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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유명산 라이딩 3 (유명산정상~ 어비계곡)

by 한국의산천 2011. 12. 5.

송년 라이딩 유명산  임도 3

 

산마루에서 헤어진 그 사람은

아직도 그곳에서

기약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남아 있을까?

 

유명산 라이딩 1 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5268

유명산 라이딩 2 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5267

 

유명산 정상에 오른 후 다시 내려와서 두멍안골을 지나서 고개를 넘고

어비계곡의 갈현분교터로 다시 원점회기 하였습니다. 

눈덮힌 산길, 얼음이 깔린 도로, 진흙으로 덤벅이된 임도를 고생하며

열심히 달려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달렸기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오늘 라이딩 코스

유명산 입구 ~ 어비산 어비계곡 ~ 갈현분교터 ~ 숫고개 ~ 배넘이 고개 ~ 고랭지밭 ~ 유명산 활공장 ~ 유명산 정상  ( 원점회기 )

 

 

여울처럼 지나간 날들의 후회스런 시간들

끊임없이 삶의 고난과 마주치며 외로운 궤적을 밟고 온 세월,

뛰어넘어도 상관없을 지나간 공백의 시간,

삶에 진공이 생길 때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나태와 자폐뿐이다.

 

삶은 조여진 줄처럼 긴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경직되어 있기만 한다면 그 생 또한 쉽게 부서지기 쉽다. 

삶을 시행착오 없이 살기란 힘들다.

착오는 시간의 낭비를 가지고 오지만 어쩔도리가 없다.

미래를 살아보지 않는 한 수레바퀴 돌 듯

쉬지않고 진행되는 일상을 정지 시킬 방법은 부재하다.

후회하면서도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미답의 산을 처음 오르려는,

그래서 정상에는 무엇인가

기대할 만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산행과 동질성을 띤다.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미지의 산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나간 족적을 헤아려 보는 회상과 다를바 없다.

우리는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人生이다.

 

내 가슴에 존재하는 산 정상에 올라 하늘로 통하는 문의 빗장을 열수있을까? 

그래 사람은 각자대로 운명의 길을 살아갈 따름이다.

 

 

미답의 산을 처음 오르려는,

그래서 정상에는 무엇인가 기대할 만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산행.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미지의 산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나간 족적을 헤아려 보는 회상과 다를바 없다.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 기진한 삶 속에도 신비는 있다.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그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박경리, <산다는 것> 중에서 -

 

 

이것 또한 지나 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 - 렌터 윌슨 스미스 -

 

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떄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신하들은 밤새 모여 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만들어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 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활공장에서 ⓒ 2011 한국의산천

왼쪽부터 한국의산천/ 참교육/ 관동인/ 낭만자객/ 맑은샘/ 브라보/ 행복한도전/ 유관장/ 조부장 이상 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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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넘어  - 신현대

언제나 변함없는 푸른 산과 같이 내맘에 남아있는 꿈, 구름에 살아있어
그리워 불러볼 수 없는 그대의 이름 같이 내맘에 변함없는 없는 사랑 영원히 살아있네..
왜 난 사는 건지 무엇이 삶의 목적인지 왜 난 걷는건지 어디가 나의 쉴 곳인지

그리워 저 산을 바라봐 흘러가는 구름이 내맘에 남아있는 모습 눈물로 가려지고
올라도 오를수 없는 저 푸른 산과 하늘이 무어라 내게 말하는 지 나는 들리지 않네..

왜 난, 사는건지 무엇이 삶의 목적인지 왜 난, 걷는건지  어디가 나의 쉴 곳인지
그리워 저 산을 바라봐 흘러가는 구름이 내맘에 남아있는 모습 눈물로 가려지고
올라도 오를수 없는, 저 푸른 산과 하늘이 무어라 내게 말하는 지. 나는 들리지 않네.

