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글판
글은 이 세상 사람들의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말은 인간의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도 좋은 글은 마음에 담아두고 싶어서
광화문 교보빌딩 글판 모음 [정리 :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
업무차 종로로 나가기 위해 광화문 앞을 지날때면 교보빌딩에 붙은 대형 표어(?)를 만나게 된다. 짧은 글귀지만 아름답고 가슴속에 쏙 들어오는 그 글들을 모아봤습니다.
광화문글판이란…
올해 20년을 맞은 ‘광화문글판’은 1991년 1월 교보생명 신용호 창립회장 제안으로 광화문 사거리에 처음 얼굴을 내민 이래,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초기의 문안은 구호, 계몽적 성격의 직설적인 메시지가 주로 담긴 표어와 격언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1997년 말 우리나라에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고통과 절망을 겪는 이들이 많아지자 신용호 창립회장은 “기업 홍보는 생각하지 말고,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는 글판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했고, 이듬해 봄 고은 시인의 ‘낯선 곳’에서 따온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라는 문안이 걸리면서 드디어 광화문글판에 시심(詩心)이 녹아들었다.
광화문글판은 이후 시의적절한 문구로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여왔다. IMF 외환위기로 인력구조조정이 횡횡하던 지난 1998년 겨울, 그 당시 걸린 ‘모여서 숲이 된다/ 나무 하나하나 죽이지 않고 숲이 된다/ 그 숲의 시절로 우리는 간다’는 고은 시인의 시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줬다. 2000년 봄에는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라는 문안으로 밝은 미래에 대한 도전과 희망을 전파하기도 했다.
1년에 4번, 계절의 변화에 발맞춰 새 옷을 입는 광화문글판의 문구는 문학인, 교수,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를 통해 선정된다. 교보생명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민들의 공모작과 선정위원들의 추천작을 놓고 여러 차례의 투표와 토론을 거쳐 최종 선정한다.
지금까지 공자, 헤르만 헤세, 알프레드 테니슨, 파블로 네루다, 서정주, 고은, 도종환, 김용택 등 동서고금의 현인과 시인 40여명의 작품이 광화문 글판으로 재탄생 했다.
광화문글판은 2007년 12월 사람이 아닌데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2008년 3월에는 한글문화연대가 주최하는 ‘우리말 사랑꾼’에 선정됐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광화문글판 블로그를 만들어 광화문글판을 아끼는 시민들과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현재 광화문글판은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외에도 강남 교보타워, 천안 연수원(계성원), 대전, 부산, 광주, 대구, 제주 등 7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 2010년 10월 8일 금요일 교보빌딩앞을 지나며 촬영 ⓒ 2011 한국의산천
▲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프라임경제] 20여년간 시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온 교보생명의 ‘광화문글판’을 내 손안에서 볼 수 있게 됐다.
교보생명은 광화문글판을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스마트폰 앱을 개발했다고 28일 밝혔다. 광화문글판의 아날로그적 컨텐츠를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공간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
교보생명은 28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광화문글판' 스마트폰 앱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광화문글판' 스마트폰 앱 화면 캡쳐.
이 앱에는 그 동안 내걸렸던 광화문글판 30여개 글귀와 이미지가 담겨 있다. 사랑, 용기, 위로, 희망을 주제로 구분돼 물이 흐르는 듯한 슬라이드 효과로 표현된다.
또 관심 있는 글판 문안을 사진으로 저장하거나 ‘친구에게 보내기’를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문자나 이메일로 전송해 줄 수도 있다. 글판에 실린 문안뿐만 아니라 원문까지 감상할 수 있어 감동은 배가 된다.
이번 앱은 시민들 요구에 의해 개발됐다. ‘광화문글판 블로그’에 방문한 수많은 시민들이 스마트 폰 어플리케이션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한 것.
한 네티즌은 “글이 너무 좋아 친구와 지인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요”라며 앱 개발을 제안했다. 또 한 네티즌은 “광화문글판은 계절이 바뀌면 다시 볼 수 없잖아요. 글판의 향기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아이튠즈나 아이폰의 앱 스토어에 접속해 ‘광화문글판’을 입력하면 어플리케이션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다만 이번 광화문글판 앱은 아이폰에서만 가능하다.
