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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백두대간 고치령 소백산

by 한국의산천 2011. 5. 13.

 

백두대간 소백산 고치령(古峙嶺, 770m) 오르기 [2011 · 5 · 12 · 목요일 · 날씨 영월지방 오전에는 비 오후에는 조금씩 개임 · 멤버 : 맑은샘, 한국의산천 2명]

 

머나먼 쏭바강.

고치령(古峙嶺, 770m)을 오르며 갑자기 소설이 떠올랐다 박영한의 '머나 먼 쏭바강'.

오후에도 보슬비는 보슬 보슬 내리고. 그리 긴 업힐구간도 아닌데 상당히 길고 매우 어렵게 느껴졌다. 사실 업힐구간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었다. 굽이 굽이 돌아가는 구간마다 경사는 점점 더 세지며 자전거 바퀴는 펑크난 타이어같은 느낌으로 잘 굴러가지 않는 그런 느낌. 조금 힘들었던 구간이다.  

 

▲ 소백산 국립공원 내에 들어서니 고치령 이정표가 서있다. ⓒ 2011 한국의산천

고치령(古峙嶺, 770m)은 한때 소백산을 넘는 세가지 길 중 하나였다. 영남 선비들의 과거길로 ‘영남대로’라 불렸던 죽령 길과 영월 하동과 이어지는 마구령 길, 그리고 단양 영춘과 이어지는 고치령 길 등이었다. 세 길은 모두 백두대간 주능선 중 하나다. 백두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태백산까지 흘러내린 백두대간은 소백산에서 꺾어진다. 대간은 마구령과 고치령을 거쳐 국망봉과 소백산 비로봉을 지나 죽령을 넘고 대야산, 속리산으로 뻗어간다.

 

 

 

 

고치령은 소백산줄기와 태백산 줄기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고치령은 소백산 줄기는 끝나고 태백산 줄기가 시작된다. 옛날부터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는 양백지간(兩白之間)이라 하여 특별히 여겼다. 고치령 아래에 자리한 의풍은 양백지간은 큰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의 대명사로 여겨져 왔다

 

 

▲ 고치령 이정표를 지나자 마자 산길은 굽이 돌며 경사는 더욱 세진다. 심장은 요동치고 폐는 입까지 크게 벌려야 호흡이 되고 허벅지는 더욱 단단해진다 ⓒ 2011 한국의산천

▲ 숲은 숲에 연이어 끝없이 작은 도로를 따라 계곡과 함께 이어지고 있다 ⓒ 2011 한국의산천

소백산 끝자락 영주와 단양을 잇는 고치령 길. 신록의 봄비가 내려 더욱 더 초록을 발하는 숲이 우거진 계곡길. 주변의 공기는 온통 맑고 시원하기만 하다.

영주 단산면 좌석리(커다란 돌이 자리잡고 있기에 좌석리란다)  단산읍에서 부석사 못미쳐 꺾어지는 소백산 연화동 계곡 바로 옆으로 고치령 길이 놓여 있다. 승용차 한대 지나갈 수 있는 세멘트 포장도로이지만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고치령까지 오를 수 있는 호젓한 산길이다

 

▲ 국가 대표선수도 아닌 나. 가는데까지 열심히 가는거야. 그리고 가다 못가면 쉬었다가지 머~~ ⓒ 2011 한국의산천

 

▲ 고치령 고개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경사는 더 세지고 속도계를 보니 속도는 자꾸 줄어든다. 시속 10km ... 시속 7km ...시속 6km.. 시속 5km... 

▲ 숲은 신록에 물들고 오월의 초여름비에 계곡은 맑고 깨끗했다 ⓒ 2011 한국의산천

 

 

▲ 고치령 정상의 산신각ⓒ 2011 한국의산천

고치령 정상(770m) 이정표와 태백산신과 소백산신을 함께 모셨다는 성황당이 있다. 두 산신을 함께 모신 것은 바로 고치령이 태백산 줄기가 끝나고 소백산이 이어지는 곳이기 때문. 영험한 곳으로 소문이 나 산아래 마을사람들의 지성도 대단했고, 타지에서도 무속인들이 많이 들락거렸다고 한다.

