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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展

by 한국의산천 2020. 1. 29.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가 지난 1월 18일부터 오는 3월 15일(*매주 월요일 휴관일)까지 서울서예박물관 현대전시실에서 열린다.

추사의 학예일치(學藝一致 학문과 예술이 하나), 유불선(儒佛仙)을 아우르는 해동통유(海東通儒), 유희삼매(遊戱三昧 예술이 극진한 경지에 이름) 경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들과 청대문인들의 글씨, 연구자료, 편지 등 중국국가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120여점을 한국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다.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展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 2020. 01. 18 ~ 03. 15
간송미술문화재단 등 30여 곳의 소장품
120여 점의 추사작품과 추사를 재해석한 현대작품

 

[허윤희 기자의 고색창연] 글씨를 넘어선 그림… 추사는 현대 미술의 시작이다

허윤희 기자 입력 2020.01.29 03:00

中서 30만명이 찾은 추사展, 18일 서울 예술의전당서 개막
"글자·획 해체해 재구성한 파격… 20세기 현대 추상 미술과 직통"


  
 

 

 

 

허윤희 기자
 
"우는 듯 웃는 듯, 춤추는 듯 성낸 듯, 세찬 듯 부드러운 듯, 천변만화의 조화가 숨어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글씨에 대해 미술사학자인 근원 김용준은 이렇게 감탄했다. 우리 눈에만 그리 보이는 게 아니었나 보다.

지난여름, 추사가 1809년 연행(燕行)으로 중국 땅을 밟은 지 210년 만에 추사 작품 117점이 처음 중국에서 공개되자 현지 반응이 뜨거웠다.

하루 평균 5000명, 두 달간 관람객 30만명이 다녀갔다.

 

우웨이산(吳爲山) 중국국가미술관장은 "글씨를 넘어선 그림이다. 심미적으로나 조형적으로 현대 추상과 직통한다"고 했고, 서예가 황진핑(黃金平)은 "병풍 한 폭, 글자 한 자마다 고풍스러움과 소박함, 균형을 깬 듯하면서 다시 화합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했다.

 

'글로벌 추사'로 거듭나게 한 베이징 특별전이 금의환향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18일 개막한 '추사 김정희와 청조(淸朝) 문인의 대화'는 지난해 중국국가미술관에서 열린 동명(同名) 전시의 귀국전이다. 추사의 현판·대련·두루마리·병풍·서첩 등 대표작과 함께 추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작품까지 120여점을 선보인다.

 

 

 

추사의 ‘유희삼매’. 천진하고 자유로운 경지에 이른 그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조각가 김종영이 소장했던 ‘완당집고첩’에 수록된 글씨다. 18×414㎝. /예술의전당

 

 

 

▲ 谿山無盡 (계산무진)
 

'계산무진(谿山無盡·계곡,산은 끝이 없구나)'과 '유희삼매(遊戱三昧·예술이 극진한 경지에 이름)'는 글자 배치부터 파격적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서서히 올라가다가 뚝 떨어지는 리듬, 비우고 채우는 공간 경영이 돋보인다.

 

스물셋에 부친을 따라 청나라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에 가서 최신 학문에 눈을 뜬 추사는 옹방강(翁方綱)·완원(阮元) 등 당대의 거유(巨儒)들과 교유하며 역대 서법을 익혔고, 귀국 후 평생 이를 갈고닦아 추사체라는 독보적 서체를 완성했다. 추사 스스로 밝혔듯 "열 개의 벼루를 구멍 내고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앤" 노력의 산물이 바로 추사체다.

 

베이징 전시가 추사와 중국 석학들의 교류를 통해 '필묵공동체' 동아시아를 강조했다면, 이번 전시는 추사 글씨의 현대성에 방점을 찍었다. 전시장 말미에 김종영, 윤형근 등 추사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 작가들의 조각·회화를 함께 전시했다. 한국 현대 추상 조각의 선구자인 김종영은 추사의 '유희삼매'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 이동국 서예박물관 큐레이터는 "김종영은 추사의 유희를 '모든 구속을 벗어난 절대자유'로 해석했다"며 "글자와 획을 해체해 재구성하고 공간을 처리한 파격에서 20세기 현대미술이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3월 15일까지.

