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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B등산여행

알피니즘(Alpinism)의 어원

by 한국의산천 2008. 8. 21.

알피니즘(Alpinism)의 어원

알피니즘과 알피니스트(Alpinist)는 알프스(Alps)산과 깊은 관계가 있다.

즉 알프스에 오르면서 그 정신과 행위가 "알피니즘"이라고 불리게 됐다.

그러나 등산이 알프스 지역을 벗어나 세계 전역으로 번지면서 "알피니즘"의 명칭은 일반화됐다.

 

알피니즘은 자연과 인간의 만남의 장이다. 따라서 자연을 떠나서 알피니즘은 존재하지 않으며 등산정신이 결여된 곳에 알피니즘은 없다.

알피니즘의 세계는 외적인 자연과 내적인 인간 정신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등산"이라는 말은 알피니즘(Alpinism)에서 왔으며 그 기원은 프랑스의 알프스에 있다. 즉, 등산은 서구적인 개념이다. 서양 사람들의 자연관과 행동양식이 등산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냈다.

 

인류역사에서 18세기 중엽까지 자연과 인간은 대립한 존재로 자연은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고 미지의 세계였다. 그러자 중세의 암흑시대가 지나고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인간은 자아를 발견하고 지식욕과 탐구욕과 정복욕이 움텄다.


그리하여 인간은 새로운 눈으로 자연을 대하게 됐다. 1760년 드 소쉬르의 몽블랑(4,807m) 도전 제의가 그것이다.

알프스 최고봉에 대한 이 제안은 결국 25년이 지난 1786년에 비로소 달성했는데, 이것을 기점으로 만년설에 덮인 4,000m 고도인 알프스에 인간이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알프스에 오르면서 그 정신과 행위가 "알피니즘"이라고 불리게 됐다. 그러나 등산이 알프스 지역을 벗어나 세계 전역으로 번지면서 알피니즘의 명칭은 일반화됐다.

 

영국에서 나온 등산 백과사전(Encyclopedia of Mountaineering, Penguin Books)에는 알피니즘을 눈과 얼음에 덮인 "알프스 정도의 고소에서 행하는 등반"으로 풀이했다.

한편 프랑스 등산가 뽈 베씨에르는 만일 등산이 알프스가 아니고 히말라야에서 시작했으면 히말라야니즘, 피레네이에서면 피레네이니즘...으로 불렸을지 모른다고 했다. 모두 알피니즘이라는 뜻의 일반성을 말해 준다.


알피니즘의 어원은 'Alpinisme'이라는 프랑스 말이다. 등산이 프랑스 알프스에서 프랑스어를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뒤 알프스를 중심으로 한 여러나라에서 뒤따르고 마침내 Alpinism(영국), Alpinismo(이탈리아), Alpinismus(독일)로 불리게 됐다.


관련 글 : 월간 마운틴 산악 칼럼
등산과 알피니즘 [글 김영도 한국등산연구소장]

 

등산과 알피니즘은 다른 것인가? 다르면 어떻게 다른 것인가?

이런 문제가 새삼 거론된다면 산악계로서는 불행한 일이고 서글퍼진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국제무대에 올라가고도 남은 우리나라 산악계에서 등산이야기만 한창이지 알피니즘에 대해 들려오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등산과 알피니즘은 똑같은 말이며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가 후자에서 왔다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서 원래 서구적인 개념인 알피니즘이 한문화권(漢文化圈)으로 옮겨가며 등산이라 했다.


그러나 이 두 낱말 사이에 처음부터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등산계에서도 별로 의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즉 등산과 알피니즘은 이를테면 모두 표의문자(表意文字)나 다름없는데, 등산은 말 그대로 산에 오른다는 뜻이고 알피니즘은 알프스를 오른다는 제한된 조건에서 출발했다. 다시 말해서 알피니즘에는 역사적 기원이 담겨있다.


영국에서 나온 <등산백과사전>에는 알피니즘에 대해 ‘눈과 얼음에 덮인 알프스와 같은 비교적 높은 고소에서 행하는 등반을 말하며, 그 용어는 프랑스어 알피니즘(alpinisme)에서 왔다’고 풀이하고 있다.

알피니즘의 어원이 프랑스어라는 것은 18세기 후엽 알프스의 최고봉인 몽블랑의 역사적 초등이 그 조어의 동기가 됐다는 이야긴데, 물론 몽블랑이 프랑스 알프스에 있는 산이고 당시 몽블랑 도전에 관련됐던 사람들이 모두 불어권에 속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알피니즘의 기원은 몽블랑에 대한 도전에 있지만 그 말의 일반화는 알프스를 둘러싼 나라들이 그 정신과 행위를 받아들여 번져나가므로 시작됐다.

오늘날 등산 선진국으로 되어있는 나라들로 스위스를 중심으로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이탈리아 등 다섯 나라가 지리적으로 유리한 여건 속에 그 영향을 빠르고 강하게 받아들였으며, 19세기 후엽 거의 같은 시기에 그들의 산악회가 모두 창건되었다.


여기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유럽 대륙을 벗어난 섬나라인 영국인데, 그러나 영국은 일찍이 빅토리아 여왕 통치에 힘입고 알프스 인접 국가들보다 먼저 알프스에 도전하여 크게 진출한 것은 세계 등반사가 증명하는 그대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에드워드 윔퍼의 마터호른 초등정이나, 그때까지 알프스 4000m급 140봉이 등정되는 가운데 반 이상이 영국산악인들의 공이었다는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

19세기 후엽 알프스 최후의 보루였던 마터호른의 등정으로 알프스의 황금기가 지나자, 그때까지 정상만 노리던 이른바 등정주의(Peak hunting)가 뜻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등로주의(Variation route)로 발전하는 한편, 히말라야 시대가 열리면서 알피니즘은 명실 공히 국제어로 자리를 굳히기 시작했다.

