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봉수산(483.9m)과 임존성 답사.
문화재 답사와 가족등산에 좋은 산
답사코스 : 예산 향천사~ 봉수산 대련사 ~ 임존성~ 봉수산 . 답사 : 솔향, 산정, 한국의산천 (3명)
[답사 : 2007. 11. 25. 안개가 무척 낀 일요일 한국의산천 ]
새벽 4시 예산을 향해서 출발.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연신 떠오를 만큼 짙은 안개가 온 사방을 잠식하고 있다.
예산으로 가는 길의 시야는 30m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스물거리는 안개속에서 나침판에 의존하며 점멸등을 키고 남쪽으로 달려 힘들게 예산역 앞에 도착했다.
역앞에 있는 시골스러운 해장국집에서 식사를 하며 해뜨기를 기다렸다.
봉수산
예산군에는 봉수산이 2개있는데 하나는 예당저수지를 품에 안고 홍성군 금마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예산군 대흥면에 있다하여 대흥산이라고도 불린다. 또 하나는 대술면에 솟아있어 공주시 유구읍과, 아산시 송악면과 3군의 경계를 이루고있는 봉곡사가 자리하고있는 봉수산이 있다.
한반도의 중추인 백두대간의 허리에서 갈라져나간 금북정맥이 천안 청양을 거쳐 대천 앞 서해에서 끝나게 되는데 이 일대에는 300~800m급 산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대흥면의 봉수산은 이 산들 중 하나다.
동편에는 예당저수지가 있는데 충청도에서 제일 클 뿐 아니라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정상 동남쪽에는 백제의 전략적 요충지인 사적 90호에 임존성(任存城)이 남아있다.
▲ 봉수산 지도 ⓒ 2007 한국의산천
백제의 역사와 억새가 함께하는 예산 봉수산(483.9m)
봉수산(483.9m)은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봄이면 충남의 진달래산으로, 가을이면 억새 산행으로 가족동반 산행으로 각광 받는 산이다.
산 중턱에 있는 임존산성 성곽을 따라 정상에 오르는 길은 초입을 지나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정상 부근에는 억새가 우거져 있고 오른쪽 성곽 아래에는 봉수산의 최대 진달래 군락지가 있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과 홍성군 금마면 경계에 자리한 봉수산(483.9m)은 백제의 역사가 숨쉬는 산이다. 백제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서기 660년에 멸망한 후 부흥운동을 펼쳤는데 거점으로 삼은 곳이 봉수산의 임존산성이다.
임존성이 실패한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인 탓인지 퇴락한 채 방치되어 있었으나 돌로 쌓은 성터는 아직도 뚜렷이 남아있으며 지금도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봉수산 산성안의 산마루에는 억새가 많아 한껏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산 아래의 예당저수지를 내려다보는 멋이 각별하고 도침대사가 창건했다는 대련사가 있다. 봉수산은 예당저수지 바로 곁을 따라 저수지의 서쪽에 솟아있는 산으로 대흥면 사람들은 대흥산이라 부른다.
산행은 대련사 아래에 있는 광시면 동산리에서 시작하고 하산은 효제비가 있는 대흥면사무소 소제비가 있는 대흥면 소재지인 동서리로 하는 것이 길을 찾기 좋다. 등산 시작과 도착지 모두 마을 모두 예당저수지 호반에 있으며 호숫가의 큰 길가에 있다.
예당저수지에서 상류쪽으로 이동하며 동산리 마을입구에 당도하면 길 들머리에 큼직한 대련사 안내돌표석이 서있다. 화살표 방향으로 개울을 따라 마을고샅을 지나고 나면 사과, 복숭아 등의 과수원과 축사가 길가에 번갈아 나타난다. 콘크리트 포장길이 서서히 가팔라지며 지그재그로 오르면, 큰길에서 25분쯤이면 대련사에 이른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절 왼편으로 개울을 따라 나 있다. 석축계단도 있는 가파른 길을 10여분 오르면 감나무가 있는 농막을 지나서 소나무 숲으로 길이 이어진다. 흙길이며 넓어서 걷기에 좋다. 이내 돌로 쌓은 성안에 들어선다. 동쪽으로 산비탈을 가로지르면 직선의 성줄기가 보인다. 주봉쪽으로 난 석성을 따라 조금 나아가면 너른 평지가 있고 '백제 임존성 청수'란 돌비가 서있다. 돌로 쌓은 깊은 샘으로 백제 부흥운동시 수공(물공격)의 원천이 되었던 샘이다.
