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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물걸사지

by 한국의산천 2007. 7. 22.

한곳에 보물이 5개가 모여있는 홍천 내촌면 물걸리 폐사지 답사   

답사코스: 물걸사지 ~ 백우산 경수골 계곡 2007년 7월 21~22일 (토,일요일)  

 

서울~ 양평~홍천 ~ 철정 교차로에서 우회전~ 내촌면사무소~와야삼거리~물걸리(동창리) ~내촌면사무소~ 백우산~ 경수골계곡~백두산 휴게소~철정삼거리~홍천~서울 (왕복 약 470km)

  

폐사지를 답사한다는 것은 과거로의 여행이며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다.

막상 현장에 도착해 보면 볼거리가 없이 황량하기 그지없는 경우가 있지만 한조각 남은 기왓장의 파편을 붙잡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은 시작된다. 

 

언제 창건 되었으며 어떠한 연휴로 폐사가 되고 왜 연속성이 끊어졌는가? 오래 전 번성했던 화려했던 시절의 영화를 떠올리며 온갖 의문투성이인 귀한 문화재를 접하노라면 미지로의 여행, 폐사지 답사의 수고스러움을 한번에 씻어준다.  

 -한국의산천-

 

▲ 강원도 홍천 내촌면 물걸리에 있는 폐사지 ⓒ 2007 한국의산천

 

강원도 홍천의 동쪽에 위치한 물걸리
홍천읍에서 속초방향(44번 국도)으로 가다가 철정교차로에서 우측 451번 지방도를 가다 보면 내촌면소재지를 뒤로하고 와야삼거리에서 다리를 건너며 우회전 6km쯤 지나 동창마을에 이르게 된다. 행정구역명은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이나 그 이름보다는 동창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동창(東倉)이란 지명은 중종때 대동미 수집 창고가 홍천의 동쪽에 위치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영서지방에서 거둬 들여 매년 정기적으로 서울의 경창(京倉)으로 수송하던 세곡을 집결 시켰던 창고가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홍천 동창마을은 백두대간의 한 지맥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 300m 의 마을이다. 중앙고속도로 홍천 인터체인지 부터 약 50여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양양까지 약 한시간 반 정도면 도착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마을 앞쪽으로는 4계절 수량이 풍부한 내촌천이 있어, 마을은 수도작과 주변 산의 완경사면을 이용한 밭 농사가 발달 하였다.  
 
지리적으로는 백두대간 서쪽 사면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악지방 홍천. 홍천은 횡성과 함께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이다. 북동쪽으로는 가마봉,소뿔산,백암산, 가득봉, 응봉산등 1천m 이상의 장중한 산봉우리들이 에워싸고 있어 외진 산골 오지쯤으로 보이나 골안으로 들어서면 듬직한 산그늘 사이로 하얀 백사장이 아름다운 내촌천이 흐른다. 
 
인제 쪽에서 발원하여 서쪽을 지나 북한강 청평호와 합류하기 위해 150㎞를 쉬지않고 흘러내리는 홍천강의 옛 이름은 화양강(華陽江). 이 유장한 물길이 있었기에 예로부터 홍천강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수운(水運)이었으며, 그 탓에 내촌면에는 거대한 나루터와 나라의 곡물보관 창고인 동창(東倉)이 있어서 횡성과 더불어 도내에서 가장 물물교환이 번성했던 곳이다.

물류의 중심지 동창마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의 역사는 고대국가인 맥국시대 이전에 신석기 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확인 되고 있다. 물걸리 촌락의 형성 시기는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홍천현 관할로 지정 되어지며, 이름이 등장하였고 촌락 형성 시기는 고려 명종때에 3성씨의 불자가 이 곳에 절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로 보고 있다.
이후 조선시대 중종 때 세곡을 모으던 동창이 이 곳에 생기면서 부터 마을이 크게 발전 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운제도(세곡 수송제도)가 없어진 뒤에도 곡물과 소금의 집산지로 동창마을은 그 이름을 이어 왔다고 전한다

마을지명의 유래

물걸리(物傑里)
내촌면(乃村面) 동남쪽에 있는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 지역으로 물거리(物巨里) 또는 물걸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복곡, 동창, 감두리, 새마을, 탑둔지, 자근솔치, 장수원, 조상골, 조룬, 된재 를 병합하여 물걸리라 한다.

동창[東倉 : 창촌(倉村), 창말, 비석거리]
물걸리 서남쪽에 있는 큰 마을. 조선조 때 홍천현의 동창(東倉)이 있었으며, 조선조의 역촌(驛村)으로 서울∼영동간 교통 중심지로 집산지였다. 

  

 

 ▲  내촌면 ⓒ 2007 한국의산천

 

 ▲  와야삼거리 ⓒ 2007 한국의산천 

내촌면에서 상남 방면으로 가다가 와야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물걸리로 간다. 1979년 팀스프리트 훈련 때 홍천에서 이곳을 거쳐서 물걸리 내촌천에서 야영을 하며 오대산으로 대항군으로 걸었던 추억이 있는 길이다.   

