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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덕산기 계곡

by 한국의산천 2011. 7. 1.

이렇게 장맛비가 내리는 날이면 몇해전 다녀왔던 정선에 위치한 은둔의 덕산기 계곡이 떠오른다.

다시금 가고픈 그곳이다.

 

[마지막 오지를 찾아서] 정선 덕산기마을 [글·신준범 기자. 사진·염동우 기자]


스물다섯 번 물을 건너야 닿는 그곳, 사람향 진한 오지 덕산기 

 

“어여 한 잔 받아.
한 잔 받으면 얘기해 줄 테니 일단 받아.”
난감했다. 나름 오지라고 추천받아 간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가 뻥 뚫려 차가 다니는 곳이 되었다. 차가 다닌다고 해서 무조건 오지가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오지라 하기엔 너무 불편함이 없었다. 폐교는 깔끔한 수련원으로 바뀌었고 앞에는 100여 대의 대여용 자전거와 농촌체험 트랙터들이 파스텔톤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그저 시골이었다.

 

만나기로 한 이장은 읍내에서 한 잔 하는 중이었다. 마을 사정을 묻기 위해 들어간 집에서 붙들려 몇 잔 하고서야 대강 돌아가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결론은 오지가 아니란 것. 20년 전에 오지로 불렸던 곳이지만 지금은 농촌진흥사업을 벌이고, 외지에서 귀농한 사람들로 채워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급히 목적지를 바꿔 마지막 오지라고 소문난 덕산기를 찾기로 했다.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덕우리 덕산기계곡. TV 오락프로그램 ‘1박2일’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졌다. 정선읍내에서 10km가 안 될 정도로 가깝지만 TV에 소개되기 전에는 정선 사람들도 모를 정도로 숨겨진 오지였다. 여전히 오지란 말이 통하는 건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없어서다.

 

 

이미 어두워졌지만 개의치 않고 덕산기로 간다. 국도에서 ‘덕산기계곡’ 간판을 따라 2km를 들어가자 계곡으로 이어진 길이 끝난다. 순도 100%의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도시의 불빛에 익숙한 이에게 공포감을 줄 정도로 순수한 어둠 속을 물소리가 가득 메웠다. 덕산기에선 물살을 여러 번 건너야 한다. 며칠 전 봄비가 왔었다. 4월 말까지 남아 있던 지독한 잔설이 빗물에 녹아 내려오고 있다. 발을 담그면 뼈가 발가락부터 얼어붙어 올라왔다. 결국 원초적인 자연의 공세에 후퇴한다.

 

다음날 아침 덕산기로 간다. 골 입구의 콘크리트길은 평범한 시골풍경이다. 1.3km를 들어가자 1박2일을 촬영했다는 간판이 있는 민박집이다. 일반인들은 여기까지 왔다 간다. 그러나 덕산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콘크리트길이 나있는 곳도 계곡을 지나는 곳은 다리 형태가 아니라 길 위로 물이 지나도록 되어 있다. 폭우에는 차도 사람도 고립된다. 길은 산으로 이어지지만 덕산기로 가려면 여기 차를 세우고 골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 덕산기는 길이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차가 가면 길이고 걸어가도 길이다. 걸어가면 계곡을 25번 건너야 하고 차로 가면 오프로드 차량도 자주 고장 나는 불편한 길이다.


오지에서 만난,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사람들

 

길은 없다. 협곡이라 계곡이 길이다. 밤과는 다른 분위기다. 흰색과 회색 자갈이 골의 여백을 메우고, 미녀의 목선을 완성하는 보석의 빛깔을 가진 물살이 흐른다. 그저 흐르지 않고 유치원 아이들마냥 명랑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빛이 풍부하게 드는 골이라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다. 걸어들어 갈수록 길이 없어 더 좋은 골임을 느낀다. 골짜기로 드는 것은 사람인데 열리기는 사람의 마음이 열린다. 낯선 곳에 온 긴장이나 두려움, 도시의 스트레스와 닫힌 마음이 걸을수록 스르르 열린다.

