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관한 명상 [2011 · 6 · 26 · 일요일 · 날씨 흐리고 비 ·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아직 도래하지 않은 더 좋은 날을 기다리며
여행이란 빈집을 드나드는 바람처럼 그렇게 떠나는 것이다.
길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마음의 길을 마음 밖으로 밀어내어 세상의 길과 맞닿게 해서 마음과 세상이 한줄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삶의 길은 열린다.
길 물어보기
- 문 정 희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하지만
가는 길 좀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비어 있는 것이 알차다고 하지만
그런 말 하는 사람일수록 어쩐지 복잡했다
벗은 나무를 예찬하지 말라
풀잎 같은 이름 하나라도
더 달고 싶어 조바심하는
저 신록들을 보아라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
심지어 산자락 죽은 돌에다
허공을 새겨놓은 시인도 있다
묻노니 처음이란 고향 집 같은 것일까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나의 집은 어느 풀잎 속에 있는지
아니면 어느 돌 속에 있는지
갈수록 알 수 없는 일 늘어만 간다.
▲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2011 한국의산천
자전거를 타는 일이란 자유 그 자체이다. 여럿이 함께라도 좋고 혼자 달려도 좋다.
목적지를 정해서 달려도 좋고 목적지 없이 이곳 저곳 쏘아다니는것 또한 자전거 여행의 즐거움이다.
진정한 여행
- 나짐 히크메트 -
가장 훌륭한 詩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Hikmet, Nazim(1902.1.20~1963.6.3)
터키의 혁명적 서정시인. 극작가.
▲ 집사람 얼굴보기 미안해서 일요일 오전 내내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다가 자전거를 가지고 나왔다.ⓒ 2011 한국의산천
주말 지리산 정령치 라이딩은 폭우로 인하여 계획이 취소되고 친구들과 안양 삼성산 라이딩을 했다. 그러나 라이딩 후에 이어지는 뒤풀이...
라이딩은 일찍 끝났지만 모두 모여 1차 2차 하느라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집사람에게 정말 미안하다. 언제나처럼 늘 별 말이 없는 집사람이 안스럽게 느껴진다.
그저... 한마디 던지는 말... 몸 생각해서 조금 드세요...
주말이면 나는 잔차 끌고 집을 튀쳐나오는 나.
가족들에게 특히 집사람에게 미안하다.
그대
- 이연실 . 김영균
지친 듯 피곤한 듯 달려온 그대는 거울에 비추어진 내 모습 같아서
바람 부는 비탈에서 마주친 그대는 평온한 휴식을 줄 것만 같았지
그대 그대 그대가 아니면 땅도 하늘도 의미를 잃어 아하. 이젠 더 멀고 험한 길을 둘이서 가겠네.
한세월 분주함도 서글픈 소외도 그대를 생각하면 다 잊고 말았소.
작정도 없는 길을 헤매던 기억도 그대가 있으니 다 잊어지겠지
그대 그대 그대가 아니면 산도 바다도 의미를 잃어 아하. 이젠 꿈같은 고운 길을 둘이서 가겠네.
그대 그대 그대가 아니면 산도 바다도 의미를 잃어 아하. 이젠 꿈같은 고운 길을 둘이서 가겠네.
아름답고 어둠이 짙게 깔린 아늑한 숲 속 /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할 약속이 있노라. / 내가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길이 있다./ 내가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길이 있다.
길
- 천상병
길은 끝이 없구나
강에 닿을 때는
다리가 있고 나룻배가 있다.
그리고 항구의 바닷가에 이르면
여객선이 있어서 바다 위를 가게 한다.
길은 막힌 데가 없구나.
가로막는 벽도 없고
하늘만이 푸르고 벗이고
하늘만이 길을 인도한다.
그러니
길은 영원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백창우-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 갈 수는 없지
가문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 거야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 거야
길이 없다고,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 테니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걸.
처음 가는 길
- 도종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자는 빈 들녁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것도 없고 얻은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녁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울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가야할 곳은 어딘가. ⓒ 2011 한국의산천
누구든 떠나갈 때는
-류시화-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날이 흐린 날을 피해서 가자
봄이 아니라도
저 빛 눈부셔 하며 가자
누구든 떠나갈 때는
우리 함께 부르던 노래
우리 나누었던 말
강에 버리고 가자
그 말과 노래 세상을 적시도록
때로 용서하지 못하고
작별의 말조차 잊은 채로
우리는 떠나왔네
한번 떠나온 길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가자
지는 해 노을 속에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며 가자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없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 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 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 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나는 컵라면 하나 지도 나침판, 작은 카메라 챙긴 후 잔차를 타고 어디던지 떠날 수 있다.ⓒ 2011 한국의산천
성글어도 티끌 하나 빠뜨림 없는 저 하늘도 얼마나 많은 날개가 스쳐간 길일 것인가. 아득히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바다도 얼마나 많은 지느러미가 건너간 길일 것인가.
우리가 딛고 있는 한 줌의 흙 또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지나간 길일 것인가. 낯설고 두려운 곳으로 갈 때에 나보다 앞서 간 발자국들은 얼마나 든든한 위안인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지만 내게는 분명 처음인 이 길은 얼마나 큰 설렘인가. -[이 아침에 만나는 詩] 연재 마치면서 시인 반칠환 -
길
-신경림
길을 가다가
눈발치는 산길을 가다가
눈 속에 맺힌 새빨간 열매를 본다
잃어버린 옛 얘기를 듣는다
어릴 적 멀리 날아가버린
노래를 듣는다
길을 가다가
갈대 서걱이는
빈 가지에 앉아 우는 하얀 새를 본다
헤어진 옛 친구를 본다
친구와 함께
잊혀진 꿈을 찾는다
길을 가다가
산길을 가다가
산길 강길 들길을 가다가
내 손에 가득 들린 빨간 열매를 본다
내 가슴 속에서 퍼덕이는 하얀 새
그 날개 소리를 듣는다
그것들과 어울어진 내
노래 소리를 듣는다
길을 가다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 그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걸.
길
- 신 경 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 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 '우정'은 '일부러'의 방언.
작품 감상의 길라잡이
이 시는 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서 길의 온전한 의미를 밝히고 있다. 밖으로 난 길만 인식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길에 나섰다가 낭패를 겪는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길이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길의 진정한 가르침은 외부적 상황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길을 걸으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다. 즉, 안으로 난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기쁨을 느끼고 스스로 겸손함을 지니게 된다. 시인은 ‘사람이 길을 만든다.’라는 일반적 인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 김포평야 들녁 저 너머로 내 청춘이 고스란히 남겨진 북한산군이 보인다 ⓒ 2011 한국의산천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가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보면
보이리
길이
<당부 - 김규동>
▲ 오랫동안 산에 미치고 암벽 등반에 빠져서 한때는 나의 신앙이었고 종교였던 북한산. ⓒ2011 한국의산천
아직도 지나간 추억처럼 비가 내린다.
길
-윤동주
잃어 버렸읍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어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어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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