주봉으로 오르는 길은 계속 성을 따라 엇비슷하게 오르며 서쪽으로 나아가다 남서쪽(월암리쪽)으로 뻗은 산등성이에 올라선다.
산등성이를 이용해 만든 성은 산마루에 이르기 전 주릉의 서쪽 비탈을 가로지르며 나아간다. 성 동쪽 끝봉우리까지 올라서 봉우리에서 주릉을 타고 조금 내려섰다가 북쪽의 보리똥나무 숲 사이를 가면 억새밭 우측에 장군바위가 보인다. 이 장군바위가 봉수산의 정상 구실을 하고 있다.
청수샘에서 장군바위까지는 30분쯤 걸리고 큰길가에서 장군바위까지는 1시간30분이 걸리는 셈이다. 넓은 바위면이 있는 장군바위에 올라서면 성안을 굽어보는 자리여서 옛날 전쟁시 장군이 싸움을 지휘하는 곳이라는 유래도 있다. 이곳에서는 발아래 백제 청수터가 있는 초원뿐만 아니라 예당저수지 등 조망도 훌륭하다. 북동편에 광덕산, 남동편에 계룡산과 칠갑산, 남쪽에 성주산, 서남쪽에 오서산이 보이고 자리를 옮기면 북서쪽에 용봉산, 가야산 등이 보인다.
하산은 정상 주변의 억새를 감상한 후 성의 북쪽 끝봉우리로 나와서 북동쪽의 큰비티고개로 나아간다. 임도와 만나는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깊이 꺾여드는 길로 약 1km 내려오면 대흥면사무소와 효제비를 만나게 된다.
등산코스
(대련사 등산로) 광시(동산리) - 대련사 - 남문지 - 성곽로 - 정상 - 큰비고개 - 대흥면사무소( 기록, 촬영포함 약 3시간 )
▲ 임존성 성곽 안내도 ⓒ 2007 한국의산천
▲ 주차장에서 대련사 오르는 길 ⓒ 2007 한국의산천
대련사 (大蓮寺)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656년
창건자 의각·도침
소재지 충남 예산군 광시면 동산리 봉수산 소재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다. 656년(백제 의자왕 16) 의각(義覺)과 도침(道琛)이 창건하였다. 인근 임존산성(任存山城)에 연당(蓮塘)과 연정(蓮井)이 있어서 절 이름을 대련사(大蓮寺)라 하였다. <동국여지승람>과 <범우고> <가람고> 등에는 대련사(大連寺)라고 적혀 있다. 845년(문성왕 7) 무주(無住) 무염(無染)이 중창하였고, 1648년(조선 인조 26)과 1691년(숙종 17), 1745년(영조 21)에 각각 중수하였다. 1836년(헌종 2) 보월(普月)이 수선당(修禪堂)을 중수하였으며, 1843년(헌종 9)에는 노전(爐殿)을 새로 지었다. 보월은 1849년(헌종 15)에도 법당을 중수하여 절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이후 1975년 원통보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근대 불화의 대가 문성(文性: 1876∼1954)이 머물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 극락전 ⓒ 2007 한국의산천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전과 노전,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7호로 지정된 문화재로서, 본래는 원통보전이라고 하였으나 1975년 해체 보수할 때 <대련사법당중수상량문>과 함께 ‘극락보전’이라는 현판이 발견되어 극락전으로 바꾸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양옆에 눈과 비를 피할 수 있는 풍판이 달려 있다. <대련사법당중수상량문>에 1648년과 1849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유물로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8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높이 260cm이며,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이 올려져 있고 그 위에 상륜부가 있다. 탑신부 3층에 이질적인 형태의 옥개석이 삽입되어 있어 마치 4층 탑처럼 보인다. 이 옥개석은 거의 마멸되지 않아 후대에 끼워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두산백과사전참고-
▲ 요사채 ⓒ 2007 한국의산천
임존성 내에 연당(蓮塘)과 연정(蓮亭)이 있어 대련사(大蓮寺)라 한다는 이 절의 현판에는 백제 의자왕 때 의각(義覺)이 창건했다 했는데, 군청홈페지에는 백제승려 도침이 복신과 함께 이 성을 지켰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도침이 창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 산정과 한국의산천 ⓒ 2007 한국의산천
▲ 솔향님 ⓒ 2007 한국의산천
▲ 대륜사에서 봉수산 오르는 길 ⓒ 2007 한국의산천
▲ 처음 만나는 성터 ⓒ 2007 한국의산천
▲ 성터위에서 솔향님 ⓒ 2007 한국의산천
▲ 임존성과 헬기장이 있는 정상부 ⓒ 2007 한국의산천
임존성( 사적 제 90호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 봉수산)
예산군 광시면과 대흥면, 홍성군 금마면이 만나는 지점에 해발 483.9m의 봉수산이 솟구쳐 있다. 이 산 산정에 조성된 임존산성은 높은 곳에 우물을 파서 물을 그 안에 모았다가 적의 공격 때 물꼬를 터뜨려 1차적으로 곤경에 빠뜨리고 결정적인 공격을 가할 목적으로 쌓은 성이다. 임존산성은 약 4km의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성벽의 높이는 2.5m, 폭은 3.5m인데 남쪽의 성벽은 굴곡이 심하여 성내에는 7~8m의 내호가 둘러져 있다.
