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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익산 미륵사지 답사

by 한국의산천 2020. 2. 13.

익산 미륵사지 답사 [2020 · 2 · 14 · 이슬비 내리는 목요일]


삼국시대 최대 절터인 익산 미륵사지 둘러보기




중국 역사에서 공자의 주유천하를 후세에 몸소 체득하고 이를 설파한 대표적인 인물로 중국 명말청초의 계몽사상가 고염무를 들 수 있다.

고염무는 평생을 일기 형식으로 쓴 <'날마다 쌓이는 지식의 기록'이란 뜻의 32권에 이르는'일지록(日知錄)'>을 남겼다.


그는 말했다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券書 行萬里路)' :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떠나라

글쎄 어느 세월에?


좋은 말이다

책을 통한 지식과 여행으로 얻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알고 현실과 나를 정확하게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고 그 고마운 나룻배를 육지에까지 메고 다닐 수는 없는것이다

이제 집에 있는 책도 조금씩 버려야하기에 다시 한번 읽고 버리기 준비중


책과 여행

독만권서불여행천리로(讀萬卷書不如行千里路).

중국의 격언으로 '책을 만권 읽어도 천리를 여행한 것만 못하다'는 뜻

책보다는 몸으로 부딪치는 여행이 우선이 아닌가 싶다




텅 비어 있기에 채울것이 더 많아 충만한 곳 폐사지




봄비라기에는 조금 이른 비가 내리고 날씨는 포근하다.

무너져 내리고 바람에 쓸리기 쉬운 계절, 텅빈듯한 느낌이 드는 폐사지 답사를 떠나 본다

느긋하고 편안하게 풍성한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빛바래고 시든 것들, 떨어져 바람에 날리고 쌓인다. 쌓이고 뒹구는 게 나뭇잎만은 아니다.

무너지고 쓰러져 뒹구는 것들이 하늘 아래 허다하다.

빈 들에 버려져 굴러다니는 것들을 만나러 간다. 망한 옛 절터, 폐사지들이다.

천년 세월을 잡풀 우거진 들판에 눕고 앉고 쓰러져 나뒹구는 보석들을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전 국토가 박물관'인 우리나라는 폐사지의 나라이기도 하다.

방방곡곡 3천여곳에 크고 작은 옛 절터가 흩어져 있다.

스러진 절터에 고인, 아득한 시간의 향기에 반한 이들은 이것을 '아름다운 폐허'라 부른다. 

옛 절터를 찾는 일은 그래서 천년 세월 흥망성쇠의 허망함과 텅 빈 들판에 가득한 절절한 울림을 되새기며 위로받는 여정이 된다.



 

전 국토가 박물관, 아름다운 폐허 

옛 절터가 보여주는 건 짓밟히고 깨지고 불타고 남은 것들, 버려져서 더욱 단단해진 것들이다.

단단해질 대로 단단해진 것들이, 다져질 대로 다져진 폐허 위에 널렸다.

놀라운 건 폐허 속에 살아남은 보석 같은 유적들이다. 집도 절도 없는 빈터에 국보·보물급 문화재들이 깔려 있다.

천년 세월을 견딘 석탑과 부처상, 비석들은 현란한 조각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폐사지는 불교 유적 이전에 이미 이 나라 역사·문화의 토양이다. 잡초에 묻힌 주춧돌, 발끝에 차이는 기왓조각 하나까지 모두 조상들의 손자취 발자취가 서렸다.

  


미륵사지(彌勒寺址)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위치하는 백제시대 최대의 사찰이다.
미륵사지는 건물지 및 출토유물로 종합하면 백제 말경에 처음 지어졌고,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법등이 끊어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바라고 내세의 구원을 빌었던 민초들의 기원이 가득했던 곳  



복원된 미륵사서탑의 위용


미륵산 아래 조성된 탁 트인 미륵사지(터)의 위용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삼국유사>는 “백제 무왕(재위 600~641)이 부인(선화공주)와 함께…용화산 밑의 큰 못가에 이르니…부인이 ‘이곳에 큰 절을 지어달라’고 해서 하룻밤 사이에 전(殿)과 탑(塔)과 낭무(廊무)를 각각 세 곳에 세우고, 절 이름을 미륵사라 했다”고 기록했다.


