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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산따라 맛따라 259ㅣ가평 북배산] 남이섬에 건국된 ‘나미나라공화국’

by 한국의산천 2020. 4. 24.


[산따라 맛따라 259ㅣ가평 북배산] 남이섬에 건국된 ‘나미나라공화국’

글 박재곤 우촌미디어 대표 사진 이광희 한국산서회 이사 입력 2020.04.21 09:44

   

남이섬에 찾아온 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했다. 봄이 왔는데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봄 같지 않다. 그런 가운데 가평으로 취재를 나섰다. 언제나 이맘때면 경춘선 전동차 안은 화사한 봄옷 차림의 상춘객들로 붐비고 60번 서울춘천고속도로는 나들이 차들로 생기가 넘쳤다. 그런데 경자년의 봄은 불행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코로나19 때문이다.


북배산을 찾는데 남이섬을 안 들를 수 없다. 역시나 넓은 주차공간을 가득 메웠던 관광버스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은 남이섬은 ‘나미나라공화국’이라 불리는 ‘상상의 나라’가 돼 있었다. 입국수속(매표)장에는 우리나라 국민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두 줄로 높게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걷게 된다. 바로 얼마 전까지 마스크로 입을 가렸던 세상과는 별개의 세상에 온 듯했다. 면적 약 46만㎡, 둘레 약 5km로 청평호수 위에 가랑잎처럼 떠 있는 넓지 않은 섬나라인 이곳에는 아스팔트길이 전혀 없다. 흙길만 걷게 된다. 흙길을 걷는다는 것은 고향의 길, 평화스러움의 길을 걷는 것이다. 오밀조밀하게 잘 꾸며진 주변의 수많은 조형물들이 이 상상의 섬나라에 온 모든 사람들을 동심의 세계로 유도한다.


한편 이곳에서 신혼여행 중인 젊은 한 쌍의 신혼부부를 만났다. 코로나19로 출국길이 막혀 급히 이곳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당초 신혼여행 예상경비의 4분의 1만 사용했는데 남은 돈은 코로나19로 고생하고 있는 병원에 기부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처럼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이 시국을 슬기롭게 극복했으면 한다.


남이섬 먹거리

1. <섬향기> 자연 속에서 즐기는 장작구이 닭갈비 031-580-8054

2. <고목> 숲속 캐주얼 레스토랑 & 카페 (반려동물 동반 가능) 031-580-8053

3. <한식당 남문> 손끝 정성의 단아한 맛, 정갈한 메뉴의 반가음식 031-580-8055

4. <아시안 레스토랑 동문> 아시아 인기 메뉴를 쏙쏙 골라 먹는 재미 031-580-8099

5. <딴지펍(피자&파스타)> 화덕에 직접 구워내는 유러피안 피자 031-580-8056

6. <도시락집 연가지가> 추억의 도시락을 맛 볼 수 있는 아늑한 곳 031-580-8057

 

평화막국수


산행거점마을의 터줏대감, 캐나다에서도 찾아오는 집

가평군 북면에서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으로 이어지는 남북 간의 75번국도(가화로) 동북단에는 화악산(1,468m)이 솟아 있고, 서쪽에는 남북으로 연인산(1,068m)과 명지산(1,267m)이 큰 산줄기를 이루고 위용을 자랑한다. 이 3개의 산은 월간<山> 선정 한국의 100대 명산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 3개 명산의 동쪽에 이웃한 북배산(867m)과 계관산(665m)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과 강원도 춘천시 서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줄기에 솟아 있다.


이 지역 산행에서는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한국전쟁사가 있다. 북배산 정상에서 7시 방향의 504고지와 백둔계곡의 대원사 남쪽 677고지는 세계 전사戰史에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는 봉우리다. 504고지에선 호주군이, 677고지에선 캐나다군이 1951년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중공군과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크게 승리한 바 있다.


북면 사무소가 있는 목동은 서울 잠실로 오고 가는 정기버스편이 있는 이 지역 산행의 거점 마을이다. 이 마을의 ‘평화막국수’는 40년 전통의 대중식당으로 70대 부부(최승진·김려자)가 운영하고 있다.


‘평화식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식당 자체가 이 지역의 역사이기도 하다. 대표 최승진 옹의 선친은 6·25전쟁 당시 민간인 신분으로 온 몸을 바쳐 캐나다군을 지원했던 공로로 캐나다에 알려진 인물이라고 한다.