Copyright ⓒ 조선일보


한국 현대서화미술의 근간 추사학예...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展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 2020. 01. 18 ~ 03. 15
간송미술문화재단 등 30여 곳의 소장품
120여 점의 추사작품과 추사를 재해석한 현대작품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 사진=김창만 기자


[아시아아츠 = 김창만 기자]
 
추사 김정희를 소환한다. 추사 김정희 하면 누구나 뛰어난 당대의 서예가로 그의 글씨를 떠올린다. 하지만 추사는 글씨를 떠나 위대한 예술가라는 표현이 맞다. 유학은 물론이고 불교,그리고 금석학, 시인, 아티스트로 큐비즘을 최초로 서법(書法) 작품으로 풀어낸 탁월한 선각자임을 알게 하는 전시가 있다.

 

예술의전당은 과천시, 예산군,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와 공동으로 18일부터 3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전시를 개최 중이다.

 

이 전시는 한·중 국가예술교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9년 6월 18일부터 8월 23일까지 중국 국가미술관에서 개최되어 일평균 5천 명, 총 3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한 바 있다.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이번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전(이하 '추사귀국전')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학예(學藝)의 특질인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現代性)’을 주제로, 간송미술문화재단 등 30여 곳의 소장품, 120여 점의 추사작품과 추사를 재해석한 현대작품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같고도 다른(사이불사 似與不似) : 치바이스와 대화(대화제백석 對話齊白石)>(2018.12.05 ~ 2019.2.17 /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 이은 두 번째 한(韓)·중(中) 국가예술교류 프로젝트다.

 

작년 중국 전시에서는 30여만 명이 관람하는 등 중국 대중과 학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파장은 국내 공공기관의 호응으로 이어져 지난해 9월 예술의전당, 과천시(김종천 시장), 예산군(황선봉 군수),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고길림 본부장)는 ‘글로벌 추사 콘텐츠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 '추사귀국전'은 그 양해각서에 따른 첫 번째 결실이라 할 수 있다.

 

2020년도 한해를 서울- 제주- 예산- 과천으로 전국 순회하는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이번 '추사귀국전'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충청남도 예산) 학예(學藝)의 특질인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現代性)’을 주제로,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 영남대박물관, 김종영미술관, 수원광교박물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선문대박물관, 일암관, 청관재, 일중문화재단, 개인 등 30여 곳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이 전시를 통해 현판, 대련,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 추사의 일생에 걸친 대표작은 물론, 추사의 글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서화미술 작가의 작품 120여 점을 볼 수 있다.

 

 '추사귀국전'을 개최하는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은 “21세기 중국에서 확인된 19세기 동아시아 세계인(世界人) 추사 선생의 학예 성과를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대중들이 새롭게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는 다짐을 밝혔다.

 

■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전시소개

 추사학예의 세계성과 현대성을 확인한 지난 중국 전시

 

 

 


2019년 6월 베이징 중국국가미술관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개막식,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 / 사진=巅峰艺术

그간 우리는 추사를 한국 안에서만 최고라고 해왔다. 이번 전시를 기획해나가는 과정에서 솔직히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사를 중국에서 알아줄까’하고 걱정을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기우였다.

 

한국보다 중국에서 100여 년의 간극을 일시에 허물며 추사가 살아 돌아와서 중국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매일 5천여 명을 헤아리는 관람객들이 추사를 만났다. 문화예술계 지도자와 전문 연구자, 서법가, 정치지도자와 관료는 물론 일반 관람객 모두가 추사를 더 정확하고 진지하게 감상하고 토론하였다.

이런 광경은 좀처럼 한국의 서예박물관 전시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또 한국에서 추사학예를 ‘기괴고졸(奇怪古拙)’한 조형미학을 특징으로 평가하였다. 하지만 괴(怪)의 본질인 현대성(現代性)을 간파해내기보다 추사체(秋史體)의 성취를 모화주의(慕華主意)의 산물이나 개인의 천재성이 강조된 나머지 신화처럼 여기기도 했다. 진위논쟁에 빠져 정작 추사체(秋史體)의 미학(美學)을 세계사적인 관점과 현대적인 미로 연결시켜 바라보지 못하였다.

