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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해미읍성, 천장사

by 한국의산천 2005. 12. 11.

해미읍성과 천장사 [ 2005. 12. 11.   한국의산천 ]

 

천장사로 올라가서 천장사를 둘러본 후 연암산을 거쳐 무너미 고개로 이동 한 후 삼준산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해미읍내를 돌아봤다.

 

 

 

 

 

현재 해미읍성 정문은 발굴 조사중이라 성곽 오른편에 위치한 동문으로 출입해야 한다.

 

 

 

▲ 현재는 해미읍성 발굴 작업으로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지금까지도 보존 상태가 완벽한 해미읍성(사적 116호)은 1417년 태종대에서 1421년 세종대에 걸쳐 축조되었으며 남쪽에는 정문격인 진남문이 있고 동서로 각각 동문과 서문이 자리잡고 있다. 해미(海美)라는 이름은 15세기 초 조선 태종때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치면서 가운데 글자를 한 자씩 따서 지은 것. 성으로 쳐들어오는 적군을 막기 위해 성벽 둘레에 탱자나무를 많이 심어 예전에는 ‘지성(枳城·탱자성)’이라 불렸다. 해미읍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충무공 이순신이 충청병사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한이 서린 천주교 성지

해미읍성은 더없이 평화롭게 보이지만 역사의 한이 서린 곳이다. 대원군 시절부터 천주교 박해로 1000여 명의 천주교도들이 이곳에서 집단 순교했다. 진남문을 들어서면 수령이 300년이 넘는 회화나무(일명 호야나무)가 슬픈 역사를 증언하듯 버티고 서 있다. 천주교도들을 매달아 고문하고 교수형에 처하거나 활을 쏘아 처형했던 비운의 나무다. 지금도 이 나무에는 머리채를 매달았던 철사줄 흔적이 남아 있어 당시의 참상을 말해준다.

 

서문 앞 쪽 순교지에는 팔다리를 잡아들고 머리를 메쳐 살해한 ‘자리갯 돌’이라는 사형대와 생매장 순교지인 진둠벙이 그대로 남아 있다.‘진’은 죄인이 줄어 변한 말,‘둠벙’은 웅덩이의 충청도 사투리다. 진둠병 맞은 편에는 거대한 해미순교탑과 ‘무명 생매장 순교자들의 묘’가 있어 해마다 수많은 교인들이 찾아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고귀한 넋을 기린다. 

 

 

 

▲ 해미성내 감옥 앞에서서 질곡의 역사의 묵묵히 보아온 수령 약 300년의 회화나무 ( 이 지역 사투리로 "호야나무"라고 부른다)  호야나무 뒤로 가야산 능선이 하늘금을 이루고 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 감옥 앞의 호야나무 (회화나무)

조선말 천주교 탄압이 이뤄지던 때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 곳에서 순교했다. 당시 관아가 있던 이 곳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잡혀 온 수많은 신자들이 고문을 받고 죽음을 당했으며, 특히 1866년 병인박해 때는 1,000여 명이 처형됐다. 성 안 광장에는 대원군 집정 당시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와, 신자들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모진 고문을 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지금도 서 있다. 바로 성문 밖 도로변에는 회화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신도들을 돌 위에 태질해 살해했던 자리개돌이 남아 있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당시 많은 신도를 일일이 처형하는것이 힘들자 읍성 밖 해미천변에 큰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하기까지 했다. 이 때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변할 것을 걱정한 많은 교인들이 남보다 먼저 스스로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1935년 베드로 신부가 유해 발굴작업을 시작했는데 수습된 뼈들이 몇 가마니에 이르렀다. 이 유골은 줄곧 음암면 상홍리에 안치돼 있었으나 l975년 이규남 신부가 해미천변에 순교 기념탑을 세우면서 그리로 옮겼다. 

지금 아래 사진의 해미성지는 순교성지가 조성돼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 해미읍성에서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미성지

서해미진영 서녘의 생매장 순교 벌판에서는 1935년도(일제 시대) 서산 본당의 범 베드로 신부 지도하에 순교자의 유해 발굴 때 유해 일부와 유품 성물이 발굴되어 30리 밖 상홍리 공소에 임시 안장되었다가, 1995년 9월 20일 유해 발굴터인 원위치로 안장되었고, 순교자의 유해는 별도로 보존 처리되어 보존되고 있다. (유해 참배실). 그리고 유해 발굴지 인근인 하천 위에 16m 높이의 철근 콘크리트 조형물인 해미 순교탑이 세워져 있다.

 

 

해미성지는 1985년 4월에 해미 본당이 창설된 후 해미순교 선열 현양회를 발족하였고 순교성지 확보운동을 전국 신자들에게 홍보하여 꾸준히 모금한 결과 1998년 말에 생매장 순교 성지를 약 7천 평 확보하였고, 그리고 이어서 1999년 5월부터 3천 명의 회원들로부터 성전 건립 기금을 모아 2000년 8월 기공식을 하였고 2003년 6월 17일 기념 성전을 건립하여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셔놓고 있다. 이렇게 조성된 생매장 순교지 일대는 "예수 마리아!"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로 알아듣던 곳이 이제는 주민들의 입으로 "여숫골"이라는 이름의 땅이 되어 오늘의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http://www.haemi.or.kr/ 참고)

 

 

▲ 천장사 올라 가는 길

 

 

▲ 고사목처럼 보이는 이 나무는 산불로 인하여 죽은 안타까운 흔적이다.

 

 

 

▲ 천장사

연암산 남쪽에 자리잡은 천장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에 속해있으며 인법당내에 관음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천장사의 창건 연대는 백재 무왕34년(633)에 담화선사가 수도하기위해 창건한 사찰로 전하며 조선 말기 고종 순종때의 고승 경허선사( 1849~1912)가 이 사찰에 기거하며 수도하였고 또한 그의 제자인 송만공 선사가 득도하는 등 조선말 승려들의 수도장으로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인법당은 "ㄷ"자형 목조 와가로 축대를 2단으로 높게 조성하고 자연석 덤벙 주초석 위에 원주를 세워 정면 6칸 측면 2칸이며 겹처마 팔짝 지붕으로 건립되었다. 1988년 8월 18일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다.

 

 

 

 

 

천장사 입구의 빨간 감이 백설과 대조되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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