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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음악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 전용문

by 한국의산천 2008. 5. 25.

산악소설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 (전용문著)] [2008· 5· 25· 일요일 맑음  www.koreasan.com 한국의산천] 

주말, 산행계획이 없기에 밤을 세워 책을 읽었다. 가끔 이책을 손에 잡는다. 몇번을 읽고 또 읽으며 삶에 대해 담금질을 한다.

 

왜 산에 오르는가?

'갈곳이 없어 산으로 간다'

 

일요일 아침 출근 전에 잠시 영흥대교 주변까지 다녀오며 그 시간내내 이 책속의 내용과 주인공들의 삶, 수만은 글자들이 내머리를 온통 뒤덥고 쉽쓸고 있었다. 몹시 안타깝고 혼란스러웠다.

 

마루에서 헤어진 그 사람은 아직도 그곳에서 기약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남아 있을까?

 

▲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 [전용문著]ⓒ 2008 한국의산천 

 

 책을 다 읽고 난 후 또 다시 작가 전용문님께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몇해전 그분께 전화를 하고 인사를 나눈후 잠시 문의를 드렸다.후편이 나올것이냐고...

그 작가님께서 이 책에 대한 후편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책을 손에서 놓는 순간 가슴이 아리고 많이 허전하고 소설 극중인물들의 그 후 삶이 궁금해졌다.

그래, 출근을 해야하는 일요일이지만 잠시 바다를 둘러보고 출근하자.

 

전용문 그는 누구인가?

마산高 ·부산大 의대  

학창시절 부터 산을 다닌 전문 산악인

現 신경외과 의사(의학박사)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소설 <바람,저편> 으로 등단

주요 저서 : 산악소설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 에세이집 '새벽에 찾아온 손님', 창작집 '후송병원의 개' 등 다수..

 

전용문 그는 의사인가 소설가인가 산악인인가.아니면 이 시대의 우울한 방랑자인가?   

그는 산악인의 눈에 비친 현실의 삶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스스로의 고통을 극사실적으로 써내려갔다. 삶의 슬픔을 통하여 산을 오르고 둘과의 아픔을 서로 위로했다. 이 책의 모든 글들이 마치 전용문 작가(의학박사)의 일상의 경험담처럼( 적어도 산행만큼은 경험적인 사실에 근거한 논픽션으로 보인다)  적어 내려갔다.

이책은 그 자신이나 주변에 관한 허무의 통곡인가 아니면 한번쯤 겪은 어두운 시절의 우울한 이야기인가. 또는 산꾼 아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이가 겪는 아픈 현실을 말한것은 아닌지...

 

▲ 영흥도에서 ⓒ 2008 한국의산천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 등장인물 

김명후 (신경외과 의사,산악인)

박산조 (의사 산악인: 김명후 후배)

강재희 (강릉 바닷가 근처 카페 여주인)

문미영 (강릉 출신 화가 산악인)  

 

신경외과 의사이자 산꾼인 김명후와 박산조. 아픔을 지니고 사는 그들이기에 언제나 마음은 채워지지 않고 허허로울뿐 어떤것으로도 담아낼수없는 부질없는 일상의 생활에서 시간만 나면 오직 산만을 갈구하는 길고 긴 꿈을 꾸게 된다. 둘은 서울을 떠나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강릉에 있는 병원으로 적을 옮긴 후 진료가 끝나면 서로 웃고 한잔하며 농담을 나누지만 마음으로는 언제나 허전한 휑한 바람이 들락거렸다. 그리고 둘은 산을 올랐다. 

 

▲ 영흥대교 ⓒ 2008 한국의산천

 

주인공 김명후와 박산조는 서울의 생활을 청산하고 강릉의 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주말이면 서울의 집으로 가지 않고 산에 올랐다.

