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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라이딩은 갈망되고 이어 준비된다.

by 한국의산천 2011. 5. 10.

라이딩은 갈망되고 이어 준비된다. [ 2011 · 5 · 10 · 화요일 부처님 오신날 · 날씨 하루종일 비 · 한국의산천]

비가 내리는 휴일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며 쉬고 서점에 잠시 다녀왔다. 그리고 이번 주 라이딩 준비 계획을 세웠다. 조금 먼곳으로의 여행.

 

오월은 나에게 속삭인다.

싱그러운 오월의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라고...

 

자전거를 타고 아름다운 한국의산천을 달린다.

오늘 또하나의 멋진 선을 그었다. 영월에서 와석리 김삿갓 묘를 지나서 백두대간 마구령(馬駒嶺, 820m)을 넘어 부석사를 거치고 소수서원까지 간다음 다시고치령(古峙嶺, 770m)을 넘어 다시 영월로 원점회기하는 코스.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과정은 달리는 것 만큼이나 즐거운 일이다.

   

- 꿈은 ★ 이루어진다 -    

 

▲ 휘준이를 데리고 서점까지 드라이브 ⓒ 2011 한국의산천

고모품에 앉아 좋아하는 휘준이 ...

 

 

 

자전거를 타고 두발로 느릿 느릿 저어서 미지의 길을 떠난다는 일은 분명 가슴 설레는 일이다.

오늘 비가 왔기에 라이딩은 하지 못하고 서점에 들러 책을 몇권 사고 다음 라이딩 계획을 세웠다.

오래 전 백두대간 종주를 할때 지났던 그 고개를 이번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로질러 넘어갈 계획이다.

 

원점회기 라이딩.

영월 청령포~장릉 ~ 고씨동굴~ 하동~ 와석리~ 김삿갓 묘 ~ 어은~ 남대리 ~ 마구령 ~ 부석사 ~ 단산 ~ 소수서원 ~ 단산 ~ 고치령 ~영월   

 

 

  강원도 영월 노루목 깊은 산속에는 김삿갓(김병연 1807~1863)의 옛집이 있다. 이집은 1972년까지 무너진 안채가 남아있었고 바깥채는 온전해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20세 무렵에 방랑길에 올랐다. 산천의 아름다움이 그를 떠돌게 한것이 아니라 인간사의 더러움이 그를 떠돌게 했다. 그의 조부 김익순은 선천부사였는데 홍경래에게 투항했다. 그는 '역적 김익순의 죄를 하늘에 사무치게 통탄하는 글'로 장원급제했다. 어렸을 때 멸족을 피해서 노루목에 피해서 자란 그는 조부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의 운명은 충과 효를 모두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김삿갓은 충도 아니고 효도 아닌 길을 찾아서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버린 시대의 벌판을 떠돌았다. 그리고 그는 그 길을 찾지 못한다. 입금강(入金剛)은 그가 금강산으로 들어 가면서 쓴 시다. 이 시는 무섭고도 단호한 세상 버림의 노래다.     

 

입금강(入金剛 : 금강산에 들며 · 김병연(金炳淵)

書爲白髮劍斜陽(서위백발검사양) : 글 읽어 백발이요, 칼 갈아야 해 지는 신세인데
天地無窮一恨長(천지무궁일한장) : 천지는 무궁하고, 평생 한은 길기도 하여라
痛飮長安紅十斗(통음장안홍십두) : 장안 붉은 술 열 말을 흠뻑 마시고
秋風簑笠入金剛(추풍사립입금강) : 가을바람에 삿갓 쓰고 금강산을 드노라.

 

소백산 너머 부석사 안양루에도 그의 시 한편이 걸려있다. 그는 백발이 다되어서 고향 가까운 부석사까지 왔지만 마구령 너머 고향 집에는 가지 않았다. 그는 전라도 동복(同福) 땅에서 한 행려병자의 모습으로 죽었다. 한평생 길로 떠돌던 그는 길바닥에서 죽음으로서 길 없는 세상에서의 생애를 완성했다. 그의 시신은 아들의 등에 업혀 마구령을 넘어서 살던 터로 돌아와 묻혔다. 여기도 그의 고향은 아니다. 노루목에 이르는 자전거 길은 한없이 멀어 보였다. -김훈 자전거 여행中 에서-

 

▲ 경북 남대리의 주막거리

부석사 뒤쪽으로 마구령을 따라서 소백산맥을 넘어가면 첫번째 마을이 남대리이다. 이 이정표 앞에서 경북, 강원, 충북 쪽으로 길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주막은 문을 닫았고 이 산을 넘어 우편물을 전하던 늙은 배달부는 세상을 떠났다. 

 

백두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태백산까지 흘러내린 백두대간은 소백산에서 꺾어진다. 대간은 마구령과 고치령을 거쳐 국망봉과 소백산 비로봉을 지나 죽령을 넘고 대야산, 속리산으로 뻗어간다.

 

마구령(馬駒嶺, 820m)은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임곡리를 남북으로 이어주는 고개다.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길이라고 하여 마구령이라 불렀다고 한다.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장사를 다녔던 고개지만 이곳에도 단종과 금성대군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남겨져 있다.

