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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길에 관한 명상

by 한국의산천 2010. 4. 17.

 

길에 관한 명상  [2010 · 4 · 17 · 토요일 · 날씨 맑음 ·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아직 도래하지 않은 더 좋은 날을 기다리며  

여행이란 빈집을 드나드는 바람처럼 그렇게 떠나는 것이다.

길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마음의 길을 마음 밖으로 밀어내어 세상의 길과 맞닿게 해서 마음과 세상이 한줄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삶의 길은 열린다.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없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 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 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 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인생길을 가는데 있어서 안내원은 없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가는것이다.ⓒ 2010 한국의산천

 

진정한 여행

 

           - 나짐 히크메트 -

 

가장 훌륭한 詩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Hikmet, Nazim(1902.1.20~1963.6.3) 
터키의 혁명적 서정시인. 극작가.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자는 빈 들녁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것도 없고 얻은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녁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울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가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

쉬다보면

보이리

길이


<당부 - 김규동>  

 

 

 

길을 묻다
           -이인수-   

 

눈 덮인 겨울 산에서 
세상의 길들을 만난다.
갈래 난 사람의 길
은밀한 짐승의 길
하늘로 향하는
나무들의 꼿꼿한 길,
문득 걸음 멈추고
뒤돌아 본 나의 길은
비뚤비뚤 비딱하다.
어디로 가야할까,
아직 봉우리는 아득한데
어디로 가야할까,
겨울 산 비탈에서
다시
길을 묻는다.

 

 

  

 

 

아름답고 어둠이 짙게 깔린 아늑한 숲 속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할 약속이 있노라.

내가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길이 있다.

내가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길이 있다. 

 

 

정지하여야 할 곳에서는 달리지 말고, 달려야 할곳에서 정지하지 말아라.  

▼ 

 

처음 가는 길

           - 도종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백창우-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 갈 수는 없지
가문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 거야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 거야
길이 없다고,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 테니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걸.  

 

 

누구든 떠나갈 때는

               -류시화-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날이 흐린 날을 피해서 가자
봄이 아니라도
저 빛 눈부셔 하며 가자

 

누구든 떠나갈 때는
우리 함께 부르던 노래
우리 나누었던 말
강에 버리고 가자

그 말과 노래 세상을 적시도록

 

때로 용서하지 못하고
작별의 말조차 잊은 채로
우리는 떠나왔네
한번 떠나온 길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가자
지는 해 노을 속에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며 가자  

 

 

▲ 강화도를 향해 열리는 한강 하구의 Sun set ⓒ 2010 한국의산천

 

 

떠나라 낯선 곳으로  

'새벽 3시에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 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
1829년 탈고된 괴테의 기행집 <이탈리아 기행>은 이렇게 시작한다.

 

삼십대 중반에 이미 부와 명성과 권력까지 손에 쥔 괴테는 서른 일곱 살 생일날 새벽 모든 것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낡은 여행 가방과 오소리 가죽 배낭만 간단히 꾸린 채 인생의 혁명을 위해 가진 것 모두를 뒤로 하고 신화의 땅 이탈리아를 향해 훌쩍 떠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 등 많은 문학작품으로 그의 명성은 이미 전 유럽에 자자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추밀고문관으로 10여년간 지내면서 정치가로서의 역량 또한 크게 떨치던 무렵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그는 심한 상상력의 고갈을 느꼈고 작가로서의 앞날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된다. 
바이마르에서의 궁정생활 10년간의 복잡한 정무(政務) 때문에 문인으로서의 활동이 위축된 것과 또 슈타인 부인에 대한 정신적인
사랑의 중압감에서 헤어나기 위하여 독일의 미학자 빙켈만에 의해 '온 세계를 위한 위대한 학교'라고까지 칭송되던 로마를 향해 휙 몸을 날렸다.

 

정치가로서의 책임감 보다는 문학가다운 멋진 반란을 택한 것이다. 괴테 스스로가 '제2의 탄생일'이자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까지 표현한 그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786년 9월 3일의 일이다.

그렇게 그는 1년 9개월 동안 마음껏 이탈리아 전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눈과 마음을 열고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호흡한다.

 

▲ 나는 컵라면 하나 지도 나침판, 작은 카메라 챙긴 후 잔차를 타고 어디던지 떠날 수 있다.ⓒ 2010 한국의산천 

 

성글어도 티끌 하나 빠뜨림 없는 저 하늘도 얼마나 많은 날개가 스쳐간 길일 것인가. 아득히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바다도 얼마나 많은 지느러미가 건너간 길일 것인가.

우리가 딛고 있는 한 줌의 흙 또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지나간 길일 것인가. 낯설고 두려운 곳으로 갈 때에 나보다 앞서 간 발자국들은 얼마나 든든한 위안인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지만 내게는 분명 처음인 이 길은 얼마나 큰 설렘인가. -[이 아침에 만나는 詩] 연재 마치면서 시인 반칠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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