 

4월 말인데 아직 뼈만 남은 가지들이 냉랭히 서있다. 봄볕이 와서 아무리 애교를 부려도 무뚝뚝하게 귀를 닫고 있다. 그러나 안다. 순진한 처자의 예상치 못한 도발처럼 터뜨린 핑크빛 진달래를 보면 안다. 외롭게 꽃망울을 틔운 저 여린 것들이 겨울을 무너뜨릴 선전포고임을 산은 알고 있다. 

 

 

▲ 덕산기 입구의 최종숙 노인. 일흔일곱의 나이지만 청년처럼 일하고 소년처럼 웃는다.


덕산기마을이지만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반적인 마을 풍경은 없다. 꼬불꼬불 휘어진 계곡을 따라 비탈 사면에 집이 띄엄띄엄 있다. 비탈에서 일을 하고 있는 어르신에게 인사를 한다. 일흔일곱 연세의 최종숙씨다. 정선이 고향이고 서른에 덕산기계곡에 들어와 47년을 여기서 살았다.

 

“돈 떨어지면 이런 데 와서 사는 거예요. 열일곱 살에 내가 번 돈으로 정선시내에 집을 지었으니까. 돈을 너무 일찍 알아 실패했어. 어릴 때부터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돈에 얽매였어.”

 

덕산기마을의 터줏대감인 최 노인은 한때 이곳에 30가구가 넘게 살았다고 한다. 1979년에 수해가 나서 그때부터 줄어들기 시작해서 1990년대 초에는 세 가구까지 줄어들었다가 근래에 다시 늘기 시작해 11가구가 산다고 한다. 주로 콩, 옥수수, 고추 농사를 짓고 산다. 그는 괜찮다는데도 꼭 집 안으로 들어오란다. 커피믹스 한 박스가 벽에 걸려 있는 단출한 살림살이다. 금방 내주는 커피가 따뜻하다. 할머니는 몸이 아파 자식 집에 있고 할아버지 혼자 산다. 일하던 사람이 일 안 하면 병난다는 게 그의 신조다. 어떻게 알고 오는지 여름엔 피서객이 찾아온단다. 여름에 100명이 와도 막상 도움 되는 건 없다. 그중에 2~3명 인정 있는 사람이 있어 좋다고 한다.
“인정 준다는 게 별거 없어요. 대화하고 음료  건네고 그게 인정이지.”

 

▲ 덕산기에서 나고 자란 전찬범씨와 그의 부인 이혜영씨.


갈 길이 남아 있어 할아버지의 긴 얘기를 중간에 마무리 짓고 나선다.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 있다. 너무 짧은 인연인데 뭉클한 것이 제법 걸어도 속에 남아 있다.
드문드문 집이 있다. 통나무집, 판잣집, 슬레이트집 다양하다. 간간이 집을 지키는 개들이 낯선 사람을 경계하느라 부지런히 짖어대는 통에 계곡이 시끄럽다. 걸어온 지 4.6km 지점에 오지와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신식 집이 있다. 마침 아저씨가 일을 하고 있다. 얘기를 청하자 자신은 할 말이 없다며 다른 집을 추천한다. 그래도 한마디만 여쭙고 가겠다 하자 집 안으로 들어오라 하여 차도 내주고 밥도 내준다. 전찬범(52)·이혜영(51)씨 부부다.

 

전씨는 덕산기가 고향이다. 어린 시절을 여기서 보내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정선읍내에 나가 살다 몇 년 전에 다시 들어와 집을 새로 지었다. 그의 마을 얘기가 시작된다. 원래 큰 산이 많은 터라 해서 덕산 터라 부르던 것이 바뀌어 덕산기(德山基)가 됐다. 계곡이지만 물이 귀한 곳이라 대부분의 날들은 물이 말라 있다. 그래서 집이 있는 곳도 대부분 물이 고여 있는 곳의 옆이다. 석회암 지대고 자갈이 많아 물이 잘 샌다고 한다. 그러나 비가 오면 고립되기 때문에 이곳에 살면 일기예보에 민감해진다고 한다.

