 타고 오는 하얀 달일까

 

오늘도 공기가 휘어질 듯하게 풍경을 박음질하는

장마전선은 하늘이 먹줄을 튕겨놓고 간 봉제선이다

댐은 수문을 활짝 열어 태풍의 눈에 강줄기를 엮어준다

 

때마침 장맛비는 굵어지고, 난 그걸 풍경 재봉사라 부른다

 

오솔길에 둘러싸인 호수가 성장통을 앓기 전,

빗방울이 호수 가슴둘레를 재고 수면 옷감 위에 재봉질한다

소금쟁이들이 시침핀을 들고 가장자리를 단단히 고정시킨다

 

흙빛 물줄기들은 보푸라기의 옷으로 갈아입고

버드나무 가지에서 밤새 뭉친 실밥무늬가 비치기도 했고

꾸벅 졸다가 삐끗한 실밥이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그것은 풍경 재봉사의 마지막 바느질이 아닐까

 

주먹을 꽉 쥐려던 수련의 얼굴로 톡 떨어지는 물방울

 

수련꽃이 활짝 피어 호수의 브로치가 되었다

 

 

 

시 심사평  
유행·시류 벗어난 우아한 아름다움 돋보여 

 

▲  ‘2012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본심을 맡은 황동규(왼쪽) 시인과 정호승 시인이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심사를 하고 있다.  
 
예심을 거친 20명의 작품 중에서 최종심까지 올라온 작품은 이해존의 ‘안락한 변화’, 유정용의 ‘IN 1914 네루다’, 안대근의 ‘샌드위치 인생’, 김민철의 ‘풍경 재봉사’ 등 4편이었다.

‘안락한 변화’와 ‘IN 1914 네루다’는 사실성이 두드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 전체가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점에서 먼저 탈락되었다.

정말 좋은 시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어야 하는데 지나친 모호성이 해석의 다양한 물꼬를 막았다.

‘샌드위치 인생’은 ‘벽돌의 무게를 짊어지는 사람의 등은 벽돌보다 벌겋지’라는 첫 행에서부터 개성적 면모가 두드러졌으나 결국 희망이 상실된 어두운 심상으로 시가 종결되고 말았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무엇보다도 제목을 정하는 능력이 약했다. 제목도 시의 일부이므로 시 전체를 관류할 수 있는 제목이 요구되나 그렇지 못했다.

더군다나 같은 시를 제목만 바꾸어 중복 투고해 성실성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풍경 재봉사’는 신선하고 아름답다. 유행과 시류에서 벗어난 점이 무엇보다 장점이다.

호수에 떨어지는 장맛비를 풍경 재봉사로 인식하는 형상화 과정 하나하나가 자상하고 섬세하다. 전체적으로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 점은 오늘의 한국시가 근래 들어 잃고 있는 부분이다. 바로 이 아름다움이 앞으로 이 시인의 큰 덕목이 될 것이다.

-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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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월면 체굴기 

 

월면 채굴기

                              -  류성훈

 


몸 누일 곳을 모의하러 온 새 몇 마리가

소독된 달 표면을 마름질했다

실외흡연구역의 담뱃불이

바람 안쪽에 수술선을 그었을 때

세 번째 옮긴 병원에서도 아버지의 머릿속

돌멩이는 깨지지 않아

한 몸 추슬러 가던 길들만 허청거렸다

온 세상이 앓으면 아픈 게 아니고

매일 아프면 그것도 아픈 게 아니라고

위독한 시간들을 한 곳에 풀어놓으면서

아버지가 고요의 바다 어디쯤을 채굴하고 있었다

병들도 힘 빠질 무렵

두개골을 망치질하는 마른기침이

울퉁불퉁한 삶 쪽으로 흔들렸다

몸속의 돌은 달 뒤편의 돌 같아

닳고 닳은 땅 밑보다도 단단하고

검을수록 깊은 광맥에 이어져 있는데

어느 갱도에서 그는 길을 잃었을까

저 큰 굴착기가 가지고 나올 단단한 돌

돌아와 때때로 돌아눕던 그는

다리의 성근 터럭을 젊은 내게 보여주었다

달의 얼룩이 지구에 뿌리를 내린 날

아무에게도 거기서 뭘 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창 밖 저탄 더미. 캐낸 달빛이

벌써 내게 문병오고 있었다

 

 

[신춘문예/시] '월면 채굴기' 류성훈 당선소감"

다시 태어나기 전 하얀 재 같은 지금의 느낌을 기억할 것"

 

 

 

바다 건너에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라는 옛 검술이 있다. 그 창시자는 제자들에게 늘 이렇게 가르쳤다 한다. “‘깨달음’이라는 이름의 괴물은 오직, 다 버리고 초연하게 내던지는 무기로만 잡을 수 있다.”

아직 미숙한 내게 등단은 그런 식으로, 다소 비현실적으로 찾아왔다.


숨을 고르며 새삼 뒤돌아본다. 문학을 배우겠다고 덤빈 날이 어느덧 두 자리 햇수를 넘겼을 때, 내 앞의 시는 노력과 버림 사이에 있었고 초연함과 무덤덤함의 사이에 있었다. 그렇기에 희망이 없어도 캐어낼 순 있었고, 오랜 그늘 속에서도 사라지진 않았다.

 

다시 태어나기 전 하얀 재로 내려앉은 것 같은 지금의 느낌을, 나는 늘 기억할 것이다. 또한 가깝고도 먼 그 간극을 ‘사이’가 아닌 ‘시’인 것이라고 뜨겁게 한 번 우겨보려 한다.

 

나의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 만들어주신 분들, 부족한 내게서 재능보다 노력을 높이 보아주셨을 고마운 분들에게 언제 이 은혜를 다 갚을지 행복한 걱정이 앞선다.

 

문학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보살펴주신 김석환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권혁웅 조연호 선생님을 비롯한 금요반 모든 시인들,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소중한 문우들에게 이 행복과 감사를 돌리고자 한다. 이젠 내가 이 따뜻한 빚을 갚아나갈 차례일 것이다.

 

그리고 늘 촌스럽지만 피해갈 수 없는 마음. 철없이 문학을 하겠다고 설치던 이 천덕꾸러기 아들에게 단 한 번의 반대도 불만도 없이 끝까지 믿음을 주셨던 부모님께, 차마 부끄러워 표현할 수 없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행복하게 전하고 싶다.