바로 이 두 산신이 단종 임금과 금성대군이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격하돼 영월에 유배됐을 당시 세조의 동생이자 단종의 삼촌이었던 금성대군은 영주 순흥도호부 부사와 함께 단종 복위운동을 벌였다. 순흥과 영월을 잇는 가장 빠른 길이 바로 고치령 길. 마구령보다 고치령이 더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금성대군의 밀사들이 단종 복위를 꿈꾸며 고치령을 넘나들었을 법하다. 하지만 관노의 밀고로 복위운동은 수포로 돌아가고 단종은 영월에서, 금성대군은 안동에서 죽임을 당했다. 복위운동의 근거지였던 순흥도호부에서는 대학살이 이어졌다. 정상을 넘으면 마락리 마을이 나타난다. 계곡이 깊어 말이 떨어져 죽었다고 마락... ㅎ 이런 이름이 붙었단다.

 

 

 

 

백두대간은 하나의 산줄기이고 하나의 산이다. 봉우리와 산을 넘어왔다. 제각기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는 그 수많은 봉우리들과 산은 모두 다른 모습으로 다른 장소에 머물러 있었지만 모두 하나의 산이고 하나의 산줄기였다. 지리산도, 덕유산도, 속리산도, 조령산도, 소백산도 모두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의 산줄기요 하나의 산이었다. 산들은 결코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하나 되어 흐르고, 흘러들어 하나 되고 있었다. 숲은 풍성하면서도 깊고 정갈하고 고요했다.

 

▲ 15년전에 이곳을 걸어서 지나갔다. 백두대간을 종주하기 위해 마구령을 지나서 능선을 따라 고치령을 지나갔다. 많은 추억이 떠오른다 ⓒ 2011 한국의산천

소백산은 철쭉이 피는 봄이 인상깊지만 나에게는 겨울산행시 영주에서 불어 올라오는 아주 강한 겨울바람에 무척 추워서 고생하던 등산이 기억에 남는다.

소백산 바람은 참 매섭고 무서웠다.

 

▲ 소박한 고개 고치령 ⓒ 2011 한국의산천

고치령은 양남지방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던 죽령과 달리 장돌뱅이나 인근 주민들이 넘나들던 소박한 고개이다. 수많은 민초들의 땀과 바람과 눈물과 한숨과 아픔이 묻어있는 고개이다. 그러나 민초들의 슬픈 이야기만 지켜 본 것만은 아니다. 단종과 금성대군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많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 본 슬픈 고개이기도 하다. 이 고갯길은 영월과 순흥을 잇는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영월에는 단종이 유배 되어 있었고, 순흥에는 수양대군에 저항하던 금성대군이 유배 되어 있었다. 그들은 고치령을 오고가며 연락을 주고받았다. 복위운동을 준비하던 중 거사가 발각되어 모두 죽음을 당했다. 단종과 금성대군 뿐 아니라 고갯길을 넘나들던 이들 모두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것을 아파하여 민초들은 지금도 고치령에 산신각을 세우고 단종을 태백산의 산신으로, 금성대군을 소백산의 산신으로 모시고 있다.

 

 

 

▲ 고치령에서 다운 힐을 하기전에 다시 방풍복을 입고... ⓒ 2011 한국의산천

고치령에서 내려가면 의풍리이다. 영월과 단양, 그리고 영주의 경계지점으로 지금까지 산들에 가려진 두메산골로 숨겨진 곳이다. 한동안 번성했다가 다시 잊혀진 고치령 길. 역사의 흔적이 아직도 오롯이 남아있지만 북적거리던 옛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간간이 산간마을 사람들이 들락거리거나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들를 뿐. 그래도 신록의 초록물이 가득한 고치령의 풍광은 참 아름답다.

 

 

소백산은 조선조의 유명한 풍수지리가이며 실학자인 격암 남사고(南師古)가 죽령을 지나다가 이 산을 보고 '사람 살리는 산'이라고 말하며 말에서 내려 절을 하였다는 산이다. 산줄기 흐르는 곳마다 연화의 세계 열리고 비로의 빛이 비추니 '사람 살리는 산'이라 불린 것은 당연하다.

 

 

▲ 이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마락리를 지나서 우리가 출발했던 바로 그 자리에 도착하게 됩니다 ⓒ 2011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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