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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순 추울세라… 겨우내 묵은잎으로 감싸는 감태나무

by 한국의산천 2020. 1. 30.


[김민철의 꽃이야기] 새순 추울세라… 겨우내 묵은잎으로 감싸는 감태나무

김민철 선임기자 입력 2020.01.30 03:14


단풍 든 잎 3월까지 안 떨어져… 새순 추위 막으려는 母性愛?
일본선 떨어지지 말라고 잎 선물도


처녀치마·할미꽃 꽃대 높이 올려 좋은 환경에 씨앗 보내려 안간힘
식물의 자식 사랑, 동물 못지않아

 

김민철 선임기자
 
"어, 이 나무는 아직 잎이 그대로 있네."


지난 18일 전주 도로공사 수목원 대나무숲 옆에서 관람객들이 황갈색 단풍이 든 나무를 신기한듯 바라보았다.

과연 주변 나무들은 상록수 빼곤 나뭇잎이 다 떨어졌는데 이 나무만 홀로 온전히 잎을 달고 있었다.

수피는 회색으로 매끈하고 단단해 보였다. 잎 사이엔 작은 가지 끝마다 새순이 수줍은 듯 숨어 있었다.

이 수목원에서도 길마가지나무, 납매, 풍년화 꽃이 피었는데 아직도 묵은잎을 다 달고 있는 나무가 있는 것이다. 감태나무였다.

이 나무는 이처럼 겨우내 단풍 든 잎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필자가 감태나무를 처음 본 것은 몇 년 전 3월 말 보춘화를 보러 안면도 수목원에 갔을 때다. 보춘화는 물론 노루귀, 수선화, 생강나무꽃까지 다 피었는데 잎을 다 매달고 있는 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감태나무는 4월 초 새잎이 날 즈음에야 묵은잎을 떨군다.


감태나무는 왜 묵은잎을 매달고 묵묵히 겨울을 견디는 걸까. 감태나무 모성애가 강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새순의 추위를 조금이라도 막아보려고 겨우내 묵은잎으로 감싼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는 조상이 상록수여서 그 유전자대로 잎자루와 가지 사이에 떨켜가 잘 생기지 않는 데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필자 눈에도 칼바람 속에서 단단히 잎을 매달고 있는 것이 어미 나무가 새끼를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상술이 뛰어난 일본인들은 입시 철에 이 나무의 잎을 포장해 수험생들에게 주는 선물로 팔고 있다. 떨어지지 말고 꼭 합격하라는 의미다.

 

/일러스트=이철원
 
감태나무는 서해안과 충청 이남의 양지 바른 산기슭에서 그리 드물지도, 아주 흔하지도 않게 자란다.

4월 중순쯤 잎과 함께 작고 연한 황록색 꽃이 우산 모양으로 피고 가을엔 콩알만 한 열매가 달린다.

흑진주를 연상시킬 만큼 새까만 것이 생강나무 열매와 닮았다. 감태나무로 지팡이를 만들면 중풍이나 관절에 좋다고 해서 남벌당하기도 한다.


이름 유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잎이나 어린 가지를 찢으면 나는 향기가 바다에서 나는 해초 감태 냄새와 닮았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했다.

제주도 등 일부 지방에서는 백동백나무라고 부른다. 얼핏 동백나무를 닮았고 수피가 밝은 회색인 점 때문인 듯하다. 북한 이름도 흰동백나무다.


감태나무야 한겨울에도 잎을 달고 있는 것을 운치로 볼 수 있지만, 요즘 가로수로 많이 심는 대왕참나무에 이르면 얘기가 좀 다르다.

도입종인 대왕참나무는 잎이 임금 왕(王) 자 모양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수형이 아름답고 잎이 무성해 가로수로 나무랄 데 없는 나무다. 그런데 이 나무도 잎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감태나무와 다른 점은 겨우내 조금씩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에 대왕참나무 주변에는 낙엽이 뒹구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리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이 싫어할 수밖에 없다. 눈이라도 내리면 낙엽이 눈과 섞여 더욱 지저분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겨우내 떨어지지 않는 감태나무 잎.
 
감태나무에서 보듯, 어미 식물들의 자식 사랑은 동물 못지않다. 자식을 보호하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 눈물겨울 정도다.

초봄에 피는 처녀치마는 꽃이 필 때는 한 10㎝ 정도 크기다. 그러나 수정한 다음에는 점점 꽃대가 자라기 시작해 50㎝정도까지 훌쩍 크는 특이한 꽃이다.