 

[신춘문예/시] '월면 채굴기' 류성훈 인터뷰 - 송용창기자 

 

"언어로 만드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시라고 생각해"

"언어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정점에 있는 것이 시라고 생각해요."

 

외로움과 용기 없이는 시를 쓸 수 없는 시대지만, 시를 향한 열정은 여전히 높고 단단하다.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류성훈(31)씨도 그렇다. 고등학교 시절 백일장 수상을 계기로 문창과에 입학한 후 한결같이 시만 쳐다보고 왔다는 그는 "언어로 만드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시"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사유가 언어로 구조화돼 있고 예술의 기반이 결국 언어라면, 그 언어의 정점에 있는 시가 모든 예술의 정점이라는 소신이다. 그는 "그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류씨는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나와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시 연구자. 백석의 근대성과 향토성을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간 여러 차례 신춘문예 최종심까지 올랐다가 고배를 마셨던 그가 등단의 소식을 듣게 된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류씨는 "포기하고 있던 차여서 믿기지 않았다"며 "마침 집에 함께 있던 아버지와 얼싸안고 울었다"고 쑥스럽게 말했다.

등단의 꿈을 안긴 당선작 '월면 채굴기'는 뇌종양 수술을 받는 부친의 모습을 달 표면의 채굴에 비유하는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예전에 친척 한 분이 뇌종양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때 하늘의 달을 보면서 착상하게 됐다"며 "힘든 세상에서 구슬프게 이어져온 가족애를 담아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시가 좋아서 들어선 길인데, 앞으로 바보처럼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춘문예/시] '월면 채굴기' 심사평"입체적인 상상력에 눈길, 수사의 과잉은 아쉬워"

 

 

황지우(가운데·시인) 정일근(오른쪽·시인) 이광호(문학평론가) 사진 박서강기자


시 부문 심사는 예심 없이 심사위원들이 투고작을 나누어 읽고 추천된 작품을 교환해서 읽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신춘문예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난해하고 실험적인 시보다는 서정적 화법으로 일상적 삶의 순간을 포착하는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독창적인 감수성과 화법이 잘 발견되지 않고, 언어에 대한 자의식 없이 정형화된 감정과 관념을 전달하는 데 그친 익숙한 신춘문예 유형의 작품들이 많아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논의 된 작품은 '그늘말'(박하랑)과 '연애의 국경'(여성민), '월면채굴기'(류성훈)였다. '그늘말'은 투명한 감수성과 정갈한 언어들이 돋보이는 시였다. 생에 대한 따뜻한 태도와 언어에 대한 맑은 감각이 좋았지만, 함께 투고된 작품들을 고려할 때, 세계에 대한 해석과 상상력이 평면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연애의 국경'의 경우는 발랄하고 독특한 화법이 매력적인 시였다. 다소 거칠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연애'와 '국경'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은 흥미로웠다. 그런데 언어와 형식상의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우려를 떨치기 힘들었다.


당선작이 된 '월면채굴기'는 우선 그 상상력이 입체적이고 화려하다. 아버지의 병과 생의 이야기를 아버지 몸속의 돌과 두개골과 달 뒤편 돌의 이미지와 연결시키는 발상은 매혹적이었다. 언어를 다루는 능력도 뛰어나며 아버지의 병과 생애를 둘러싼 깊은 시선이 구체적인 이미지를 얻고 있다. 다만 수사의 과잉이 있고, 다채로운 이미지의 구축에 치중하는 작법이 어법 자체의 신선함을 보여주지는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 아쉬움은 앞으로 쓰게 될 미지의 작품들을 통해 극복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시 쓰는 일이 외로움을 무릅쓰지 않고는 불가능한 시대에, 투고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심사위원 황지우(시인) 정일근(시인) 이광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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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전북 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철새를 만나다

 

철새를 만나다

                                   - 홍철기

 


문득

뭇별들의 제자리걸음이

그렁그렁한 눈물을 머금게 하는 밤

안개 속 방파제는

육지로 난 길 인양

어서 나아가 보라며

건너가 보라며 나를 부르는데

엉겨 붙어 나를 말리는 바람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울먹일 때

빈 껍질만 남아 뒹구는 희망

피난민처럼 몰려왔다

이젠 떠나고 싶은데

갈 곳이 없는지 멍자국 같은 사연

하나 둘 모여 불을 밝히고

마을을 이루고 그래서 한세상

어우러진 잡풀처럼 흔들릴 때

알고 있었다 저마다 소금에 저린

마음 한 다발씩 묶어 쌓아두고 있음을

맨 정신에 타오르지도 못했던

마음 불쏘시개 삼아

한 잔 두 잔 마신 술에

취하기는 바다가 취하고 끝내

바락바락 악을 쓰며 달려들다 고꾸라지며

살 아 야 하 나

이어지지 못하고 부서져 되돌아가 버리는 말

담뱃재 떨듯 매일같이 칭얼대는

희망쯤이야 쉬이 떨어내면 그만이라고

말보다 먼저 떠난 파도가

다한 힘으로 와 쓰러질 때.

저기 저 봉두난발한 바닷바람

사이 위태위태하게 날아가는

철새 한 마리

  

< 심사평 >

 

 

  시는 궁극적으로 삶 혹은 체험의 기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는 언어예술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작품을 선정함에 있어 언어예술성을 담지한 체험의 진솔성이 기본항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격을 갖춘 작품들 중에서 최종적으로 낙점을 받기 위해서는 다른 작품에 비해 감동의 진폭이 남달라야 한다.

  곡진한 정서가 튼실한 시적 형상화를 이루고 있어 선자의 손에 최종까지 남은 분들은 홍철기 ‘철새를 만나다’ 김은실 ‘겨울, 민원을 내다’, 임복금 ‘갈대숲에서’, 노원숙 ‘소라보 당신’ 이근영 ‘고추말리기’였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모두 생의 갈피에서 길어 올린 투명하고 절절한 정서를 언어미학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 하였다.  그러나 김은실과 임복금의 작품은 몇몇 군데에서 노출되는 불투명한 표현 때문에, 노원숙과 이근영의 작품은 안이하고 상식적인 표현 때문에 시적 긴장감이 이완되고 있다. 홍철기는 같이 응모한 ‘금일도’의 작품도 미학적 완성도가 뛰어났다.