 

 

 ▲  물걸리(동창리)와  서석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 2007 한국의산천  

홍천 동창마을은 백두대간의 한 지맥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 300m 의 마을이다. 

홍천 시내로 부터 약 1 시간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양양까지 약 한시간 반 정도면 도착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마을 앞쪽으로는 4계절 수량이 풍부한 내촌천이 있어 주변 산의 완경사면을 이용한 논,밭 농사가 발달 하였다.

 

 ▲ 물걸리 마을 진입하면서 나타나는 대승사 표식 ⓒ 2007 한국의산천 

이 길로 들어서면 대승사가 나타나며 두 갈래 길에서 어느 길로 가도 물걸사지와 만난다. 물걸사지는 대승사 바로 뒤편에 위치한다.

 

 

 ▲ 대승사 입구에 위치한 커다란 부도 ⓒ 2007 한국의산천

 

 ▲ 대승사 ⓒ 2007 한국의산천

 

 

 

 ▲ 그리 터가 크지않은 물걸사지 ⓒ 2007 한국의산천

 

홍천물걸리사지(洪川物傑里寺址) 시도 기념물 제47호 (홍천군) 소재지 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8-4, 589-1
시대 통일신라

이곳이 흥양사 절터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기에 물걸리 절터라고 부른다. 하지만 홍천지방에서 가장 큰절이 아니었나하는 것을 유추를 해볼 뿐이다.
홍천 물걸리 절터는 현재 대승사(大乘寺)라는 작은 절이 야산 옆에 세워져 보살핌을 받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강원도 기념물 47호로 지정된 물걸리 절터는 통일시대 시대의 홍양사(洪陽寺) 터로 추정될뿐 명문이 출토된 바 없어 정확한 사명(寺名)도, 사원의 내력도 밝혀진 것이 없다. 그래서 이곳 마을 이름을 따서 ‘홍천 물걸리 절터’라 부르고 있다.

이곳 작은 마을 물걸리에 규모나 수준면에서 더할수 없는 무려 다섯 점의 보물이 있으니 산악 고을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967년 민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과 1971년 발굴조사에 나온 5점의 보물급 유적들은 불교미술의 전성기를 이뤘던 통일신라 것 답게 그 규모나 기법면에서 매우 섬세하고 웅장하며 화려하다.

이 절터에서 1967년 4월에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 金銅如來立像 > 1점, 고려시대 철불파편 4점, 철쇄< 鐵鎖 >파편 2점, 암막새 4점, 수키와파편 6점, 암키와파편 6점, 청자 파편 4점, 토기 파편 5점, 조선시대 백자 파편 7점 등이 발견되었다.
1971년 7월에는 석조여래좌상(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石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542호), 대좌(보물 제543호), 대좌 및 광배 (光背:보물 제544호), 삼층석탑 (三層石塔:보물 제545호) 등이 발견되어 현지에 지정,보존되어 있다. 

 

 

 ▲ 홍천 물걸리 삼층석탑 보물 545호 ⓒ 2007 한국의산천 

 

 ▲ 홍천 물걸리 삼층석탑 보물 545호 ⓒ 2007 한국의산천

 

  ▲ 홍천 물걸리삼층석탑 보물 545호 ⓒ 2007 한국의산천

 

홍천물걸리삼층석탑 보물 545호 물걸리 절터에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절터에 남아있는 많은 유물들로 보아 이전에는 이곳이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세운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하나씩의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2층은 5단이나, 3층은 4단으로 줄어들었다.

경사면은 평평하고 얇으며, 모서리선이 뚜렷하여 끄트머리에서의 들림도 날카롭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지고 이를 받쳐주는 노반(露盤)만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통일신라의 탑이나, 기단 각 면의 가운데기둥이 하나로 줄어든 것이라든지, 3층에서의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 아래층과의 조화를 이뤄내지 못한 점 등으로 보아 시대가 조금 떨어지는 9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인다.

 

 

 

 ▲ 보물을 한군데 모아 보호하고 있는 전각 ⓒ 2007 한국의산천 

 

 

 ▲ 보물을 한군데 모아 보호하고 있는 전각 ⓒ 2007 한국의산천 

 

 

 ▲ 전각안에 모아놓은 보물 4점 ⓒ 2007 한국의산천 

좌로부터 대좌 및 광배 (光背:보물 제544호),  석조여래좌상(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石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542호), 대좌(보물 제543호)

 

  ▲ 물걸리 불대좌 및 광배 보물 544호 ⓒ 2007 한국의산천

물걸리불대좌 및 광배 보물 544호불상은 없고 광배와 대좌만 남아 있다.

완전한 배(舟) 모양의 광배는 가운데에 연꽃무늬와 덩쿨무늬가 새겨지고 가장자리에는 불꽃모양이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윗부분과 좌우 등 9곳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는데 각기 손모양을 달리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광배를 받치고 있는 대좌(臺座)는 3단으로 구성된 8각 모양이다.

 

맨 아래에는 아래로 향한 연꽃무늬가 각 면에 새겨져 있고, 모서리에는 작은 귀꽃이 있다. 중간의 각 면에는 불상과 악귀를 쫓아준다는 신장상이 새겨져 있다.

