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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고달사지, 파사성

by 한국의산천 2005. 7. 19.

아시나요?

웅장하고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 피웠던 여주 상교리에 위치한 고달사를? 

고달사지와 파사성 [2005.7월19일(화) 한국의산천 ]

 

고달사 

 

고달원(高達院)이라고도 하였다. 764년(신라 경덕왕 23)에 창건되었다. 고려 제4대 광종 이후 역대 임금의 비호를 받으며 도봉원(道峰院)·희양원(曦陽院)의 하나로 빠르게 발전했던 유명한 절이었으나, 어느 때 폐사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고려초기에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3대 선원의 하나로 왕실의 각별한 비호를 받았다고 전한다.)

 

절터에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석불대좌(보물 제 8호), 강렬한 힘을 간직하고 있는 보물 제7호인 원종대사혜진탑(元宗大師慧眞塔)과 보물 제6호인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龜趺) 및 이수(螭首), 국보 제4호인 고달사지 부도(浮屠), 그리고 보물 제8호인 석불좌(石佛座) 등이 있다.

원감국사의 부도로 추정되는 고달사지 부도는 빼어난 균형미와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국보 제 4호로 지정되었는데, 이들 석조유물의 규모로 보아 찬란했던 역사의 현장을 그려 보게 된다.
현재 이곳에는 고려시대의 부도를 대표하는 국보 제 4호 고달사지 부도와 보물 제 6, 7  , 8호의 유물들이 있으며, 이들 석조 유물들은 하나같이 넘치는 힘과 호방한 기상이 분출하는 가운데 화려하고 장엄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창건 당시의 사찰은 실로  광대하여 지금의  상교리 일대가 전부 사역으로 추정되며 절부근에 큰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지금 광활한 사역에는 유물만 남아 있다.
현재 절터는 복원을 위한 발굴 조사가 조직적으로 진행중이다.

 

고달사 석조물은 모두 고달이란 석공이 조성했다는 전설이 있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불사에 혼을 바쳤다고 한다. 불사를 끝내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어 큰스님이 되었으니 고달사라 불렀 다는 전설이 있다.

 

가는 길 

여주읍에서 42번 국도 이용 여주대교를 건너 우측길 신륵사앞을 지나서  - 331번 지방도 양동(북내)방향으로(7km) - 상교리부락 진입로(좌회전)에서 3km거리 

 

 

※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컴 화면에 맞게 확대되어 자세히 보실수있습니다.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 혜목산(마을에서는 우두산 고래산이라고 부른다) 능선앞에 자리한 고달사 터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 얼마전까지 마을이 있었던 곳에는 모두 이주하고 마을 길옆에는 맑은 샘물만이 졸졸 흐르고 있다.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 그 화려했던 그 시절은 다 어디로 가고...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 고달사지 입구의 커다란 느티나무.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사진을 확대해서 보세요 얼마나 큰지 .. 제 덜덜이가 장난감처럼 느껴집니다.

1985년도 그러니깐 그 후로 10년 후에도 이곳에는 제법 큰 마을이 있었고 이 느티나무 앞 제차가 서있는 그 자리에는 동네 구멍가게가 있었다. 거기서 시원한 캔맥주를 사먹었는데... 

 

 

▲ 고달사지 석불좌 보물 제 8호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이렇게 큰 석불자리에 앉아있던 부처님은 어디로 가셨을까?  좌대가 크니 석불또한 매우 웅장하고 컷으리라.

 


 

 

국보와 보물의 차이

 

국보 

국보란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인 가치가 큰 문화재로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 문화재로서 보물로 지정될 가치가 있는 것 중에 제작연대가 오래 되고 시대를 대표하거나, 유례가 드물고 우수하며 특이하거나, 역사적 인물과 관련이 있는 것을 지정한다.

 

보물

목조건축·석조건축·전적(典籍)·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고고자료(考古資料)·무구(武具) 등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중에서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가 지정한 문화재로서 보물은 관보(官報)에 고시(告示)된 날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한편 국보처럼 시대를 대표하거나 특이한 것이 아니더라도 또 역사적 인물과 관련이 없더라도, 일반적인 지정의 수준에 이르면 보물이 된다. 그래서 보물의 수는 국보보다 많고 동형의 것들이 많다.

 

보물로 지정되면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보물 지정의 연혁을 보면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에 의해 지정되어 1955년 이전에는 유형문화재는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를 같은 국보(國寶)로 명칭을 바꾸었고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 공포되어 1963년 재지정하면서 728점의 지정문화재 중 386점을 보물로 지정하였다. 