이 <삼국유사>의 기록이 얼마나 딱 들어맞는지 지금도 미륵사터에는 3금당 3탑의 형태, 즉 ‘서탑(2019년 원형 복원·국보 제11호)+금당, 중앙탑(목탑 터만 남음)+금당, 동탑(1993년 모조탑으로 복원)+금당’ 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2009년 서탑에서 ‘서탑을 세운 이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왕후인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명문금판이 나와 한바탕 논쟁을 빚은 바 있다. 하지만 만약 무왕의 부인이 1명이 아니라면 어떨까.


미륵사가 ‘3탑3금당’의 독특한 양식인 점을 감안하면 ‘서탑=사택적덕의 딸’이라면 ‘중앙탑=선화공주’, ‘동탑=또다른 무왕의 부인’일 수도 있기에 아직 선화공주 관련설화를 버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백제 무왕 때 창건한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20년에 걸친 보수 공사에 마침표를 찍고 보여준 장엄한 모습.


국내 최고, 최대의 석탑답게 복원된 서탑의 위용은 대단하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바뀌는 과정의 형식이므로 석탑인데도 목탑의 공법을 따르고 있다.

나무를 쌓아 조성한 듯 석재를 켜켜이 쌓았다, 그러다보니 돌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6층 일부만 남았고, 1915년 일제가 붕괴를 막기 위해 콘크리트를 싸발라 놓았지만 그마저 무너져버릴 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1998년 해체보수가 결정됐다. 그후 20여년간 연인원 12만명이 투입되어 185t의 콘크리트를 떼어내고 무게만 1830t(1627개)에 달하는 부재를 복원에 사용해서 겨우 완공했다. <출처: 경향신문>


▲ 보수하기 전 시멘트로 발라져있는 모습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


영조 32년에 간행한 익산 읍지인 금마지는 미륵사지 석탑에 대해 "동방에서 가장 높은 석탑으로 속설에 전한다"며 "벼락 친 곳 서쪽 반은 퇴락했다.

흔들렸음에도 그 후 더 이상 무너지지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일제는 1915년 석재들이 일무 무너져 내린 석탑을 콘크리트로 긴급 수리했고, 이후 석탑은 약 80년을 콘트리크에 엉겨 붙은 채 버텼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1998년 구조진단 결과 일제 강점기때 덧씌운 콘크리트가 노후화되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는 판단에 따라 해체 수리가 결정됐다.


서동요 전설 깃든 미륵사지석탑, 1400년 만에 재탄생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적국인 백제 서동의 방을 찾아간다는 노래가 퍼졌다.

왕은 마침내 공주를 귀양 보내고, 기다리던 서동은 공주와 백제로 돌아가 왕(무왕)과 왕비가 됐다.’


백제 민요 ‘서동요’의 줄거리다.

단순한 ‘러브스토리’ 같지만 국보 11호인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석탑과 관련이 있다.

백제 멸망 무렵, 미륵사를 지키기 위해서 신라와 관련이 있는 사찰인 것처럼 소문을 냈다는 전설이다.


서동요의 주인공 무왕이 지은 미륵사지석탑은 9층 규모였지만, 많은 세월이 흐르며 파괴돼 6층까지만 남아있었다. 

미륵사지석탑 복원의 최대 난관은 참고할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

2009년 석탑 1층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를 통해 건설 시기가 639년이었다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초기 모습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이 석탑을 보전하기 위해 1998년부터 보수를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 이 뒷쪽은 무너진 상태로 복원하고 앞쪽은 탑 모양이 나오는 상태로 복원했다


▲ 보수 복원 후 현재의 모습


국보 제11호인 백제미륵사터 서탑이 얼마전 복원을 마쳤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석탑인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터 서탑이 수리복원을 끝내고 마침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백제 무왕이 자신의 왕권 강화를 꾀하며 전북 익산에 세운 미륵사는 우리나라 최대의 사찰로 그곳에는 미륵사지 석탑이다.

지난 2001년부터 덧집을 씌우고 해체 복원 공사를 벌여왔던 석탑이 20년만에 미륵산 자락 아래 복원된 모습을 보였다.



▲ 꾸밈없이 정겹게 다가오는 우리 민초들의 모습 같아요




▲ 폐사지의 오래 된 석물에서 오랜 역사를 읽을 수 있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잡초에 묻힌 주춧돌  발끝에 차이는 기왓조각 하나까지 모두 조상들의 손자취·발자취가 서렸다.

  






















▲ 독서와 여행은 행복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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