대좌의 맨 윗부분은 연꽃이 활짝 핀 반원형 모양이고 연꽃 안에 작은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광배 및 대좌의 양식이 9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것들과 유사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 보물 541호 물걸리 석조여래좌상 ⓒ 2007 한국의산천 

 

석조여래좌상 (보물 541호)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으로 얼굴은 마멸이 심해 세부표현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것 같으며,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는 표현이 분명하지 않다. 옷은 양 어깨에 걸치고 있고, 가슴에는 띠모양의 매듭이 보인다.

 

어깨는 둥글지만 두껍고 투박하게 보이고, 상체는 평판적이고 왜소한 편이어서 당당한 양감이 사라져버린 모습이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놓고 있는 모습이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구분된 8각형으로 하대에는 각 면마다 무늬가 있고, 향로와 상상의 새인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다.

중대석은 8각의 각 면에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고, 상대에는 활짝 핀 모양의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파손으로 인해 신체표현을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장식성이 강조되는 9세기 중엽 이후의 전형적인 대좌 양식을 보여주고 작품이다.

 

 

 ▲ 물걸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542호  ⓒ 2007 한국의산천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542호)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크게 솟아 있다. 약간 고개를 숙인 얼굴은 풍만하지만 턱이 뾰족하여 단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긴장감이나 탄력적인 모습이 사라진 채 다소 투박하고 무겁게 늘어진 모습이 역력하다. 옷주름은 어깨에서 두 팔을 거쳐 무릎에까지 나타나 있으나 평행선으로 되어 약간 형식적으로 처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손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손모양과는 반대로 되어있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8각 연화대좌로 상대·하대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중대에는 부처에게 공양을 드리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향로 등이 새겨져 있다.

양감이 없는 평판적인 신체, 긴장감이 사라진 무겁고 해이한 옷주름 등으로 보아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 물걸리불대좌 보물 543호  ⓒ 2007 한국의산천

 

물걸리불대좌 (보물 543호)

이 불대좌(佛臺座)는 불상은 없어지고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대좌는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의 구분이 뚜렷한데 현재 머리광배 부분은 없어졌으며, 안쪽에는 덩쿨무늬를,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표현하였다.

대좌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형 대좌로 상·중·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에는 향로와 새 모양의 조각이 있는 8각의 받침돌 위에 아래로 향한 연꽃이 새겨진 연화대석이 놓여 있다.

중대에는 8개의 각 면에 모서리 기둥을 새기고, 그 안쪽에 머리광배를 갖춘 보살입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을 이루고 있는 상대는 연화좌로 3중의 연꽃이 조각되었는데, 연꽃잎 안에 다시 꽃무늬를 장식하여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각 부의 조각이 매우 세련된 이 불대좌는 물걸리에 보존되어 있는 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등과 같은 절터에서 발견된 점과 조각수법 등에서 볼 때 다른 불상과 비슷한 시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홍천 물걸리사지 전경  ⓒ 2007 한국의산천

 

 

 ▲ 유물 파편과 기왓장을 모아 둔 장소  ⓒ 2007 한국의산천

 

 ▲ 유물 파편을 모아 둔 장소  ⓒ 2007 한국의산천

 

 ▲ 유물 파편 모아 둔 장소  ⓒ 2007 한국의산천

  ▲ 보물 지정 일자를 표시하는 비석  ⓒ 2007 한국의산천

   ▲ 물걸리 사지   ⓒ 2007 한국의산천

 

  ▲ 착한 눈을 가진 한우 ⓒ 2007 한국의산천

 

 

▲ 물걸사지 앞 가옥에 핀 꽃 ⓒ 2007 한국의산천

계속해서 아래 페이지에 물걸리(동창마을) 둘러보기가 이어집니다. 

 

물걸리 동창마을 둘러보기 >>> https://koreasan.tistory.com/12062279

 

물걸리 (동창 東倉) 둘러보기

한곳에 보물이 5개가 모여있는 홍천 내촌면 물걸리 폐사지와 백우산 경수골 답사 (답사코스: 물걸사지 ~ 백우산 경수골 계곡) 2007년 7월 21~22일 (토,일요일) [한국의산천 ] 홍천 물걸리 (동창 東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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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면 물걸사지 둘러보기 >>> https://koreasan.tistory.com/12062337

 

물걸사지

한곳에 보물이 5개가 모여있는 홍천 내촌면 물걸리 폐사지 답사 답사코스: 물걸사지 ~ 백우산 경수골 계곡 2007년 7월 21~22일 (토,일요일) [한국의산천 ] 서울~ 양평~홍천 ~ 철정 교차로에서 우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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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산 경수골 둘러보기 >>> https://koreasan.tistory.com/12062271

 

백우산 경수골

홍천 내촌면 백우산 경수골 풍경 한곳에 보물이 5개가 모여있는 홍천 내촌면 물걸리 폐사지와 백우산 경수골 답사 (답사코스: 물걸사지 ~ 백우산 경수골 계곡) 2007년 7월 21~22일 (토,일요일)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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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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