  특히 철새를 통해 인생의 한 단면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철새를 만나다’ 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선명한 묘사력, 구조적 안정감과 더불어 유려한 리듬감을 확보한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리하여 ‘철새를 만나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훌륭한 시인이 되기를 기대한다.

 

- 양병호 시인 / 전북대 인문대학장

 


< 당선소감 >

 

“마음의 강 건너는 세상의 시 쓸 터”

 

 

 

  강을 따라 걷는 사람은 결코 강을 건널 수 없다는 말. 언제나 마음은 강 건너에 있지만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해 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합니다.

  제겐 문학이 그랬고, 시를 쓴다는 것이 그랬습니다. 그런 제가 이제 강을 건너려 합니다.  세상에 시를 써 보이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문학이 따뜻한 밥 한 공기임을, 시가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게 해주는 친구임을 알게 해주고 싶다면 과한 욕심일까요? 그래도 이제 시작했으니 반은 해놓았다고 등을 토닥여 주실거라 믿습니다. 부족한 제 시가 세상 앞에 나갈 수 있도록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전북도민일보에 감사드립니다.

 

  대학시절 시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신 원광대 정영길교수님, 백제예술대 김동수교수님, 살면서 언제나 문학과 함께 하라고 조언해주신 대진대 서범석교수님, 이병헌교수님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한다는 말, 오늘은 맘껏 해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누나가족들, 그리고 당신이 북극이라면 난 북극에서만 살고 싶은 북극곰이 될테니 결혼해달라는 제 말에 웃으면서 결혼해준 내 아내 탁경화, 그리고 우리아들 홍연후, 뱃속의 다복이 모두 사랑합니다.

  끝으로 언제나 바쁘지만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군산시 수송동주민센터 직원과 군산시 사회복지공무원 모두 2012년 행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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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시조…암자에 홀로 앉아 

 

 

 

 

 

암자에 홀로 앉아 

                      - 박상주

 

날 좀 때려주오

천년고찰 범종 치듯

안으로

다져놓은

전탑(塼塔)언어 청태(靑苔)눈물

빈 골짜

다 쏟아 붓고

나비 되어 가련다


■ 시조 당선소감

 

 

 

못다 한 말, 심장 속에 한 장 벽돌로 구워냈다아침에 비둘기 떼가 한바탕 원무(圓舞)를 추며 하늘을 쓸더니, 오후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암자에 홀로 앉아’라는 작품이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기쁘나 슬프나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던 앞산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떡인다. 이미 처녀시집까지 펴낸 아내가 큰 눈을 반짝이며 축하의 손을 내민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찌 할 소리 다하고 흘릴 눈물 세상에 다 보일 수 있겠는가. 사람은 저마다 밤이 되면 못다한 말 덩이 덩이를 한숨으로 이겨서 뜨거운 심장 불 속에 넣어 한 장의 벽돌로 구워낸다. 그리고 그 벽돌을 차곡차곡 마음 한 기슭에 쌓아올려 전탑(塼塔)을 세우고 그 전탑 위로 혼자 흘린 눈물은 이끼로 피어나고 그 위로 날아든 풍경(風磬)소리는 푸름을 더해간다. 하루가 저물어 갈 때 들려오는 산사(山寺)의 범종(梵鐘)소리는 숙연한 기분을 자아낸다.

 

둥! 종이 울리고 한 동안 그 파동은 지속되다가 웅! 웅! 맥놀이를 거듭하다 서서히 종소리는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종소리가 울려온다. 마치 중생들이 생로병사(生老病死) 속에 억겁 생(億劫 生)을 거듭하며 쌓아온 모든 번뇌덩이를 모아 빈 골짝으로 쏟아버리듯. 곡마단 천막 안에서 무대가 보이지 않아 발뒤꿈치를 치켜들던 키 작은 소년같이, 아직 낮은 등고선에 머물고 있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법화경> ‘화성유품’의 ‘변화성(變化城)’으로 잠시 자리를 마련해 주신 그 배려와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정상(頂上)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백양산 선암사 저녁종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누가 날 때려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머리를 쳐본다. 어릴 적 심어둔 별 하나가 동지 밤을 치른 겨울 하늘에 돋고 있다.

 

 

■ 시.시조 심사평 (고은 시인)청각.시각 대비 살려낸 ‘묘경1'

 

 

 

‘보시(1)-지렁이’의 담담한 고백체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눈물자국’도 덜 설명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제쳐두기 아까웠다. ‘회화나무’의 단단한 솜씨도 그랬다. ‘나를 흔드는 기억들’도 일상의 신산스러움을 냉철하게 그려내고 있다.이런 작품들을 지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세 작품이 시부분 ‘세월에 告함’ ‘분원의 강덴 노을의 소각장이 있다’와 시조부문 ‘암자에 홀로 앉아’였다.

 

그런데 이것들은 각각 다른 몇편과 함께 보내온 것이어서 그것들을 읽는 동안 그 실력의 속내가 밝혀지는 경험을 했다.결국 시조부문 ‘암자에 홀로 앉아’를 당선작으로 삼았다.

당선작 시조는 종소리와 ‘청태눈물’이라는 청각 시각의 대비를 살려내는 묘경을 이루었다. 다만 ‘때려라’라는 거센 표현이 산사 환경을 작위적이게 했다. 하지만 기승전결이 썩 좋았다. 아쉽게 된 시쪽은 중후한 음조 위에 참신한 언어구사를 한 작품이다. 그러나 한두군데의 휴지부가 거슬리는 현학취미를 자아내고 말았다.

 

편집국 벗들의 갑작스러운 부탁을 면전에 사절하기가 쉽지 않아서 이 심사를 맡았다. 바야흐로 흑룡의 새해 <불교신문> 창간시대의 인연을 떠올리며 낯선 선자가 되어 보았다.낙선의 작자들은 더 연마하기 바라고 당선자는 이번의 수준을 뛰어넘는 내일을 지향하기 바란다. 산중이 진언 ‘향상일로(向上一路)’가 왜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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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시…최호빈 그늘들의 초상

 

[2012 경향 신춘문예]시 부문/ 최호빈-그늘들의 초상 

 

 

 

 

[2012 경향 신춘문예]시 당선 소감-“멋진 병, 현기증이 나에 대한 믿음 되살려”

 

 

■ 최 호 빈 : 1979년 서울 출생

■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한 인간이 있었다. 그는 세상을 전부 이해하기 위해 한 인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인간이 되길 바랐다. 한때 내 몸은 그의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에 반항하기 위해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영혼이 아니라 그의 죽은 몸을 닮고 있었다. 스무 살의 겨울, 몽마르트 언덕에서 길을 헤매던 중 한 묘지로 들어갔고 처음 본 공동묘지에 그를 내려놓았다. 파리의 지붕들을 뛰어다니던 그에겐 밟고 다닐 무덤들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빈자리가 말을 건넨다. “나는 침묵과 밤에 대해 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에 유의했다. 나는 현기증을 응시했다.”

