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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새해의 첫 기적 반칠환

by 한국의산천 2019. 12. 29.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67) 반칠환, 〈새해 첫 기적〉 

새해 첫날은 기적이다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새해 첫날
          - 반 칠 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새해가 밝았다. 안녕하세요? 새해예요. 반가워요. 하시는 모든 일이 잘되길 빌게요. 낯선 사람에게도 미소를 지으며 이런 인사와 덕담을 건네고 싶다. 누만 년 동안 대지를 비추던 해가 뜨고 누리에 금빛 햇살이 번져간다.

 

영혼의 얕음과 깊음을 가리지 않고, 영웅이나 미인이나 범부를 가리지 않고 이 햇살이 평등하게 내리는 일은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 영혼이 깊고 숭고한 생각을 품은 이들에게만 햇살이 내린다면 영혼이 얕은 나 같은 사람은 평생을 그늘 속에서 살아야 하리라.

 

날고, 뛰고, 걷고, 기고, 구르는 것들은 저마다 가진 재주로 새해 첫날에 도착한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어딘가에서 와서 새해 첫날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날고, 뛰고, 걷고, 기고, 구르고 있었을 뿐인데, 문득 새해 첫날이 도착한 것이다.

 

돌아보라. 황새・말・거북・달팽이・굼벵이만이 아니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다들 촐랑거리는데, 제자리에서 꿈쩍도 않는 바위가 가장 의젓한 자태로 새해 첫날을 맞는다. 새해 첫날을 살아서 맞는다는 게 기적이다.
 
  새해 첫날은 시간관념이 없는 소나 말, 고라니나 족제비에게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다. 시간의 균등함으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에게 새해의 첫날로서 의미를 부여하고 산뜻한 기분으로 맞는 것은 오직 사람의 일이다.

 

나는 언 땅을 디디고 서서 차가운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신다. 알 수 없는 기대와 설렘으로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연일 계속되는 맹추위로 금광호수의 물은 꽝꽝 얼고, 빈 들과 산은 응달진 곳의 잔설(殘雪) 말고는 푸름은 찾아볼 수 없이 온통 잿빛이다. 이 잿빛 속에서도 생명의 온기를 품은 것들은 살기 위해 바지런히 움직인다.

 

시든 풀숲 아래에서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며 씨앗을 찾고, 다시 공중으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저 작은 생명체들의 바지런함은 그 생명의 장엄함으로 코끝이 시큰해지게 하는 바가 있다.
 
  많은 계획을 세우고 설렘으로 시작했던 한 해가 덧없이 저물었다. 묵은해에 품었던 꿈과 계획 중 아주 일부만을 이루고 남은 것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거나 스스로 접었다. 이룬 것들은 뿌듯함으로, 이루지 못한 것들은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버려진 꿈들은 시든 국화꽃다발 같다.

 

꽃은 시들고 나면 생화(生花)의 생기와 아름다움은 온데간데없고 누추한 쓰레기로 변질한다. 당신의 지난 한 해는 어땠는가? 지난해에도 여전히 사는 일이 팍팍했다.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하우스푸어, 전세난, 경제불황이라는 암울한 말들이 위세를 떨치며 서민들의 목줄을 죄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다. 당연히 우리가 꾸었던 많은 꿈과 계획은 어그러졌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라. 꿈을 포기하지도 마라. 낙담과 실망이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몸이 아니라 마음이 늙기 시작한다. 마음이 늙으면 사람은 뒷걸음치고 꿈에서도 멀어진다. 보라, 지혜를 가진 시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나짐 히트메크, 〈진정한 여행〉)
 
  새해 첫날에 가장 훌륭한 시, 가장 아름다운 노래, 최고의 날들은 오지 않았다. 그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일들이다. 넓은 바다, 불멸의 춤, 빛나는 별들도 만나지 못했다. 그것들 역시 미래가 품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사랑도 여행, 인생도 여행이다. 이 초록별에서의 삶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 주어진 편도여행이다. 시인은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비로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에겐 써야 할 가장 아름다운 시와 불러야 할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항해해야 할 가장 넓은 바다와 아직 추지 않은 불멸의 춤이 있다. 우리가 오지 않은 날들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근거들이다.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은 아직 우리에게 도착하지 않았다.
 