 

 


2019년 6월 베이징 중국국가미술관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개막식, 우웨이산(吳爲山) 중국국가미술관장 / 사진=巅峰艺术

 

'추사중국전'에서 추사의 '계산무진谿山無盡'을 본 우웨이산(吳爲山) 중국국가미술관장은 “글씨를 넘어서서 그림이다. 허실(虛實)의 미학을 극대화하면서 심미적으로나 조형적으로 현대적이고 추상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아시아 문명과의 대화’ 일환으로 열린 '추사중국전'국제학술포럼에서 중국국가미술관 장칭[張晴] 부관장은 “추사는 글씨의 성인(서성, 書聖)이다. 이번 전시가 실증하듯 ‘경전(經典)’을 남김으로써 역사에 기여하고 있다. 왜 이제야 우리는 서성(書聖) 추사를 알게 되었는가.”라고 만시지탄(晩時之歎)을 하였다.

“ 추사야 말로 요즘 현대인이 추구하는 미학과 조형구조 그 자체를 이미 150여 년 전에 제시하고 있다." - 중국미술관 장칭[張晴] 부관장 -

 

“북방민족인 김정희는 성인(聖人)이다. 경전(經典) 창출을 통해 서법역사(書法歷史) 발전에 심대한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서법(書法)의 모국(母國)이라 하는 중국으로부터 추사체(秋史體)가 비롯되었지만 추사는 당시 서법을 혁신(革新)하였다. 하지만 추사의 한계도 분명한데, 갑골문 금문의 연구 실천은 오늘날 우리작가들의 몫이다“ - 우구오바오(吳國寶) 중국미술관 소장작품부 서법분야전문 학예사/서예가 -
'
추사중국전'의 가장 큰 성과는 중국 관람객과 대화함으로써 ‘추사는 세계이고 현대’라는 생각을 실증하였다는 점이다. 이와 상응하여 이번 '추사귀국전'은 오늘날 한국 관람객들이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추사 서예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 19세기 동아시아의 급변하는 시공간의 지평에서 추사 글씨의 세계성과 현대적 미를 이번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동아시아 서(書)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추사체(秋史體)

-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

 

 


추사 김정희 난묵합벽첩(19세기) / 사진=김창만 기자

 청나라 금석고증학이 19세기 발흥하여 동아시아 서(書)의 역사학은 첩학(帖學)에서 비학(碑學)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러한 때 추사와 청나라 문인인 옹방강, 완원의 한·중간의 교류는 학문과 예술의 일치를 뜻하는 학예일치(學藝一致)와 비학(碑學)와 첩학(帖學)의 융합을 뜻하는 비첩혼융(帖混融)의 결정체인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할 수 있게 하였다.

 

 


추사 김정희의 완당집고첩(19세기) 중 유희삼매의 서체를 설명하는 이동국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큐레이터 / 사진=김창만 기자

 

 이런 추사체의 조형미학과 정신경계를 요약하면 기괴고졸(奇怪古拙)과 유희(遊戱)다. 하지만 추사 생존 당대에도 추사체의 괴의 미학에 대해서 비난과 조롱이 비등하였다. 추사는 이에 대해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라고 응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기교가 좋고 나쁨(공졸, 工拙)을 또 따지지 마라[非以書爲也. 工拙又不計也.]”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추사의 학예 성취에 대해서 '청조문화(淸朝文化) 동전연구(東傳硏究)' 저자인 후지스카 치카시(藤塚鄰, 1879~1948)는 “(이처럼) 청조문화(淸朝文化)에 정통하고 새롭게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을 조선에 수립 선포한 위대한 공적을 이룬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고금독보(古今獨步)라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한다.

 

‘반역적’ 성격과 큐비즘 성격이 있는 고금독보적(古今獨步的) 추사체(秋史體)

 

전 중국서법가협회 주석이자 현존 중국 최고의 서법가로 추앙받는 션펑(沈鵬, 1931~현재)은 “변혁의 중심에 있었던 김정희의 서법(書法) 작품은 강렬한 반역적(反逆的) 성격이 있다. 특히 비(碑)가 첩(帖)으로 들어가는 모종의 ‘불협과 부조화(不協調)’의 성격 때문에 일반인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김정희의 서법에서 조선민족의 강렬한 독립과 자주(自主)와 자강(自强)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고 말했다.