 

얼마 전 흑백의, 내 머릿속 사진을 보았다.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커다랗고 외로운 눈(目)이었다. 그 눈은 대답을 무한히 지연시키는 질문만을 내게 건네는 듯했다. 아무 문제 없다고 의사는 말했지만 그 이후로 나는 눕거나 일어날 때 어지럼증을 느낀다. 그것은 마치 내 안에 살았던 기억과 감정들이 깨어나면서 나에 대한 불신들 사이에 나를 믿게 만들 씨앗을 흩날리는 것 같았다. 살아있다. “멋진 병”에 걸렸다. 다행이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고마움과 건강히 오래 지켜봐주길 바라는 아들의 마음을 전한다. 시 쓰는 길을 열어주시고 큰 관심을 가져주신 최동호 선생님과 ‘곧’이라는 말로 격려해주신 선후배님께 감사드린다. 시 속에 숨어 있으려는 나를 밖으로 꺼내주신 멘토 권혁웅, 조연호 그리고 금요일의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크고 달콤한 힘에 감사한다. 다른 내일을 열어주신 도종환, 박주택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2012 경향 신춘문예]소설 심사평

 

-“주제 장악하는 힘, 꾸밈 없는 인물과 주제 탐구 돋보여” 황석영·최인석 소설가

 
소설에서 장식적인 요소는 언제나 작가 자신에게 재앙이다. 많을수록 더 큰 재앙이 된다. 더구나 삶과 인간에 대한 탐구가 결여된 채로 꾸미는 데 열중하는 것은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이다. 멋을 부린 문장이나 부적절한 비유 같은 것으로 생각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본심에 오른 스물세 편 가운데에는 상식적 수준에서 시작되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로 끝나고 마는 작품이 적지 않았다. 불필요하게 이국적 배경이나 소재를 끌어들인 작품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파쿠르’ ‘출구’ ‘방’이었다. 각기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모두 어떤 점은 새롭고 어떤 점은 낯익었다. 야마카시(고층건물 사이를 옮겨다니는 익스트림 스포츠)나 디스토피아, 실직과 해고 같은 이야기들, 영화를 통해 소설을 통해 무척 자주 마주치게 되는 소재다. 그것을 통해 어떻게 작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는가, 그 지점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드러났다.

 

 

▲ 소설을 심사 중인 황석영(왼쪽), 최인석 작가. 강윤중 기자
‘파쿠르’는 독사와 전갈의 관계를 포함하여 재미있게 이야기를 펼쳐나간 점은 돋보였으나 작가 자신의 생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출구’는 단정한 문장으로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리고 있었으나 이야기가 끝내 평범한 지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주제를 장악하는 힘, 꾸밈 없이, 흔들리지 않고 인물과 주제를 탐구해나간 점에서 ‘방’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는 오랜 논의가 필요치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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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세계일보 당선작/ 시…역을 놓치다 

 

 

 ◀ 그림 : 남궁산·판화가

 

역을 놓치다

                      - 이해원


실꾸리처럼 풀려버린 퇴근 길
오늘도 졸다가 역을 놓친 아빠는
목동역에서 얼마나 멀리 지나가며
헐거운 하루를 꾸벅꾸벅 박음질하고 있을까

된장찌개 두부가 한껏 부풀었다가
주저앉은 시간
텔레비전은 뉴스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핸드폰을 걸고 문자를 보내도
매듭 같은 지하철역 어느 난청지역을 통과하고 있는지
연락이 안 된다
하루의 긴장이 빠져나간 자리에
졸음이 한 올 한 올 비집고 들어가 실타래처럼 엉켰나
헝클어진 하루를 북에 감으며 하품을 한다

밤의 적막이 골목에서 귀를 세울 때
내 선잠 속으로
한 땀 한 땀 계단을 감고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
현관문 앞에서 뚝 끊긴다
안 잤나
졸다가 김포공항까지 갔다 왔다
늘어진 아빠의 목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힘이 없다

 

[신춘문예(시)] 당선소감-이해원

 

 

▲본명 이숙자
▲1948년 경북 봉화 출생
▲1999년 ‘수필춘추’ 신인상 수상

이런 기쁜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두 번의 수술로 몸과 마음이 지쳐 올해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귀를 의심했습니다.

너무 떨려서 전화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늦게 시작한 분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젊은 문학도의 길을 가로막은 건 아닌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늦게 출발해 시의 발아점까지 달리기엔 숨이 찼습니다. 햇빛도 보기 전에 멈춰버린 날들이 폐지처럼 수북이 쌓였습니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며 잠시 시를 놓고 있다가 느닷없는 당선 소식으로 마음에 불꽃이 일었습니다. 이 소중한 불꽃, 시를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태우겠습니다.

옛날 호롱불 밑에서 밤늦도록 책을 보시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 저의 가슴에 시의 씨앗 하나 묻어놓으신 분들, 기뻐하실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납니다.

주저앉은 제 손을 잡아주신 유종호, 신경림 심사위원님과 세계일보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시의 길로 이끌어 주신 박주택 선생님, 항상 용기를 주시던 이문재 선생님께 큰절 올립니다.

힘들 때 힘이 되어 주시던 마경덕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시사랑 화요팀 선생님들과 문우들 고맙습니다.