눈 덮힌 설악... 천불동, 공룡능선, 화채릉, 소금강 오대산, 월악산, 소백산.... 폭설이 내린 날 대관령에서 제왕산을 넘어 강릉까지 걷기.학회에 참석해서 등록만 하고 지리산 종주하기...

 

주인공 김명후(의사 산악인)는 군의관 시절 여의사와 결혼하였으며 평탄치 않은 결혼 생활의 갈등으로 인해 돌이켜 세울 수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강릉으로 병원을 옮긴 후 무너져 버린 비상의 꿈을 배낭에 쓸어넣고 하염없이 산에 올랐다. 하지만 결혼 15년 만에 부인의 요청에 의해 이혼한다. 

 

박산조(의사 산악인)

김명후를 형처럼 따르는 후배 의사. 스물아홉살에 결혼. 신혼 6개월이 되던때 그해 가을 아내를 태우고 부산 본가로 가는 도중 연쇄 충돌사고로 인하여 부인 사망. 선배 김명후가 강릉의 신설병원으로 옮기자 서슴없이 따라옮겼다.

서른네살의 불쌍한 산조. 가끔은 허튼소리를 잘하고 술도 잘하며 수다를 떨지만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언제고 마르지 않는 슬픔의 샘물이 고여있다. 사람들은 산조의 얼굴에서 그의 고뇌를 쉽사리 발견하지 못하겠지만 그는 하루에도 몇차례씩이나 자기만의 샘을 들여다보며 슬픔과 외로움으로 혼자 치를 떨곤 하는 여린 사내.    

잠시 산에서 만난 문미영과 산행을 하면서 마음을 잠시 여는듯하지만 박산조는 히말리야 원정대의 팀 닥터로 김명후 대신 원정길을 떠난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생활을 하나둘 정리하며 다시 각자의 새로운 길을 찾아 모두 헤어지게 된다.

  

▲ 영흥대교 ⓒ 2008 한국의산천

 

불 밝은 열차의 창속을 바라보며 다시는 서울로 되돌아 갈 수없는 열패감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제 서울은 나를 감동 시킬 가슴도, 미련을 둘 땅도 부재하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산화하여 한줌의 재로 세상에 남겨지기를 원했다. 죽어 재가 되어버린 나는 밤이 오면, 바위와 숲속에 흩어진 혼백을 불러 일으켜세워 길을 밝혀주는 작은 등불이 되고 싶다.

 

산마루에서 헤어진 그 사람은 아직도 그곳에서 기약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남아 있을까?

  

▲ 영흥도 포구 ⓒ 2008 한국의산천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되면 사람들은 원하던 원치않던 울타리를 갖게된다. 세월이 지나면서 울은 높아지고 두터워간다.

여자는 울타리 속에 영원히 남자를 가두려 하고 남자는 한사코 그곳을 뛰어 넘으려 한다. 가정에 대한 저버릴수없는 끈끈한 집착은 순수한 애정과 피할길 없는 의무가 혼합되어 남자의 목덜미를 휘어잡고 있는 셈이다.

 

가정은 모든것을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지녔지만 또한 동시에 하고자 하는 어떤것도 단념하게 하는 제약성도 갖는다. 길들여 지지 않는 자는 부단히 담을 부수려 든다. 그리하여 거침없이 광야로 내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 대부도 방아다리 버스 정류소의 젊음. 젊음에는 자가용이 필요치 않다. ⓒ 2008 한국의산천

 

살아감의 향기를 맛볼 수 있음은 소유를 버릴 때 가능하다. 미증유의 물질적 풍요는 얼마간의 만족을 줄지 모르지만 또 다른 족쇄를 채우며 인간을 감금시킨다.

 

나는 오랫동안 산에 다니면서 생애중 세가지 실수에 대하여 수없이 긍정 하면서도 아직도 현실의 상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욕심의 늪에서 헤어나지 않고  머물고 있는 꼴이다.