지금도 해마다 이곳에 세워둔 캐나다 참전기념비를 찾아오는 캐나다 관광객들이 식당을 찾아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했다.

메뉴 막국수 6,000원.

전화 031-582-0031. 010-4033-3031

주소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1리 888-1

 

명지쉼터가든


잣국수 특허 낸 잣고을 잣요리 전문점

캐나다전투기념비 바로 앞쪽에 잣요리를 전문으로 차려 내는 ‘명지쉼터가든’(대표 김덕수金德洙)이 영업 중이다. 잣국수로 특허를 냈고 상표등록도 해놓은 탓에 많은 손님들이 신뢰를 갖고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메뉴 잣국수, 잣죽 각 1만 원. 장작불 잣곰탕 1만2,000원.

전화 031-582-9462 주소 경기도 가평군 북면 가화로 777

잣국수특허번호 제10-0714657호. 상표번호 제40-1090397호

 

다믈촌(가평농가맛집)&참새언덕


숨겨진 명소, 북한강 큰 물줄기가 한눈에

청평은 월간<山> ‘산따라 맛따라’ 취재만이 아니라 거리가 가까워 1960년대부터 자주 들르는 곳이다. 아름다운 산이 있고 큰 가람이 있기에 드라이브 코스로도 적격이다. 현지 산꾼 ‘이광우 산악회 총무’의 정성어린 안내는 언제나 고맙다.


하지만 이번 취재 길에 이광우 총무가 ‘그동안 숨겨 둔 곳’이라며 안내해 준 ‘다믈촌’과 ‘참새언덕’은 참으로 놀라운 곳이었다. 여러 차례 감탄사를 토했다. 맛이나 비경이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만을 남기고 싶다. 단, 찾아가기 전 예약전화를 필수로 해야 된다.


메뉴 능이토종닭백숙 8만 원. 옻닭, 오리백숙 각 7만 원. 뽕닭백숙, 얼큰볶음탕, 다믈촌오리불고기 각 6만5,000원.

묵무침, 감자전 1만 원. 두릅회, 두릅전, 두릅튀김 각 2만 원.

전화 다믈촌 031-584-3364. 김유진 010-8791-6881 참새언덕 원제현 010-2088-1260.

주소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회곡가래골길4

 

박성기 대표이사.


막걸리를 위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우리술 박성기 대표이사


‘가평잣生막걸리’는 가평 운악산 아랫마을, 청정지역 현리의 지하 250m 천연암반수와 막걸리전용 쌀 ‘보람찬 벼’, 가평의 특산품 잣을 엄선해 전통제조방식으로 빚어내는 최고급 막걸리다. (주)우리술에서는 도수 6% 가평잣生막걸리를 위시해 ‘톡 쏘는 알밤동동’, ‘톡 쏘는 고구마동동’, ‘제주감귤막걸리’ 등도 함께 생산 중이다.


1928년에 창업한 오랜 전통의 ‘조종양조장’을 2003년에 인수, 주식회사 ‘우리술’이라는 이름의 법인으로 전환해 운영하고 있는 박성기 대표이사는 ‘막걸리를 위해 세상에 태어난 사람’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막걸리로 세상을 즐겁게’가 삶의 목표라는 박 대표이사는 2013년 한국막걸리협회를 창립하고 2년 임기의 회장직을 두 차례 맡아 협회를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은 협회정관에 의한 협회의 고문직으로 우리나라 주조산업발전에 계속 기여하고 있다.


회장직 재임 4년 동안 그는 여러 가지 업적들을 남겼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경기대학교에 양조경영학과를 개설토록 하여 후진양성의 확고한 기반을 조성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술 막걸리 원정대가 천마산 정상에 올라 음주는 하산 후에 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또한 그가 추구했던 막걸리의 세계화는 업계의 협력과 정부차원의 지원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2010년 막걸리제조업계 32개 회원사가 결집, 한국막걸리수출협의회를 결성하고 50여 개 나라에 막걸리를 수출하고 있다. 박성기 대표이사는 이 수출협의회의 회장직도 맡고 있다. 우리술에서도 지금 25개국에 막걸리를 수출하고 있다.


한편, 우리술에서는 회사 주변의 이웃 주민들과 회사직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25일 ‘우리술막걸리원정대’라는 이름의 산악회를 창립하고 매달 한 차례씩 산행을 하고 있다. 원정대의 대장은 심윤섭 우리술 영업본부장이 맡고 있다.

