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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나목의 화가’ 박수근 강원 양구로 떠난 봄 마실

by 한국의산천 2022. 3. 12.

‘나목의 화가’ 박수근… 모교 뒷산엔 그가 스케치하던 느릅나무가 여전히 서 있다
[아무튼, 주말] 박수근 맏딸 박인숙 관장과 강원 양구로 떠난 봄 마실

 

강원도 양구 파로호에 떠 있는 '한반도섬'으로 가는 길./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입력 2022.03.12 03:00

 

박인숙(78)씨를 코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굽 높은 부츠에 가죽 트렌치코트를 입고 색조 화장까지 한, 훤칠하고 세련된 단발머리 여성은 아무리 봐도 70대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릴 적 우리 집이 너무 가난했잖아요. 입을 옷이 늘 한 벌밖에 없었던 게 한이 됐죠. ‘더 늦기 전에 원하는 옷을 마음껏 입어보자’는 생각에 8년 전 시니어 모델이 됐어요.”

박씨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박수근(1914~1965년)의 맏딸로 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이다. 강원도 양구는 박수근의 고향. 박 관장이 양구읍 정림리 박수근 생가(生家) 터에 세워진 미술관을 모델처럼 성큼성큼 걸으며 안내했다.

 

박수근미술관 자작나무숲. 방문객들에게 힐링 명소로 사랑 받는다. 바로 뒤에 빨래터가 있다. 박수근이 17살 처녀 김복순을 보고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결심했던 강원도 금성군에 있던 빨래터를 재현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사랑을 꽃피운 빨래터


맨 처음 향한 곳은 박수근기념전시관. 5개 건물로 이뤄진 박수근미술관의 중심이다. 건축가 이종호가 설계한 전시관 입구는 달팽이처럼 도르르 말린 형태의 벽을 따라 난 진입로를 돌아야 나온다. 매끈하게 다듬지 않은 울퉁불퉁한 화강암을 쌓아 만든 벽면은 박수근 그림 특유의 올록볼록한 질감을 닮았다.

전시관에 들어가기 앞서 박 관장은 ‘빨래터’로 안내했다. 빨래터를 가려면 하얗게 줄기를 드러낸 자작나무숲을 지나야 한다. “2004년 리움미술관 관장이셨던 홍라희 여사가 박수근미술관 개관 2주년 기념식에 참석했을 때 ‘빨래터 주변에 자작나무숲을 조성하면 좋겠다’며 기증해 주셨지요. 방문객들의 힐링 명소랍니다.”

자작나무숲을 지나면 작은 개천 변에 큼직하고 평평한 돌을 놓아 만든 빨래터가 나온다. 박수근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재혼한 아버지가 살던 강원도 금성군에 있던 빨래터에서 당시 17세 처녀였던 김복순을 보고 반해 결혼을 결심한다. 박수근은 김복순에게 보낸 청혼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일전에 어머니 점심을 가지고 빨래터에 갔을 때, 빨래하고 있는 당신을 본 후 아내로 맞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박 관장은 “빨래터에서 가난한 집 아들인 아버지가 부잣집 딸이던 어머니를 간절하게 훔쳐봤을 걸 상상하면 재밌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다”라고 했다.

◇요강까지 닦던 자상한 아버지
전시관에선 ‘박수근의 요철(凹凸)’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옛 기와·돌조각 탁본과 판화 등 박수근이 다양한 요철 기법을 연구한 흔적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독특한 질감이 우연이 아닌 의도임을 보여주는 전시다.

지난해 5월부터 삼성 이건희 회장 유족에게 기증받은 박수근 유화 4점과 드로잉 14점도 전시 중이다. “아버지 유화는 다 좋아요. 거르고 거른 색들이 쌓여서 뭔가 속삭이는 것 같잖아요? 액자는 아버지가 돈이 없으니까 나무 틀만 사다가 직접 칠하신 거예요. 그림과 액자가 그래서 완전히 매치돼요. 요새는 ‘박수근 액자 틀’이라고 해서 상품으로 팔더라고요.”

박수근의 1961년작 '아이 업은 소녀'. 맏딸인 박인숙 관장을 모델로 그렸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그가 한 드로잉 앞에 멈춰섰다. 종이에 연필로 그린 1961년작 ‘아이 업은 소녀’. “저를 모델로 그린 거예요. 교과서에도 나오는 작품이죠. 제가 중학교 미술 선생을 했었는데, 수업 시간에 ‘이게 나야’ 하면 아이들이 ‘와~’ 웃었죠.”

이어 박 관장은 지난해 6월 개관한 어린이미술관으로 안내했다. 어릴 적 박 관장에게 부모가 직접 만들어준 ‘한정판 고구려 동화책’이 전시돼 있다. ‘활 잘 쏘는 주몽’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 등 고구려 이야기들을 아버지 박수근이 그림 그리고 어머니 김복순이 글을 써서 책으로 묶었다.