최첨단의 상징인 스마트폰과 아날로그적 상징인 광화문글판이 조화를 이뤄 글판의 감성적인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광화문글판의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가 모바일 환경에서도 이어져 더 많은 시민들에게 마음의 양식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얼음새꽃
- 곽효환
아직 잔설 그득한 겨울 골짜기
다시금 삭풍 불고 나무들 울다
꽁꽁 얼었던 샛강도 누군가 그리워
바닥부터 조금씩 물길을 열어 흐르고
눈과 얼음의 틈새를 뚫고
가장 먼저 밀어 올리는 생명의 경이
차디찬 계절의 끝을 온몸으로 지탱하는 가녀린 새순
마침내 노오란 꽃망울 머금어 터뜨리는
겨울 샛강, 절벽, 골짜기 바위틈의
들꽃, 들꽃들
저만치서 홀로 환하게 빛나는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
아니 너다
* 곽효환 시집, 지도에 없는 집, 2010, 문학과지성사.
아직 도래하지 않은 더 좋은 날을 기다리며
여행이란 빈집을 드나드는 바람처럼 그렇게 떠나는 것이다.
길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마음의 길을 마음 밖으로 밀어내어 세상의 길과 맞닿게 해서 마음과 세상이 한줄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삶의 길은 열린다.
최고의 삶
- 서은영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고
당신을 위한 사랑의 행위가 되며
그 행위 자체
아니, 사랑의 행위 그 이상의 것이 됩니다.
우리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삶을 억제하라고
서로를 얽매어서는 안 됩니다.
삶을 억제함은
우리 사랑의 종말인 까닭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관계가 창의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갈등 속에서
일치하고자 주력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최고의 삶이며
최고의 삶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 김용택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지는 잎을 보면서
- 박재삼
초봄에 눈을 떴다가
한여름 뙤약볕에 숨이 차도록
빛나는 기쁨으로 헐떡이던 것이
어느새 황금빛 눈물이 되어
발을 적시누나.
나뭇잎은 흙으로 돌아갈 때에야
더욱 경건하고 부끄러워하고
사람들은 적막한 바람속에 서서야
비로소 아름답고 슬픈 것인가.
천지가 막막하고
미처 부를 사람이 없음이여!
이제 저 나뭇잎을
우리는 손짓하며 바라볼 수가 없다.
그저 숙이는 목고갯짓으로
목숨은 한풀 꺾여야 한다.
아, 묵은 노래가 살아나야 한다.
- 정호승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낯선 곳
- 고 은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 주먹 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 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언제나 새로운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살다보면 또 하루 하루의 반복이 계속되고 천양희 시인의 '어떤 일생' 처럼 오르다 말고 걸어가다 마는 삶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한국의산천-
Tip 고운 詩하나
어떤 일생
- 천양희
부판(蝜蝂)이라는 벌레가 있다는데 이 벌레는 짐을 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데 무엇이든 등에 지려고 한다는데 무거운
짐 때문에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 짐을 내려주면 다시 일어나
또 다른 짐을 진다는데 짐지고 높이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는데
평생 짐만 지고 올라간다는데 올라가다 떨어져 죽는다는데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이 있는데 이 병은 시베리아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라는데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곡괭이를 팽개치고 지평선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간다는데 걸어가다 어느 순간 걸음을
뚝, 멈춘다는데 걸음을 멈춘 순간 밭고랑에 쓰러져 죽는다는데
오르다 말고 걸어가다 마는 어떤 일생
시집 '너무 많은 입'(창작과 비평, 2005)中에서
<시작노트>
사람의 일생에는 누구에게나 동터 오르는 여명기가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일생도 있다
부판처럼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높이 올라가려고 애쓰다 일생을 마치는 사람들.
인생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하지만
삶이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어떤 일생」을 쓰게 했다
◀ 천양희[千良姬, 1942.1.21~]
1942년 1월 21일 부산 출생. 경남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에 「화음」, 「아침」이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등단한 이후 『기독교시단』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고독과 허무를 잔잔한 음성으로 노래한 시편들을 주로 발표하였다
초기작 「여자」에서는 그리워하나 그리워할 대상조차 생각나지 않는 절대적인 그리움을 노래하였다.
여성적인 따뜻한 문체가 돋보인다.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1983), 『사람 그리운 도시』(1988), 『마음의 수수밭』(1994),
『낙타여 낙타여』(1997), 『오래된 골목』(1998), 『너무 많은 입』(2005) 등을 발간하였다.
학력사항- 경남여자고등학교 - 이화여자대학교 - 국어국문학 학사
경력사항- 기독교 시단 동인 활동 [출전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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