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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문경으로 떠나는 이야기 있는 도가 여행

by 한국의산천 2021. 12. 19.

문경으로 떠나는 이야기 있는 도가 여행 [여행+] [세계일보]
관련이슈디지털기획입력 : 2021-12-18 07:00:00 수정 : 2021-12-18 02:10:34

“경상북도 문경은 백두대간을 병풍 삼아 남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낙동강을 두르고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 주흘산, 대야산, 희양산, 황장산 등 4곳을 품고 있다.”
  

1996년 7월 초판이 나온 ‘문경의 명산’은 문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옛 선비들은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산세 험한 새재를 넘었다. 요즘에는 모노레일을 타고 단산에 올라 풍경을 감상한다. 그리 오래지 않은 탄광의 흔적을 모은 박물관과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에코렐라도 생겼다.

문경에는 수백년 전부터 종가에서 빚어온 호산춘은 물론 지역의 젊은 농부들과 합심한 두술도가, ‘문경의 명산’ 저자가 아들과 빚은 ‘하우스맥주’를 기원으로 한 가나다라브루어리 등 이야기가 넘쳐나는 술 도가도 여럿이다. 겨울 문턱에서 술독에 빠진 문경 여행을 소개한다. 

◆장수황씨 가문의 고집 호산춘

 문경시는 호산춘(湖山春)을 산채비빔밥, 약돌돼지구이, 송어회, 민물매운탕과 함께 5미(味)로 꼽는다. 호산춘은 조선초 황희(黃喜, 1363~1452)의 증손 정(珽)이 이곳에 집성촌을 이루면서 장수(長水) 황씨 종택에서 이어져 내려온 가양주(家釀酒)다. 황씨 집안에서 빚어 제사 때나 손님에 내주던 게 대중화한 것.

알코올 도수 18도로 담황색이다. 달달하면서 솔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술을 담는 잔(전통주 잔, 와인 잔), 술의 온도(10도, 15도, 20도)에 따라 맛이 천지차이다. 술은 음식이라 종부들에게 술 빚는 법이 전수됐지만 지금은 황희 정승의 23번째 손자인 황수상(42)씨가 문경호산춘의 대표다.

 

 황씨 종택에 먼저 들렀다. “문경에 있는 조선시대 양반집 중 하나”라는 소개가 붙은 종택은 고즈넉하다. 종택의 탱자나무는 황희의 7대손인 황시간(1588~1642)이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 붙었다. 호산춘을 빚는 곳에 닿았다. 통상의 도가라기보다 공장에 가깝다. 2014년 여름, 지금의 공장으로 옮기기 전까지 종택 인근의 작은 살림집에서 새벽마다 물을 길어 술을 빚었다고 한다.

 호산춘을 황씨가 도맡은 건 세월 탓이다. 호산춘으로 1991년 무형문화재가 된 황씨의 할머니 권숙자씨는 2012년 돌아가셨다. 20년째 암투병 중인 어머니 대신 호산춘을 빚던 아버지 황규욱씨마저 2017년 세상을 떠났다.

문경호산춘의 이름이 전국으로 퍼진 계기도 남다르다. 호산춘 사업자는 1990년 7월에 나왔다. 그로부터 1년 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에서 전화해 “만찬주로 쓸 것이니 호산춘을 올려보내달라”고 하자, 황씨 아버지는 “술을 파는 집이 아니니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다고 한다. 황씨는 “당시 가정집에서 술 담그는 게 불법이었다. 밀주였다”면서 “며칠 후 청와대 사람들이 검정색 밴을 타고 와서 항아리째 밀봉해 가져갔다”고 전했다. 한·미 대통령의 만찬주라는 건 그때 알았다.

황씨는 ‘자타공인’ 노총각이다. 이유를 물었다. “주변에서 종손인 것 숨기고 선을 보라고 한다”고 언급했다. 제사 등 챙길 일 많은 종가의 맏며느리, 어쩌면 술 빚는 법을 전수해야 할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여성이 많지 않다는 뉘앙스였다.