주식회사 우리술 031-585-8525

 

운악산두부골


운악산 현등사 코스의 ‘종숙 누님댁’

운악산은 경기 오악(감악, 관악, 송악, 운악, 화악) 중의 한 산이다. 이 오악 중 개성의 송악은 가볼 수 없는 곳이고, 관악은 서울과 경기의 경계선 상에 솟아 있는 도시공원 같은 산이다. 나머지 3악 중 운악은 서울에서 비교적 가깝고 또 교통편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많은 산꾼들이 즐겨 찾는다.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의 산꾼들은 도봉산과 북한산을 근교의 산으로, 그리고 운악산은 원정으로 생각했었다.


필자는 운악산을 한국등산사의 거목인 노산(이은상)과 한솔(이효상) 선생을 따로따로 모시고  오른 적이 있다. 이제는 반세기도 더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엊그제의 일인 양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두 차례 모두 현등사 앞뜰에 목련이 곱게 핀 4월, 화창한 봄날이었다.


운악산은 경기도 가평군과 포천시의 경계에 있는데, 주된 산행기점은 가평군 조종면 현등사길(하판리)이다. 이곳에는 작은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이 상가에서 ‘운악산두부골’이 운악산을 잘 아는 산꾼이나 산악회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식당이다.


늘 상냥한 웃음을 띠고 있는 박종숙 대표는 이 식당의 단골 산꾼들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어 흔히 ‘종숙 누님’으로 불리고 있다. 어느 산악회나 등산을 마치고 하산하면, 앞서 내려온 대원들이 이 식당에서 미리 진을 치고 종숙 누님이 차려준 하산주 한 잔씩 걸치면서 뒤따라 내려오는 대원들을 기다리는 게 다반사다.


메뉴 묵은김치손두부, 묵무침, 도토리전, 감자전, 토속메밀전병 각 1만 원. 해물파전 1만5,000원. 제육두부 1만8,000원. 두부전골(소) 1만 원 (중) 2만5,000원 (대) 3만2,000원. 더덕구이정식(2인 이상) 1만5,000원. 산마을정식(2인 이상) 1만8,000원. 시골된장찌개, 토속청국장, 순두부백반, 비빔밥 각 7,000원. 국내산토종닭 백숙 5만 원, 옻백숙 6만 원, 능이백숙 7만 원. 삼겹살, 목살(국내산, 200g) 1만3,000원, 독일산(200g) 1만 원. 

전화 031-585-6172. 010-8881-8191.

주소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 현등사길 29 
  
Copyrights ⓒ 월간산. 




김민경 ‘맛 이야기’

술잔은 무겁게, 마음은 가볍게 즐기는 우리 술

푸드칼럼니스트 입력2020-04-18 10:00:01

2020년 05월 호


술잔은 무겁게, 마음은 가볍게 즐기는 우리 술


조선시대 술집 풍경을 담은 신윤복 풍속화 ‘주사거배(酒肆擧杯)’. [동아DB]


‘비는 내리고/하늘에 뜨지 못한 달이/작은 그릇 속에 떴다 (중략) 얼마나 온 걸까/찌그러진 주전자 끝에/눈물 맛이 나는 하루’(막걸리, 임권).

술을 담그고 나니 시 한 수가 떠오른다. 행여 엉엉 울고 싶은 일이 생기더라도 막걸리 한잔에 근심을 풀고 지나가면 좋겠다. 소주는 쓸쓸한 마음에 붓자니 너무 따갑고 쓰다. 맥주는 지나치게 쾌활해 근심 위에 이 술을 부으면 더 외로워지는 것 같다. 이럴 때는 탁주가 제격이다. 구겨진 내 얼굴도 비치지 않고, 밥처럼 구수하니 맛도 좋다. 분명 차가운 술을 먹는데 마음은 뜨끈해지는 정이 있다. 그래서 나는 가양주를 빚었나 보다.


가양주를 빚고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 먹을지 고민해 볼 일이다. 나처럼 술빚기 초보자들은 맛보고 싶은 마음이 급한데다 솜씨도 어설프니 막걸리로 내려 먹는 게 수월하다. 게다가 빚은 술 양이 워낙 적으니 청주를 걸러내야 하나 마나 고민도 된다.