사람들은 마음을 비웠다고 한다. 나도 어느땐가 그런말을 했다.하지만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자기 살아갈집 튼튼히 지워놓고 백년간 먹을 양식 쌓아두고 나서 나는 이제 마음 비웠으니 산에나 가겠다는 것은 구역질 나는 개소리다. 곳간을 열어두고 이웃들에게 그간 쌓아논 재물을 나누어 준 후에 길을 떠나야 한다.

 

진정으로 자유로운것은 되돌아 가도 자기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때 그때만이 참다운 자유인의 반열에 당당히 들수가 있다. 그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神의 경지다. 어찌 내가 神의 경계를 넘나보며 마음을 비웠다고 가당찮은 언변을 늘어 놓을 수가 있었던가.

 

그러나 나는 조금씩 터득 해 가고 있다. 山 만이 결국 세상의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게 해서 人間이 궁극적으로  갈구하는 自由를, 그리고 해탈을 얻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라는것을.-본문중에서-

   

 

▲ 선재도 목섬 풍경 ⓒ 2008 한국의산천

 

힘겹게 산을 오른 후 더 올라설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그때는 어디를 가고 싶게 될까? 하늘로 오를 것인가? 정상의 마지막 바위 끝에는 하늘문을 여는 빗장이 놓여 있는가? 우리는 그 빗장의 문고리를 잡기위해 끝이 보이지 않게 반복되는 길고 긴 산행의 장막을 한겹 한겹 헤치고 있는지 모른다.

 

산은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 무한한 뜻을 지닌다. 언제나 침묵하는 자세로 우리들 곁으로 다가와 혼탁해진 사람의 가슴을 열게하고 순백한 애정의 한자락을 심어준다. 

 

▲ 선재도 목섬 ⓒ 2008 한국의산천

 

영원히 시를 못쓰는 시인의 안타까움에 비견해서 영원히 등산 할수없는 산악인의 마음 또한 가슴 아픈일이라면 지금 두다리로 설수있고 걸을 수 있을 때 산을 찾아나서는게 지금 내가 차려야 할 행위가 아니던가? 그래서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눈 내린 산의 정상에 서서 겨울 바람과 마주하고 섰을 때 비로소 참다운 자신을 발견하고 세파에 찌든 정신을 벗겨 낼것이다. 

 

▲ 선재도 목섬 ⓒ 2008 한국의산천

 

마음의 상처를 입는것을 의식을 하고 있던 못하던 살아가면서 무시로 용케 뛰어넘는 사람들이야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한번의 깊은 상처만으로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젊은날의 좌절은 허무와 죽음에 이르는 통로를 끝없이 기웃거리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참을 수없는 혼란기는 있기 마련이다. 젊은 날을 담금질하듯이 들쑤셔 놓은 상처는 세월이 지나면 정교하게 다듬어져 점차 제자리를 찾게 된다. 그것이 연륜이다.

   

▲ 영흥도 ⓒ 2008 한국의산천

남의 일을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자유롭고 싶다는 맹목성을 허무한 자기 도취나 어린애 같은 유희라고 판단하여 말해서는 안된다.

자유는 단지 자신을 찾아가는 힘든 구현일지 모르나 때로 그것을 스스로에게 증명되기 위해 피를 말리는 투쟁을 해야한다.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로,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아예 울을 박차고 나갈 생각을 버리고 숨죽여 사는것이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자기 몸에 가장 잘 맞는 옷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듯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만이 최선의 선택이다.

 

▲ 영흥도에서 ⓒ 2008 한국의산천

 

유월에 들어서며  김명후와 박산조는 병원에 사표를 냈다. 낮술을 마시고 노란 배추꽃이 질펀하게 피어있는 한낮의 밭두렁에 퍼질고 앉아 허무해서 그냥 목놓아 울고 싶은 그날에 산조는 김명후를 대신해서 네팔로 떠났다.  

산조가 히말리야로 떠나고 김명후는 치욕과 미움의 인연을 털며 부인과 15년간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고 남행열차를 타고 지리산계곡의 조용한 마을로 간다.