“자상한 아버지셨어요. 말이 없지만 다정다감하셨죠. 엄마가 나보고 ‘요강 닦으라’ 시키면 더러워서 안 닦았는데, 그러면 아버지가 닦아요. 새색시처럼 기저귀도 개고 빨래도 해놓으셨어요. ‘뭐 해와라’ 나한테 시키시고 못 하면 아버지가 직접 하셨어요. 무언의 교육을 하신 거죠. 아버지 생각하면 소의 눈이 생각나요. 소리 없이 크고 검은 눈을 꿈뻑꿈뻑하는, 착한 황소의 눈.”

박인숙 관장이 박수근의 '빨래터'를 활용해 만든 미디어아트 '무한의 인연'을 감상하고 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헐벗었지만 희망 품은 나무
양구는 ‘박수근의 도시’였다. 학교 방음벽에도, 아파트에도 박수근 작품이 그려져 있다. 양구교육지원청으로 들어가 마당 한편 언덕 쪽으로 난 계단을 올라갔다. 잎이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느릅나무가 계단 끝에 서 있었다. 나무 아래 ‘박수근 나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과거 이 자리엔 양구공립보통학교가 있었다. 재학 시절 박수근은 자주 학교 뒤 언덕에 올라 이 나무를 스케치했다.

 

양구교육지원청 뒤 언덕에 있는 '박수근 나무'./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박수근은 “나는 워낙 추위를 타선지 겨울이 지긋지긋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도 채 오기 전에 봄꿈을 꾸는 적이 종종 있습니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런 그는 왜 겨울의 나목(裸木)을 즐겨 그렸을까.

“나목은 헐벗었지만 봄이 되면 싹이 돋고 꽃이 피잖아요. 잎이 없지만 봄이 온다는 희망이 들어있는 나무지요. 힘들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싹을 틔우려 애쓰는 마음을 아버지 그림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시래기·막국수·두부·곰취… 토속 입맛 가졌다면 여기가 천국


양구 청정 먹거리

양구 특산품 '펀치볼 시래기'로 끓인 된장찌개와 솥밥./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박인숙 관장은 도회적인 외모와 달리 “시골 밥상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탈리아 여행 갔을 때 남들은 파스타 맛있다고 잘 먹는데, 저는 속이 느글느글해서 못 먹겠더라고요(웃음).” 그와 같은 입맛을 가졌다면 강원도 양구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우선 전국 최고로 꼽히는 ‘펀치볼 시래기’의 산지다. 펀치볼(Punch Bowl)은 양구 해안면에 있는 해발 1100m 침식분지. 6·25 당시 주둔하던 미군 종군기자가 지형이 화채(punch)를 담는 넓고 우묵한 그릇(bowl)을 닮았다고 해서 펀치볼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펀치볼 시래기는 원재료인 무청부터 다르다. 시래기 전용 품종 무의 무청만 사용한다. 황태 말리듯 건조대에 겨우내 널어 놓아 두세 번 이상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게 한다. 껍질을 벗기지 않아도 될 만큼 부드럽다.

양구읍 ‘시래정’(033-481-6616)은 시래기 전문 식당이다. 주문하면 바로 지어주는 시래기 솥밥에 향긋한 달래간장이나 자글자글 끓인 강된장을 넣고 쓱쓱 비벼 먹는다. 달콤하고 짭조름한 돼지갈비, 조기구이, 고사리·취·애호박 등 각종 마른 나물, 김치 같은 반찬 10여 가지가 딸려 나온다. 

 

시래정·시래기코다리·시래기고등어 정식 각 1만7000원. 국토정중앙면 ‘시래원’(033-481-4200)은 시래기 정식(1만2000원)과 함께 토종닭 시래기찜(5만원)도 있다. 방상면 ‘백토미가’(033-481-5287)는 시래기 소불고기(1만·1만5000원)와 시래기 갈비찜(3만5000·4만5000원)을 낸다.

박 관장은 “시래기를 사러 가자”며 양구읍 ‘양구명품관’(033-480-7755)으로 데려갔다. 펀치볼 시래기가 300g 6000원, 1㎏ 1만7000~1만8000원. 시래기 외에도 양구 특산품을 두루 구입할 수 있다. 

 

청정 자연을 자랑하는 양구는 꿀도 유명하다. 꿀은 종류별로 가격이 다르다. 2.4㎏ 기준 피나무꿀 7만원, 아카시아꿀 6만원, 야생화꿀 5만원. 나물도 풍성하다. 60g 기준 건 취나물 2400원, 건 고사리 8200원, 건 곤드레 6800원, 건 곰취 5000원. 직원은 “곰이 겨울잠에서 깨면 가장 먼저 먹는다 하여 이름 붙여진 곰취나물은 햇것이 곧 나온다”고 했다.

 

양구 '전주식당' 촌두부전골./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양구에는 일부러 맛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올 만큼 이름난 두부집도 있다. ‘전주식당’은 인근에서 나는 토종 콩으로 매일 새벽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두부를 만든다. 

