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곳에 보물이 5개가 모여있는 홍천 내촌면 물걸리 폐사지와 백우산 경수골 답사
(답사코스: 물걸사지 ~ 백우산 경수골 계곡) 2007년 7월 21~22일 (토,일요일)
홍천 물걸리 (동창 東倉 마을) 둘러보기
▲ 물걸리 동창마을 전경
강원도 홍천의 동쪽에 위치한 물걸리 거래되는 물류의 물량이 많아서 물거리(物巨里) 인가 물류의 량이 걸쭉해서 물걸이(物傑里)인가? 어쨌던 홍천강이라는 수운이 있기에 물류운반과 보관을 하던 장소임에는 틀림없는 곳이라는 것을 마을 이름에서도 어줍짢게 유추해본다.
홍천읍에서 속초방향(44번 국도)으로 가다가 철정검문소에서 우측 451번 지방도를 가다 보면 내촌면소재지를 뒤로하고 와야삼거리에서우회전 6km쯤 지나 동창마을에 이르게 된다. 행정구역명은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이나 그 이름보다는 동창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동창(東倉)이란 지명은 중종때 대동미 수집 창고가 홍천의 동쪽에 위치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영서지방에서 거둬 들여 매년 정기적으로 서울의 경창(京倉)으로 수송하던 세곡을 집결 시켰던 창고가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홍천 동창마을은 백두대간의 한 지맥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 300m 의 마을이다. 홍천 시내에서 약 1시간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양양까지 약 한시간 반 정도면 도착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마을 앞쪽으로는 4계절 수량이 풍부한 내촌천이 있어 주변 산의 완경사면을 이용한 논,밭 농사가 발달 하였다.
지리적으로는 백두대간 서쪽 사면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악지방 홍천. 홍천은 횡성과 함께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이다. 북동쪽으로는 가마봉,소뿔산,백암산, 가득봉, 응봉산등 1천m 이상의 장중한 산봉우리들이 에워싸고 있어 외진 산골 오지쯤으로 보이나 골안으로 들어서면 듬직한 산그늘 사이로 하얀 백사장이 아름다운 내촌천이 흐른다.
인제 쪽에서 발원하여 서쪽을 지나 북한강 청평호와 합류하기 위해 150㎞를 쉬지않고 흘러내리는 홍천강의 옛 이름은 화양강(華陽江). 이 유장한 물길이 있었기에 예로부터 홍천강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수운(水運)이었으며, 그 탓에 내촌면에는 거대한 나루터와 나라의 곡물보관 창고인 동창(東倉)이 있어서 횡성과 더불어 도내에서 가장 물물교환이 번성했던 곳이다.
물류의 중심지 동창마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의 역사는 고대국가인 맥국시대 이전에 신석기 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확인 되고 있다. 물걸리 촌락의 형성 시기는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홍천현 관할로 지정 되어지며, 이름이 등장하였고 촌락 형성 시기는 고려 명종때에 3성씨의 불자가 이 곳에 절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로 보고 있다.
이후 조선시대 중종 때 세곡을 모으던 동창이 이 곳에 생기면서 부터 마을이 크게 발전 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운제도(세곡 수송제도)가 없어진 뒤에도 곡물과 소금의 집산지로 동창마을은 그 이름을 이어 왔다고 전한다
마을지명의 유래
물걸리(物傑里) 내촌면(乃村面) 동남쪽에 있는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 지역으로 물거리(物巨里) 또는 물걸리(物傑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복곡, 동창, 감두리, 새마을, 탑둔지, 자근솔치, 장수원, 조상골, 조룬, 된재를 병합하여 물걸리라 한다.
동창(東倉) [창촌(倉村), 창말, 비석거리]
물걸리 서남쪽에 있는 큰 마을. 조선조 때 홍천현의 동창(東倉)이 있었으며, 조선조의 역촌(驛村)으로 서울∼영동간 교통 중심지로 집산지였음.
▲ 서석과 동창마을로 가는 삼거리 ⓒ 2007 한국의산천
▲ 물걸사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대승사 표지 ⓒ 2007 한국의산천
▲ 물걸리 삼층석탑(보물 제545호) ⓒ 2007 한국의산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 물걸리사지
강원도 기념물 제 47호로 지정 되어 있는 물걸리사지는 절에 관한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말기 혹은 고려 초 까지 이어지는 시기에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만 추정하고 있다. 물걸리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545호)
물걸리 절터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삼층석탑으로 현재의 문화재 보호각 오른편에 절이 있었음을 암시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탑은 절터에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세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 각 면의 가운데 기둥이 줄어든 점과 3층에서의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든 점 등으로 보아 9세기 후반 양식으로 보여 진다.