외벽은 돌로 쌓여 있고 안은 흙으로 메워진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성주 약 5,194척, 높이 약 2.5m 폭 약 3.5m로 말을 타고 달려도 넉넉할 정도다. 의자왕 20년에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망했을 때 의자왕의 사촌 동생 복신, 도침(스님)과 흑치상지가 3년여동안 후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으로 활용하였으며 백제의 산성 중에서도 그 규모가 가장 커서 산성 연구에 많은 기초가 되고 있다. 이 성곽을 따라 내려 가면 대련사를 만날 수 있으며 정상에서는 남에서 서로 뻗어 줄기를 같이하는 오서산, 백월산, 가야산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이 성의 특징은 네 모서리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다른 곳보다 2m정도 더 두껍게 내탁하였으며, 성의 높이도 더 높게 축조하였다.
▲ 새로 보수한 임존성 ⓒ 2007 한국의산천
임존성
외면 석축, 내면 토석 혼축, 둘레 2,450미터, 넓이 28만8천 평의 이 성은 백제의 고성이라는데 성안에 물을 모았다가 적이 쳐들어올 때 물꼬를 터 공격하는 이른바 수정식 성으로는 세계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흥현 편에 보면 봉수산은 진산이며, 임존성은 백제의 복신(福信), 지수신(遲受信), 흑치상지(黑齒常之) 등이 당나라 장수 유인궤(劉仁軌)에 항거하던 곳인데 본 읍 관아 서쪽 13리에 옛 돌 성이 있어 의심컨대 이 성이 아닌가한다. 고려태조가 후백제의 임존성을 공격하여 형적(刑積) 등 3천여 명을 죽이고 잡았다고 하였다.
또 부여현 편에는 이들 백제 충장(忠將)들의 활동상황이 자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무왕의 조카인 복신은 의자왕이 항복하니 승려 도침(道琛)과 함께 왕자 부여풍(扶餘豊)을 왕으로 세우고 당나라 장수 유인원을 포위하였는데 유인궤가 공격하여 임존성으로 물러가 자칭 상잠장군이라 하였는데 뒤에 부여풍에게 피살되었고, 의자왕 때 달솔 겸 풍달장군이 된 흑치상지는 소정방이 의자왕을 잡은 뒤 노략질을 일삼으니 도망자 3만을 모아 임존성을 지켜 소정방이 공격해도 이기지 못했는데 뒤에 당나라 황제가 사신을 보내어 권유함으로 항복했으며, 당나라 장수 유인궤가 백강에 이르러 공격하자 부여풍은 달아나고 왕자 부여충승과 충지 등은 모두 항복했는데 지수신 만은 임존성에 웅거하다 성이 함락되자 처자를 버리고 고구려로 망명했다 하였다.