묵묵히 지켜보는 남편과 딸 미라, 아들 명훈이와 창훈이, 친지들, 친구들, 저를 아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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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시…저무는, 집/여성민 

 

저무는, 집 - 여성민


지붕의 새가 휘파람을 불고, 집이 저무네 저무는, 집에는 풍차를 기다리는 바람이 있고 집의 세 면을 기다리는 한 면이 있고 저물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 저무는 것들이 저무네 저물기를 기다리는 시간엔 저물기를 기다리는 말이 있고 저물기를 기다리지 않는 말이 있고 저무는 것이 있고 저물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저물지 못하네 저물기를 기다리는 말이 저무는 집에 관하여 적네 적는 사이, 집이 저무네 저무는 말이 소리로 저물고 저물지 못하는 말이 문장으로 저무네 새는 저무는 지붕에 앉아 휘파람을 부네 휘파람이 어두워지네 이제 집 안에는 저무는 것들과 저무는 말이 있네 저물지 못하는 것들과 어두워진 휘파람이 있네 새는 저물지 않네 새는 저무는 것이 저물도록 휘파람을 불고 저무는 것과 저물지 않는 것 사이로 날아가네 달과 나무 사이로 날아가네 새는 항상 사이를 나네 달과 나무 사이 저무는 것과 저물지 않는 것의 사이 그 사이에 긴장이 있네 새는 단단한 부리로 그 사이를 찌르며 가네 나무가 달을 찌르며 서 있네 저무는 것들은 찌르지 못해 저무네 달은 나무에 찔려 저물고 꽃은 꿀벌에 찔려 저물고 노을은 산머리에 찔려 저무네 저무는, 집은 저무는 것들을 가두고 있어서 저무네 저물도록, 노래를 기다리던 후렴이 노래를 후려치고 저무는, 집에는 아직 당도한 문장과 이미 당도하지 않은 문장이 있네 다, 저무네

 

 

 

[시 당선소감]

 

난 詩 소비자, 더 읽겠습니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그는 걷습니다. 산호 미용실을 지나 파리바게뜨를 지나 물왕리 저수지를 지나 아스널 FC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지나 메텔의 슬픈 눈이 떠도는 은하철도999를 지나 플라이 투 더 문을 지나….

저무는 것들이 저무는 사이로 걷습니다. 저무는 것들 사이에서 여러 번 저물며 걷습니다.

  


 어느 저물녘엔 전화를 받습니다. 그 밤에 첫눈이 푹푹 내립니다. 조금씩 눈 속에 묻혀 가는 집과 산과 논과 창문을 봅니다. 집이, 산이, 논이, 창문이 하나씩 저물고 있다는 느낌.

어머니의 둥근 무릎처럼 그 속에서 불빛들이 견디고 있다는 느낌. 그 밤에 그는 저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짓던 시를 마저 짓습니다…. 견딥니다….

 


 배고플 때 밥 사주던 금호초등학교 동창들이 생각납니다.

부족한 글 뽑아 주신 서울신문과 심사위원님들을 생각합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노트북 앞에 앉으면 페이지처럼 많은 밤들이 지나갑니다. 시를 읽으며 흐려지던 밤, 은혁이와 민혁이를 낳던 밤, 첫사랑이 있는 골목을 지나며 버스 안에서 아프던 밤, 창조주의 밤이 스르르 지나갑니다. 모든, 혼자였던 밤들. 그리고 나. 나는 아직도 소비하는 사람. 더 많이 소비하고 싶은 사람. 시를, 더 많이 읽겠습니다.

 

◀ 여성민 
■ 약력

1967년 충남 서천 출생. 안양대 신학과, 총신대 신학대학원 졸업. 2010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소설)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시 심사평

 

詩 자체가 하나의 사건을 이뤄

물리학에서는 수학적 사건이 있고, 생물학에서는 생명의 사건이 있고, 시에서는 말의 사건이 있다.

 

 

▲ 심사위원 함성호(왼쪽·시인), 송찬호(시인).

 
하나의 단어가 일일이 거론할 수 없는 전체를,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일한 사건으로 만들 때 그것은 시에 의해서고, 그것은 시인의 일이다. 말이 사건이 되지 못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 시에 있어서 말의 풍경은 하나의 사건이고, 그대로 지평이다. 예심을 거쳐 최종심에서 받은 스물세 분의 시는 오랜만에 우리 시의 지형 깊은 계곡으로 우리를 놀게 하고, 높은 산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하며 드넓은 바다에서 서 있게도 하는 행복한 경험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그 울렁거리는 느낌을 타고 세 분의 시를 골랐다. 일일이 짧은 감상을 달고 토론을 거쳐 힘들게 또는 아쉽게 손에서 터는 작업을 거쳐 남은 세 편의 작품을 두고, 우리는 잠시 부러 딴 이야기를 해야 할 정도였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딴 얘기를 하는 둥 마는 둥 다시 토론에 들어가 최호빈의 ‘고민의 탄생’, 김미영의 ‘상자’, 여성민의 ‘저무는 집’을 골랐다.

최호빈의 시는 시상을 치밀히 전개해 나가며 이미지를 구상화시키는 솜씨가 일단 돋보였다. 단어 하나의 선택에서 다년간 습작을 한 흔적이 분명히 드러났다. 김미영의 시는 우리 삶의 비루한 것들을 보듬어 소중한 꽃을 피워 내는, 애정이라고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따뜻함이 편편에서 맡아졌다.

아무리 시가 자기를 위한 자기에 의한 자기의 시라 할지라도 자기의 바깥을 보는 이런 시선은 이 즈음에는 꽤나 귀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 향기는 더 짙었다.

그러나 최호빈의 시는 숲이 울창한 만큼 베어 낼 나무들이 꽤 있었다는 점에서, 김미영의 시는 아직 피상적이라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여성민의 시는 반복되는 말과 말로 공간을 이루고 거기에 막연과 아연의 풍경들을 자리하게 해, 시 자체가 하나의 사건을 이루고 있었다. 좋았다.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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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나비가 돌아오는 아침  

 

나비가 돌아오는 아침       

                             -허영둘

 

젖은 잠을 수평선에 내거니 새벽이다

밤사이 천둥과 함께 많은 비가 내렸다

예고된 일기였으나 어둠이 귀를 키워

여름밤이 죄처럼 길었다

생각 한쪽을 무너뜨리는 천둥과 간단없는

빗소리에 섬처럼 엎드려 나를 낭비했다

 

지난봄, 바다로부터 해고통지서가 날아왔다 세상은 문득 낯설어졌고 파도는 사소한 바람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코발트블루 바다는 손잡이 없는 창窓, 절망보다 깊고 찬란했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나의 슬픔도 그토록 찬란했을까 나는 구름 뒤에 숨어 낮달처럼 낡아갔다 들판의 푸른 화음에 겹눈을 빼앗긴 나비를 기다리며 나는 오지 않는 희망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다