 호산춘은 2∼3개월 발효를 거쳐 한 번에 2000병쯤 나온다. 이마저도 황씨 혼자 집안 대소사를 다 챙기다보니 술 담그는 날이 자꾸 미뤄지고 있다. 호산춘 인기는 확실하다. 인터뷰하는 도중 찾아오는 손님이 여럿이다. 대개 “술 남았느냐”고 묻는다. 생산량이 많지 않다는 걸 아는 단골들이다. 이젠 다른 업체를 통해 온라인 판매도 하지만 더 비싸다. 호산춘 공장 문턱이 닳는 이유다. 얼마 전부터 체험프로그램도 시작했다.

황씨 가문의 호산춘 고집은 유명하다. 2011년, 쌀값이 비싸서 황씨는 아버지 몰래 정부미를 수매해 술을 빚었다. 아버지는 술 맛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부미로 빚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 호되게 혼내고 술을 모두 버렸다. 황씨 아버지는 생전에 “돈 욕심에 술을 많이 생산해 품질을 떨어뜨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황씨는 요즘 호산춘을 이을 방도가 고민이다. 호산춘을 배우겠다고 해서 들여도 6개월을 못 버틴다. 황씨는 “제 성격이 지랄맞아서 그렇다”면서도 “한두 달 지나면 혼자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 지시를 안 따른다”고 전했다. 황씨 이후 문경호산춘의 명맥이 끊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달달하던 술이 갑자기 쓰다.

 ◆산과 술을 사랑한 공무원, 그리고 가나다라브루어리

 문경의 대표 수제맥주 업체인 가나다라브루어리로 향했다. 특이하게 한옥 형태다. 윤영기 과장은 “수제 맥주에 빠진 젊은층 외에도 동네 어른들도 편하게 와서 즐길 수 있는 맥주를 만들자는 방향성이 있다”며 “생산량이 늘면 시설을 추가하고 현재 건물은 여행스팟 형태로 꾸밀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설명자료에는 “문경청년 김억종 양조사와 창업을 꿈꾸던 서울청년 배주광 대표가 만나 2016년 12월 시작됐다”고 소개됐다.

 

 사실 김억종(38)씨가 아버지와 함께 만든 문경브루어리가 가나다라의 전신이다. 2019년 말 세상을 떠난 김씨 아버지 김규천씨는 문경시 관광진흥과 공무원이었다. 문경시 이름으로 발간된 ‘문경의 명산’은 아버지의 발품과 사진이 엮어낸 명작이다.

 

산과 술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억종씨가 고교 2학년 때 퇴직하고 귀농했다. 사과와 오미자를 재배하다 사과 와인을 시도했고, 2010년 수제맥주를 시작했다. 당시 하우스맥주로 불리던 시절이다. 지인들과 나누고 축제 때 조금 내놓는 수준이었다. 2014년 주세법 개정으로 외부유통이 허용되자 이태원 경리단길에 있는 가게에 한 주에 한두 번씩 배송도 갔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산을 늘려야 했고, 아버지가 알던 배 대표와 지금의 가나다라로 터를 넓혔다.

 아버지 권유로 농고와 농대를 나온 억종씨 형제는 한때 가나다라에서 함께 일했다. 억종씨는 “중3 때 인문계 고교 입시를 준비했는데 산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나중에 농업하는 게 더 행복할 것’이라면서 농고 진학을 사실상 강제했다”며 웃었다. 오래전 아버지와 함께 만든 점촌IPA는 가나다라에서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을 덧달았다. 점촌은 문경의 옛 이름이다. 가나다라의 상징인 일월오봉도는 산세 좋은 문경을 표현했지만, 억종씨 아버지의 손길이 밴 책이 먼저 떠오른다.

 

 가나다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맥주는 문경새재 페일에일과 주흘 바이젠이다. 문경 사과로 만든 사과술은 2019년 말에 처음 나와 지금은 4가지로 늘었다.
 