 

▲ 선재도 목섬 ⓒ 2008 한국의산천

 

여울처럼 지나간 날들의 후회스런 시간들 끊임없이 삶의 고난과 마주치며 외로운 궤적을 밟고 온 세월, 뛰어넘어도 상관없을 지나간 공백의 시간, 삶에 진공이 생길 때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나태와 자폐뿐이다.

 

삶은 조여진 줄처럼 긴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경직되어 있기만 한다면 그 생 또한 쉽게 부서지기 쉽다.  삶을 시행착오 없이 살기란 힘들다. 착오는 시간의 낭비를 가지고 오지만 어쩔도리가 없다. 미래를 살아보지 않는 한 수레바퀴 돌 듯 쉬지않고 진행되는 일상을 정지 시킬 방법은 부재하다. 후회하면서도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미답의 산을 처음 오르려는, 그래서 정상에는 무엇인가 기대할 만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산행과 동질성을 띤다.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미지의 산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나간 족적을 헤아려 보는 회상과 다를바 없다. 우리는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김명후(의사·산악인):그는 강릉병원의 사표를 내고 치욕과 미움의 인연을 털며 이혼을 하고 남행열차를 탔다. 과연 지금 지리산 자락 의신마을에 살고있는지..

박산조(의사·산악인): 히말리야의 산 등반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하여 다시 의사로서의 병원생활을 영위하겠지. 

강재희(카페주인):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했던 남자 김지섭은 미국으로 떠난 후 그곳에서 교포여자와 결혼을 했다. 강재희가 미국으로 들어간다는것도, 김지섭이 한국으로 나온다는것도 오래전에 깨어진 약속이었다. 강릉의 카페를 처분하고 고향 대구로 가서 몸 요양을 하면서 아직도 김명후를 떠올리는지... 

문미영(강릉출신 화가·산악인): 아직도 솔로 산행을 하며 박산조와의 재회를 기다리는것일까? 

 

우는 산 느끼는 산

어떤 산행이던 자기가 하는 등산만이 정통하다고 생각하는 단편은 광신이며 그 자체가 아집을 낳아 산에 다니는 사람끼리 편가르기를 하게되고 다툼을 낳은다. 바위를 하던 백두대간을 타던 집뒤의 작은 동산을 오르건 간에 진정한 자연의 소리를 느끼면 되는것이다. 산에 오르는 진정한 그 무엇인가를 느끼지 못한다면 산을 오르는 의미가 없는것이다.  

단: 산에는 변수가 많은곳이기에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준비된 장비와 마음가짐, 그리고 등산에 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안된다.

  

▲ 추억의사진. 1985년 설악산 동계훈련중 마등령 표석 옆에서...한국의산천  ⓒ 2008 한국의산천

그간 어떻게 살아왔나 산 정상만을 추구하며 돌쇠처럼 산을 오르고 삶 또한 앞만보고 달려오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나에게 남은것이 무엇이었던가? 그래 정상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오를만큼 오르는거야. 지쳐 더이상 오르지 못하겠다면 돌아서며 그곳이 자기가 선택한 종착지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 삶 또한 그렇게 살아야해. 자신의영혼이 잘 따라오나 뒤를 돌아보면서...  

 

사춘기 까까머리 학창시절, 우울했던 젊음을 배낭에 넣고 산행을 같이 했던 岳友들... 그들중에는 대부분 산을 떠나 사회에 안착하고 살거나 또 다른 취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부 친구들은 아직도 산으로의 끝나지 않은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려 진짜 산꾼은 산에 집착하지 않는다. 산은 이미 우리들의 가슴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산 자체로부터 초월해 있지 않다면 산을 오르는 행위는 가치없는 일이다.  

내가슴에 존재하는 산 정상에 올라 하늘로 통하는 문의 빗장을 열수있을까?  그래 사람은 각자대로 운명의 길을 살아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