 

촌두부전골(9000원)이 대표 메뉴. 아침에 찾으니 갓 만든 따끈따끈 푸딩처럼 보드랍고 고소한 두부가 입에서 씹을 틈도 주지 않고 매끄럽게 위장으로 내려갔다. 

두부를 두툼하게 잘라 노릇노릇 부친 두부구이(9000원)도 맛나다. ‘양구재래식손두부’(010-6419-4542)도 두부 명가(名家)로 이름 났다.

 

양구 '도촌막국수'의 막국수(앞)와 편육./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막국수 맛집도 여럿이다. 박 관장의 단골집은 ‘도촌막국수’(033-481-4627). “막국수도 막국수지만 돼지고기 편육이 야들야들 기가 막혀요.” 양구 막국수는 고추 양념장에 비벼 먹는 비빔 스타일. 겉메밀을 써서 식감이 거칠지만 구수한 맛이 강한 면발과 매운 양념장이 썩 어울린다. 여기에 취향대로 동치미 국물을 부어 먹어도 된다. 

막국수·동치미 막국수 각 7000원, 편육 1만5000원, 메밀전병·감자부침 각 6000원. ‘광치막국수’(033-481-4095)도 양구 대표 막국수집으로 꼽힌다. 막국수 7000원, 편육 1만8000원, 임자탕·감자전 각 8000원.

‘장수오골계숯불구이’는 오골계를 숯불구이(4만원)로 먹을 수 있는 흔치 않은 식당이다. 오골계 옻 백숙(5만원)도 물론 있다. 토종닭 옻 백숙 6만원, 오골계 도리탕 5만원, 오리 숯불구이 6만원.

 


한반도 정중앙 배꼽에 뜬 ‘한반도섬’에선 한 시간이면 전국일주
양구 볼거리 & 즐길거리

 

강원도 양구 파로호 한반도섬./양구군


박수근의 작품과 흔적을 둘러봤다면 양구의 수려한 풍광과 문화를 살펴볼 차례다.

파로호는 강원도 양구와 화천에 걸쳐 있는 인공 호수다. 1944년 화천댐이 건설되면서 만들어졌다. 원 이름은 ‘화천호’였으나, 6·25때 북한·중공군 수만 명을 수장시킨 곳이라 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란 뜻의 파로호(破虜湖)로 개명했다.

‘한반도섬’(033-480-7267)은 파로호 상류에 있는 국내 최대 규모 인공습지로, 그 모양이 한반도를 빼닮았다. 한반도의 배꼽이라는 국토의 정중앙 양구에 떠있는 섬이 한반도 모양이라니 매우 어울린다. 호수가에서 섬까지 이어진 나무덱 길이 아름답다. 섬 전체를 둘러보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섬 안 카페에서 파로호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가 향긋하다.

양구는 조선 백자의 중요 생산지였다. 백자 제작에 필요한 ‘양구 백토(白土)’가 생산됐다. 금강산 월출봉 석함에서 발견된 이성계 발원 사리구 백자발이 양구에서 만들어졌다. 방산면 ‘양구백자박물관’(033-480-7238)은 양구의 백자 역사 500년을 살펴볼 수 있다. 도자기 굽기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양구인문학박물관’(033-482-9800)은 양구가 고향인 이해인 수녀의 시문학과 김형석·안병욱 교수의 철학을 체험할 수 있는 힐링 공간으로 조성됐다. 1관에 있던 이해인 수녀 전시물은 부산 베네딕도 수녀원으로 이전됐고, 현재는 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시인 10명의 작품을 전시한다. 2관 2층 김형석 교수의 서재를 그대로 재현하고 그가 쓴 친필 원고와 책, 소장품 등을 모아 놓은 공간이 가장 사랑받는다.

'소양강 꼬부랑길'에서 본 풍광./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소양강 꼬부랑길’은 1973년 소양강댐이 완공된 이후 배후령·수인터널 등 7개 터널이 뚫리기 전까지 40여 년간 춘천과 양구를 잇는 유일한 길이었다. 

 

춘천 ‘38선쉼터’부터 양구 ‘학조리사거리’까지, 21.5km에 불과하지만 워낙 굴곡이 심해서 15분 이상 걸린다. 터널이 뚫리면서 차들이 모두 사라져 한적한 길이 됐고, 덕분에 자전거 타는 이들 사이에선 사이클링 명소로 이름 났다. 꼬부랑길 구비구비마다 수려한 호수 풍광도 볼 만하다.

 


커다란 화채 그릇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펀치볼은 여의도 면적 6배의 넓은 분지다. ‘DMZ 펀치볼 둘레길’(033-481-8565)은 총 72.2km. 동자꽃, 하늘말나리, 금강초롱 등 희귀 식물과 산양, 하늘다람쥐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6·25 당시 최대 격전지로, 아직도 지뢰가 숲속 곳곳에 묻혀 있어 방문자센터에서 사전 예약 후 해설사와 함께 걸어야 한다. 하루 2회 200명까지 탐방을 허용하며, 3일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아쉽게도 동절기 임시 중단 중이라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무튼 주말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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