 

▲ 조부장님 바로 뒤쪽으로 용문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2011 한국의산천

 

 

 

 

제가 좋아하는 작가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 관한 글을 옮겨 봅니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강물이 생사(生死)가 명멸(明滅)하는 시간 속을 흐르면서 낡은 시간의 흔적을 물 위에 남기지 않듯이,

자전거를 저어갈 때 25,000분의 1 지도 위에 머리카락처럼 표기된

지방도·우마차로·소로·임도·등산로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몸 밖으로 흘러 나간다.


흘러 오고 흘러 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생사가 명멸하는 현재의 몸이다.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현재의 몸 속에서 합쳐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가려는 몸과 가지 못하는 몸이 화해하는 저녁 무렵의 산 속 오르막길 위에서 자전거는 멈춘다.


그 나아감과 멈춤이 오직 한 몸의 일이어서,

자전거는 땅 위의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외롭고 새롭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純潔)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祝福)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구르는 바퀴 안에서, 바퀴를 굴리는 몸은

체인이 매개하는 구동축(驅動軸)을 따라서 길 위로 퍼져 나간다.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 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

 

 

길은 저무는 산맥의 어둠 속으로 풀려서 사라지고,

기진(氣盡)한 몸을 길 위에 누일 때, 몸은 억압 없고 적의 없는 순결한 몸이다.

그 몸이 세상에 갓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길 앞에서 곤히 잠든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오르막을 오를 때 기어를 낮추면 다리에 걸리는 힘은 잘게 쪼개져서 분산된다. 자전거는 힘을 집중시켜서 힘든 고개를 넘어가지 않고, 힘을 쪼개가면서 힘든 고개를 넘어간다.

집중된 힘을 폭발시켜 가면서 고개를 넘지 못하고 분산된 힘을 겨우겨우 잇대어가면서 고개를 넘는다.

  1단 기어는 고개의 가파름을 잘게 부수어 사람의 몸 속으로 밀어넣고,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의 몸이 그 쪼개진 힘들을 일련의 흐름으로 연결해서 길 위로 흘려 보낸다. 1단 기어의 힘은 어린애 팔목처럼 부드럽고 연약해서 바퀴를 굴리는 다리는 헛발질하는 것처럼 안쓰럽고, 동력은 풍문처럼 아득히 멀어져서 목마른 바퀴는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데, 가장 완강한 가파름을 가장 연약한 힘으로 쓰다듬어가며 자전거는 굽이굽이 산맥 속을 돌아서 마루턱에 닿는다.

  그러므로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를 때, 길이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올 뿐 아니라 기어의 톱니까지도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내 몸이 나의 기어인 것이다. 오르막에서, 땀에 젖은 등판과 터질 듯한 심장과 허파는 바퀴와 길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땅에 들러붙어서, 그것들은 함께 가거나, 함께 쓰러진다.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 기진한 삶 속에도 신비는 있다.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 김훈 -

 

 

하늘을 보면 하늘이 마음에 펼쳐지고
꽃을 보면 꽃이 내 안에서 피어난다.
바람을 안는 이 새가 되어 허공을 날고
구름은 품은 이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신다.

 

  그간 어떻게 살아왔나 이제는 정상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오를만큼 오르는거야. 지쳐 더이상 오르지 못하겠다면 돌아서며 그곳이 자기가 선택한 종착지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 삶 또한 그렇게 살아야해. 자신의 영혼이 잘 따라오나 뒤를 돌아보면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무엇이 있으랴만은 그래도 나에게는 언제나 모든것이 새롭다.

 

 

 

 

This too shall pass away
이것 역시 지나 가리라.... 

 

 

 

 

 

▲ 무더웠던 여름날 유명산 정상에서 관동인, 한국의산천, 이글님 3명 ⓒ 2011 한국의산천

 

▲ 정상에서 이과두주 한잔하기 ⓒ 2011 한국의산천

 

 

 

 

 

 

 

 

 

 

 

 

 

 

 

 

 

 

 

농다치 고개에 대해서 

 

경기도 양평군과 가평군 경계에 아름다운 청춘남녀의 사랑이 녹아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 있다. `농다치고개'라고 불리는 곳인데, 농다치고개는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 산189번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는 뻥 뚫린 국도(37호선) 덕분에 이고개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주변이 많이 변하여 농다치고개는 `전설따라 삼천리'가 되었지만, 50·60년대에는 지역주민들의 유일한 도로로서 경제활동과 학생들의 배움의 열기 가득한 통학길로 활용되었다. `농다치'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한 걸까? 조선 중기 때 양평군 신복리에 최씨 성을 가진 마을 향리가 고개 넘어 가평군 방일리에 사는 박씨에게 무남독녀 외동딸을 시집보내게 되었다.

