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用해서 有用한 신춘문예

2012년 새해 첫날 신문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 [정리 :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

등단(登壇)의 비상을 꿈꾸는 예비 문학도를 위한 축제 신춘문예

 

시인이 너무 많아 정작 시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연극이 너무 많아 제대로 된 연극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문학의 위기'라지만 문학 산업은 움츠러 들어도 문학에 대한 열망은 타올라, 文靑에겐 꿈의 등단 무대… 현대인에겐 자기 치유의 場

 

신춘문예 당선비법 >>> http://blog.daum.net/koreasan/15605232

 

▲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김유정, 김동리, 정비석, 김인숙, 황석영, 최인호

 

無用해서 有用한 신춘문예

◀ 어수웅 문화부 차장

 

월간 '샘터' 최근호에 독자편지 한 통이 실렸다. 제목은 '작가 최인호에게'. 1966년 11월 1일 공군 사병 157기로 함께 입소한 작가의 군대 동기가 당시의 추억을 전한 편지였다. 두 달간의 신병훈련으로 고된 나날을 보내던 도중, 연병장으로 최인호의 신춘문예 당선 소식이 날아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작가 덕분에 소속 부대 훈련병 전원이 전무후무한 특별외출을 다녀올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최인호는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이다. 최근 작가를 만나 당시 추억을 물어봤다. "내가 그때는 좀 오만했어. '당선 통보는 단지 한 곳뿐입니까'라고 되물었거든. 모든 신문의 신춘문예에 투고하고, 수상 소감까지 각각 다 써놨었다니까." 투병 중인 작가의 얼굴에 소년 같은 흥분이 비쳤다.

 

  새해 첫날 '문청(文靑)'들을 환희와 절망에 빠뜨리는 신춘문예의 계절이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접수 마감을 앞두고 문학담당 기자의 사무실 전화는 하루종일 빗발친다. 옆자리 동료들이 자주 전화를 당겨 받는데도, 기자가 받는 전화는 하루 평균 30통을 훌쩍 넘긴다.

 

문의 대부분은 어처구니없는 질문들이지만 묻는 사람들은 진지하다 못해 간절하다. "시는 3편 이상이라는데, 한 편 한 편마다 내 전화번호를 적어야 하느냐"는 문의 정도면 양반이다. "혹시 (당신들이) 잃어버릴지도 모르는데, 같은 원고를 두 편씩 보내도 되느냐"는 문의에 답을 하고 끊자마자 "겉봉투에 글씨는 빨간색 볼펜으로 쓰는 게 좋으냐, 파란색 볼펜으로 쓰는 게 좋으냐"는 전화가 걸려왔다. "내 작품 받았느냐"고 전화를 걸어온 중년 여성은 확인을 해 줬는데도 1시간 사이 "정말 받은 게 확실하냐"면서 3번이나 더 전화를 걸어왔다.

 

  지난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응모편수는 모두 7327편이다. 낙타 두 마리가 동시에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할 것 같은 경쟁률이다. 문학의 위기라지만 신춘문예만 보고 있으면 꼭 그런 것도 아닌 듯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춘문예는 소수에게만 복음을 전한다. 게다가 바늘구멍 같은 경쟁을 뚫었다 하더라도 진정한 시작은 그때부터이다. '프로 시인' '프로 소설가'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문예지 출신과도 경쟁해야 하고, 근본적으로 산업으로서의 문학은 점점 더 움츠러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부디 신춘문예 응모 자체를 하나의 '축제'로 즐겨줬으면 좋겠다. 문학을 밥벌이나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신에 대한 치유이자 위로에 있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문학은 써먹을 데가 없어 무용하기 때문에 유용한 것이다. 모든 유용한 것은 그 유용성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만, 문학은 무용하므로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신춘문예에 투고한 글을 어디 써먹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밥이나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비록 당선 소식을 듣지 못한다 해도 그동안 스스로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신춘문예의 존재의의는 충분할 것이다. 무용해서 유용한 신춘문예를 위하여!

