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만수봉 포암산 산행기

by 한국의산천 2008. 8. 19.

월악산과 백두대간을 조망하기 좋은 충북 충주  만수봉 ~ 포암산 산행기 [2008· 8· 17· 일요일 (날씨 흐림) 한국의산천]

산행코스

만수휴계소 - 용암봉 - 만수봉(985m) - 마골치 - 궁고개 - 관음재 - 포암산(961.7m) - 하늘재 - 미륵사지 (약 12km, 휴식,점심시간 포함 6시간 30분)

 

충주는 볼거리가 많은 고장이다. 예로부터 수운교역이 발달하였고 영남지방과 서울로 이어지는 도로가 지나는 경계지점으로서 주요 요충지였다. 충주댐이 생기고 난 후로는 빼어난 주변 경치로 인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곳이 되었다.

충주의 주요 산으로는 월악산을 비롯하여 국망산, 만수봉, 월항삼봉, 수주팔봉, 포암산, 신선봉, 북바위산, 천등산, 지등산, 인등산, 보련산, 계명산 등이 있으며 삼탄과 달천등 아름다운 강이 흐른다.
 
월악산은 높이 1,097m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과 제천시 한수면 일대에 위치한 국립공원으로 총면적 284.5㎢로서 2개도 4개 시군 9개 읍면 34개리에 걸쳐 있는 산이며 해발 1,097m의 월악영봉을 비롯하여 150여m의 기암단애가 치솟아 맹호처럼 우뚝 선 준험한 산세와 웅장함으로 예로부터 영산이라 불리어 왔다.     
깍아 지른 산줄기는 끝을 모르고 내리 뻗어 사이사이로 운치 있게 자란 청송과 기묘한 암반길을 지나 주봉에 올라보면 잔잔한 충주호와 산야풍치가 눈 아래 사이에 전개되고 사방으로 창공이 상쾌하여 진다. 인근에는 송계계곡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여러 개의 계곡들이 있으며 인근 수안보에서 온천욕을 겸할 수 있고 충주호 유람도 가능하여 내륙관광으로는 최고의 절정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 만수봉 등산 입구 주차장이 넓은 만수휴게소 ⓒ 2008 한국의산천

왼쪽부터 저 한국의산천, 평행선, 노을, 여명, 추억의연가, 강릉제량, 영월선달 7명.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에 자리한 만수봉(萬壽峰 985m)과 포암산은 월악산에서 흘러내린 능선이 8km쯤 나간 곳에 솟은 암봉으로 남릉 상의 최고봉으로 용암봉의 모산으로 바위와 어우러진 노송이 아름다운 산이다. 즉 만수봉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가지를 치는 능선상에 용암봉이 솟아 있다. 만수교와 만수골의 이름을 빌어 만수봉으로 불려지고 있다.

만수봉은 백두대간 주능선에서 월악산쪽으로 살짝 비켜 앉아 만수계곡 건너편에 있는 포암산과 다정하게 자리하고 있는 산이다. 포암산과 함께 오래된 노송들이 바위와 어우러져서 한폭 그림처럼 아름다우며 숲이 우거져 한여름에도 시원한 산행과 더불어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화령을 지나 북진하는 백두대간은 조령산을 우뚝 일으키고 다시 새재로 내려선 후 주흘산을 일으키고 하늘재로 내려서며 잠시 숨을 가듬은 후 포암산을 우뚝 세우며 북진하다가 왼쪽으로 월악산을 가지치고 동쪽 방향으로 대미산을 향해 벋어나간다. 
백두대간에서 북쪽으로 벋어나간 능선은 만수봉을 일으키고 이어서 덕주봉과 월악산 영봉을 우뚝 일으킨다. 

  

▲ 만수휴게소에서 정면으로 바라 보이는 폭포 ⓒ 2008 한국의산천

 

만수봉의 등산 출발지는 만수휴게소이다. 팔각정 정자가 예쁘게 보이는 건물과 넓은 주차장과 매점과 식당을 겸비한 만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을 건너면 만수골 공원관리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공원관리공단의 안내를 받고 아치형 작은 다리를 건너 물맑은 만수계곡을 따라 오른다. 약 300m 를 오르면 계곡을 따라가는 길과 왼쪽으로 오르는 갈래지점이 나온다. 만수봉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왼쪽으로 오르는 철사다리를 따라 올라야 한다. 노송이 어우러진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간간히 시야가 트이며 전망좋은 바위가 곳곳에 있다.
키 높은 나무 사이로 걷기 좋은 산길이 이어지며 천천히 1시간 30분 정도를 오르면 만수봉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는 나무가 있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넓은 반석이 있어 쉬어가기에 좋다. 월악산과 만수봉이 보이며 전망이 좋다.