 

 혼수로 딸이 태어날 때 심었던 오동나무를 베어 솜씨 좋은 목수에게 부탁하여 농을 제작해 농 속에 이불과 살림살이를 챙겨서 머슴인 돌쇠와 돌쇠 아버지의 지게에 지어 보냈다. 아씨를 짝사랑하며 숱한 밤을 가슴앓이 해오던 어린 머슴 돌쇠는 고개마루에 도착해서는 짝사랑 해온 여인에 대한 사랑의 표시인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연인의 해코지인지 지고 가던 오동나무 농을 도로가 비좁다는 핑계로 도로 옆 바위에 쿵쿵 부치며 눈물과 콧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운반하였다.

 

 뒤따라오던 돌쇠 아버지가 보다 못해 “얘야, 농 다친다! 농 다친다!”하고 주의를 준 것이 농다치고개라는 향토명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돌쇠의 사랑 표시는 눌언민행(訥言敏行, 말은 더디게 하고 실천은 민첩하게 하라) 교훈은 양평 서생들에게 크게 유행되었다고 한다. 

 

 

 

 

 

 

 

 불 밝은 열차의 창속을 바라보며 다시는 서울로 되돌아 갈 수없는 열패감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제 서울은 나를 감동 시킬 가슴도, 미련을 둘 땅도 부재하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산화하여 한줌의 재로 세상에 남겨지기를 원했다. 죽어 재가 되어버린 나는 밤이 오면, 바위와 숲속에 흩어진 혼백을 불러 일으켜세워 길을 밝혀주는 작은 등불이 되고 싶다.

 

산마루에서 헤어진 그 사람은 아직도 그곳에서 기약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남아 있을까?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되면 사람들은 원하던 원치않던 울타리를 갖게된다. 세월이 지나면서 울은 높아지고 두터워간다. 여자는 울타리 속에 영원히 남자를 가두려 하고 남자는 한사코 그곳을 뛰어 넘으려 한다. 가정에 대한 저버릴수없는 끈끈한 집착은 순수한 애정과 피할길 없는 의무가 혼합되어 남자의 목덜미를 휘어잡고 있는 셈이다.

 가정은 모든것을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지녔지만 또한 동시에 하고자 하는 어떤것도 단념하게 하는 제약성도 갖는다. 길들여 지지 않는 자는 부단히 담을 부수려 든다. 그리하여 거침없이 광야로 내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자유로운것은 되돌아 가도 자기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때 그때만이 참다운 자유인의 반열에 당당히 들수가 있다. 그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神의 경지다. 어찌 내가 神의 경계를 넘나보며 마음을 비웠다고 가당찮은 언변을 늘어 놓을 수가 있었던가.

 

 

 

 

 

 

 

 

 

 

▲ 한여름 우리가 부부동반 야유회 했던 장소로 돌아와 자징거에 묻은 진흙을 닦았습니다 ⓒ 2011 한국의산천  

 

▼ 아래 사진은 올 여름 챌린지팀 부부동반 야유회 사진입니다 ⓒ 2011 한국의산천

 

▲ 워매~! 맛있는 포도주를 그냥 한번에? 유관장님 ~ ㅋㅋㅋ 그 옆에 웃고 있는 유관장님 옆지기 ⓒ 2011 한국의산천

  

 

그 계곡에 지금은 겨울이 왔더군요 ...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미지의 산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나간 족적을 헤아려 보는 회상과 다를바 없다. 우리는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人生이다.

내 가슴에 존재하는 산 정상에 올라 하늘로 통하는 문의 빗장을 열수있을까?  그래 사람은 각자대로 운명의 길을 살아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