 

 

신춘문예 당선은 ‘작가 면허증’일 뿐… 10명 중 4명 자기 책 못내 2011-11-23     

  
2000∼2002년 8개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자 50명, 10년 후 삶의 주소

 

  2012년 신춘문예의 막이 올랐다. 신춘문예를 주관하는 신문사들은 이달 나란히 공고를 내고 다음 달까지 작품을 접수한다. 마감을 앞둔 문청(文靑·문학청년)들의 가슴이 설레고 조바심이 나는 것도 이때쯤. 1925년 동아일보가 처음 시작한 신춘문예는 80년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가장 화려한 등단 코스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신춘문예 당선은 작가 라이선스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당선자가 문단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본보는 2000∼2002년 3년간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 서울신문 등 8개 중앙 일간지가 주최한 신춘문예 시, 소설 부문 당선자 50명을 대상으로 등단 후 약 10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추적했다. 10명 가운데 4명은 아직 자신의 책(소설, 시집 등 작품집)을 출간하지 못했으며 3권 이상 책을 내며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는 5명에 한 명꼴이었다.

 

○ ‘저자가 되지 못한 작가’ 열 가운데 넷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주위에서 축하 인사에 이어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은 “책은 언제 나오나”다. 매년 봄 신춘문예 시, 소설 수상작품집이 출간되지만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집을 내기까지는 보통 수년이 걸린다.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은 응모자들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뽑기도 하지만 출판사는 현실적인 경쟁력을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에 출간은 당선자들이 넘어야 할 또 다른 벽이다.

본보가 조사한 결과 2000∼2002년 일간지 8곳이 배출한 시, 소설 부문 당선자 50명 가운데 단행본 시집이나 소설책(동시, 동화 포함)을 한 권 이상 낸 작가는 29명(58%)이었다. 나머지 21명(42%)은 등단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책을 내지 못했다. 한 권 낸 작가는 12명(24%), 두 권 낸 작가는 6명(12%)이었다. 10여 년 동안 책을 내지 못했거나 두 권 이하의 책을 내며 활발히 활동하지 못한 작가가 전체의 78%에 달했다. 4권을 낸 작가는 4명(6%), 5권 이상은 5명(10%)에 그쳤다.

 

○ “당선된 해 가을부터 청탁 딱 끊겨”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새해 첫날 아침 신문 1면에 이름이 실리고, 당선 작품이 신문에 게재된다. 언론 매체나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고, 이름 뒤에 꼬리표처럼 ‘OO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라는 수식어가 달려 당선자의 어깨가 으쓱해진다. 하지만 주위의 관심은 금세 시들고, 당선자는 홀로 남게 된다. 이때부터 첫 책을 내기까지 2, 3년이 가장 버티기 힘들다고 당선 작가들은 입을 모았다.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인 소설가 백가흠 씨(37)는 “당선되고 반짝 일했는데 그해 가을부터 청탁이 딱 끊기더라. 2년여 동안 청탁이라는 게 산문이든 소설이든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짐작보다 훨씬 힘들었다. 갓 데뷔했을 때 화려함에 비하면 그 다음은 정말 소설과 나의 싸움이었다. 이전에는 학원 강사도 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당선되고 나니 그런 일을 못하겠더라. 결국 나를 안쓰럽게 생각한 출판계 선배들이 (문예지에) 지면을 만들어줬는데 그게 굉장히 소중했다.”

2000년 중앙일보 시 부문 당선자인 박성우 씨(40)는 “당선된 직후에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구나 싶었는데 그 환상이 딱 석 달 지나니까 깨지더라. 다른 동료나 선배 시인들의 시를 보면 내 시는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때부터 2, 3년 버티면서 시를 쓸 수 있느냐, 그것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느냐가 작가로 살아남는 갈림길 같다”고 말했다.

 

  낯선 문단 활동도 갓 등단한 신인작가에게는 부담이다. 2001년 동아일보 시 부문 당선자인 김지혜 씨(35)는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청탁하거나 책을 내주는 문예지의 후원이 없어 본인 실력으로만 살아남아야 한다. 문단에서 안면을 익히는 게 중요한데 거기에 관심이 없거나 서툴면 소외되기 쉬운 점도 있다. 자기 PR를 해야만 살아남는 구조”라고 말했다.