 

바다가 깨어난다

졸려도 감을 수 없는 희망

돌아서는 파도의 옷자락을 따라가면

거룩한 경배처럼 엎드린 섬들

나는 존엄을 다해 아침 바다의 무늬를 섬긴다

희망이란 소소한 풀잎이거나

날 비린내 풍기는 고깃배의 지느러미 같은 것

풀잎도 계단도 허리까지 젖어 궁리가 깊다

밤새운 탕진에도 하늘이 남아 드문드문한

구름 송이들은 젖은 마음을 문지르는 데 요긴하겠다

마루 끝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동안

담장 아래 칸나의 방에 볕이 붉게 들고

거미는 방을 훔치는 수고를 덜겠다

느슨하던 수평선도 다시 팽팽해져 나비를 부르고

고깃배 한 척 안개를 젖히며 희망처럼 돌아오고 있다

 

[2012 신춘문예-시] 당선소감   

 

"살아있는 동안 가슴에 나비를 품고" 
 

 

늦은 나이에 시작한 내 글쓰기는 내 속의 우울을 하나씩 끄집어내 세상과 눈 맞추게 하는 행위다. 형체 없이 스며 있던 상처와 욕망이 육체를 얻어 활동하게 하는 작업, 나무속에 들어가 가지 따라 솟구치고 햇볕에 몸 비비며 잎으로 팔랑거리게 하는 일이다.

 

바람의 팔과 햇살의 눈으로 고루 세상과 마주하는 일. 오래 바라보면 사랑하지 못할 대상이 없다. 세계는 평등하고 풀벌레 한 마리, 돌멩이 한 개의 삶도 눈물겹도록 진지하다.

 

보송보송 마른 마음으로는 시가 오지 않는다. 무언가 아련하고 아릿한, 나는 그것이 오랜 세월 내가 떨쳐내고 싶었던 우울이라는 것을 안다.

 

눈부신 날개를 팔랑이며 나비가 돌아온 아침이었다. 당선통보의 벅찬 감동은 한계에 다다른 것 같던 내 시력(詩力)에 대한 절망감에도 환하게 해를 비췄다. 살아 있는 동안 가슴에 나비를 품고 살 것이다. 언제나 최초의 시간을 쓰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참신한 상상력으로 시 쓰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신 김영남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동진 회원님들, 유진 시인님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채우지 못한 한 줄을 붙들고 밤을 새울 때 따뜻한 차 한 잔 슬그머니 놓고 나가던, 내 시의 첫 독자이며 평자인 남편 이일상 씨, 시 쓰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며 응원해 준 동걸, 언젠가는 시인이 될 것 같은 다영이, 행운을 물고 우리 집으로 날아온 나현.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허영둘/1956년 경남 고성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2012 신춘문예-시] 심사평 "새로운 어법 통한 도전의식 돋봬"

 

 

▲  김종해·천양희·김경복 
 
  본심에 오른 것은 총 6편이다. 최은묵의 '알', 권동지의 '늦은 귀가를 베껴쓰다', 권수진의 '과메기', 이주상의 '편두통', 손상호의 '시미즈 터널', 허영둘의 '나비가 돌아오는 아침' 등이다. 이들은 수준에 올라 당선작으로 하여도 무방한 느낌이 들었다.

 

'알'은 발상이 참신해 눈이 갔으나 아직 관념이 형상화보다 앞선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늦은 귀가를 베껴쓰다'는 삶의 고단함에 대한 감성의 풍부성이 주목되나 상상력의 허점과 문장의 완결성 부분에 문제가 제기됐다. '과메기'는 파란만장한 삶을 바다에 비유해 전개한 참신성이 돋보이나 주제가 너무 상식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흠으로 지적됐다. '편두통'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의 복잡한 심리를 번득이는 표현으로 포착한 점은 놀라우나 관념이 너무 앞서고 설명적이라는 점이 문제로 언급됐다.

그리하여 '시미즈 터널'과 '나비가 돌아오는 아침'이 종심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미즈 터널'은 쓸쓸한 삶의 내면을 더없이 자연스럽고 유려하게 표현한 점이 장점으로 두드러졌지만, 이 점이 오히려 완숙한 경지를 보여주어 신춘문예로서 가지는 발전 가능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비해 '나비가 돌아오는 아침'은 새로운 어법을 통한 도전의식이 엿보이고 현실에 대한 인식의 깊이, 표현의 참신성도 갖춰 당선작으로 확정하는 데에 이의가 없었다. 당선자가 더욱 정진해 한국 시단의 중추가 되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김종해·천양희·김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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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시…얼룩진 벽지

 

 

 

 

 

얼룩진 벽지

                

                              - 성명남
     


독거노인이 사는 벽 귀퉁이에

어린 재규어 한 마리 숨어 산다

우거진 풀숲 사이로 자세를 낮춘

짐승의 매화무늬가 보인 건

열대우림 같은 우기가 시작된 며칠 뒤였다

지직거리는 TV속 동물의 왕국에선

재규어가 강물 속에 꼬리를 담그고

살랑살랑 흔들어 물고기를 잡는다

노인은 자신의 퇴화된 꼬리를 자꾸 만져보다

돌아누우며 TV를 꺼버렸다

그칠 줄 모르고 비가 내렸다

하루가 다르게 짐승의 영역은 확대 되어갔다

영역을 표시하는 그 채취만으로

목덜미를 물린 듯 노인은 불안에 사로잡혔다

짐승이 다 자랐을 때 닥칠지도 모를

치명적 위험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이다

점점 몸집을 불린 수컷 재규어가

몸이 근질거릴 때마다 혀로 제 몸을 핥는다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기세다

범람한 강물이 골목을 덮쳤을 때

노인의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맹수가 펄쩍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평원을 가로질러 노인을 물고 사라졌다

도배장이가 벽지를 쫙 뜯어내자

그 속에 무성한 열대밀림이 펼쳐졌다

 

 

[2012 신춘문예] 시 당선소감
상상 속에서 꿈꾸던 일이 뜻밖에 현실로

 

 

◀ 성명남
낯선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응모한 작품이 당선되었다는 전화기 속의 목소리가 하늘의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꿈만 같아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깜짝 놀라고 벅차오릅니다. 심장이 아직도 쾅쾅 뛰고 있습니다. 상상 속에서 꿈꾸던 일들이 현실로 이어져 기쁩니다.