 

▲ 만수골 입구 작은 다리 ⓒ 2008 한국의산천 

▲ 만수계곡으로 들어와 만수봉으로 오르는 삼거리 ⓒ 2008 한국의산천   

 

▲ 만수봉 오름길에 휴식 ⓒ 2008 한국의산천  

 

▲ 가파르게 오르는 만수봉 오름길ⓒ 2008 한국의산천   

▲ 만수봉 오름길에 보이는 포암산 ⓒ 2008 한국의산천 

 ▲ 만수봉 정상이 눈앞에 ⓒ 2008 한국의산천 

▲ 만수봉 정상 ⓒ 2008 한국의산천

이곳에서 만수계곡이나 포암산 가는 길은 월악산이 보이는 북릉을 타고 가다보면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 길은 월악산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암릉지대이기에 현재 등산로가 폐쇄된 상태이다. 산길은 서서히 오른쪽으로 꺽이며 만수계곡으로 내려 가는 길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휴식과 점심식사를 하는 등산인들과 만수계곡에서 바로 올라오는 이들이 휴식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계속해서 남쪽산릉의 오른쪽 사면을 타고 산길은 이어진다. 산길에는 가슴까지 차오르는 산죽군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헬기장까지 산죽군락은 이어진다. 헬기장을 지나며 산길은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고 암벽지대가 간간히 나오며 궁고개와 백두대간 갈림길을 지나 평탄하고 걷기좋은 대간길이 이어진다. 잘록한 관음재를 지나면서 산길은 급격히 고도가 높아지며 포암산 정상인듯한 산위에 올라서면 바로 300여m 앞에 포암산이 의연하게 서있다. 계곡을 내려서고 다시 올라서면 사방이 막힘없이 일망무제로 터지는 포암산 정상석과 케른이 반긴다. 

 

▲ 미니 삼각대를 가져오지 않아 스틱을 이용하여 단체 자동촬영 ⓒ 2008 한국의산천 

▲ 만수봉 정상에서 월악산 영봉을 바라보며 ⓒ 2008 한국의산천 

▲ 월악산 영봉 ⓒ 2008 한국의산천 

▲ 포암산으로 이동중에 만나는 산죽 ⓒ 2008 한국의산천 

▲ 산죽숲을 지나면 헬기장이 나오며 본격적으로 포암산으로 올라선다 ⓒ 2008 한국의산천 

▲ 백두대간 구간인 대미산과 포암산 갈림길 ⓒ 2008 한국의산천  

▲ 포암산 정상 ⓒ 2008 한국의산천

 

북쪽으로는 월악산 영봉과 그 옆으로는 멀리 패어져 나간 송계계곡 끝으로 충주호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마치 꿈틀거리는 용처럼 월악산 주능선이 장쾌하게 눈에 들어온다. 송계계곡 왼쪽으로는 박쥐봉, 용마봉, 수리봉이 첩첩산중을 이룬다. 동쪽으로는 포암산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과 성주봉이 손앞에 잡힐듯이 서있다. 남쪽으로는 문경읍내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조령산과 주흘산이 가까이 보인다. 

포암산은 인근의 월악산,  주흘산, 조령산 등과 함께 조령5악으로 손꼽히는 포암산(962m)은 월악산 국립공원내 충주시 상모면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백두대간의 주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늘재(525m)를 경계로 월항삼봉과 연결된다.