 

○ 강사 겸직 많아, 동화로 부문 바꾸기도

  당선 10년 뒤 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조사 대상자 50명 가운데 연락이 닿은 29명을 전화 설문한 결과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이 10명(34.5%)으로 가장 많았고 대학이나 문화센터 강사(6명·20.7%), 문학관이나 출판사 직원(5명·17.2%) 순이었다. 당선 이후 문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비율은 72.4%였다. 나머지는 대기업 홍보팀 직원, 주부, 군인, 카페 운영, 연극배우 등으로 다양했다. 전업 작가 가운데 절반이 동화나 동시를 쓰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어린이 책 시장이 성장한 데다가 신인 작가가 입지를 다지기에 상대적으로 손쉬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조선일보 희곡 당선자인 강석호 씨(40)는 “2006년 이후로 희곡을 무대에 올리지는 못했다. 지금은 동화와 희곡이 결합된 형태의 책을 쓰고 있고, 지난해 6권을 냈다”고 말했다.

 

○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등단 코스”

2000∼2002년 시, 소설 부문 당선자 가운데 각종 문학상을 받으며 왕성히 활동하는 작가는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적지만 조사에 응한 사람들 대부분은 신춘문예를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등단 코스로 꼽았다. 2000년 동아일보 중편소설 당선자인 조민희 씨(37)는 “당선 이후 출간 제의뿐만 아니라 광고회사와 영화사 쪽에서 여러 제의를 받았고 많은 기회가 있었다. 인생에서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 자체가 혜택이었다”고 말했다.

2000년 문화일보 시 부문 당선자인 김규진 씨(52)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의 시대도 아닐뿐더러 시의 시대는 더욱 아니다. 시인들이 천연기념물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시를 쓰고, 읽는다. 그들에게 신춘문예는 여전히 평생 한 번은 달성하고픈 꿈이 아닐까.”

 

▼신춘문예의 계절… 선배들의 조언 ▼

문단 데뷔를 노리는 문청 ‘글쟁이’들에게 요즘은 ‘수험의 계절’이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선배 작가들은 대개 “비방은 없다”면서도 “안정된 실력과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본기 탄탄한 작품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원고 분량이 적지 않은 소설과 희곡의 경우, 첫 페이지와 첫 장면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게 좋다. 지난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는 2505명의 응모자가 7110편에 이르는 응모작을 쏟아냈다. 심사위원도 문학인이기에 앞서 사람이다. 전체적 짜임새가 탄탄하거나 후반부 독창적 반전을 품고 있다고 해도 독자나 관객을 5분 만에 졸음에 빠뜨릴 수 있는 도입부는 위험하다.

 

소재와 주제에 있어 자유롭게 접근하되 ‘현실적 소재를 현실감 없게’ 다루면 곤란하다. 지난해의 동아 신춘문예의 경우 “실제 체험보다는 인터넷 댓글을 확대한 데 머물거나 소재만 신기한 데 그치는 작품이 적지 않다”는 심사위원의 지적이 있었다. 골방에서 폐쇄적인 글쓰기를 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득이 되지 못한다.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시각에서 참신함을 드러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문장력에 자신이 있다면 신인다운 실험적인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 희곡의 경우, 문학성을 높이 쳤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트렌디하고 젊은 감각의 작품이 당선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신춘문예는 ‘겉늙은이’ 같은 노회함보다는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신인의 패기 어린 도전을 높이 평가한다. 다만, 문장력과 작품을 관통하는 철학이 동반돼야 한다는 게 당선자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시 부문의 경우, 너무 많은 작품을 출품하는 것은 득 아닌 독이 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덜 좋은 작품들이 좋은 작품들의 평균을 깎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한 본심으로 갈수록 심사자들이 ‘옥의 티’를 찾아 좁혀가므로 작품의 안정성은 기본이다.

불같은 목표의식과 치밀한 전략이 능사는 아니다. 당선자 가운데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단상을 담담히 써내려가다 맘에 차는 시가 세 편 나왔을 때 비로소 신춘문예를 생각했다는 이도 있었다.

