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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운악산 산친구 만나러 가는 길 1

by 한국의산천 2010. 2. 16.

산친구 만나러 가는 길 1 [2010 · 2 · 15 · 월요일 날씨 맑음 (음력 1월2일) 한국의산천]

 

최지훈, 곽명자 추모등반

 

마루에서 헤어진 그 사람은 아직도 그곳에서 기약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남아 있을까?

 

 

지훈 명자

너희가 우리곁을 떠난지 어느덧 22년이 지났구나

오늘 너희를 만나니 반갑고 즐거웠다. 아직까지 이땅에 살아있는 자들이  

 

▲ 왼쪽부터 에베레스트에 오른 자랑스런 후배 왕청식, 미스 포천,   내가 까까머리 중딩때 나에게 산을 가르쳐 준 선배 이건영,  미스 일동, 저 한국의산천, 미스 부평. 

그간 어떻게 살아왔나 산 정상만을 추구하며 돌쇠처럼 산을 오르고 삶 또한 앞만보고 달려오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나에게 남은것이 무엇이었던가? 그래 정상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오를만큼 오르는거야. 지쳐 더이상 오르지 못하겠다면 돌아서며 그곳이 자기가 선택한 종착지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 삶 또한 그렇게 살아야해. 자신의영혼이 잘 따라오나 뒤를 돌아보면서...  

 

사춘기 까까머리 학창시절, 우울했던 젊음을 배낭에 넣고 산행을 같이 했던 岳友들... 그들중에는 대부분 산을 떠나 사회에 안착하고 살거나 또 다른 취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부 친구들은 아직도 산으로의 끝나지 않은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려 진짜 산꾼은 산에 집착하지 않는다. 산은 이미 우리들의 가슴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산 자체로부터 초월해 있지 않다면 산을 오르는 행위는 가치없는 일이다.  

내가슴에 존재하는 산 정상에 올라 하늘로 통하는 문의 빗장을 열수있을까?  그래 사람은 각자대로 운명의 길을 살아갈 따름이다.  

 

 ▲ 왼쪽부터 에베레스트에 오른 자랑스런 후배 왕청식, 미스 포천,   내가 까까머리 중딩때 나에게 산을 가르쳐 준 선배 이건영,  미스 일동, 어느새 우리 산악회 회장님이 된 송동선 , 미스 부평.

산은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 무한한 뜻을 지닌다. 언제나 침묵하는 자세로 우리들 곁으로 다가와 혼탁해진 사람의 가슴을 열게하고 순백한 애정의 한자락을 심어준다.  

 

▲ 지훈, 명자 ! 너희들의 젊음과 청춘이 멈춰서버린 빙폭을 보며 잠시 묵념.ⓒ 2010 한국의산천

 

이제는 너와 같이 할 수 없는... 回想의 山.

 

무더운 여름 용어천계곡 치마바위 ...인수봉그리고 설악산 천화대에 붙어 마른 침을 삼키며 숨을 헐떡이던 일

국망봉, 갈대밭 사이를 걷던 일  

내가 암벽대회 출전하던 날 너는 내 아들을 업고 인수봉 대회장까지 올라왔서 응원했지

연화봉에서 희방사로 내려 올 때 몰아치던 바람과 폭설을 맞으며 걷던 길

하얀 얼음벽에 붙어 수직 오름짓을 하던 때가 언제였지?

 

그래  

우리는 하얀산을 꿈꾸며 산에 오르고 빙벽에 매달렸지

그래서 마침내 저 파란 하늘속에 높이 올랐지.

지금 이곳보다 더 높은 곳에서 평안히 잠들기를 기도한다. 

차돌처럼 단단하고 그리고 산행이 열심이었던 명자와 함께...   

 

이제는 같이 할 수 없는 回想의 山들...

바쁜 나날이지만 잊지는 않는다.  

 

지훈, 그리고 명자... 두손 모아 명복을 빈다. 

 

영원히 시를 못쓰는 시인의 안타까움에 비견해서 영원히 등산 할수없는 산악인의 마음 또한 가슴 아픈일이라면 지금 두다리로 설수있고 걸을 수 있을 때 산을 찾아나서는게 지금 내가 차려야 할 행위가 아니던가? 그래서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눈 내린 산의 정상에 서서 겨울 바람과 마주하고 섰을 때 비로소 참다운 자신을 발견하고 세파에 찌든 정신을 벗겨 낼것이다. 

 

젊은날의 좌절은 허무와 죽음에 이르는 통로를 끝없이 기웃거리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참을 수없는 혼란기는 있기 마련이다. 젊은 날을 담금질하듯이 들쑤셔 놓은 상처는 세월이 지나면 정교하게 다듬어져 점차 제자리를 찾게 된다. 그것이 연륜이다.

 

여울처럼 지나간 날들의 후회스런 시간들 끊임없이 삶의 고난과 마주치며 외로운 궤적을 밟고 온 세월, 뛰어넘어도 상관없을 지나간 공백의 시간, 삶에 진공이 생길 때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나태와 자폐뿐이다.

 

삶은 조여진 줄처럼 긴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경직되어 있기만 한다면 그 생 또한 쉽게 부서지기 쉽다.  삶을 시행착오 없이 살기란 힘들다. 착오는 시간의 낭비를 가지고 오지만 어쩔도리가 없다. 미래를 살아보지 않는 한 수레바퀴 돌 듯 쉬지않고 진행되는 일상을 정지 시킬 방법은 부재하다. 후회하면서도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미답의 산을 처음 오르려는, 그래서 정상에는 무엇인가 기대할 만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산행과 동질성을 띤다.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미지의 산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나간 족적을 헤아려 보는 회상과 다를바 없다. 우리는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 멀리 보이는 (무지치)무지개 폭포ⓒ 2010 한국의산천 

무지치 폭포가 햇빛을 받으면 무지개처럼 채색을 띄기도 한다고 하여 일명 '무지개폭포' 또는 '홍폭' 이라고 한다 

 

운악산 무지치폭포 (홍폭)

운악산에는 몇개의 폭포가 있다 그중 운주사 뒤로 난 계곡을 따라 30분 정도 올라가면 산계곡 사이로 하얀 얼음기둥이 보인다. 이 폭포가 화현면 무지치폭포(무지개)로 규모가 가장 크다.