천태만상 가양주의 세계


술지게미에 물, 흑설탕 등을 넣어 만드는 모주. [전주주조 공식홈페이지]


우리가 마실 수 있는 가양주, 즉 전통주 유형은 탁주, 청주, 증류주로 크게 나뉜다. 과실주도 있지만 곡물이 원료가 아니니 잠시 빼두자.

막걸리는 탁주에 속한다. 술이 발효하면 독 바닥에 곡물 건더기가 가라앉고, 위에는 맑은 술이 뜬다. 막걸리는 위에 뜬 술을 따로 떠내지 않고, 건더기와 술을 한꺼번에 주물러 거른 술이다. 모두 알다시피 뽀얗고 불투명한 상아색을 띠며 알코올 도수가 낮은 편이다. 탁주, 탁배기, 막 거른 술, (집에서 만들었으니) 가주, (농사일 하며 먹기 좋으니) 농주 등으로 불렸다.


청주는 가라앉은 건더기를 가만히 두고 웃물만 떠내 거른 맑은 술이다. 전통 방식은 가라앉은 건더기에 ‘용수’를 박아 그 안으로 맑은 술이 고이게 했다.

용수는 싸리나무, 대나무, 버드나무 같은 것을 가늘게 쪼개 촘촘하게 엮어 만든 둥글고 길쭉한 바구니다. 요즘엔 구하기 힘들뿐더러 고운 체가 다양하게 나오니 이것을 이용해 맑은 술을 거를 수 있다.


그럼 동동주는 뭘까. 발효를 거치는 중 떠오르는 밥알을 굳이 거르지 않고 위에 뜬 술과 함께 퍼낸 것이다. 동동주를 맑게 거르면 청주라고 볼 수 있다.

곁가지가 하나 더 있다. 청주를 거르고 남은 술지게미에 물을 섞어 거른 것도 탁주라고 부르며 예전엔 꽤 많이 소비됐다고 한다.

물을 섞은 술과 그러지 않은 술을 구분하려고 탁주와 막걸리로 각각 부르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다.


쌀과 술이 흔한 요즘에는 굳이 술지게미에 물을 탄 탁주까지 만드는 양조장은 잘 없다. 그렇지만 집에서 내손으로 술을 담그고 보니 술지게미에 물을 타서라도 술을 오래오래 맛보고 싶기도 하다.


증류주는 청주를 증류해 받은 술이다. 향과 맛이 응축되면서 알코올 도수가 40% 내외로 높아진다. 증류주를 이야기할 때는 과하주(過夏酒)를 빼놓을 수 없다. 과하주는 이름 그대로 여름을 나는 술이다. 청주와 청주를 증류한 술을 섞어 숙성해 만든다.


알코올 도수를 높여 더운 여름에도 발효가 더는 일어나지 않게 하면서 맛은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 집에서 간단하게 과하주를 만들고 싶다면 술지게미에 시판 소주를 부어 숙성시키는 방법도 있다. 맛은 다소 떨어지겠지만 여름 내내 손수 담근 술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술을 거르고 나면 술지게미가 꽤 남는다. 이것 역시 쓸모가 만만치 않다. 술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모주를 만들어야 한다. 술지게미에 물과 흑설탕 그리고 생강, 대추, 감초, 계피, 갈근 같은 약재를 넣어 만든다. 계피를 제외한 약재를 먼저 물에 푹 끓여 우린다. 그 물에 계피와 술지게미를 넣고 보글보글 끓으면 입맛에 맞게 흑설탕을 넣는다. 은근한 불에서 계속 저으며 막걸리 같은 농도가 되게끔 끓여 체에 거른다. 이렇게 하고도 남은 술지게미는 목욕 시 피부에 바르듯 살살 문질러 각질 제거나 보습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모주를 만드는 대신 오이, 무, 가지 등을 큼직큼직하게 썰어 소금에 버무린 다음 술지게미에 박아 장아찌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흔히 들어본 주박장아찌가 바로 그것이다. 술지게미는 주박, 주정박, 주자, 주재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술지게미를 효모 대신 사용해 빵을 빚는 이들도 있고, 가볍게 말려 알코올 성분을 날린 뒤 텃밭에 거름으로 줘도 아주 좋다. 정성껏 빚은 술이 건더기 한 톨까지 이토록 쓸모가 있다니 아직 맛도 보지 못한 술을 거나하게 마신 듯 웃음이 난다.


