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조용헌 살롱] 주유천하

by 한국의산천 2007. 7. 1.

[조용헌 살롱] 주유천하(周遊天下) 

 

 

▲ 조용헌

 

‘내가 왜 이 세상에 왔는가?’ 하는 물음이 강했던 사람들은 집을 나와서 세상을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는 것 그 자체가 큰 공부였다. 불가의 승려들은 이를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 한다. 등에 바랑 하나 짊어지고 구름과 물처럼 세상을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는 의미이다. 도교의 도사들은 이를 표주(漂周)라고 하였다.


적어도 3년 정도는 돈 없이 세상을 둘러보아야만 도사의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조건은 돈 없이 맨주먹으로 다녀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야 밑바닥의 인심을 알고, 각 지역의 특산물이 무엇인가,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가, 기인, 달사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가, 물류의 흐름이 어떤가, 좋은 기운이 뭉쳐있는 명당수도처가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하게 된다.


돈 많이 가지고 여행을 하면 수박 겉핥기로 끝날 수 있다. 서양의 고전인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모두 주유천하(周遊天下)의 산물이다. 이들이 주유천하를 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이러한 대작을 쓸 수 있었겠는가. ‘사기’를 쓴 사마천도 20대에 몇 년 동안 중국의 각 지역을 여행한 바 있다.


구름에 싸인 명산의 웅혼한 기상을 느껴보고, 장강의 도도한 흐름을 보고, 석양 노을과 안개에 싸인 명승지들을 보았기 때문에 ‘사기’를 쓸 수 있었다고 본다. 20대의 주유천하 경험이 ‘사기’에 알게 모르게 반영되었다. 대자연의 장엄한 광경을 봐야만 심량(心量)이 커지고, 아울러 인간과 세상에 대한 초연함이 길러진다. 

 

주유천하의 첫 단계는 명산유람이다. 산을 올라가 보아야 내려다 볼 수 있는 안목을 갖는다. 관점과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가 꼽는 남한의 10대 명산은 이렇다. 지리산, 설악산, 계룡산, 한라산, 오대산, 가야산, 월출산, 속리산, 북한산, 태백산이다. 이런 산들은 하루 등산만 하고 곧바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그 산에서 잠을 자 보아야 한다.

 

‘백등산(百登山)이 불여(不如) 일숙(一宿)’이라고나 할까. 한 번 가면 적어도 2박3일 정도는 머물러야만 산기운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이 허락하면 보름 정도 머무르면 좋다. 산마다 모두 기운이 다르고, 전망이 다르기 때문이다. 잠을 자다 보면 자기에게 맞는 산이 어떤 산인지도 알게 된다. 

 

'문화문학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일서정 (秋日敍情)  (0) 2007.09.14
바람처럼 떠나기  (0) 2007.07.18
남한산성  (0) 2007.05.20
수국과 불두화의 구분법  (0) 2007.05.12
오리 이원익 충현박물관  (0) 2007.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