 

20세기 한국 현대 서화미술의 토대인 추사체

 

 

우성(又誠) 김종영(金鐘瑛,1915-1982)의 조각 '76-8'과 김정희의 '계산무진(19세기)'작품이 전시돼 있다. / 사진=김창만 기자

 

 

추상화의 거목 윤형근(1928-2007) 작품 '황갈색'과 김정희 '판전(탁본, 1856) 작품이 전시돼 있다. / 사진=김창만 기자

 

 이런 맥락에서 김종영의 추상조각, 윤형근의 획면추상, 손재형, 김충현의 비첩혼융((碑帖混融)은 추사체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선구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가 그간 20세기 한국의 문예를 식민지, 서구화라는 관점에서 전통과 현대가 단절되었다는 기존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추사귀국전'은 추사의 전통적·한국적 미학이 중국이라는 다른 공간과, 또 현대라는 다른 시대와 대화함으로써, 동아시아와 현대를 아우르는 공유자산의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학예일치’ ‘해동통유’ ‘유희삼매’ 3가지 키워드로 조명하는 추사의 ‘괴(怪)’의 미학

 

 이번 전시는 ‘괴(怪)의 미학을 키워드로 ‘추사체’의 성격 전모를 연행(燕行)과 학예일치(學藝一致), 해동통유(海東通儒)와 선다일미(禪茶一味), 유희삼매(遊戱三昧)와 추사서의 현대성 등 총 3부로 구성했다.

 [제1부] 연행(燕行)과 학예일치(學藝一致) 전시구성

해석 1) 옹방강, 완원으로부터 실사구시(實事求是) 관점의 경학(經學)과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을 수용하여 고예(古隷)로부터 역사와 서법이 녹아든 추사체를 완성해내는 것

 해석 2) 추사가 옹방강, 완원을 만나 실사구시(實事求是) 관점에서 해석한 경학(經學)과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을 수용하고, 고예(古隷)로부터 역사와 서법이 녹아든 추사체를 완성해내는 것을 보여준다.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실사구시잠(實事求是箴), '복초재시집(復初齋詩集), '소영은(小靈隱)', '상량·상견(商量·想見)', 문복도(捫腹圖)' 등 추사와 청조 문인과의 교유관계 핵심작품들이 배치 전시했다.

그리고 '임군거효렴경명(臨君擧孝廉鏡銘)', '예학명임(瘞鶴銘臨)', '배잠기공비제발(裵岑紀功碑 鉤勒本 題跋)', '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鏡)' 등 추사체(秋史體)의 궁극인 고예(古隷)를 재해석한 작품과 '양한금석기', '해동금석원', '해동금석영기' 등 조·청(朝淸) 문인들의 금석학 연구 자료들을 통해서 서(書)가 학문의 전제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살펴본다.

△ 전시구성

 

 


김정희金正喜(1786~1856), '임군거효렴경명(臨君擧孝廉鏡銘)', 19세기, 종이에 먹, 86.0x46.0cm 개인 소장 / 사진=예술의전당

 

 추사가 북학(北學)의 핵심인 청대(淸代)의 경학(經學)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을 조선에 도입하여 역사(歷史)와 서법(書法) 두 방면으로 어떻게 연구/실천해서 학예일치(學藝一致)의 경지로 완성해내는지를 대표작품으로 보여준다.

 

 


옹방강翁方纲(1733~1818),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1817, 종이에 먹, 23.6×304.0cm 개인 소장 / 사진=예술의전당

 추사는 24세 연행(燕行)때 청조 학예계 거장인 78세 옹방강과 47세 완원으로 부터 ‘경술문장(經術文章) 해동제일(海東第一)’로 격찬을 받으며 두 분을 평생 스승으로 모신다. 그 후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모토로 편지지도와 문집(文集)· 금석문(金石文)학습을 통해 경학(經學)과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 서법(書法)을 연마하여 학예일치(學藝一致)의 경지를 일생에 걸쳐 구축하였다.