 

그가 어릴 때는 18가구 정도 살았는데 가끔씩 ‘재무시 육발이(GMC)’라 불리던 차에 식량을 싣고 들어왔다고 한다. 제일 가까이 근접한 도로도 2년 전에야 생겼다. 요즘은 어떻게 알고 오는지 트레커들과 오프로드 동호회 사람들이 많이 온단다. 계곡을 따라가면 화엄면 북동리로 이어지는데, 북동분교에서 출발해 덕산기계곡까지 15km 계곡 트레킹하는 이들이 많다. 바퀴를 구조변경해서 일부러 물속을 달리다 보니 오일 같은 게 새서 안 좋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계곡에서 야영하는 이들도 간간이 있는데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가는 이들이 있어 주민들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한다.

 

▲ 오지에서 정선애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홍성국·서선화씨 부부. 밖에서 보면 허름한 시골집이지만 안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불편함이 영업전략인 ‘정선애인’

 

부부의 후한 점심을 얻어먹고 마지막 집을 향해 간다. 물이 세차게 흐르는 협곡을 돌아 넘자 예상치 못한 너른 밭이다. 골이 크게 도는 툭 튀어나온 땅 안쪽에 시골집이 있다. 덕산기마을에서 가장 젊은 홍성국(43)·서선화(42) 부부다. 3년 전에 들어온 부부는 ‘정선애인’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덕산기계곡에서도 제일 깊숙한 곳에 살면서 엉뚱하게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건 오지체험이 미래산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어 이것저것 일을 하는데 나는 왜 돈을 못 벌까 고민했어요. 결론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이었어요. 내가 적응하면 변하고 적응하면 또 변하고, 시대가 변하는 걸 내가 너무 늦게 알아차리고 있었어요. 그걸 따라잡을 수 없으니 차라리 옛 것을 붙잡고 있는 것이 더 희소성의 가치가 있겠다 결론을 내리고 이곳 오지를 미래산업으로 생각하고 키워가고 있어요.”

 

아내인 서선화씨도 동의해 이들의 특이한 오지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인간극장 같은 TV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지만 “도시를 떠나 유유자적하게 사는 모습을 원할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한다. 서선화씨는 서울시연맹 산악구조대 출신이다. 2001년 공로패를 받았을 정도로 등반에 열심이었으며, 탈레이사가르 북벽 원정에 참가했고 산악스키대회에서 3위에 올랐던 산악인이다. 절친인 여성 산악인 채미선씨와 토왕폭을 완등하기도 했다. 마침 기자들이 찾았을 때에도 채미선씨와 김동애씨가 그녀를 보기 위해 와 있었다.

 

▲ 덕산기로 이어진 갈림길의 안내판.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 갈림길 앞 집 사람이 만들었다.

“등반하러 산에 다닐 때는 몰랐던 걸 많이 알았어요. 산 속에 살면 계절이 바뀌는 미세한 산의 빛깔을 다 알 수 있어요. 아무리 등반을 잘하는 산악인이라 해도 막상 산에 살면 초보자가 돼버려요. 난방을 위해 나무를 줍고 불을 때는 일도 쉽지 않아요."