  마구령 북쪽의 남대리는 '정감록'에서 이르는 십승지 가운데 한 곳이자, 남사고가 양백지간에 있다던 숨겨진 명당에 자리한 마을이다. 첩첩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펑퍼짐한 너른 터가 있어 순흥으로 유배 왔던 금성대군이 이곳에서 단종 복위를 위하여 병사를 양성했다고 한다. 물론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병사들의 대다수도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고치령(古峙嶺, 770m)은 소백산줄기와 태백산 줄기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고치령은 소백산 줄기는 끝나고 태백산 줄기가 시작된다. 옛날부터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는 양백지간(兩白之間)이라 하여 특별히 여겼다. 양백지간은 큰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의 대명사로 여겨져 왔으며 또한 인재가 많이 나왔다. '인재는 소백과 태백 사이에서 구하라(求人種於兩白)'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으니 얼마나 인재가 많이 나왔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고치령은 마구령, 죽령과 함께 소백산을 넘는 세 개의 고갯길 중 하나였다. 영남 선비들의 과거길로 ‘영남대로’라 불렸던 죽령 길과 영월 하동과 이어지는 마구령 길, 그리고 단양 영춘과 이어지는 고치령 길 등이었다. 세 길은 모두 백두대간 주능선 중 하나다. 그러나 양남지방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던 죽령과 달리 장돌뱅이나 인근 주민들이 넘나들던 소박한 고개이다. 수많은 민초들의 땀과 바람과 눈물과 한숨과 아픔이 묻어있는 고개이다. 그러나 민초들의 슬픈 이야기만 지켜 본 것만은 아니다. 단종과 금성대군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많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 본 슬픈 고개이기도 하다. 이 고갯길은 영월과 순흥을 잇는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영월에는 단종이 유배 되어 있었고, 순흥에는 수양대군에 저항하던 금성대군이 유배 되어 있었다. 그들은 고치령을 오고가며 연락을 주고받았다. 복위운동을 준비하던 중 거사가 발각되어 모두 죽음을 당했다. 단종과 금성대군 뿐 아니라 고갯길을 넘나들던 이들 모두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것을 아파하여 민초들은 지금도 고치령에 산신각을 세우고 단종을 태백산의 산신으로, 금성대군을 소백산의 산신으로 모시고 있다.

 소백산은 조선조의 유명한 풍수지리가이며 실학자인 격암 남사고(南師古)가 죽령을 지나다가 이 산을 보고 '사람 살리는 산'이라고 말하며 말에서 내려 절을 하였다는 산이다. 산줄기 흐르는 곳마다 연화(蓮花)의 세계 열리고 비로(毘盧)의 빛이 비추니 '사람 살리는 산'이라 불린 것은 당연하다.

 

영주 부석사

  
소수서원(紹修書院)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順興面) 내죽리(內竹里)에 있는 한국 최초의 서원으로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의 유현(儒賢) 안향(安珦)의 사묘(祠廟)를 세우고 1543년(중종 38)에 학사(學舍)를 이건(移建)하여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이다. 그후 1544년 여기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1633년(인조 11)에는 주세붕을 추배(追配)하였다. 1550년(명종 5) 이황(李滉)이 풍기군수로 부임해 와서 조정에 상주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사액과 《사서오경(四書五經)》 《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내사(內賜)를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私學)이 되었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올랐으니 이제 내려가야제... 자일을 잘 정리하고 하강 준비. 문경 수리봉릿지 촛대바위에서 ⓒ 2011 한국의산천

 

힘겹게 산을 오른 후 더 올라설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그때는 어디를 가고 싶게 될까? 하늘로 오를 것인가?

정상의 마지막 바위 끝에는 하늘문을 여는 빗장이 놓여 있는가? 

우리는 그 빗장의 문고리를 잡기위해 끝이 보이지 않게 반복되는 길고 긴 산행의 장막을 한겹 한겹 헤치고 있는지 모른다.

 

암벽등반을 하고,백두대간의 수많은 봉우리와 그 많은 고개를 걸어서 넘으며 혼자 생각했지.. 내가 왜 이짓을 할까? 이번에는 자전거로 그 고개를 넘으리....

 

▲ 힘차게 달려라 그리고 한숨을 돌려라 ⓒ 2010 한국의산천

배낭을 메고 거친 호흡 몰아쉬며 한발 한발 산을 오르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가

살아서 심장이 터지도록 페달을 구르는 일은 또 얼마나 행복한가 ?

갈 때까지 달리는거야. 가다못가면 그곳이 최종목적지였고 그곳이 정상이라 생각하면 돼!  

  

▲ 미지의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는것은 분명 가슴 설레는 일이다. 

 

▲ 서울 ~ 속초 232 km를 달리며 미시령 정상에서 ⓒ 2011 한국의산천 

 

▲ 서울 ~ 해남 땅끝까지 힘차게 달리며 ⓒ 2011 한국의산천

 

▲ 몸이 화해하는 무렵 산속 오르막길 위에서 자전거는 멈춘다. 그 나아감과 멈춤이 오직 한몸의 일이어서 자전거는 땅위의 일엽편주처럼 외롭고 새롭다 ⓒ 2011 한국의산천   

 

▲ 오랫만에 먼곳으로의 라이딩 계획을 세우니 가슴이 설렌다.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를 넘나드는 그곳으로 출발~! ⓒ 2011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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