해마다 수량에 따라 경사도, 넓이, 결빙상태 등이 다양하게 변하지만 폭이 20m 에 이르며 전체높이는 130여m에 달한다. 후론트 포인팅으로 수직에 가까운 빙벽를 거슬러 오르고 경사 75도의 하단부를 15m쯤 오르면 평평하고 넓은 테라스에 이른다. 이 곳에 스크류를 설치하고 60-70도 경사의 빙벽을 약20m쯤 오르면 고드름으로 형성된 90도 경사의 턱이 나온다. 이곳에 스크류로 중간 확보를 하고 턱을 넘어서면 45도 정도의 완만한 빙사면이 이어진다.

프론트 포인팅으로 직벽을 오르다 경사가 완만해지는 사면으로 이어질때 주의해야 한다. 계속 직벽에서처럼 프론트 포인팅을 고집하면 엉금 엄금 기는 불안정한 자세가 되므로 프론트 포인트의 각도를 잡지 못하게 돼 몸의 균형을 잃을 수가 있다. 따라서 한발은 프론트 포인팅으로, 한발은 바깥으로 45도 틀어서 발바닥 전체를 얼음에 붙이는 피에 아 뿔라(풀렛 후팅) 기술을 사용해야한다.  

  

 

 

힘겹게 산을 오른 후 더 올라설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그때는 어디를 가고 싶게 될까? 하늘로 오를 것인가? 정상의 마지막 바위 끝에는 하늘문을 여는 빗장이 놓여 있는가? 우리는 그 빗장의 문고리를 잡기위해 끝이 보이지 않게 반복되는 길고 긴 산행의 장막을 한겹 한겹 헤치고 있는지 모른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산화하여 한줌의 재로 세상에 남겨지기를 원했다.

죽어 재가 되어버린 나는 밤이 오면, 바위와 숲속에 흩어진 혼백을 불러 일으켜세워 길을 밝혀주는 작은 등불이 되고 싶다. 

 

▼ 지금부터 꼭 30년전의 지훈이와 나 

▲ 1980년 도봉산 용어천 계곡 치마바위에서 ⓒ 2010 한국의산천

 

니카바지에 모직(울)체크 무늬 남방 그리고 스타킹에 탱크같은 등산화 비브람을 신은 후배 최지훈(지호: 파란헬멧)의 빌레이를 받으며 선등하고 있는 저(하얀헬멧)한국의산천입니다.  그 당시 하네스(안전벨트)는 상하단이 모두 연결된것이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상당히 답답하고 더웠습니다.   

 빌레이의 자일 끝이 오른쪽으로 향해있는 이유는 치마바위 제일 오른쪽 계곡위의 언더 크랙을 통과해서 겁없이 이곳까지 이동하였습니다. 물론 하켄을 두개 정도 중간에 박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위 사진에서 보이는것처럼 빌레이어 머리 앞 부분 크랙에 나이프 하켄을 하나 박아 놓고 확보를 하고 위 슬랩 바로 아래 스텐스까지 확보지점 없이 바로 올라야 했습니다.  

 

▲ 지훈이와 즐겨 올랐던 도봉산 용어천 계곡 치마바위 ⓒ 2010 한국의산천 

 

귀(耳)가 안좋아 소리를 잘 못듣는 그는 軍 면제 혜택을 받고 많이 괴로워하며... 저를 많이 따랐습니다. 산행을 할때 나는 언제나 그와 같이 했던 시간을 생각하곤 합니다.  

 

▲ 왼쪽부터 배넘버 17번 한국의산천, 故 최지훈(지호), 송기준 會長님 ⓒ 2010 한국의산천

내가 암벽대회 출전 하던 그날 너는 내 아들을 업고 내 집사람과 함께 인수봉 코끼리 바위 대회장까지 올랐었지....

 

나 : 야 너는 애인도 없냐?

지훈: 응 난 여자보다 산과 형이 더 좋아... (※ 그는 귀가 잘 안들리는 핸디캡으로 인해 소심해지고 사람 만나는것을 싫어 하였습니다) 

 

그 후 운악산 빙폭 훈련중 상단에서 3명이 추락하며 후배 지훈이와 후배 곽명자는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먼나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없음이 남은 자의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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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빛은 꺼지고 멀리서 밀려드는 그리움 조그만 내 가슴에 퍼지면 아련히 떠오르는 그모습
아직도 내귀에는 들리네 언제나 헤어지지 말자던 그말이 그러나 헛된 꿈이되었네 이제는 기다리며 살리라
오 그 모습 지워 버리려 눈을 감아도 감겨진 두눈엔 눈물만 흘러 내리네
아~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고 그렇게 멀어져야 하나요 그러나 떠나버린 날부터 이별의 서려움은 많았죠
아직도 내귀에는 들리네 언제나 헤어지지 말자던 그말이 그러나 헛된 꿈이 되었네
이제는 기다리며 살리라 오 그모습 지워 버리려 눈을 감아도 감겨진 두눈엔 눈물만 흘러 내리네
아아아~ 

 

계속해서 남은자들의 하산 길 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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