 

보통 오지에 산다고 하면 귀농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귀농하지 않았다. 도시에 익숙한 사람이 농사로 먹고 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귀촌은 좋은데 귀농은 싫어요. 요즘 농사가 사실 로또예요. 땅이 넓어서 농사 양으로 밀어붙이지 않는 이상, 기후에 따른 수확량과 값의 변화가 너무 심해요. 하늘에 기대어 폭락과 폭등 속에서 울고 웃어야 하는 피말리는 일이에요. 귀농은 돌아가는 게 아니고 전쟁하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부부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여름에는 홍 반장이 래프팅을 해서 돈을 번다. 홍성국씨는 덕산기에서 홍 반장으로 통한다. 수입이 좋은 건 아니지만 덜 버는 만큼 덜 쓰면 된다는 게 부부의 생각이다. 그러나 손님이 너무 많은 것 또한 원치 않는다. 일반인들 아무나 와서 즐기기보다는 “오지의 가치를 알고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만 왔으면 좋겠다”는 게 이들의 욕심이다.

 

▲ 건천이라 말라 있는 날이 많지만 비가 온 뒤엔 차도 사람도 고립된다.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예약을 받는데, 예약을 위해선 조건이 있다.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이다. 민박이라 하지 않고 게스트하우스를 고집하는 것도 단순히 방을 빌려주는 개념이 아니라 오지에서 조용히 쉬다 가는 곳이 되길 원해서다. 그래서 여러 명 와서 놀다가는 이들보다는 솔로 여행객을 더 반기고 관계 맺음을 더 중요시 여긴다. ‘놀러 오지 말고 쉬러 오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요금은 1만 원만 받는다. “여기까지 오는 것만 해도 갸륵해서”라고 한다. 손님을 실어 나르기 위해 갤로퍼를 오프로드에 맞도록 개조했는데, 대부분의 돈이 차를 수리하는 데 든다.

 

사실 “손님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잊을 만하면 한 팀씩 오는데, 그 사람들이 반갑다. 그림 그리는 사람, 글 쓰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의사,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낙이 이들의 즐거움이다. “불편함이 영업전략”이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특한 게스트하우스가 덕산기계곡에 있다.

 

마지막 집에서 되돌아 나와 계곡을 떠난다. 다시 25번 물을 건너 덕산기를 떠나간다. 사람들이 띄엄띄엄 사는 덕산기가 다닥다닥 붙어사는 서울보다 따뜻하게 느껴진다.

 

▲ 덕산기의 협곡을 지나는 서선화, 김동애, 채미선.

INFORMATION (오지마을에 가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홍성국씨의 게스트하우스인 ‘정선애인에 예약하는 것이다. 고속버스로 정선에 도착하면 홍성국씨가 마중을 나온다. 숙박비는 개인당 1만 원, 읍내에서 게스트하우스까지 태워주는 픽업비는 팀당 1만 원이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영동고속도로 진부 나들목이나 중앙고속도로 제천 나들목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새말 나들목에서 올 경우 거리는 짧지만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야 하므로 시간이 더 걸린다. 제천에서 영월과 정선으로 이어진 38번 국도가 고속도로 수준으로 잘 나있어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차체를 높인 4륜구동 오프로드 차량이 아니면 자동차 수리비의 추억만 남는 곳이므로 차는 덕산기계곡 입구에 세워 두고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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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07년에 답사했던 덕산기 사진입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은둔의 계곡
정선 덕산기 계곡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나/ 날 버리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산 깊은 정선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는 덕산기. 그 깊은 계곡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애잔한 정선아리랑 노랫가락이 들려올 듯한데….
 
정선 고양산(1,151m) 남쪽 기슭에서 발원해 동대천에 합류하는 덕산기 계곡 안에는 도사곡 덕산기 하북동 같은 오지마을이 깃들어 있다. 그중 300여 년 전부터 진주 강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덕산기마을은 계곡을 끼고 있는 은둔의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깊은 계곡에서 불을 놓아 화전을 일궜고, 거기에 옥수수나 감자, 메밀 같은 곡식을 심었다.
 
바깥세상과 거의 단절한 채 대대로 살아오던 이들도 산업화 열풍이 불던 1970년대 말부터 하나둘 짐을 꾸려 대처로 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정선 읍내로, 어떤 이는 영월로, 어떤 이는 서울로…. 그렇게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 이곳엔 다 쓰러져가는 민가 한두 채만 남아 있다.