백두대간상의 일부 구간인 포암산은 미륵리에서 바라보면 육산(肉山)처럼 보이지만 문경시쪽에서 보면 큰 바위산임을 알 수 있다. 이 산 정상에 서면 벌재재에서 황장산과 대미산을 거쳐 서쪽으로 힘차게 달려드는 백두대간과 문경분지를 조망하기 좋다. 
포암산의 본래 이름은 '베바우산'으로, 우리 고유어를 한자어로 풀어 쓴 것이다. 베바우산이란 허연 삼베(布) 같은 천을 두른 산이란 뜻을 지녔는데, 허연 삼베는 바위 절벽을 의미한다. 이처럼 험한 바위산인 포암산은 부근의 월악산, 주흘산, 신선봉 등과 더불어 ‘조령 5악'으로 불리는데, 산세가 험한 대신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등산로 곳곳에는 단애를 이룬 수직절벽과 아름드리 노송군락과 벼랑 위에 선 고사목들이 있어 자연의 신비감을 더해준다.

 

▲ 포암산에서 보이는 충주호와 월악산 ⓒ 2008 한국의산천 

포암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막힘이 없이 주변 시야가 일망무제로 트인다.

▲ 월악산 영봉 ⓒ 2008 한국의산천 

▲ 멀리 종지봉, 성주봉과 운달산이 보인다 ⓒ 2008 한국의산천 

▲ 포암산 정상에서 ⓒ 2008 한국의산천 

▲ 포암산에서 하늘재로 내려서는 길 ⓒ 2008 한국의산천

포암산에서 내려서는 길은 바위지대로 이루어져서 내려서기가 쉽지 않다. 조심스럽게 내려서야하며 밧줄을 잡고 내려서야 하는 구간도 있다. 등산로는 빗물에 패여 바위와 골파진 사이로 발딛기가 쉽지 않다. 약 30분 내려서면 하늘샘에 닿으며 이곳에서 또 약 20분 내려서면 하늘재에 닿는다. 하늘재에서 미륵리까지는 3.2km. 오솔길 같은 느낌의 옛길을 약 1시간정도 걸어 내려오노라면 옛정취 가득한 미륵사지가 나타나며 산행이 종료된다.     

 

▲ 백두대간 종주자들에게 요긴한 식수를 제공하는 백두대간 하늘샘 ⓒ 2008 한국의산천 

▲ 하늘재에 서있는 계립령 유허비 이곳 하늘재에서 미륵리까지 약 3.2km  ( 아래 페이지에 별도로 상세히 소개) ⓒ 2008 한국의산천

 

포암산과 부봉 사이에 있는 하늘재(계립령 525m)
한적하면서도 운치있는 길 멀리 신라시대부터 개척되었다는 '하늘재'

전국토가 거의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에는 산줄기 사이로 수많은 고갯길이 뚫려있다. 미시령, 한계령, 대관령, 추풍령, 조령으로 불리는 문경새재 등이 있다.

이렇듯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개는 모두 한반도의 근간을 이루는 백두대간의 안부(산봉우리 사이에 말안장처럼 낮은 부분이나 고개)를 이루는 곳에 있다. 그렇다면 백두대간의 수많은 고개들 중에서 제일 먼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고개가 바로 충북 충주시 미륵리와 경북 문경읍 문경 관음리를 잇는 하늘재(525m)다.
계립령(鷄立嶺), 마목현(麻木峴), 한훤령(寒暄嶺) 한티,천티등으로도 불렸던 하늘재를 처음 연 나라는 156년에 한강을 차지하려는 신라에 의해 만들어진 길이다. 지금도 하늘재 북측에 길이 480m의 차단성 형태의 석성유지(石城遺址)가 있다

신라가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길을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고구려의 온달 장군이 남진을 위해 다녔던 길, 고려의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경주로 몽진을 할때도 이용했던 길, 조선 태종때 문경새재 길이 새로 나면서 부터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지만 문경에서 충주로 넘어 오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이재를 넘었다.
우리가 흔히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절,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하게 벌였던 싸움은 궁극적으로 한강유역을 차지하고자 하는 싸움이었다. 국토의 중앙을 흐르는 한강 주변은 국토 전체를 종횡으로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서해의 뱃길을 통해 당시의 선진국이었던 당나라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길목이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차지하는 것은 나라 발전의 가장 중요한 땅을 손에 넣는 일이자 삼국간의 싸움에서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문경쪽에서는 하늘재까지 도로가 나있으나 충주쪽인 미륵리에서 하늘재까지는 도로가 없으며 옛길 그대로의 소로길이 보존되어있다.
 