원주 오크밸리 리조트 뒷산에서 60㎝ 이상 꽃대를 높인 처녀치마를 본 적도 있다.

꽃대를 높이는 것이 꽃씨를 조금이라도 멀리 퍼트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할미꽃도 꽃이 필 때는 허리를 푹 숙이고 있지만 꽃이 지면 꽃대가 똑바로 서며 열매를 높이 매단다.


박태기나무의 새끼 사랑도 특이하다.

박완서 소설 '친절한 복희씨'에서는 순박한 시골 처녀가 이성에게 처음 느낀 떨림을 "봄날 느닷없이 딱딱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직접 진홍색 요요한 꽃을 뿜어내는 박태기나무"에 비유했다.


계명대 강판권 교수는 어떤 글에서 "박태기나무의 꽃은 어린 자식이 혹여 어미를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엄마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처럼 나무 줄기에 딱 붙어 있다"며 "박태기나무가 꽃을 몸에 바짝 붙여 달고 있는 것은 자식을 많이 낳고 싶은 모성애 때문"이라고 썼다.


감태나무는 단풍 색깔이 곱고 수형이 아름다운 데다 너무 크게 자라지도 않아 마당에 심기 적절하다.

서울 근교에서 자생하지는 않지만 서울 홍릉수목원, 광릉 국립수목원, 인천수목원 등에서 겨울에 줄기 싸주기 같은 방한 조치가 없어도 잘 자라는 것을 보면 전국 어디에 심어도 문제없을 것 같다.

언젠가 마당이 생기면 꼭 감태나무를 심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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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世說新語] [556] 패위회목 (佩韋晦木)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0.01.30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주자가 고정서원(考亭書院)에서 쓴 두 구절이다. "무두질한 가죽 참은 부친 훈계를 따름이요, 나무가 뿌리를 감춤은 스승이 전한 삼감일세(佩韋遵考訓, 晦木謹師傳)." 시 속의 패위(佩韋)와 회목(晦木)은 출전이 있다.


주자의 부친 주송(朱松)은 호가 위재(韋齋)다. 위(韋)는 무두질한 소가죽이다. 주송은 조급한 성질이 도를 해친다며 이 말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예전 성정이 조급한 사람은 몸에 무두질한 가죽을 차고 다녀 자신을 경계하곤 했다. 조급한 성질을 무두질해 결을 뉘어야 비로소 큰 공부를 할 수가 있다.


회목은 뿌리를 감춘 나무다. 재능을 안으로 갈무리해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쓴다. 스승 유자휘(劉子翬)가 주자를 위해 써준 '자주희축사(字朱熹祝詞)'에서 말했다. "나무는 뿌리에 감춰야 봄에 잎이 활짝 펴고, 사람은 몸에 숨겨야 정신이 안에서 살찐다(木晦於根, 春容燁敷. 人晦於身, 神明內腴)." 뿌리에 양분을 잘 간직해둔 나무라야 새봄에 잎이 무성하고 꽃을 활짝 피운다. 주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깊이 새겨 자신의 호를 회암(晦庵) 또는 회옹(晦翁)이라 했다. 자를 원회(元晦)나 중회(仲晦)로 쓴 것도 여기서 나왔다.


패위와 회목은 누그러뜨리고 간직하는 마음이다. 품은 재능이 하늘을 찔러도 직수굿이 눌러 가라앉힌다. 나서고 싶고 뽐내고 싶어도 갈무리해 감춘다. 여기에 무한한 여운이 있다. 그러다가 봄을 맞아 일제히 움이 터 나오면 그 기세는 누구도 못 막는다.


홍직필(洪直弼·1776~1852)은 '을유원일(乙酉元日)' 시에서 새해의 다짐을 이렇게 썼다.

"오늘 아침 쉰 살을 맞고서 보니, 뜬 인생 지는 나이 애석도 하다.

이내 몸 평소 행함 편안하거니, 만사를 창령(蒼靈)에게 내맡겨야지  .

회목은 남몰래 덕을 펴내고, 찬 매화는 저절로 향기가 있네.

정신을 집중해서 충화(沖和)를 모아, 깨끗한 맘 성성하게 일깨우리라

(五十今朝是, 浮生惜暮齡. 一身安素履, 萬事任蒼靈. 晦木潛敷德, 寒梅自有馨. 凝神會冲和, 虛室喚惺惺)."

시 속의 창령은 봄을 관장하는 신이다. 허실(虛室) 즉 빈방은 맑고 욕심 없는 마음을 뜻한다. 빛은 감추고 마음을 깨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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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무처럼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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