시를 쓰는 일은 즐거운 고통이었습니다. 가족과 일과 시쓰기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균형을 맞추며 제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새로 사온 시집에서 좋은 시를 만나면 자꾸 꿈이 커갔습니다.

 

꿈은 꾸기만 해도 행복한데 이루면 더 행복하다는 걸 알려주신 '국제신문'과 부족한 제 시에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 문정희 시인님, 최영철 시인님, 박남준 시인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의 은유를 알게 해주신 존경하는 정일근 시인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함께 공부한 이팝시 동인 문우들, 삽량문학회 식구들, 오랫동안 묵묵히 지켜봐 준 사랑하는 남편과 든든한 아들 휘성이와 첫 번째 독자로 지목되어 기꺼이 작품평을 해준 딸 슬아. 그리고 공부방 꼬마친구들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노력하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새해도 모든 분들이 시를 읽으며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약력 1962년 충남 연기 출생. 현재 양산시 삽량문학회 편집장. 이팝시 동인.

 

[2012 신춘문예] 시 심사평
절제의 미학과 따뜻한 응시로 잘 표현      

 

◀  심사위원 왼쪽부터 문정희, 최영철, 박남준


늦게 담은 동치미는 익지 않았고 이곳저곳 지인들의 집에서 보내온 김장김치도 아직 맛이 들지 않았다. 먼저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지 않고 밖에 내놓은 김치 역시 설익었다. 먹기에 마땅치 않다.

금방 담은 김치는 배추의 고소하고 싱싱한 맛과 양념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그 싱그러움으로 먹을 수 있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 그 맛을 잃게 된다. 양념이 고루 배고 익어서 맛이 든 김치가 밥상에 오를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몇 포기 남아있지 않은 묵은 김치를 꺼낸다. 역시 이 맛이야. 시를 쓰는 일도 그렇다. 한껏 기교를 부리며 은유와 비유로 멋을 부린 시들이 막 버무린 김치와 같다면 오래 묵어 양념들이 고루 배고 맛이 든 김치, 그러나 배추의 처음 싱싱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아삭아삭거리는 김장김치는 온몸으로 밀어올린 울림이 있는 시, 깊은 맛이 있는 좋은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최종심으로 올라온 두 작품은 '얼룩진 벽지'와 '보도블록'이었다. 그러나 '보도블록'은 신선한 시선이 돋보였음에도 이를 받쳐줄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않았다. 당선작으로 뽑은 '얼룩진 벽지'는 김치와 같았다. 푸른 배추의 싱싱함을 가진 잘 익은 김장김치와 같은 시. 긴장감을 잃지 않고 절제의 미학과 '동거'와 같은 다른 시에서 보여준 깊고 따뜻한 응시를 가진 이 시를 놓고 심사위원들은 즐겁게 당선작에 올려놓았다.

처마 끝에 걸린 곶감들이 잘 마르고 있다. 곶감은 제 몸의 수분을 햇빛과 바람 앞에 알몸으로 온통 내놓고 말라갔을 때 그 속에 비로소 떫은맛이 변하여 달고 붉은 속살을 갖게 된다.

 

이제 파도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새로운 시인이 헤쳐 나갈 험난한 여정에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시인 김수영의 시 한 구절이다. 온몸으로 밀고 가는 시인정신으로 나는 그 표현을 읽었다. 적어도 시를 쓴다면 이 정도의 자세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목숨을 걸어보는 정도 말이다.

심사위원 문정희 최영철 박남준(이상 시인)

 

 

 2012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시조…떠도는 섬 -어는 독거노인의 죽음

 

 

 

 

떠도는 섬 - 독거노인의 죽음

                                   

                                        - 유 헌       
 
엎어진 숟가락처럼 섬 하나 놓여 있다

막걸리 쉰내 나는 툇마루만 남아서

밤마다 갯바람소리 환청에 떨고 있다


느릿느릿 애 터지게 바람이 불어온다

둘이 같이 살아보자 옆구리 토닥이던

파도가 밀려왔던 자리, 절벽이 생겨났다


무연히 쓸어보는 방바닥엔 흰머리뿐

파도에 멍든 자리 동백꽃이 새살 돋고

창문을 더듬는 햇살, 하얗게 질려간다


칠 벗겨진 양철대문에 파도소리 출렁인다

그물코에 빠져나간 한숨들을 깁는가

오늘도 뱃고동소리 속절없이 지나간다

 

[2012 신춘문예] 시조 당선소감
마음 깊은 곳에 긴 두레박을 내려

 

◀ 유헌


어제는 참 포근했습니다. 당선통보를 받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창밖에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목포항 앞바다는 출렁대는 물결로 허리가 아픕니다.

차가운 거리로 나섰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나 갑니다. 그런데 그 강풍조차도 차갑지 않고, 가슴을 파고들며 흩날리는 눈송이도 시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슴은 벅찬 설렘으로 뜨겁습니다.

 

신춘문예 마감일까지 고치고 또 고친 원고뭉치를 보내고 우체국을 나서던 순간도 그랬습니다. 상기된 얼굴을 스쳐가는 겨울바람은 산마루를 돌아나오는 건들마처럼 서늘했습니다. 먹물처럼 어두워진 깊은 하늘에서 빛나던 차가운 달빛은 차라리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었습니다.

그간 심하게 앓았던 시조를 향한 열병 때문이었을까요? 지난 며칠 동안은 추워도 춥지 않았습니다. 그 열정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뜨거운 가슴을 타고 내리는 가락들을 4음보로 길어 올리는데 결코 소홀하지 않겠습니다. 신춘이라는 분에 넘친 텃밭을 내어 주신 '국제신문'과 심사위원님들께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긴 두레박을 내려 낮은 자세로 더 비우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아내에게는 참 미안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깊은 밤에도 벌떡 벌떡 일어나 생각의 파편들을 글로 옮기곤 했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아내는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고 하니까, 그간 제가 참 무던히도 요란을 떨었나 봅니다.