▲ 하늘재에서 미륵리로 이어지는 옛길 ⓒ 2008 한국의산천 

▲ 옛길을 따라 미륵리로 하산 ⓒ 2008 한국의산천 

▲ 미륵리 미륵사지 바로 위쪽에 설치된 하늘재 표석 ⓒ 2008 한국의산천 

▲ 미륵사지 ( 아래 페이지에 별도로 상세히 소개) ⓒ 2008 한국의산천

 

미륵사지
미륵리사지는 사적 제317호로 1987년 7월 10일 지정되었다. 이 미륵리사지 내에는 보물 95호인 5층 석탑과 96호인 석불입상이 있고 지방 유형문화재 19호인 석등과 33호인 3층석탑이 있다. 
  이곳의 석불은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이며 석불이 있는 석굴의 방형의 주실은 가로 9.8m, 세로 10.75m의 넓이이며 높이 6m의 석축을 큰 무사석으로 쌓아 올렸고 그 가운데 불상을 봉안하였다. 석축 위에는 지금은 없어진 목조 건물이 있었으며 전당은 목조로 된 반축조석굴이다.
모든 조영계획은 석굴암을 모방하였고 규모가 웅장한 반면에 퇴화과정이 역력한 석굴이라 하겠다. 본 사지는 1977년과 79년 두차례에 걸쳐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이 이루어져 그 윤곽이 다소 드러나게 되었고 1982년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도 발굴한 바 있으나 확실한 년대는 알 수 없고 발굴 당시 미륵대원이라고 쓰인 기와가 발견되어 삼국유사에 미륵대원 등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일연 스님이 살았던 그 이전에 지어진 사찰이라는 것이 확실히 고증되므로 고려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즉 관련 유물과 기록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찰은 고려초기인 11세기경에 창건되었다가 고려후기인 고종때 몽고병의 침입으로 소실된 듯하며 사찰 이름은 미륵대원 이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와 누이 덕주공주 남매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하늘재를 넘다가 충주 미륵대원지의 대불과 월악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덕주사 마애불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래서 석불입상은 마의태자 상이요, 월악산 덕주사 마애불은 덕주공주 상이라 여겼다. 마애불은 남향이고, 석불이 북향인 까닭은 두 남매가 마주보기 위해서라고 주민들은 그렇게 믿고있다.

마의태자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로 나라가 망하자 금강산으로 들어가 베옷을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며 일생을 마친 비운의 태자이다.

 

▲ 미륵리 토속 음식점에서 하산주 한잔씩 하고 귀가.ⓒ 2008 한국의산천

     
주변볼거리
남한강 줄기를 끼고 있는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 일원은 다른 말로 ‘중원中原’이라고 불렸다. 문자 그대로 국토의 중심부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지역에 형성된 문화권, 이른바 중원문화권은 고대 삼국문화의 접점을 이루고 있는 문화유적지라는 점에서 둘러볼곳이 산재한 곳으로 손꼽힌다.
송계계곡,  만수계곡,  용하계곡,  고무서리계곡, 하늘재, 미륵리사지, 덕주사. 

 
드라이브 코스 충주호
충주호를 따라가는 호반길은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남제천IC에서 청풍문화재단지까지 20여분 코스가 가장 풍광이 좋다. 봄이면 벚꽃터널을 이루는 이곳은 절경을 이룬다. ‘태조왕건’ ‘제국의 아침’ 등을 촬영한 KBS 촬영장,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문화재 1,600여점을 모아놓은 청풍문화재단지 등이 볼거리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남아있는 한벽루, 보물로 지정된 청풍석조여래입상 등을 볼 수 있다. 길은 청풍문화재단지를 지나 내륙으로 이어지며 상천리 방향으로 가면 옥순대교까지 호반도로가 이어진다.

 

잠자리
수안보내 호텔 및 장급여관이 많이 있어 숙박하기가 편리하며 송계리와 동쪽 덕산면에도 민박집 다수. 수안보온천, 문강유황온천, 앙성 탄산온천이 있다.

 

교통안내
영동고속도로 - (여주에서) 중부내륙 고속도로 - 수안보 IC - 수안보 - 미륵리 

26620

 

'MTB등산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켄과 햄머  (0) 2008.08.20
산으로 또 산으로  (0) 2008.08.20
하늘재 계립령  (0) 2008.08.18
미륵리 미륵사지  (0) 2008.08.18
충북 포암산 만수봉 개인 단체사진  (0) 2008.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