 

 

오지마을의 정취 느낄 수 있는 소박한 계곡길
 
덕산기는 계곡이라 해도 물이 항상 철철 넘치지는 않는다. 여름 장마철이나 폭우가 내린 다음엔 수량이 많지만, 건기 때는 적다. 석회암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류천(伏流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완전한 건천이 아니라 맑은 물이 언제나 졸졸졸 흐르고 중간중간 제법 깊은 곳도 있다. 이런 곳엔 피라미 같은 물고기나 다슬기도 살고 있다.
 
덕산기 계곡은 빼어난 절경은 아니지만 인공의 때가 거의 묻지 않은 정선 옛 오지 마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계곡을 따라 솟구쳐 있는 붉은 석회암 뼝대(벼랑을 일컫는 강원도 사투리) 아래를 걷다보면 이 깊은 곳까지 들어와 살 수밖에 없었던 산골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이 가슴에 와 닿는다.
 
따라서 덕산기 계곡은 무엇보다 걷는 데 참맛이 있다. 코스는 정선읍 덕우리부터 동면 북동리까지 6km 정도 된다. 비포장 길이 때로는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때로는 계류를 따라 이어져 있으나 거의 사용하지 않은 탓에 아주 거칠다. 일반 승용차는 통행이 불가능하다.

 

 
덕산기 계곡 트레킹은 길이 얼어붙어 접근이 불편한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봄 여름 가을 언제나 괜찮다. 봄도 늦게 찾아오는 편이라 4월 하순 무렵에야 붉은 뼝대 주변은 초록의 싹이 돋고, 산벚나무며, 돌배나무가 꽃을 피워낸다. 이 무렵이 되면 계곡 길가엔 나물도 많이 돋아난다. 달래, 냉이, 씀바귀, 취나물, 돌미나리에 잘만 찾으면 더덕까지…. 먹을거리가 널려 있다. 오염 안 된 깊은 산골에서 자란 것이니 걱정은 붙들어 매도 좋다. 라면을 끓일 때 양념으로 넣거나 준비해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그야말로 왕후장상 밥상이 부럽지 않은 별미가 된다.
 
여름 덕산기도 즐거움이 많다. 우선 해발 고도가 대략 400m 정도니 더울 틈이 없다. 골바람은 언제나 서늘하다. 또 계류의 수심이 깊지 않으니 아이들과 같이 탁족하며 노닐기도 좋다. 만약 야영을 계획했다면 야영지는 계곡 물가를 피하고 길 위쪽 언덕으로 올라가서 잡는 게 현명하다. 물론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가 나오면 계곡을 벗어나야 한다.
 
가을은 단풍과 야생화가 일품이다.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든 뼝대를 돌아가면 어디에선가 정선아리랑 노랫가락이 들려올 듯하니, 오지마을의 옛 분위기를 느끼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또 쑥부쟁이, 산국, 구절초 등 온갖 가을 야생화가 계곡 따라 피어나니 무엇을 더 바랄까.

 

흔한 이정표도 없는 오지 덕산기계곡
 
덕산기 계곡은 진입로에 흔한 이정표도 전혀 없으니 주의 깊게 접근해야 한다. 우선 정선 읍내에서 정선교를 건너 59번 국도를 타고 태백 영월 방면으로 6km 정도 달리면 왼쪽으로 월통교가 내려다보인다. 좌회전해 월통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약 2km 가면 삼거리 갈림길. 여기서 오른쪽 길을 따르면 여탄마을회관을 지나 1km만에 덕산1교를 만난다. 여기서부터는 최근에 포장한 아스팔트길이다. 약 500~600m 간격으로 놓인 덕산2교와 덕산3교를 연달아 건너고, 다시 200~300m 더 가면 아스팔트 포장길이 끝나면서 드디어 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차는 이곳에 주차를 해야 한다.
 
