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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심훈의 자취를 찾아...

by 한국의산천 2005. 10. 19.

ⓒ 2005 OhmyNews 2005-10-19 18:51

 

심훈의 자취를 찾아 떠난 필경사 여행
아, 그날이 오면...
텍스트만보기                            우관동(koreasan) 기자     
필경사(筆耕舍) 가는 길

"나는 이기적인 고독한 생활을 영위하려는 것도 아니요. 또한 중세기적인 농촌에 아취가 생겨서 현실을 도피하려고 필경사 속에다가 청춘을 감금시킨 것도 아니다.…(중략)… 형극의 길을 제일보로부터 고쳐 걸으려는 것이다." -심훈의 '필경사 잡기' 중에서

▲ 안내판
ⓒ2005 우관동
7300m 길이의 서해대교를 넘어서 송악IC를 빠져나와서 왜목마을 가는 길 방향으로 1km 정도 가다보면 한진나루에 닿기 직전 심훈 문학의 산실인 필경사 들어가는 이정표가 있다. 대로에서 500m 정도에 위치하고 있기에 접근하기가 쉬운 곳이다.

▲ 마을앞 시비
ⓒ2005 우관동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마을 초입 작은 송림공원에 서있는 시비. 이곳을 지나 꼬불꼬불 굽은 길을 따라 언덕배기 감자밭 옆을 지나가노라면 왼쪽으로 잘 정비된 주차장과 필경사가 나온다.

▲ 필경사
ⓒ2005 우관동
소박한 초가지붕의 필경사. 집 앞에는 손수 심었다는 향나무가 이제는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붓으로 밭을 간다"는 필경(筆耕)이라는 옛말에서 따온 옥호는 그의 문학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보이게 한다.

필경사의 옥호는 '상록수' 집필에 앞서 1934년 11월에 쓴 그의 고백수기 '필경사 잡기'에서 나왔다. 1930년에 '그날이 오면'이란 제목으로 시집을 내려다가 일제의 검열에 걸려 못 냈는데 그 시집 원고 중에 있는 '필경'이란 시의 제목에서 딴 것이라고 그의 '필경사 잡기'란 글에서 밝히고 있다. 이곳에서 그의 가족이 생활하며 집필 중 그 당시 동아일보사는 창간 15주년을 맞아 500원이라는 거금의 현상금을 걸고 농촌계몽에 관한 소설을 공모했는데 농촌계몽문학의 진수인 '상록수'가 당선되었다.

▲ 심훈 부조
ⓒ2005 우관동
필경사 앞마당에 세워진 심훈의 부조

필경사는 심훈 문학의 산실이다. 심훈은 1933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이곳 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로 내려와 한 동안 아버지와 한 집에서 살면서 '영원의 미소', '직녀성' 등을 집필하였다. 1933년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간하려 하였으나 일제의 검열로 출간 불가. 1934년에 독립하여 살 집을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이 필경사이다.

필경사를 지을 터를 잡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아끼던 상아 빨뿌리를 잃어버렸다. 그것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 곳을 되짚어 다니다가 찾는 곳이 지금의 필경사 자리였다 한다. 그곳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찬찬히 둘러보니 길들일 만한 터라는 생각에 지은 집이 필경사라고 전한다.

필경사는 심훈이 그의 일생에서 가장 정열을 받치고 문학에 몰두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1936년 이 세상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 필경사 뒤편 대나무 숲
ⓒ2005 우관동
바람이 불면 사각 사각 소리를 내는 뒤뜰 대나무 밭

필경사는 한때 교회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그의 장조카인 고 심재영옹이 되사가지고 관리하다 당진군에 희사하였다. 우리나라 농촌소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상록수'는 1935년에 이 집에서 집필된 소설이다. 가옥의 형태는 아담한 건물로서 18.7평이며 앞에는 상록수문화관과 잘 정비된 주차장이 있다.(마을입구에서 필경사까지 대형버스는 진입이 어려움.)