▲ 정상으로 이어지는 성곽 ⓒ 2007 한국의산천
▲ 백제 임존성 청수와 표석 ⓒ 2007 한국의산천
▲ 백제 임존성 성벽의 일부가 되어버린 묘순이 바위 ⓒ 2007 한국의산천
▲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솔향님 ⓒ 2007 한국의산천
▲ 헬기정에서 바라 본 월암리 ⓒ 2007 한국의산천
▲ 헬기장 주변 풍경 ⓒ 2007 한국의산천
▲ 장수바위 위치로 추정되는 전망 좋은 곳 ⓒ 2007 한국의산천
▲ 월암리를 바라 보는 산정과 솔향님 ⓒ 2007 한국의산천
▲ 임존성에서 봉수산 삼각점으로 이어지는 안부상의 이정표 ⓒ 2007 한국의산천
▲ 봉수산 정상 오르기 ⓒ 2007 한국의산천
▲ 봉수산 정상의 삼각점 (1985. 홍성)ⓒ 2007 한국의산천
▲ 동쪽 예당저수지 쪽에는 가스로 가득찼다.ⓒ 2007 한국의산천
▲ 북쪽방면의 운해 ⓒ 2007 한국의산천
▲ 아름답고 황홀한 운해 ⓒ 2007 한국의산천
▲ 구름의 바다 ⓒ 2007 한국의산천
▲ 큰 비티고개로 내려서는 급경사 길 ⓒ 2007 한국의산천
▲ 큰 비티고개 ⓒ 2007 한국의산천
이곳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난 시멘트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
▲ 비티고개에서 대흥면사무소까지는 약 1km ⓒ 2007 한국의산천
▲ 하산 중에 봉수산 자연휴양림과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난다 ⓒ 2007 한국의산천
▲ 안개속에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풍경 ⓒ 2007 한국의산천
▲ 아래로 내려 올수록 안개는 더욱 더 심했다. ⓒ 2007 한국의산천
▲ 안개속을 헤치며 대흥면사무소로 이동 ⓒ 2007 한국의산천
▲ 대흥면사무소 앞에 있는 실존인물 의좋은 형제상 ⓒ 2007 한국의산천
옛날 어느 마을의 형제가 서로 살림을 걱정해 자기 볏단을 몰래 넘겨 주다가 서로 만났다.는 이 얘기는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대흥면 상중리에 살았던 이성만, 이순 형제의 실화이다.
세종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돼 구전되다가 1978년 이 마을에서 연산군의 지시로 건립됐다는 형제의 효제비가 물빠진 저수지에서 발견돼 실화로 밝혀졌다.
▲ 봉수산 전경. 왼쪽 대륜사로부터 오른쪽 짤록한 큰비티고개까지 전경ⓒ 2007 한국의산천
▲ 하산을 하면 바로 길가에서 예당 저수지를 만난다.ⓒ 2007 한국의산천
예당저수지 (禮唐貯水池)
예당저수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민물호수 호수면적 329만 평, 저수량 4,600만 톤, 예산과 당진을 합한 몽리면적 1만 핵타, 그래서 이름이 예산과 당진의 이름을 딴 예당(禮唐)저수지로 불린다.
충남 예산군의 대흥면(大興面)과 응봉면(鷹峰面) 사이에 있는 저수지로 면적 약 9.9 km2. 둘레 40 km. 너비 2 km, 길이 8 km. 예산군 및 당진군에 걸친 넓은 홍문(鴻門)평야를 관개하기 위하여 1929년 4월에 착공, 8 ·15광복 전후에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46년부터 예당 수리조합의 주관으로 공사가 재개되어 63년에 완공하였다.
댐의 높이 12.1 m, 길이 247 m. 무한천(無限川), ·신양천(新陽川) 등이 흘러들어와서 호수를 이루고 댐에 설치된 26개의 자동조절 수문을 통하여 다시 무한천이 되어 북류한다. 관개면적이 3만 7,400 km2에 달하는 충남 유수의 호수로, 상류의 집수면적이 넓어 담수어의 먹이가 풍부하게 흘러들어오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낚시터로서도 유명하다.
교통안내
1) 서울출발
서울→경부고속도로(84㎞)→천안IC→국도45호(47㎞)→예산→응봉사거리→지방도619호 (보령방면 7㎞)→봉수산(대흥면)
2) 대전출발
대전→유성→국도32호선(26㎞)→공주→국도32호(55㎞)→예산→응봉사거리→지방도619호(보령방면 7㎞)→봉수산(대흥면)
현지교통 : 예산에서 광시입구(마사리)까지 시내버스 수시 운행, 40분 소요
주변명소
예당저수지(예당관광지, 의좋은형제 공원), 가야산, 덕산온천,남연군묘, 수덕사, 남은들상여, 윤봉길의사 사적지, 추사고택,향천사.
관광 문의처 : 예산군청 경영문화관리실 (041-330-2858), 대흥면사무소(041-330-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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