수제맥주는 전통주보다 힘들다. 주조가 전통방식이거나 재료가 모두 국산이어야 전통주로서 인터넷 판매가 가능한데, 수제 맥주에 쓰이는 맥아는 국산으로 100% 대체하기 어려워 대면거래만 가능한 탓이다. 거래처가 전국 900여곳에 달하는 배경이다. 지난달에는 울릉도에 새로 문을 연 레스토랑 ‘고맨디즈’에도 납품을 시작했다. 가나다라에서 시음은 무료다. 맥주 제조공정을 보고 싶으면 10명 이상 예약하면 된다.

◆희양산 젊은 농부들과 함께하는 두술도가, 오미자와인 생산하는 오미나라

 탄광이 한창이던 1960년대 전통시장을 현대화한 가은 아자개장터에 두술도가가 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 원래 도가를 위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술도가의 주인 김두수(52)·이재희(51·여)씨 부부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회사에서 일하다 2004년 가을 귀국했다. 더 이상 피폐하게 살고 싶지 않아 문경 희양산 자락에 터잡고 젊은 농부들과 어울리던 두 사람은 동네 지인의 논농사를 도운 뒤 뒤풀이 자리에서 술을 빚기로 결심했다. 쌀 소비량이 줄면서 비싼 유기농쌀 재고가 쌓이던 터에 그 대책으로 술을 만들어보기로 한 것.

 5년쯤 전부터 순순, 장남, 경실, 형규, 영자, 짱구, 영화, 떡배, 배목, 을구, 호기 등 희양산마을영농조합법인의 농부들은 자연스레 ‘술 테스터’가 됐다. 술이 나오면 바로 나누며 장단점을 확인했다. 두술도가의 막걸리들이 달지 않은 것은 시음을 한 이들과의 논의 끝에 결정된 듯싶다.

2019년 4월 15일, 처음으로 직접 빚은 술이 병에 담겼다. 잊지 못할 순간이다. 그림책 작가인 전미화씨가 특유의 젊은 감각의 라벨과 그림을 입혔다. 그해 5월 서울 망리단길의 복덕방 막걸리에 납품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판매된다. 김씨는 “막걸리 90%는 달지만 우리 것은 드라이하다”며 “안 달아서 대중적이지 않지만 달달한 막걸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라고 했다. 이씨는 “지인들이 좋아할 막걸리를 만들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덧붙였다.

 지난달에는 장터에 희양상회가 문을 열었다. 희양산 젊은 농부들이 정성스레 지어낸 곡물을 소량 판매하고, 문경 술도 판다. 두술도가에서는 희양산의 쌀로 빚은 막걸리 9도와 15도짜리, 오미자막걸리 오미자씨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조만간 희양상회와 함께 더 깊이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내놓을지도 모르겠다.

문경은 전국 오미자의 45%를 생산한다.

오미자 와인으로 유명한 오미나라가 문경 ‘도가 투어’의 핵심이 된 배경이다. 생산총괄인 문성훈 부사장은 “올해 판매량은 전년대비 절반가량 늘었다”면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에도 2배 성장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5월에 새로 출시된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 연’이 효자다. 2011년 11월 ‘오미로제 결’이 출시된 지 거의 10년 만이다.
  

가장 대중적인 문경바람도 판매가 늘었는데, 방문객은 줄었지만 지역 특산주라 온라인 판매가 가능한 덕을 봤다. 오크와 도자기 중 어떤 통에서 숙성했느냐에 따라서 색깔과 가격이 다르다. 문 부사장은 “오크 통에서 숙성해 갈색 빛이 도는 게 더 비싸다”며 “오크 통에 숙성하면 1년에 10∼15%가 빠져나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위스키 숙성과정에 통상 2%가 증발하는 것을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미나라 견학은 무료다.
문경=글·사진 정재영 기자[ⓒ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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