추사의 경학은 “마융(馬融)과 정현(鄭玄, 한 대의 훈고학)을 두루 망라하고, 정자(程子) 주자(朱子, 송대 성리학)를 등지지 말라[博綜馬鄭, 勿畔程朱]”가 말해주듯 옹방강의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의 입장에 서있다. 금석고증학자로서 추사는 청조 학예방법론을 우리 역사현장에 적용시켜 일생동안 조선화에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31세(1816)에 '북한산진흥왕순수비'조사를 시작으로 '경주무장비(慶州藏寺碑)'발굴은 물론 '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錄)'과 '해동비고(海東碑攷)'를 저술하였고, 그의 나이 67세(1852) 북청(北靑) 유배(流配)시에는 '석노시(石砮詩)', '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竟)'을 제작했다.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이런 성과는 중국에서 유희해의 '해동금석존고'와 '해동금석원', 옹수곤의 '해동금석영기'와 같은 조선 금석고증학 열풍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추사는 왕법(王法)에 정통성을 둔 기존 서사(書史)를 뒤집은 완원의 '남북서파론(南北書派論)'과 '북비남첩론(北碑南帖論)'을 지남으로 왕법(王法)은 물론 그 이전으로 돌아가 서(書)의 근원인 북비와 한예를 하나로 녹여내면서 독자적인 비첩혼융의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해내고 있다.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추사 김정희 '실사구시잠(實事求是箴)'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얼마나 한예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한예(漢隸) 한 글자는 해서와 행서 열 글자와 맞먹는다. 漢隸一字, 可抵楷行十字.”고 할 정도다. 특히 “예서(隷書)는 바로 서법의 조가(祖家)이고, 한예(漢隷)의 묘는 오로지 졸(拙)한 곳에 있음 隷書是書法祖家。漢隷之妙。專在拙處”을 간파하고, 한예 중에서도 서한(西漢)시대 정(鼎) 감(鑑) 로(爐) 등(鐙)의 글자로 거슬러 올라가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해내고 있다. 요컨대 이러한 추사와 옹방강 완원의 일생에 걸친 학연과 묵연의 성과로 인해 한중교유 역사상 19세기는 가장 찬란한 황금기로 자리매김 되었다.

 

 


정조경程祖庆(1785~1855), '문복도扪腹图', 1853, 비단에 수묵, 94.5×26.2cm, 개인 소장 / 사진=예술의전당

 

 


옹방강翁方纲(1733~1818), '복초재시집(復初斋詩集, 목판본, 19세기)' 개인소장 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주요작품은 '심중니·이명도(尋仲尼·以明道)', '추사·담계필담서(秋史·覃溪筆談書)',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박종마정 물반정주(博綜馬鄭 勿畔程朱)', '실사구시잠(實事求是箴)', '복초재시집(復初斋詩集)', '소영은(小靈隱)', '죽재·화서(竹斋·花屿)', '상량·상견(商量·想見)', '완원‘남북서파론’(阮元‘南北書派論)', '임군거효렴경명(臨君擧孝廉鏡銘)', '임원수원년경명(臨元壽元年鏡銘)', '예학명임(瘞鶴銘臨)', '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鏡)', '배잠기공비제발(裵岑紀功碑 鉤勒本 題跋)', '유득공시의도(柳得恭詩意圖)', '문복도', '송자하선생입연시(送紫霞先生入燕詩)' 등이다.

 [제2부] 해동통유(海東通儒)와 선다일미(禪茶一味)

제주 유배라는 극한의 실존에서 유마거사(維摩居士)를 자처하면서 유불선(儒佛仙)을 아우르는 통유(通儒)이면서,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와 만나 선(禪)과 차(茶)를 하나로 승화시키는 추사의 정신세계를 보는 것이 관건이다.

 '문자반야(文字般若)', '칠불설게 도득문지(七佛說偈 都得聞之)' 등 게송(偈頌) 모음, '직심도량(直心道場)', '영모암편배제지발(永慕庵扁背題識跋)', '명선(茗禪)',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 그리고 '부기심란(不欺心蘭)', '향조암란(香祖庵蘭)', '추사 소치 합작 시화 ‘산수국’' 등을 전시하는데, 이들은 통유(通儒)와 서화일체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걸작들이다.