계곡 초입에서 1km 정도 들어간 지점의 도사곡 언덕엔 사람이 사는 민가 한 채가 외롭다. 덕산기 계곡 전체에 있는 몇 채 안 되는 민가들은 모두 이렇듯 계곡에서 벗어난 산비탈에 위치했다. 계곡이 좁은 탓에 폭우가 내리면 갑자기 수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게 바로 ‘나가라 폭포’다. 이는 덕산기 민가 아래쪽 벼랑에 있는 폭포인데,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만큼 멋지다는 뜻이 아니라, 이곳에 폭포수가 흐르면 덕산기 계곡에서 빨리 나가라는 뜻의 ‘나가라!’다. 보통 때는 말라 있지만, 장마철이나 큰 비가 내리면 이곳에 폭포가 형성된다. 이때는 계곡에 갑작스럽게 물이 불어나 아주 위험하다. 때문에 계곡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차단돼 고립되는 상황을 경고하기 위해 주민들이 지은 이름이라 한다. 재치 있는 작명이 아닐 수 없다.
 

 

도사곡 민가를 지나 계곡길을 두어 번 굽이돌며 1k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폐가 두어 채가 보인다. 봄이면 폐가 주변에 산괴불주머니꽃이 산골 아이들의 웃음처럼 피어나지만 허물어진 바람벽은 이곳에 살던 화전민의 뒷모습처럼 쓸쓸하다.
 
이후 계곡은 점점 깊어진다. 폐가에서 계곡 여기서 700m 정도 더 가면 덕산기 마을. 오른쪽 언덕에 민가 두어 채가 띄엄띄엄 떨어져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덕산기 계곡 트레킹 코스 총 6km 구간 중 절반 지점에 해당한다. 일행 중에 아이들이 있다면 이 덕산기 민가 주변에서 점심이나 간식을 먹은 후 되돌아가는 게 좋다. 이곳까지 걷는 시간만 1시간30분 정도 걸리니, 쉬는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왕복 4시간은 잡아야 한다.
 
만약 걷는 데 자신이 있거나 지원 차량이 있다면 계곡 끝까지 걸어보자. 덕산기 초입부터 덕산기 트레킹의 끝 지점인 동면 북동리 하북동 마을까지 걷는 데만 총 3시간 정도 걸린다. 식사도 하며 여유롭게 걷는다면 4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따라서 덕산기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갈 때는 총 7~8시간은 잡고 계획을 짜야 한다. 점심은 덕산기 계곡 어디서든지 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버너와 코펠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계곡물도 깨끗해 식수로 이용할 수 있다.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오자.

 

 

 

 

 

 

 

 

한편, 매월 끝자리가 2와 7로 끝나는 2, 7, 12, 17, 22, 27일엔 정선 5일장이 열린다. 본격적으로 산나물이 나오는 4월 하순부터는 온 장터엔 나물 향내로 진동을 한다. 장날에 맞춰 장터에서는 정선아리랑 노래 공연이, 정선군청 옆 정선문화예술회관 3층에서는 오후 4시30분부터 5시20분까지 정선아리랑 창극공연이 무료로 펼쳐진다.

 


◆ 여행정보
자가운전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 59번 국도(정선 방면)→ 나전삼거리(우회전)→ 42번 국도→ 정선→ 59번 국도(영월 태백 방면)→ 정선교→ 6km→ 좌회전→ 월통교 건너자마자 우회전 2km 삼거리 우회전→ 3km덕산기 초입<정선 읍내에서 10여 분 소요>.

덕산기 계곡 전체 트레킹을 마치면 상류의 동면 북동리 하북동마을로 나오게 된다. 아쉽게도 하북동에서 정선 읍내로 직접 연결되는 대중교통편은 없다. 콜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정선까지 4만원 내외, 50분 소요. - 글 민병준 -

 

숙소로는 덕산기 입구에 위치한 물 맑은 민박집이 유명하며 가리왕산 입구에 위치한 수정헌 또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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