2001년 11월 현재 지정된 보물은 1,315점(해제 문화재 제외)에 이르고 있다. 국보지정과 보물지정의 차이점은 국보는 보물의 가치가 있는 것 중에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기술적 가치가 가장 으뜸인 것으로, 제작연대가 오래되고 시대를 대표하거나 가장 우수하며 특이한 것으로 역사적 인물과 관련이 있는 문화재이다.  


 

▲ 사람의 손으로 저렇게 돌을 다듬을 수 있다는 사실에 믿기지가 않는 조각품이다.

이곳 고달사 폐사지에서 몇점 남지않은 부도와 유물만 보고 간다하더라도 그날의 여행을 충족시킬수있을 만큼 멋진 답사길이 될것입니다.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 원종대사 혜진탑비 보물 제6호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클릭을 해서 보시면 조각의 부드럽고 살아있는 듯한 섬세함이 느껴지실겁니다.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 이 일대의 집들은 모두 이주시키고 본격적인 발굴 작업중이다. 오래전부터 가끔 오는 곳이지만 발굴되어 모습을 나타내는 주춧돌과 기단석의 흔적. 절의 규모가 엄청나게 큰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 원종대사혜진탑 보물제7호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 고달사지 발굴터에서 우측의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부도가 나오며 이 계단을 올라가면 국보제 4호가 있다.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하늘로 솟아 오를듯한 모습의 고달사지부도 국보 제 4호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 국보 4호 탑 (조각의 기술이 정교하고 섬세하며 전체적으로는 우람하게 느껴진다)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파사성

이포대교를 건너서 직진하여 천서리 막국수 식당들을 지나서 약 500m 정도 가다보면 좌측에 파사산성이 있고 우측도로가에 작은 안내표지가 있다.

 

마을 입구에서 약 10m정도 들어서면 우측에 파란지붕이있는 집 앞을 통과하야 약 700m정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한다.(등산화나 운동화 착용하면 좋음) 

 

경기 여주군 대신면(大神面) 천서리(川西里) 야산에 있는 석성(石城)으로 지정번호  사적 제251호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하며 높이 5-6m, 길이 약 1,800m이다.
 
82년(신라 파사왕 3) 모여장군(某女將軍)이 축성하였다는 전설도 있고 삼국통일시 나 ·당연합군의 대접전지이며 최후의 싸움터였던 매초성(買肖城)이라는 설도 있는데, 1592년(선조 25) 승장(僧將) 의엄(義嚴)이 둘레 1,100보(步)의 고성을 수축했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타나 있다. 또한 성내 북쪽에 폭 3m의 암벽에 여장군의 초상이라는 것이 조각되어 있고, 그 아래 6.6m2 정도의 암석을 뚫어서 음료수로 사용하던 흔적이 있는데 암벽에 새겨진 여인이 샘을 팠다는 전설이 있다. 

 


 

▲ 마을에서 우측으로 들어서서 앞에 보이는 산으로 오르면 된다.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 성벽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경기 여주군 대신면(大神面) 천서리(川西里) 야산에 있는 석성(石城)으로 지정번호  사적 제251호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하며 높이 5-6m, 길이 약 1,800m이다.
 
82년(신라 파사왕 3) 모여장군(某女將軍)이 축성하였다는 전설도 있고 삼국통일시 나 ·당연합군의 대접전지이며 최후의 싸움터였던 매초성(買肖城)이라는 설도 있는데, 1592년(선조 25) 승장(僧將) 의엄(義嚴)이 둘레 1,100보(步)의 고성을 수축했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타나 있다. 또한 성내 북쪽에 폭 3m의 암벽에 여장군의 초상이라는 것이 조각되어 있고, 그 아래 6.6m2 정도의 암석을 뚫어서 음료수로 사용하던 흔적이 있는데 암벽에 새겨진 여인이 샘을 팠다는 전설이 있다.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 남한강의 시원한 물줄기와 모래가 보이고 그 넘어로 이천의 명산 원적산 줄기가 하늘금을 이룬다. 잠자리 한마리도 찍혔군요 .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 짧은 산길을 올라왔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서 땀좀 흘렸습니다. (파사성 산정에서)ⓒ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 여기저기 다니다가 만난 강천면 반계 저수지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강천면 도전리에서 북내면으로 가는 도중에 절경이있어서... ⓒ2005 한국의산천. 우관동

 


 

강천면 도전리 가는 도중에 만난, 학교로 공부하러 가는 아이들.... B/W로 찍어보았습니다. 

 

휴가철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 만들어 가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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