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걷다](1)우통수와 열불암
입력 : 2006.07.21 16:25 경향신문 이지누
우통수 곁에 있는 오대산의 서대 염불암이다. 드물게 너와지붕을 올렸으며 스님 한 분만이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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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토닥거리며 창을 두드리던 빗소리가 만물을 깨우는 새벽, 한강의 발원지중 하나인 오대산 서대 우통수에 오르려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대뜸 그곳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다만 오대산의 산문(山門)격에 해당하는 전나무 숲을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옅은 안개가 드리운 그 길에는 더러 빗방울이 들이치기도 했으며, 빗물을 잔뜩 머금은 나뭇가지가 축 늘어지며 쏟아놓는 물방울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마다않고 그 길을 되짚어 걸었던 까닭은 온 산을 에워싸고 있는 습기가 몸뿐 아니라 마음에까지 스며드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의 현재는 꼭 쥐면 손아귀에서 바스라질 것만 같이 메말라가고 있었으니 선뜻 우통수를 맞닥뜨린다고 한들 어찌 그를 맑고 밝은 눈으로 맞이하여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숲길을 걸으며 내가 산으로 전이(轉移)되거나 혹은 산이 나에게 삼투(渗透)되어 성기기만 한 나의 현재가 좀더 밀도 있게 버무려지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윽고 전나무 숲을 빠져 나오자 굵은 빗발이 바람과 함께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들과 함께 상원사로 가는 이십 리 길, 그 아름다운 흙길을 아예 맨발로 걷는 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를 앞질러 지나치면서도 말을 거는 것은 삼갔다. 홀로 걷는 그이의 집중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나의 집중 또한 흐트러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지독히 이기적인 행동이긴 했지만 내가 언제, 어디에서 또 이토록 찬란한 장면과 조우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며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는 사람들치고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싶기도 했던 것이다.
산문에서부터 두어 시간 남짓, 상원사를 곁눈으로 지나자마자 우통수로 향하는 오솔길이 감춰져 있었다. 길의 흔적이 어렴풋할 뿐이어서 초행길인 사람은 발을 들여 놓기가 저어할 법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우통수와 서대로 가는 즐거움 중 하나이며 큰 매력이다. 발을 들여 놓자마자 지금까지와는 달리 빼곡하게 들어 찬 나무들 탓에 길은 어두컴컴하기만 했으며, 나뭇잎과 빗줄기는 한 치의 타협도 없는 바람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은 곤혹스러울지언정 그 장면은 나의 해낭(奚囊)을 열어젖히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기신기신 비탈길을 오르다가 우두커니 서서 혹은 그루터기만 남기고 쓰러진 고목에 걸터앉아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해낭에 주워 담기를 예닐곱 차례, 몇 굽이를 돌았는가 싶자 나는 어느새 우통수가 코앞인 능선 길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는 바람이 곧이곧대로 나에게로 향했다. 숨을 곳 없이 맞닥뜨린 바람, 나는 우통수로 가는 것도 잊은 채 그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두 발과 팔은 한껏 벌리고, 고개는 뒤로 젖혀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말이다. 휘청거려도 좋았다. 들이치는 빗발에 얼굴이 아파도 개의치 않았다. 비에 맞은 얼굴이 얼얼할 즈음이면 어느새 짙은 안개가 어루만져 주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으며 날을 세운 듯 매몰차게 달려들던 바람 또한 잠시 잦아들어 숨을 돌리게 해 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열고 닫기를 반복하던 해낭을 더 이상 열지 않았다. 이처럼 넘치도록 황홀한 정경을 두고 그 주머니에 무엇을 담고 또 무엇을 담지 않을 것인지를 가늠하는 자신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십년이 가깝도록 해마다 서너 차례씩 마치 순례하듯 이곳을 올랐지만 오늘과 같이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은 처음이었으니 어느 장면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니 분별하여 가리느니 차라리 전체로 느끼는 것이 옳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그 때문인가. 내 몸에 와 닿던 바람의 질감과 거세게 두들겨대던 빗방울의 촉감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순정한 시간의 기억들은 오랫동안, 긴긴날을 두고 나에게로부터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다. 설사 내가 잊었다고 하더라도 내 몸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며, 어느 순간 맞닥뜨린 바람 한점이나 얼굴에 와 닿는 한 방울의 비로도 그 순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스란히 되살아 날 것만 같다.
[한강을 걷다](1)우통수와 열불암.
비에 취하고 바람에 흔들린 마음을 추스르지도 않은 채 우통수로 향했다. 지척인 곳, 닿자마자 물을 한 바가지나 떠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아직 삶의 경험이 일천하여 비록 품천(品泉)의 경지에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물맛은 여느 곳과는 달리 아주 깔끔하다. 입에 닿거나 삼켜도 입안에 맛이라고는 전혀 남지 않으니 과연 물이란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른 무엇이 전혀 개입하지 않은 물 그 자체의 맛을 느낄 수 있으니 우통수는 한강의 발원지 이전에 샘 그 자체로서도 빼어난 존재인 것이다.