▲ 그날이 오면 시비
ⓒ2005 우관동
'그날이 오면' 마당의 시비는 1996년 한국문인협회가 세운 것이다. 독일의 C. M. 바우라 교수는 그의 저서 <시와 정치(Poetry and Politics)>에서 이 시를 '세계 저항시의 본보기'라고 평가하였다.

그 날이 오면
- 심 훈


그 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하략)


항일, 저항시로서 이보다 더 강한 시가 있을까?

'필경사 잡기'는 그 시기에 그가 인생의 방향을 확정짓기 위해 고뇌했던 흔적과 그 사상을 보여준다.

"…나는 어려서부터 문예에 뜻을 두었었다. 시를 쓰는 체, 각본을 꾸미는 체하고 영화박이는 흉내도 내고 여러 해 보람 없는 저널리스트 노릇도 하다가 최근에는…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바늘구멍으로 낙타를 끄집어내려는 대담함에 식은땀이 등을 적심을 스스로 깨달을 때가 많다. 동시에 더욱이 문예의 길이란 가시밭을 맨발로 밟고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이 가난한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한 십년하고 살을 저미고 뼈를 깎아내는 듯한 노력과 수련을 쌓는 시기가 있어야 비로소 제일보를 내어 디딜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랑성을 다분히 타고난 나는… 오늘날까지 정신생활에 있어서도 비현실적인 몽환경을 더듬으며 헤매어 왔다.…어줍지 않은 사회봉사, 입에 발린 자기희생, 그리고 그 어떤 주의(이념)에 노예가 되기 전에 맨 먼저 너 자신을 응시하여라. 새로운 생활에 말뚝을 모래성 위에 꽂지 말고 질척질척한 진흙 속에다가 박아라. 떡메 질을 해서 깊이깊이 박아라." -'필경사 잡기'에서


ⓒ2005 우관동
▲ 소설 상록수의 산실인 집필실. 아직도 그의 체온이 남아 있는듯 하다.
ⓒ2005 우관동
심훈이 '상록수'에서 '청석골'이라 부른 마을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의 샘골마을이다. 또한 농촌의 문맹퇴치를 위해 야학에 온힘을 기울이는 '채영신'이란 여자 주인공은 일생을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한 최용신(崔容信)의 실제인물이다.

ⓒ2005 우관동
1931년 10월 최용신은 학업을 중단하고 샘골마을로 농촌계몽운동을 하기 위해 내려왔다. 농촌계몽운동과 유학중에 얻은 병과 과로가 겹쳐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샘골마을 주민들의 지극한 병간호를 외면하고 1935년 1월 23일 꽃다운 나이 26세에 이 세상을 하직했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현재 최용신 선생의 묘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상록수 우체국 옆 상록수 공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산시 향토유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 왼쪽이 필경사 오른쪽이 상록수 문학 기념관
ⓒ2005 우관동
문학 기념관 앞마당에 서면 넓게 펼쳐진 낮은 밭 구릉 건너편으로 푸른 바다의 넓은 아산만과 서해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짧은 생을 살면서 젊음을 나라사랑 농촌사랑에 몰두했던 문학가의 집필실을 둘러보는 나그네의 마음속 느낌은, 언제나 그렇듯이 매너리즘에 빠져서 앞날에 대해 큰 비전없이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지 않나하는 의구심이 든다.

여행, 언제나 큰맘 먹고 떠나는 여행이지만 목적지에 대한 큰 기대는 오히려 실망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두 눈으로 보고 온 것보다, 작은 가슴에 담아 온 큰 느낌이 있을 때에 오래도록 진정한 여행으로 각인될 것이다.

 

○찾아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 - 송악 IC - 한보철강 방향 큰 도로 - 필경사 이정표에서 좌회전

○주변 둘러볼 곳: 한진나루, 왜목마을,석문방조제, 대호방조제, 장고항리포구.

※ 2005년 5월에 취재한 사진입니다.

우관동 기자의 블로그 (http://blog.daum.net/koreasan)
2005-10-19 18:51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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