△ 전시구성

 

 


김정희金正喜(1786~1856), '칠불설게 도득문지’ 등 선시문 모음‘七佛说偈 都得闻之’等 禅诗文集, 19세기, 종이에 먹 33.9×22.8cm 개인 소장 / 사진=예술의전당

 

 


김정희金正喜(1786~1856), '칠불설게 도득문지’ 등 선시문 모음‘七佛说偈 都得闻之’等 禅诗文集, 19세기, 종이에 먹 33.9×22.8cm 개인 소장 / 사진=예술의전당

 정통 유학자(儒學者)인 추사는 유교(儒敎)는 물론 불교(佛敎)와 도교(道敎)를 아우르는 통유(通儒)로서 학문과 사상을 서예술(書藝術) 하나에 모두 녹여내고 있다. 특히 제주 유배 시기의 처절한 실존을 소동파(蘇東坡)를 사숙하여 학예(學藝)로 극복해내면서 해동통유(海東通儒)의 면모를 완성해내고 있다.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추사 김정희 '자신불' 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추사는 55세(1840.6.22)때 동지겸사은부사(冬至兼謝恩副使)로 임명(任命)되었으나 윤상도옥사(尹尙度獄事)가 재론(再論)되면서 이미 망자가 된 부친 김노경이 탄핵(彈劾)되고, 자신은 제주도(濟州道)에 유배(流配)되었다.

제주유배시절 추사는 소동파가 그랬듯이 유마거사(維摩居士) 병거사를 자처하면서 자제소조(自題小照)에 “담계(覃溪)는‘고경(古經)을 즐긴다’라 일렀고, 운대(雲臺)는 ‘남이 일렀다 해서 저 역시 이르지를 않는다’라 하였으니, 두 분의 말씀이 나의 평생을 다한 것이다. 어찌하여 해천(海天)의 입립자가 원우(元祐)의 죄인과 같은 고. 覃溪云嗜古經。芸臺云不肯人云亦云。兩公之言。盡吾平生。胡爲乎海天一笠。忽似元祐罪人”라고 할 정도다.

 

 


김정희金正喜(1786~1856), '명선(茗禅)', 19세기, 종이에 먹, 115.2x57.8cm, 간송미술관 소장 / 사진=예술의전당

 또 ‘문자반야(文字般若)’를 비첩혼융(碑帖混融)으로 실천해내면서 추사체(秋史體)를 왕성하게 실험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초의선사(艸衣禪師)와 유(儒)불(佛)을 넘나드는 교유를 통해 다선일미(茶禪一味)와 전다삼매(煎茶三昧)의 경지를 구축하였다.

 

 


김정희金正喜(1786~1856), '향조암란(香祖庵蘭) 「난묵합벽첩(蘭墨合壁帖)」', 19세기, 종이에 먹, 26.7×16.8cm, 개인 소장 / 사진=예술의전당

 

 


김정희金正喜(1786~1856), '향조암란(香祖庵蘭) 「난묵합벽첩(蘭墨合壁帖)」', 19세기, 종이에 먹, 26.7×16.8cm, 개인 소장 / 사진=예술의전당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추사 김정희 '문자반야(文字般若, 19세기)' 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추사 김정희 '전다삼매(煎茶三昧),19세기)' 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주요전시작품은 '문자반야(文字般若)', '무량수각(无量壽閣)', '칠불설게 도덕문지(七佛說偈 都得聞之)’등 게송(偈頌) 모음', '직심도량(直心道場)', '제해붕대사영(題海鵬大師影)', '관음경·팔중송(觀音經·八重頌)', '영모암편배제지발(永慕庵扁背題識跋)', '명선(茗禪)',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 '일로향각(一爐香閣)', '전다삼매(煎茶三昧)', '합병신천지(合丙辛天地) 우향각(芋香閣)', '부기심란(不欺心蘭)', '향조암란(香祖庵蘭)', '추사 소치 합작 시화 (산수국)' 등이다.

 [제3부] 유희삼매(遊戱三昧)와 추사서의 현대성(現代性)

비첩혼융(碑帖混融)의 ‘추사체’가 발산하는 불계공졸(不計工拙)과 천진(天眞)의 정수를 볼 수 있다.

