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한강. 한강은 흐른다 [2011 · 5 · 15 · 일요일 · 날씨 : 바람이 부는 하늘 맑은날 · 한국의산천]
▲ 한강은 하류로 내려 갈수록 더욱 자연스러운 풍경을 보여 줍니다 ⓒ 2011 한국의산천
강물에 마음이 홀린 사람이 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유(流)이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연(蓮)이다. 맹자에 나온다. 끝까지 가버린 사람들의 뒷소식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물을 따라간 사람들의 실종 사건은 영구 미제다. 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강은 상류와 하류 양쪽으로 인간을 유혹한다.
상류의 끝은 시원(始原)이과, 하류의 끝은 소멸이다. 물은 시원에서 소멸 사이를 잇대어가면서 흐른다. 하류의 소멸이 상류의 시원을 이끌어내서, 신생은 소멸 안에 있다. 그러니 흐르는 강가에서 유와 연은 흐르고 싶은 인간의 자기 분열일 뿐, 강 물속에는 다만 진행중인 흐름이 있을 뿐이다.
"흘러가는 것은 저러하구나"라고 공자는 강가에서 말했다. 흘러가는 것은 그러하다. 젊은 날에는 늘 새벽의 상류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이제는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류의 저녁 무렵이 궁금하다. 자전거는 하류로 간다. 하류의 끝까지 가겠다. 거기서 새로운 시원과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맹자의 책을 덮어두어도 좋은 것이다. -김훈-
▲ 아름다운 사람나무 ⓒ 2011 한국의산천
아이들아 ! 참 오랫만에 아름다운 사람나무를 보는구나. 그러나 높은 나무에는 절대로 올라가지 말아라... 나뭇가지가 보기보다 약하기에 위험하니까...
소학의 한귀절이 생각난다.
약고서유 불복동정 ( 若告西遊 不復東征) : 부모님께 서쪽에서 놀겠다고 말씀드렸다면 동쪽에서 어정쩡거리지 말고
자등고수 부모우지 ( 子登高樹 父母憂之) : 자식이 높은 나무에 오르면 부모는 반드시 근심한다
▲ 이 풍경을 보며 문득 초등학교 국어책에 나왔던 동화 '키다리 아저씨'가 떠올랐습니다 ⓒ 2011 한국의산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 안치환
강물같은 노래를 품고사는 사람은 알게되지 음 알게되지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깊을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 안은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지를 음~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되지 음 알게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되고 산이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것을
누가 뭐래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사람
누가 뭐래도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사랑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되지 음 알게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되고 산이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것을
누가 뭐래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사람
누가 뭐래도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사랑
누가 뭐래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사랑~
▲ 한강.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뻡이 없네... ⓒ 2011 한국의산천
▲ 한강 고수부지에 나올때 필수품 2가지는 ? 텐트와 자전거. ⓒ 2011 한국의산천
▲ 밤섬과 가까이 마주하는 절두산 순교성지 ⓒ 2011 한국의산천
잠두봉과 절두산 사적지
현재 절두산 순교 기념관이 위치해 있는 곳은 양화나루(楊花津) 윗쪽의 '잠두봉'이다. 그 이름은 마치 누에가 머리를 들고 있는 것 같다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용두봉(龍頭峰) 또는 들머리(加乙頭)라고도 불리었다. 이곳 양화나루는 용산 쪽 노들 나루에서 시작된 아름다운 풍경이 밤섬을 돌아 누에 머리처럼 우뚝 솟은 이곳 절벽에 와 닿고, 이어 삼개 곧 마포 나루를 향해 내려가던 곳으로, '버드나무가 꽃처럼 아름답게 늘어진 곳'이었다. 특히 '양화나루에서 밟는 겨울 눈'에 대한 시는 한도십영(漢都十詠)의 하나로 손꼽힐 만큼 많은 문인과 명사들이 이러한 시를 남겼다. 이곳 잠두봉 명승지와 양화나루는 1997년 11월 11일에 사적지 제 399호로 지정되었다.
이처럼 아름답던 이곳이 순교자들의 피로 얼룩지게 된 것은 병인박해 때문이었다. 그 해 벽두부터 베르뇌 주교와 선교사들, 교회의 지도층 신자들을 처형하기 시작한 흥선 대원군은 이른바 병인양요(丙寅洋擾) 직후 이곳 총융진(總戎陣)에 형장을 설치하고 신자들을 체포해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앞서 1866년 9월 26일(음력 8월 18일)에 로즈(Roze)가 이끄는 세 척의 프랑스 함대는 한강 입구를 거쳐 양화나루와 서강(西江)까지 올라갔다가 중국 체푸로 돌아갔으며, 10월에는 다시 일곱 척의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 갑곶진(甲串津)을 거쳐 강화읍을 점령하였다가 문수산성과 정족산성에서 조선군에게 패하여 중국으로 철수하였다.