 

당선작이 새해 첫 신문에 게재된다는 점도 감안할 만하다. 지난해에는 잉여, 실직, 생활고 등을 우울하게 토로하는 자기고백적 작품이 범람했다.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자인 김정훈 씨(42)는 “자살 등 지나치게 어두운 이야기보다 새해에 신문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밝은 이야기를 쓰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신성미 기자. 황인찬 기자. 임희윤 기자]

 

[신춘문예 당선자 조언]

“모든 문학인의 평생 사랑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열병”
 
 책상에 앉아 그 동안 써 왔던 글들을 꺼내 본다. 몇날 며칠, 먹고 자는 것도 잊고서 글자들과 씨름을 한다.

완성된 원고를 들고 우체국을 찾아간다. 봉투에 정성 들여 `신춘문예 동화 부문 응모작'을 큼직하게 쓴다. “올해도 또 오셨네요.” 인사를 건네는 직원에게, 머리만 긁적이며 원고가 든 봉투를 건넨다. 돌아오는 길. 두근거림으로 꽉 찼던 가슴에서 푸슈슈, 뭔가가 빠져나간다. 미뤄두었던 잠을 자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쓴다. 몸은 졸린데 가슴은 불면증이다. 그냥 눈물이 흐른다. 해마다 신춘문예 시즌이면 나는 이런 이상한 병에 걸렸었다. 떨어질 걸 알면서도, 짝사랑인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걸렸던 병. 바로 신춘문예다.

내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지 벌써 1년이 흘러간다. 신춘문예 등단이라는 꿈을 이루었는데, 내 가슴은 또 두근거림으로 가득하다. 신춘문예는 아마, 모든 문학인의 평생 사랑인 모양이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아름다운 열병인 것이다. - 이순진·동화-

 

 

신춘문예란 이름의 빙벽
                                                  -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한국일보 신춘문예 작품모집이 시작됐다. 신춘문예가 병인 것은 분명한 모양이다. 그것도 고질병인 모양이다. 신춘문예 사고를 보는데 내 가슴이 '쿵쿵쿵 쿵'하며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박자처럼 뛴다. 신춘문예 병은 한번 감염이 되면 매년 되풀이되는 무서운 병이다.

 

  코끼리를 타고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과 같은 당선이란 좁은 문을 통과했든 못했든, 병세의 차이는 마찬가지다. 신춘문예. 그 말에, 가슴이 뛰는 것이다. 신춘문예. 그 말에, 그때부터 찬란한 꿈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년 1월 1일자에 영예의 당선자가 발표될 때까지 그 꿈은 많은 사람에게 유효한 꿈이다.

하지만 신춘문예는 높이를 알 수 없는 빙벽과 같은 것. 당선이라는 등정을 위해서는 거대한 빙벽을 혼자서 고독하게 올라야 한다. 무릇 빙벽의 높이가 신춘문예의 수준이다. 끝을 모르는 수직빙벽을 오르기 위해서는 힘찬 도전의식과 남다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추락하면 끝이다'는 각오로 한 발 한 발 올라야 한다.

 

또한 그 길은 정직한 길이어야 한다. '중복투고'라는 여러 개의 자일을 여기 저기 던져놓고 타고 오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자일이 꼬이는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켈로 힘차게 얼음을 찍어 자신의 길을 만들며 신춘문예란 빙벽을 오르는 이여. 도전하는 한, 오르지 못할 빙벽이 어디 있겠는가.

 

신춘문예, 그 뜨거운 향연<세계일보>

한국에만 있는 ‘문학축제 브랜드’
절박한 결핍 열정으로 가득 채우길

 
벌써 한 해가 또 간다. 곡절 많은 사연을 통과한 이도 있을 터이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기쁨의 순간을 만끽한 이도 있을 터이다. 병고로 신음한 아픈 이도 있었을 터이고, 사랑한 이와 이별했거나 혹은 통곡 속에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낸 이들도 있었을 터이다. 그런가 하면 밋밋하게, 재미없게, 지루하게 또 한 켜의 세월을 축적한 이도 물론 있었을 터이다. 이들 중 가장 행복한 이는 누구일까.