 '계산무진(谿山無盡)', '도덕신선(道德神僊)', '순로향(蓴鱸鄕)', '사서루(賜書樓)', '판전(板殿)', '완당집고첩(阮堂執古帖)', '무쌍·채필(無雙·彩筆)', '인고·폐거(人苦·弊去)' 등의 작품을 통해 추사체의 유희삼매 경지를 만나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추사 김정희의 영향을 받은 김종영 윤형근 손재형 김충현 등 20세기 한국의 현대서화미술 대표작가들의 작품(10점)들이 추사서를 통해 자신의 예술을 어떻게 성취해냈는가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 전시구성

 

 


김정희金正喜(1786~1856), '유희삼매(游戏三昧)' 등 완당집고첩(阮堂执告帖), 19세기, 종이에 먹, 18.0×414.0cm, 김종영미술관 소장 / 사진=예술의전당

 

 


김정희金正喜(1786~1856), '무쌍·채필(無雙彩筆)', 19세기, 종이에 먹, 각 128.5x32.0cm, 일암관 소장 / 사진=예술의전당

 추사는 해배 이후 강상생활 · 북청유배 · 과천시기에 비첩혼융의 굴신지의屈伸之義의 필획(筆劃)이 창출해내는‘괴(怪)’의 미학을 골자로 하는 추사체(秋史體)를 자유자재로 구사해내고 있다. 심지어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졸(工拙)을 또 따지지 마라[非以書爲也. 工拙又不計也.]”라고 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추사체의 비난과 조롱에 대해서마저도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不怪。亦無以爲書耳]”고 응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추사체(秋史體)의‘괴(怪)’의 미학경계는 방정(方正)의 끝이자 기괴(奇怪)의 궁극지점이다.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구서(歐書)도 역시 괴목(怪目)을 면치 못했으니 구와 더불어 함께 돌아간다면 다시 사람의 말을 두려워할 게 있으리까. 절차고(折釵股)ㆍ탁벽흔(坼壁痕) 같은 것은 다 괴의 지극이며 안서(顔書) 역시 괴이하니 왜 옛날의 괴는 이와 같이 많기도 한지요. 歐書亦未免怪目。與歐同歸。復何恤於人耶。如折釵股圻壁痕。皆怪之至。顔書亦怪。何古之怪。如是多乎哉。라고 추사는 말한다.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추사 김정희 '사서루(賜書樓)'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추사 김정희 '입춘대길 천하태평사'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추사체(秋史體)는 왕법(王法) 중심의 첩학(帖學)과 그 이전의 비학(碑學)이 시기별 혼융(混融)궤적을 그리며 다음과 같이 완성․창출되고 있다.

1. 시체습용기(時體習用期)    [24세 연행(燕行) 전후]

2. 옹방강 / 팔분예(八分隸)학습기(學習期)  [3,40대]

3. 구양순(歐陽詢) / 고예(古隸)재해석기(再解析期) [50세 전후]

4. 비첩혼융기(碑帖混融期)    [55~63세 제주 유배(流配)]

5. 추사체(秋史體)완성기(完成期)   [63~71세 해배(解配)이후]

 

 


김정희金正喜(1786~1856), '계산무진(谿山無盡)', 19세기, 종이에 먹, 165.5x62.5cm, 간송미술관 소장 / 사진=예술의전당

 

 


김정희金正喜(1786~1856), '도덕신선(道德神僊)', 19세기, 종이에 먹, 32.2×117.4cm, 개인 소장 / 사진=예술의전당

 

 


김정희金正喜(1786~1856), '판전(板殿)', 1856, 종이에 탁본, 22.8×85.0cm 개인 소장 / 사진=예술의전당

 주요전시 작품은 '계산무진(谿山無盡)' , '도덕신선(道德神僊)', '순로향(蓴鱸鄕)', '사서루(賜書樓)', '판전(板殿)', '완당집고첩(阮堂執古帖)', '칠언시사구 행서팔곡병(七言詩四句 行書八曲屛)', '청관산옥만음(靑冠山屋漫吟)', '무쌍·채필(無雙·彩筆)', '인고·폐거(人苦·弊去)', '왕사정 제중삼영(王士禎 齋中三詠)' 등이다.