이 샘을 두고 여말선초의 선비인 양촌 권근(1352~1409)이 ‘오대산 서대 수정암 중창기’(五臺山西臺水精庵重創記)에 쓰기를 “…서대 밑에서 샘이 솟아나서, 빛깔과 맛이 보통 우물물보다 낫고 물의 무게 또한 무거운데 우통수(于筒水)라고 한다. 서쪽으로 수백 리를 흘러가다 한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가는데, 한강이 비록 여러 군데서 흐르는 물을 받아 모인 것이지만 우통수가 중령(中령)이 되어 빛깔과 맛이 변하지 아니하여, 마치 중국의 양자강과 같으므로 한강이라 이름 짓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우통수의 근원에 수정암이란 암자가 있는데, 옛날 신라 때 두 왕자(王子)가 이곳에 은둔하여 선(禪)을 닦아 도를 깨쳤기에, 지금도 중으로서 증과(證果)를 닦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두 거처하기를 즐겁게 여긴다.…”라고 했다.
그러니 우통수의 물은 무겁고 단단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물의 무거움과 가벼움 그리고 단단하거나 무름을 가려 낼 자신이 없다. 권근 또한 양자강의 중령을 실제 보고 맛까지도 봤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중령이란 중국 강소성(江蘇省) 진강현(鎭江縣) 서북쪽의 양자강에 있는 샘을 말하는 것이다. 그 샘에서 솟아 난 물은 맛이 차기로 소문났는데 황토가 넘쳐나는 강바닥을 흐르면서도 다른 물과 섞이지 않았다고 한다. 우통수의 물 또한 그와 같이 긴 여정을 떠나 한양에 다다를 때까지도 그 맛과 기운을 잃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우통수의 물을 한 바가지 마시는 것은 한강의 가장 맑고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때문인가. 우통수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나라 안에서 차를 달이는 물로는 으뜸이라고 소문나기도 했다. 호를 성소(惺所)라고 쓰던 조선 중기의 허균(1569~1618)이 남긴 ‘화사영시’(和思潁詩)중 ‘소회를 쓰면서 소자정에게 답한 운을 쓰다’(書懷 用答邵資政韻)의 끝 부분에 봄날이 끝나갈 무렵 차를 끓여 갈증을 달래고 싶지만 어찌하면 우통수의 물을 얻어 올 수 있을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거기에 덧붙여 “우통은 오대산 상원사 곁에 있는데, 한강의 상류이며 나라 안에서 으뜸가는 샘이다(于筒在五臺山上院寺側 是漢江上流 爲東國第一泉)”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곧 그 샘물이라야 차를 제대로 끓일 수 있는데 그것을 구하지 못하는 귀양살이의 답답한 현실을 빗대어 읊은 것이지 싶다.
그 맑은 물에 얼굴이라도 비쳐보았으면 싶었지만 아예 나무로 함을 만들어 샘을 덮어 놓기도 했을뿐더러 날씨마저 어두워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 곁에는 너와로 만든 지붕을 이고 있는 암자가 벌거벗은 몸으로 굵은 빗발을 감당하고 있었다. 서대 염불암(念佛庵)이다. 앞서 말한 권근이 수정암이라 불렀던 곳이다. 빗줄기는 지붕에서 물보라가 일어나도록 거세게 퍼부었으며 곧 지붕이라도 뚫어버릴 듯이 내려 꽂혔다. 그는 자유낙하의 자유로운 몸짓이 아니라 마치 목적을 두고 달려들 듯이 그렇게 쏟아졌다. 그 앞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나는 다만 큰 나무 밑에 서서 간혹 사진기의 셔터를 누를 뿐, 서너 시간이 지나도록 그 장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덧씌워져 있던 생각은 사라지고 오로지 존재만이 남아 있었다. 비가 잦은 틈을 타 지붕을 둘러보던 스님과 눈길이 마주치기는 했지만 눈인사만 나누었을 뿐 암자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고 그 또한 나에게 말도 걸지 않았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을 뿐 방해를 받고 싶지도 간섭을 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뜻하지 않게 나로부터 훌훌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는데 기어코 그것을 만끽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우통수의 매력이 무미한 물맛이라면 염불암의 매력은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허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통수로부터 흐른 물이 바다에 닿기까지 갖가지 형태와 맛으로 달라지지만 우통수는 한결같듯이 허공 또한 천변만화하며 갖가지 모양으로 달라지지만 허공의 본질은 결코 변하는 법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허공은 갖가지 모습으로 천변만화하며 가려 있는 탓에 투명한 그 본질을 꿰뚫어 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통수의 맑은 물 한잔을 마시고 염불암 마당에 서면 우리들에게 드리운 엷은 막이 사라지고 본래의 나와 불현듯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본래 면목이 그리운 사람들아, 서둘러 우통수로 올라보라. 그곳에 그토록 애타게 찾던 네 자신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이지누〉
글쓴이 이지누
*이지누는 대한민국 사진가 중에서 가장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다.
그는 지극히 우리땅을 아껴 1994년 휴전선 기행을 시작으로 ‘우리땅밟기’라는 답사단체를 이끌고 있기도 하다.
나라 안의 그 어떤 골짜기라도 그의 발길 닿지 않은 곳이 없으며 한강 또한 10년이 넘도록 제집 드나들 듯 발품을 팔아 답사를 했다.
올해 봄에는 폐사지 답사기인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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