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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북한산 비봉의 봄 풍경

by 한국의산천 2009. 3. 29.

북한산 비봉의 봄 풍경 [2009 · 3 · 29 · 일요일 맑음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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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비가 서있었기에 비봉이라 불리어졌다(비봉에 서있는 국보 제3호 신라시대 진흥왕 순수비) ⓒ 2009 한국의산천

비봉(碑峰 560m)은 북한산 능선이 서쪽 구릉으로 내려서기 전 숨을 크게 몰아쉬는 듯 우뚝 선 산줄기의 마지막 관문이다. 바로 가까이 700m의 봉우리들이 위세를 뽐내고 있지만, 비봉은 그저 돌탑처럼 고즈넉이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길목을 지키고 있다.

 
우리 선인들은 예부터 비봉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비봉에 오르면 삼각산의 상봉들을 대면할 수 있고, 한강을 넘어 김포평야와 서해, 그리고 고양의 넓은 들을 따라가다 임진강 유역을 두루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신라 진흥왕은 북한산 지역을 차지하자마자 순행해 순수비(553년)를 세웠다. 점령과 평정을 상징하는 순수비가 백운대가 아닌 이 봉우리에 세워졌다는 것만으로도 비봉의 역사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비봉은 ‘비봉(碑峰)’이라는 이름을 얻은 후로 한 번도 제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북한산(행정)과 삼각산(지리) 등을 다룬 고문헌과 고지도에서 비봉은 그 중심에 서 있다. 지금도 북한산의 최고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 오늘 산행자 단체 촬영 ⓒ 2009 한국의산천 

왼쪽부터 한국의산천. 추억의연가. 잎새. 평행선 4명.

 

▲ 비봉으로 오르는 길 ⓒ 2009 한국의산천

병 속의 새를 꺼내는 것이 노승(老僧)이 갖는 유일한 화두였다면 나의 과제는 땅의 끝, 산의 꼭대기에서 하늘의 문을 여는 빗장을 벗겨내는 일이었소.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中에서 著者: 전용문-

 

작가 전용문의 회고기 보기 클릭 http://blog.daum.net/koreasan/15481313

  

▲ 山으로 또 山으로 ⓒ 2009 한국의산천

힘겹게 산을 오른 후 더 올라설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그때는 어디를 가고 싶게 될까?

하늘로 오를 것인가? 정상의 마지막 바위 끝에는 하늘문을 여는 빗장이 놓여 있는가? 

우리는 그 빗장의 문고리를 잡기위해 끝이 보이지 않게 반복되는 길고 긴 산행의 장막을 한겹 한겹 헤치고 있는지 모른다. -전용문-

 

▲ 순수비가 서있는 비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까다롭기에 주의를 요하는 구간입니다 ⓒ 2009 한국의산천

▲ 진흥왕 순수비 앞에서 한국의산천과 추억의연가 ⓒ 2009 한국의산천

 

비봉에 오르면 제일 먼저 국보 제3호 '신라진흥왕순수비'가 눈에 띈다. 아니다 진흥왕 순수비가 있었기에 이 봉우리가 비봉이 되었다.

원래는 비는 이곳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보관하고 있다. 현재 이곳의 비는 2006년 10월 1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중인 국보 제3호 진흥왕순수비와 꼭 같이 복원하여 원래 자리인 이곳 비봉 정상에 복원했다.

 

국보 제3호 신라시대 진흥왕 순수비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진흥왕의 영토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비의 형태는 직사각형의 다듬어진 돌을 사용하였으며,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비의 건립연대는 비문에 새겨진 연호가 닳아 없어져 확실하지 않으나, 창녕비가 건립된 진흥왕 22년(561)과 황초령비가 세워진 진흥왕 29년(568) 사이에 세워졌거나 그 이후로 짐작하고 있다.

북한산에 세워져 북한산 신라진흥왕순수비로 불렸던 이 비석은 무려 1400년 동안이나 잊혀져오다 조선 순조 16년(1816)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비에 새겨진 당시의 역사적 사실 등은 삼국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006년 10월 1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중인 국보 제3호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복제돼 원래 자리인 비봉 정상에 복원됐다.

 

▲ 멀리 보이는 삼각산의 정상 백운대 ⓒ 2009 한국의산천

 

멀수록 가까운 산

다가가면 더욱 멀어져 가는 산.

 

하냥 다짐하듯 그리워라

더듬듯 기어들면,

 

우리가 어머니라 부르는 조국의 품 안

그 갈매빛 속고갱이.

 

산은 그래서

발로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 아니 가슴으로 헤쳐 올라야 한다. -김장호-

 

 

진흥왕이 한강 하류지역을 영토화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진흥왕순수비. 순수비에서 '순수'란 천자가 제후의 봉지(封地)를 직접 순회하면서 현지의 통치상황을 보고받는 의례로 순행(巡行)이라고도 한다. 순수비란 순수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을 말하는데, 진흥왕순수비의 비문 속에 나타나는 '순수관경'(巡狩管境)이란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진흥왕은 가야 소국의 완전병합, 한강 유역의 확보, 함경도 해안지방 진출 등 활발한 대외정복사업을 수행하여 광범한 지역을 새로 영토에 편입한 뒤 척경(拓境)과 순수를 기념하여 비석을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비는 창녕비·북한산비·황초령비·마운령비 등 모두 4기로, 당시의 삼국관계와 신라의 정치상·사회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비봉 정상에서 내려 가는 길 ⓒ 2009 한국의산천

산은 특히 바위는 오르는 일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욱 어렵기에 조심해야 할 구간입니다  

 

 

 

▲ 사모바위 ⓒ 2009 한국의산천 

 

 

▲ 사모바위 앞 헬기장에 있는 산행인파 ⓒ 2008 한국의산천  

▲ 언제나 의연하게 서있는 사모바위 ⓒ 2009 한국의산천

▲ 삼각산의 명칭을 낳게한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 ⓒ 2009 한국의산천

파란 하늘이 펼쳐진 멀리 백운대와 그 아래 노적봉이 보이고 백운대에서 왼쪽으로 원효봉 능선이 흐르고 있다. 

▲ 버프(멀티스카프)의 각각의 착용방법

좌로부터 헤어밴드. 안면마스크. 모자. 목도리(스카프)

 

▲ 기분좋게 하산하는 길 ⓒ 2009 한국의산천

하산주는 집에 도착하여 차를 주차시키고 한잔씩하기로 결정. 

▲ 산행을 마치고 이북 5도청사 앞에서 단체촬영 ⓒ 2009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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