위의 작품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천진(天眞)이자 유희삼매(遊戱三昧)의 정신경계에 노니는 것이 추사체(秋史體)이다. 일체의 구속(拘束)에서 벗어난 대자유(大自由) 절대자유(絶對自由)의 경지인 것이다. 예술의 기원이 인간의 유희본능(遊戱本能)이라고 할 때 예술의 본령인 시서화(詩書畵)를 일체(一體)로, 융복합(融複合)으로 하나 되게 ‘유희삼매(遊戱三昧)’로 살아간 추사는 문자영상(文字映像)시대 인공지능(人工知能,AI)시대 오늘날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전시전경 우성(又誠) 김종영(金鐘瑛,1915-1982)의 조각 '73-1'과 김정희의 '계산무진(19세기)'작품이 전시돼 있다. / 사진=김창만 기자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전시전경 우석 최규명(又石 崔圭明 1919-1999), '행백리자반구십(왼쪽)', 산(오른쪽) 전시전경 / 사진=김창만 기자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전시전경 윤형근(1928-2007) 작품 '황갈색', 캔버스에 유채, 1990,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소장 / 사진=김창만 기자

 이런 맥락에서 김종영, 윤형근, 손재형, 김충현 등 20세기 한국의 현대서화미술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서예는 물론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추사서의 조형과 미학 전통이 현대와 호흡하며 한국예술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 예술의 전단 서예박물관 -

 

 


추사 김정희의 철학을 설명하는 이동국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큐레이터 / 사진=김창만 기자

 

 한편 17일에 기자간담회에서 전시설명을 한 서예박물관 이동욱 시각예술부 큐레이터는 " 추사 김정희 한중전시야 말로 같은 동질성을 갖는 진정한 한중교류이며 김정희는 서예가로 인식하기 보다는 19세기 아티스트로 본다", "한문장 속에 여러 서체를 망설임없이 바꾸며 특히 추사 김정희의 죽필을 이용한 글의 획을 보면 어떠한 추상화보다 다양한 내용이 있으며 특히 윤형근 등 현대미술가들이 추사 김정희와 맥을 같이 한다"며 김정희와 한국의 현대미술의 관계를 우성 又誠 김종영(1915-1982) 작가의 조형물 '76-8(1976)과 윤형근 작가의 '황갈색' 작품을 김정희의 '계산무진(谿山無盡)', '판전(板殿)' 등의 작품과 투영해 설명했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 사진=김창만 기자

 

이날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만이 갖고 있는 서화 예술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실물로 볼 기회가 많지 않다. 특히 학생들과 청소년들이 교과서에서 본 추사 김정희의 실물 작품을 이번 전시기간 동안 많이 보기 바란다."고 이번 전시의 소감을 말하며 "국내에서 유일한 서예박물관이지만 소장품도, 지원 예산도 부족하다", " 연간 100만명이상이 다녀가는 음악당과 미술관에 비해 서예박물관에 관심이 많지 않아 답답하다"고 밝히면서 "우리 예술의전당도 노력하고 있지만, 무책임하게 서예박물관을 만들기만 하고 아무 관심을 안 갖는 정부기관 및 국회 등도 이번 전시를 보고 다양한 활성화 방안을 통해 서예박물관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다시한번 생각해야할 시기라 본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번 전시의 부대행사로 2월 13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추사국제학술포럼이 예술의전당, 과천시, 예산군,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주최으로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최된다.

 

이 행사에서는 이동국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큐레이터가 학술포럼 모더레이터로 진행하며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실장, 이완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서예사), 허홍범  과천시 추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정병규 글와사대표(북디자이너)가 한국 발표자로 중국 측에서는예신(叶欣) 중국국가화원서법전각원 해외서법연구소 부소장, 푸치앙(傅强)중국국가미술관 소장작품부 학예사(서법학박사,서예가), 우구오바오(吴国宝) 중국국가미술관 소장작품부 학예사(서법학박사, 서예가)가 중국 발표자로 나와 추사 김정희와 한중 주요 문화사와의 연계성, 추사의 중국 이야기, 추사학예의 미학과 조형이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에 대해 다양한 토크가 펼쳐질 예정이다.

 

추사 김정희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160여 년 전 추사 김정희를 소환해 그의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전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展은 서예박물관 2층에서 3월 15일 까지며 예술의전당에서 전시를 마친 후 제주, 예산, 과천에서 1년 동안 순회 개최된다.

 

한편 서예박물관 3층에서는 추사 김정희, 퇴계 이황, 자하 신위, 봉래 양사언, 미수 허목 등 조선을 대표하는 최고의 글씨와 함께 흥선대원군, 심전 안중식, 위창 오세창, 일중 김충현 등 근대 대표 서화가의 작품 33건 40점을 전시하는 '조선·근대 서화전'이 3월 15일까지 전시(무료) 중이다.

출처 : 아시아아츠 / 김창만 기자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