 

 

 ‘날로 늘어가는 등산인구가 한국의 등산문화의 질적 수준을 말해주지 않는다. 지난날 초라하게 키슬링과 클레터 슈즈 차림으로도 의기양양했던 산사나이들의 세계가 오히려 그립다… 그들은 정열과 투지로 주어진 자연과 맞섰다.’ 사진은 80년대 초반 키슬링을 메고 북한산을 오르는 외대산악부원들. - 사진 정광식-

 
이에 대해 프랑스의 등산가 폴 베시에르가 그의 책 <알피니즘>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산에 오르는 것을 프랑스 말로 ‘알피니즘’이라고 하지만 배타적인 사람들이 강조하는 표현과 달리 그것은 알프스를 오른다는 좁은 뜻이 아니다. 거기에는 역사적 기원이 있을 뿐 넓게 일반적이다. 전문적인 산악인들은 피레네에 오르면 피레네이즘, 히말라야는 히말라이즘, 안데스를 안디니즘이라 할는지 모르나 요는 산을 오르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알피니즘이라는 말의 유래를 이 이상 설명하기 어려우리라. 그리고 이에 준해 알피니스트라는 말도 생겼으며 한문화권에서도 등산가니 산악인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따른다. 즉 알피니즘에 담긴 정신과 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이 좋아 산에 가는 이른바 등산 애호가나 무료한 시간을 산에서 달래는 소일파는 여기서 제외된다. 등산 세계의 일종의 배타성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알피니즘의 정신과 행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몽블랑에 사람이 처음 오르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 세계 등산의 발전 과정은 바로 알피니즘의 구체적이고도 충분한 모습이요 설명이다. 그 250년 가까운 시간의 흐름 속에 5대륙 6대주에 걸친 산군들이 답파되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뛰어난 선구자들이 영광과 비극 속에 부상하고 침몰하는 가운데 지구상에 더 오를 데가 없어진 역사적 현실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한가? 이것이 알피니즘의 모습이고 이것을 알고 행하는 자가 알피니스트다.


등산세계는 등산가의 산에 대한 지식과 체험이 누적되어 형성된다. 이러한 등산의 세계가 자기에게 있는가 없는가로 알피니스트와 일반 등산가가 갈라진다. 즉 산악인의 조건이 여기 있다. 그가 아무리 높은 산을, 그리고 어려운 산행을 한다 해도 알피니즘이 표방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면 그의 등반은 헛것이며 뜻이 없다.


이제 우리나라 산악계도 세계무대에 진출하고 한 세대가 흘렀다. 이것은 우리의 자연 조건으로 볼 때 그 진출 양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세계 등산사에 비출 때 그토록 제한된 조건 하에 알피니즘의 토착은 잘 진행된 셈이다. 그러나 이때 내용이 외형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이것은 한국 알피니즘 존립지반의 허약을 뜻하며 이런데서 건실한 등산문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날로 늘어가는 등산인구가 한국의 등산문화의 질적 수준을 말해주지 않는다.

지난날 초라하게 키슬링과 클레터 슈즈 차림으로도 의기양양했던 산사나이들의 세계가 오히려 그립다. 당시 젊은이들은 알프스도 히말라야도 몰랐으며 오직 국내의 낮은 산을 높은 줄만 알고 오르내리며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었다.

몸에 걸친 것은 언제나 헌옷이고 장비라 할 것도 없으면서 그들은 정열과 투지로 주어진 자연과 맞섰다. 이러한 과거가 있어서 오늘의 산악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는지 의심스럽다.


근자에 산악동지회라는 이른바 계파를 초월한 산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연례적인 행사여서 거기에는 옛날 그 얼굴 그대로 만나니 친근감이 더했다. 이를테면 우리 산악계 노병들로 오늘날 기준으로 볼 때 화려한 해외원정을 체험한 사람이 별로 없지만, 그들이 한국 알피니즘의 트레거(담당세력)이었던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등산과 알피니즘은 동의어이면서 뜻이 다르다. 이것은 자기모순 같지만 사실 그렇다. 그러나 여기서 파생한 등산가와 알피니스트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 그들은 으레 몽블랑 초등의 의미를 알며, ‘등산은 길이 끝나는 데서 시작한다’는 알랑 드 샤테리우스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등산 즉 알피니즘에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는데, 이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것은 내면적인 것으로, 등산의 육체적 노력을 넘어서 얻어지는 정신적인 것이다. 이때의 내면적이라는 것은 정신의 고양을 말하며, 등산이 높이와 어려움을 지향하는 것이 언제나 이러한 정신의 고양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알피니스트가 산의 세계에 몰입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산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일본 산악계 선구자의 한사람이었던 오오시마 료오끼치(大島亮吉·1899~1927)가 ‘베르그슈타이거(등산가)는 누구나 산에 자기 하이마트(고향)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등산가의 의식과 행위는 언제나 그의 귀소본능과 깊은 관계가 있으리라. 등산을 고작해서 여가 선용이나 건강관리를 위해 산에 가는 것으로 아는 이른바 등산객과 산악인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 거리가 산악계의 침체나 위기를 가져오지 않는다.

산악인과 산악계는 언제나 그 존재이유를 분명히 유지해야 하며, 그 근거가 되는 것은 꾸준한 알피니즘에 대한 토론과 주장이다. [글 김영도 한국등산연구소장]

 

산악인의 선서 & 티롤선언 >>> https://koreasan.tistory.com/9600475

 

산악인의 선서 & 티롤선언

산악인 선서 - 노산 이은상-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한다.

koreasan.tistory.com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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