세계일보 조용호 문화부장
격한 감정의 롤러코스트를 탄 이들은 그 나름의 후유증을 겪었을 터이고, 아픈 이들이야 두말할 나위 없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며, 사랑하던 이와 이별한 사람들은 화려한 도심의 거리를 울며 걸었을 것이다.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불행하면 불행한 대로, 스트레스가 높아져 과도한 혈당과 급격한 호르몬 분비로 인해 육신이 안온하지 못했을 터이다. 행복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밋밋하게 한 해를 지나온 이들이야말로 따지고 보면 가장 축복받은 경우일 수 있다. 이 험난한 세상, 아무 일 없기가 얼마나 힘든가. 그러니 지루하게 한 해를 지나온 분들, 또 한 번 지나가는 세월의 끝자락에서 나른한 행복감에 젖어보시길.

그리하여, 어쨌든, 또 한 해가 저물면서 바야흐로 문학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이미 한달 전쯤 신춘문예 공지 나팔이 일제히 소리를 높였고, 마감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 혹은 상처와 분노를 간직한 이들이 삭이고 삭인 내면을 바탕으로 한자 한자 적어내는 그 문학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매년 자랑하는 말이긴 하지만, 신춘문예 제도야말로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남아 있는 전 국민의 문학축제이다.

정월 초하루 아침, 대한민국 국민은 일제히 전국 수십 개의 일간지에 게재되는 단편소설과 시를 보면서 한 해를 시작한다. 발표 지면이 부족했던 일제강점기 이래 전통일 뿐 지금은 없어져야 할 제도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까지 쉽게 신춘문예를 포기하는 일간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익이 나지 않으면, 손해를 보면, 바로 없애고 바꾸는 이 첨단자본의 세상에서 신문사들이 협찬도 없이 ‘쌩돈’을 들여가면서 변함없이 이어가는, 거의 유일한 제도가 바로 신춘문예다. 애틋하지 않은가.

어쨌든, 그리하여, 산골 벽지 초등학생에서부터 아직도 문학의 꿈을 버리지 못한 노인들까지 신춘문예 투고 행렬이 이어지는 중인데, 간단한 팁을 드리자면 이렇다. 단편소설의 경우, 첫 한 페이지 정도에는 심사위원의 눈길을 잡아끌 만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라. 이 대목에서 사소한 맞춤법이라도 틀리거나 비문이 나온다면 아무리 알토란 같아도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응모작들을 검토해야 하는 심사위원들을 너무 원망하지 마시라. 시의 경우, 너무 많은 편수를 투고하는 건 오히려 화를 자초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통상 신문사마다 최소 3∼4편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가슴에 혹은 책상에) 쌓인 게 많은 응모자들은 심지어 시집 한권 분량까지 투고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중 아무리 탁월한 작품이 있더라도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 끼여 있으면 심사위원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니 비교적 수준이 고른 작품들을 정선해 적당히 투고하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이런 요령들은 매년 신춘문예를 두드리는 문학 폐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팁이다. 안다. 문학에 핵심정리, 속성완성 코스는 있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형용모순이겠지만 뜨거운 결핍이다. 결핍이 뜨겁다는 말은, 그만큼 문학으로 채워야 할 그 무엇이 절박하다는 말이다. 행복한 사람이 문학을 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물론 그 ‘행복한 이들’이 정말 행복한지는 모두에 언급한 것처럼 기준에 따라 이구이성(異口異聲)이겠지만. 그러니 문학은 상처 자욱한 향연이요, 울음이요, 따뜻한 위로의 한마당인 것이다.

자, 이 마당에, 상금과 영예 따위는 부산물로 여기고, 흔연히 나와 세상과 인간을 돌아보는 행위에 참여해 보시라.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아름다운 축제가 바로 대한민국 신춘문예다. - 조용호 문화부장

 

▲ '여러분 사랑합니다' 태백 함백산 정상에서 ⓒ 2011 한국의산천  

11월 27일 일요일 영흥도 라이딩 갑니다. 시화방조제입구 주차장 10시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