두 차례의 병인양요가 프랑스 측의 실패로 끝나면서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더욱 가열되어 1867년과 1868년 초까지 도처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거나 순교하였다. 대원군은 전국에 명하여 천주교도들을 남김없이 색출해 내도록 하였으며, 11월 23일에는 성연순 등을 체포하여 강화도에서 교수형에 처하고, '천주교 신자는 먼저 처형한 뒤에 보고하라'는 선참후계(先斬後啓)의 영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함대가 양화나루까지 침입한 것은 천주교 때문이고, 조선의 강역이 서양 오랑캐들에 의해 더럽혀졌다.'는 구실 아래 '양화나루를 천주교 신자들의 피로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처음 이곳에서 순교한 신자들은 10월 22일에 효수형을 받은 이의송(프란치스코), 김이쁜 부부와 아들 이붕익, 10월 25일에 효수형을 받은 황해도 출신의 회장 박영래(요한) 등이었다. 그리고 이후로는 효수형뿐만 아니라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기도 하였으며, 또는 몽둥이로 쳐죽이는 장살로, 얼굴에 한지를 붙이고 물을 뿌려 숨이 막혀 죽게 하는 백지사(白紙死, 일명 도모지) 등으로 계속하여 순교자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교회 안의 전승에 따르면, 순교자들의 피는 잠두봉 바위를 물들이면서 한강에 흩뿌려졌다고 한다.
이 때부터 이곳은 양화나루나 잠두봉 등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려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불려진 이름이 절두산(切頭山),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얼룩진 탓에 애닯은 의미가 더 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966년 병인박해 1백주년을 기념해 그 옛날 수많은 순교자들이 목을 떨구었던 바로 우뚝 솟은 벼랑 그 자리에 순교 기념관이 선다. 무심히 흐르는 한강물 속에 애달픈 사연들은 기념관이 서고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머무르면서 오늘날에 다시 되살아난다.
밤섬은 여의도 개발에 재물이 되어 1968년 2월 10일에 폭파되어 그 때까지만 해도 단군이래 최대의 토목공사가 벌어진 곳이다. 밤섬을 헐어 윤중제를 세우는 공사를 '한강 정복 사업'이라고 불렀다.
밤섬에 사람이 거주한 역사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김정호는 대동지지에서 " 밤섬은 전체가 수십리의 흰 모래밭이다. 주민들은 매우 부유하고 번창하다"라고 기록했다. 그와 거의 동시대에 대사헌 김재찬(1746~1827)은 밤섬 삶의 풍경을 " 밭 가운데서도 조개를 캐고, 울타리 아래로 배가 닿는구나"라고 노래했다.
밤섬은 강물 속의 섬이다. 내륙이면서도 육지가 아니다. 물과 매우 가깝지만, 알맞게 떨어져 있다. 밤섬은 적당한 격리감으로 아늑하다. 이 거리가 삶을 윤택하고 풍속을 자유롭게 했던 모양이다. "명종실록"에는 '밤섬은 사람들은 홀아비나 과부가 생기면 따로 혼처를 구할 필요 없이 동거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배를 타고 강물을 건너 섬을 드나들 때 남녀가 서로 껴안는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밤섬이 폭파되자 이 아름다운 섬의 후손 4백여명은 섬을 지켜주던 수호신의 사당을 앞세우고 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했다. 섬은 새들의 마을이 되었다 .높은 곳은 모두 깎여나간 섬은 이제 홍수 때마다 물에 잠긴다. 상류에서 흘러내려 온 퇴적물들이 이 섬에 쌓여서 섬의 토양은 새로운 활기를 찾아간다. 새들의 땅은 비옥해져가고 있다. 사람이 떄려부순 섬을 흐르는 강물이 살려내고 있다. -김 훈 / 자전거 여행 中에서-
▲ 흐르는 강물처럼 빈들을 스치는 바람처럼 달립니다 ⓒ 2011 한국의산천
▲ 여의도를 지나면서 강폭은 넓어지고 성산대교를 지나면서 강은 비로서 자유로운 강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다. 족쇄에서 풀려난, 강물 파도가 출렁이는 모래 백사장이 있는 그런 강스러운...... ⓒ 2011 한국의산천
▲ 성산대교에서의 석양 노을 ⓒ 2011 한국의산천
상류에서 본 서울의 산은 멀고 우뚝하지만, 도심을 빠져나간 하류 쪽에서 바라본 서울의 산은 도시를 동서로 출렁거리며 길어진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강 건너의 산들은 점점 커진다. 산들은 커지면서 흐름을 다하는 벌판 끝 쪽으로 수그러진다.
사람의 시야 속에서 그 산들을 멀어질수록 커지고, 커질수록 순해진다. 그것은 한바탕의 완연 한 구조와 쳬계를 갖춘 산세다. 멀어져야 비로소 완연해지는 산이 사람에게로 다가온다. 그것은 움직이는 산이다. 움직이는 산이 사람에게로 다가와 사람의 마음속에서 새롭게 자리 잡는다. 그렇게 해서 산하는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생애의 일부가 된다.
▲ 서울의 태양은 한강에서 떠올라 한강으로 진다 ⓒ 2011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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