늘 치열한 문학정신을 일깨워 주신 한국 문단의 거목 소설가 천승세 선생님, 시조의 깊이를 알게 해준 박성민 시조시인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말을 가장 우리말답게 담아낼 수 있는 정형의 그릇, 시조의 큰 바다에 돛을 올려 작은 배를 띄웁니다. 흔들림 없이 노를 젓겠습니다.

 

▶약력 1957년 전남 장흥 출생. 광주대 언론홍보대학원 언론학 석사. 제26회 한국방송대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 현재 목포MBC 국장.

 

[2012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하나의 제재를 집요하게 이미지로 조형

 

 

◀ 정해송(왼쪽), 전일희


우리의 모국어를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어갈 역량 있는 신인을 뽑는 신춘문예는 선자들의 가슴마저도 기대감으로 부풀게 한다. 금년도 국제신문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수준은 상당히 향상되어 있어서 매우 고무적이었다.

 

대다수의 작품들이 시조의 정형미학을 잘 체득하고 있어서 안도감을 가지고 심사에 임할 수 있었다. 우리는 보내온 작품들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서 읽어나갔다. 엄격하게 걸러내는 작업 끝에 최종적으로 세 분의 작품 '길 너머' '귀성 길' '떠도는 섬'이 남게 되었다. 이 작품들은 문예지에 그대로 실어놓아도 조금도 손색 없을 만큼 두드러진 작품성을 지니고 있었다.

 

'길 너머'는 구도자적인 내면 탐색에 천착하고 있는 점이 높게 평가되었으나 '생의 봇짐' '득음'과 같은 관념적인 투어가 아직 가셔지질 못했다. 이렇게 하여 '귀성 길'과 '떠도는 섬'이 남아 마지막으로 경합을 하게 되었다.

이 두 작품은 충분히 당선권에 속하는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 두 심사위원은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 장시간 논의를 했다. '귀성 길'은 언어를 섬세하게 다듬는 기법이 탁월했으나 소재의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한 작품 속에 담고자하는 주제가 넘쳐 응축성이 미진한 감을 주었다.

 

'떠도는 섬'은 독거노인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제재를 집요하게 이미지로 조형하여 현실 문제를 부각시킨 점이 우리의 마음을 더 사로잡게 했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언어의 조탁에 더욱 힘쓸 것을 당부한다.

심사위원 정해송 전일희(이상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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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시조…바람의 뼈 

 
바람의 뼈 - 유선철

 

단순한 무대는 화려하고 장엄했다

 
오롯한 발자취, 죽음마저 연주였다

 
고요는 달빛을 풀어

그의 뜰 쓸고 갔다

 
모서리 동그마니 묵언에 든 나무 의자

 
그 아래 하얀 뼈가, 말씀이 묻혀 있다

 
망초꽃 흔들어놓은

바람이 거기 있다.

 
당선소감

 

 

따뜻한 시쓰기 이제 시작이다

 
당선 소식을 듣고 바람 앞에 섰습니다. 울컥, 파도 하나가 밀려왔습니다. 바람을 안았습니다. 가슴 속을 파고드는 바람이 말했습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시조의 강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그만 발목이 빠져버렸습니다. 처음엔 자꾸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광맥을 찾아 헤매는 일이고 금쪽같은 말을 캐내는 일이었습니다. 읽고 고치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보면 멀미가 났습니다. 소질도 없으면서 길을 잘못 든 거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도망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멀리 가지 못하고 슬그머니 돌아오기를 몇 번, 어느새 시조의 강물은 허리께에 차올라 있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오신 백수 정완영 선생님께 시조를 배우고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넓고 푸른 그늘 속에서 습작을 한 삼 년 후, 이교상 시인을 중심으로 김성현 시인 등이 함께하는 공부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작년에는 매주 모여 합평회를 하였습니다. 서로의 작품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소주 한잔으로 위로하며 더 좋은 작품을 기다렸습니다. 오늘의 기쁨은 백수 선생님의 가르침과 시벗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달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부족한 제 손을 잡아 일으켜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더 비우고, 더 내려놓아,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따뜻한 시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바람은 아직 멎지 않았습니다. 먼 곳에 아득히 넘어야 할 산들이 보입니다. 불일암에 한 번 다녀와야겠습니다.

 
●1959년 경북김천출생

●경북대 일반사회과 졸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과 졸

●김천중앙중 교사

●중앙시조백일장 2009년 1월 장원

 

심사평

 

‘자신의 시’를 창작하는 힘 가져

 
임진년 새해를 맞아 또 한 사람의 촉망되는 신인을 배출시키기 위해 우린 신중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은 치열한 습작과정을 통해 일정부분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정제되지 않은 자연서정과 영탄, 설익은 관조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아 군계일학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남는다. 결심에서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송인재의 ‘그 동전, 은유의 무게’, 구애영의 ‘유빙(流氷)을 바라보며’, 최승관의 ‘바다, 그 두려운 갈망’, 유선철의 ‘바람의 뼈’ 등 4편이었다.

‘그 동전, 은유의 무게’는 첫째 둘째 수에선 형식 속에서 담담히 서정을 풀어가는 솜씨에 눈길이 갔는데, 셋째 넷째 수에 오면서 절제를 잃고 감정과잉을 낳아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함께한 응모작들 역시 그런 약점을 드러내는데 이런 부분을 보완한다면 좋은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유빙(流氷)을 바라보며’는 적절한 비유를 차용해 와 결빙의 퍼즐처럼 뻗어나가는 심상들에 근접시키려 했으나 시조 특유의 축약과 가락을 잃고 있어 이 또한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맨 마지막까지 거론된 작품으로는 ‘바다, 그 두려운 갈망’과 ‘바람의 뼈’였다. 앞의 작품은 보내온 작품들이 모두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보를 자유롭게 다룰 줄 아는 장점에 눈길이 갔다. 그러나 적확한 이미지를 얻지 못함으로써 주제를 선명히 드러내는 데 실패하고 있어 손을 들어주지 못했다.

 

이에 비해 ‘바람의 뼈’는 시조가 필연적으로 가져야 하는 함축과 가락을 안으로 잘 갈무리하고 있어 안정적으로 정형률을 다스리는 힘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신춘문예용 작품이 아닌 자신의 시를 창작하고 있어 신뢰를 갖게 한다. 이런 안정감은 반대로 날선 시대를 향한 시대정신을 담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런 당부를 빌면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민다. 한국 시조단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대성하기를 바라며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 : 하순희·이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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