개성 넘치는 ‘신식’ 전통주


울산 ‘복순도가’ 양조장 풍경. [홍중식 기자]


전통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이 꽤 있다.

막걸리학교를 비롯해 수수보리아카데미, 한국가양주연구소, 한국전통발효아카데미센터, 한국전통주연구소, 북촌전통주문화연구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전통주연구개발원, 배다리전통주학교, 연효재, 전라슬로푸드문화원 등으로 다양하다.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도 종종 전통주에 대한 강의가 개설되기도 한다.

술 빚기를 배우지 않고 집에서 막걸리를 뚝딱 만들 수 있는 키트도 있다. 막걸리 분말과 효소제 등이 들어 있어 재료를 넣고 미지근한 물을 부어 하룻밤 두면 영락없는 막걸리가 완성된다. 이렇게 완성된 막걸리는 그대로 마시기도 하지만 과일 주스나 휘핑크림, 커피, 설탕 등을 넣어 색다른 칵테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막걸리를 살짝 얼린 다음 과일 또는 과일즙, 요구르트와 함께 곱게 갈면 개운한 맛의 스무디 칵테일이 된다.


저마다의 개성 넘치는 전통주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요즘이다.

하나같이 빼어난 패키지와 기발한 이름만큼 내공이 가득한 품질을 갖고 있다.

울산에 위치한 복순도가의 ‘손 막걸리’는 자글자글 강렬한 탄산이 남달라서 막걸리계의 샴페인으로 불린다. 석류즙처럼 빨간 ‘붉은 원숭이’는 오로지 붉은 쌀(홍국)로만 술을 빚는다.


삼해주처럼 세 번 빚는 경기 남양주의 ‘봇뜰막걸리’는 ‘오미(五味)’를 모두 담은 맛 좋은 술로 통한다.

충북 청주에서 만들어지는 ‘풍정사계’는 하나의 이름 아래 청주, 과하주, 탁주, 소주가 모두 생산돼 하나하나 다른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최근 만난 가장 특이한 전통주를 꼽자면 술샘의 ‘이화주’다.

예부터 있던 술 종류인데 만드는 이가 그간 없었나 보다. 이 술은 요거트 혹은 푸딩과 비슷하다. 색은 탁주에 가까운데 액체가 아니라 찰랑찰랑하는 덩어리다.


이화주는 물 없이 쌀과 누룩만으로 빚는다. 누룩도 밀 아닌 쌀누룩인 ‘이화곡’을 사용한다. 쌀가루로 구멍떡을 빚고 삶아 익힌 다음 식힌다.

구멍떡을 으깰 때 이화곡을 넣고 한참을 주물러 섞이게 한 다음 항아리에 넣는다. 물기가 없으니 주물러 섞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한다.

2~3일 동안 발효하고 한 달 이상 숙성하면 요거트 같은 이화주가 만들어진다.

물이 안 들어가니 신 맛이 적고, 쌀이 많이 들어가니 당연히 달고, 발효 기간이 짧으니 알코올 도수도 높지 않다.

누구라도 신기하고 좋아할 만한 전통주다. 배꽃 필 때 빚는 술이라 이화주(梨花酒)라 이름 붙었다.


이와 비슷한 재미를 주는 것이 느린마을 양조장에서 맛보는 사계 막걸리다.

술 빚은 지 1~2일 된 것을 봄, 3~5일 차는 여름, 6~7일 차가 가을, 8~10일 차는 겨울 막걸리라 칭한다.

살아 숨 쉬는 막걸리가 익어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한자리에서 맛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전통주를 한자리에서 맛보고 싶다면 백곰 막걸리&양조장, 안씨막걸리, 산울림1992, 윤서울, 작(酌) 같은 곳을 방문해 본다. 전통주에 일가견이 있는 직원 혹은 전통주 소믈리에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술과 어울리는 음식까지 함께 즐길 수 있다.

요즘은 대형 마트나 동네 슈퍼마켓에서 구하기 힘든 전통주를 온라인으로 쉽게 구해 마실 수도 있다.


술은 하늘이 내린 아름다운 녹(祿)이라는 말이 있다. 술 빚은 사람의 정성, 나의 노고를 다해 구한 것이다. 귀하게 여기며 잔을 들고, 기분 좋게 마셔 정신을 맑게 하되 과음하다 명을 재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보내는 다짐이다.


신동아 2020년 5월호

푸드칼럼니스트 김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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