▲ 전각을 짓고 한곳에 보물을 모아서 보존 보관하고 있다.ⓒ 2007 한국의산천
1971년 7월 물걸리 이곳에서는 석조여래좌상( 石造如來坐像)(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石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542호), 대좌 ( 臺座 :보물 제543호), 대좌 및 광배( 光背 :보물 제544호) 등이 발견되어 현지에 지정,보존되어 있다.
▲ 기미만세공원 ⓒ 2007 한국의산천
항일구국운동의 불꽃이 타올랐던 역사의 장소
기미만세공원은 항일구국운동의 사적지로서 1919 년 3월 1일 내촌면, 서석면, 화촌면, 기린면, 내면 등 홍천군 관내 5개면 3천여 지사들이 목숨을 걸고 구국 투쟁을 하다가 잔악한 일제에 의해 팔열사가 살해되고, 20여명의 지사들이 중경상을 입은 역사의 장소이다. 이 공원은 1990년 기미만세운동 기념사업 추진 위원회가 구성되어 기념 동상과 주차장을 조성하였다.
동상은 당시 거사에 참여 하였던 3천여 지사들의 구국 정신과 홍천군민의 호국의지를 담고 장두와 팔열사의 거룩한 혼을 담은 군상 입니다. 또한 공원 주변으로는 14점의 크고 작은 오석비가 있으며, 오석비 마다 애국충절의 깊은 뜻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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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기미만세운동 기념사업 추진 위원회가 구성되어 기념 동상과 주차장을 조성하였다.
마방터 (馬房터)
▲ 마방터 ⓒ 2007 한국의산천
소금장수와 한양길 선비의 쉴자리 마방터동창마을은 조선시대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담당 했다. 홍천에서 들어와서 삼포로 삼포에서 장평을 거쳐 작은 솔치제를 넘어 동창마을을 지나 행치령을 통해서 조침령을 넘어 영동과 영서를 잇는 길목이었다. 예전에는 말이 주요 교통수단의 하나였으며 상인들이 자주 왕래하는 곳이라 마방이 있었다. 마방은 상인들의 쉼터로서 장거리 여행에서 지친 말들과 상인 들이 쉬어가던 장소로 현재는 마방터라고 하여 예전의 위치에 터를 닦아놓아 위치를 짐작하고 있다. 동창만세운동의 근거지동창마을 마방터는 단순한 마방으로써의 의미보다는 동창만세운동의 장두이었던 김덕원의사의 근거지로써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방을 운영하며 동지를 규합하고 동학운동과 항일운동에 대한 정보를 얻으며, 만세운동의 기반을 다졌던 장소이다. 마방터 주변으로는 11점의 오석비가 있어 동창만세운동과 김덕원 의사의 행적과 송시가 적어져 있다.
▲ 김덕원 의사를 기리는 추모비 ⓒ 2007 한국의산천
기미년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난 직후인 4월 3일에 동창마을에서는 김덕원 의사를 중심으로 주변 5개 지역의 3000여명의 주민들과 만세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임으로써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고 한다. 당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김덕원 의사는 동창마을에서 마방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마방을 통해 자금이나 동지들을 규합하는데 이용했다고 전한다.
▲ 마방터에 가득한 김덕원 의사 추모비ⓒ 2007 한국의산천
▲ 마을 안에 있는 동창 떡 방앗간 ⓒ 2007 한국의산천
▲ 순한 눈망울을 가진 한우 ⓒ 2007 한국의산천
▲ 동창 마을에 핀 꽃 ⓒ 2007 한국의산천
▲ 오형고개 ⓒ 2007 한국의산천
▲ 와야리 내촌천의 피서 풍경 ⓒ 2007 한국의산천
▲ 동창을 나와서 백우산으로 가는 408번 도로 ⓒ 2007 한국의산천
멀리 백우산 능선과 정상이 운무에 가려있다. 백우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촌에서 408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작은 삼거리가 나오면 길이 좁은 용소폭포라는 팻말을 따라 왼쪽 길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대형 버스 한대가 겨우 지날 정도의 좁은 길입니다) ※ 대형버스는 철정교차로에서 직진하여 두촌면사무소를 지난 후 백두산휴게소에서 오른쪽으로 408번 도로를 타고 들어오면 길이 넓고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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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걸리 동창마을 둘러보기 >>> https://koreasan.tistory.com/12062279
내촌면 물걸사지 둘러보기 >>> https://koreasan.tistory.com/12062337
백우산 경수골 둘러보기 >>> https://koreasan.tistory.com/12062271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하다. - 노자 도덕경에서
대한민국 구석구석 즐겁고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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