  새해 첫날은 묵은 날과 다른 날이다. 그것은 어제의 낡음과 묵음을 혁신한 새로움을 제 안에 감추고 있기 때문에 기적의 첫날이다. 낡은 것을 무찌르는 쇄신, 탈바꿈, 재탄생, 그게 바로 기적이다. 이 기적은 새해가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새해를 맞는 자들이 만드는 것이다. 당신의 새해 기적은 무엇인가? 새해, 새날, 입학, 입사, 결혼, 아기의 탄생, 새집 마련, 신장개업, 첫 책의 출간, 집에 들인 새・고양이… 이것들이 다 기적이다. 죽지 않는다면 기어코 기적은 일어난다.

 

오늘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오늘의 역경에 겁먹지 마라. 쇠붙이가 불에 달궈지며 강하게 연마되듯 사람은 역경에서 단련되고 그 역경을 딛고 도약할 수 있다. 역경을 견딘 자는 내면이 꿋꿋하고, 침착한 자태는 늠름하다. 해마다 한 겹씩 생겨나는 나무의 나이테도 여름의 것은 무르고 겨울의 것은 단단하다. 겨울의 나이테가 그렇듯이 역경과 시련은 자기 단련의 기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하여 제왕적 존재다.

 

새해 첫날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누려야 할 제왕의 하루다. 주눅 들지 말고 가슴을 활짝 편 채 새해 첫날을 맞으라. 오늘보다 내일은 더 나아지리라. 우리에겐 그 행복한 날들을 맞을 권리가 있다. 샤워하면서 노래하라! 쑥스러워하지 말고 가족과 포옹하라! 모란과 작약을 보고 기뻐하라! 사랑이 깨졌다면 새로운 사랑을 기다려라! 어디서든 시간만 나면 책을 읽어라! 오솔길을 걸으며 꿈꿔라!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편지를 써라!
 
 

 

  반칠환(1964~)은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다.

반씨 집안의 여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평론가로 활동하는 반경환이 그의 형이다.

아버지가 병환 중이었고, 가장 노릇을 못했기 때문에 집안은 가난했다.

가난에 주눅 들지 않고 꿋꿋했다.

자연 속에서 개구리들, 잠자리들, 풍뎅이들, 사슴벌레들, 뱀들과 함께 지낸 유년기는 축복이었는지, 가끔 그는 마법을 써서라도 유년기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반듯하고 늠름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하고 많은 직업을 다 놔두고 시인이 되었다.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하고,

그동안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람》 《웃음의 힘》 《전쟁광 보호구역》 등의 주목할 만한 시집을 냈다.

 

그동안 기지(機智)와 남다른 기품이 버무려진 빼어난 시와 산문들을 써냈다.

기어코 유명해지지는 않았으나 알 만한 사람은 그가 얼마나 모국어를 능란한 솜씨로 다루고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 보여주는 훌륭한 시인인지를 다 안다.

지금은 숲생태 전문가로 더 부지런하게 활동하고 있다.
사진제공 : 창비

 

문화
이 아침에 만나는 시
[이 아침에 만나는 시]문정희,“먼 길”
업데이트 2009-10-09 21:142009년 10월 9일 21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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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 문정희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오다니
어디에도 아는 길은 없었다
그냥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

처음 걷기를 배운 날부터
지상과 나 사이에는 신이 있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뒤뚱거리며
여기까지 왔을 뿐

새들은 얼마나 가벼운 신을 신었을까
바람이나 강물은 또 무슨 신을 신었을까
아직도 나무뿌리처럼 지혜롭고 든든하지 못한
나의 발이 살고 있는 신
이제 벗어도 될까, 강가에 앉아
저 물살 같은 자유를 배울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지만

삶이란 비상을 거부하는
가파른 계단
나 오늘 이 먼 곳에 와 비로소
두려운 이름 신이여! 를 발음해 본다
이리도 간절히 지상을 걷고 싶은
나의 신 속에 신이 살고 있다

-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민음사) 중에서

세상에 신이 둘이 있는 줄을 다시 알겠다. 전능하사 머리 위에서 굽어보는 신과 평생을 달아나도 뒤꿈치 잡고 쫓아오는 발 밑신(문명인인 우리는 하루 천 리를 가도 겨우 신발 속에 갇혀 있다).

아니다, 그 둘만 신인 줄 알면 사원을 잘못 찾았다. 아래로 달아나도 신이요, 위로 솟구쳐도 신이라면야 평생 맷돌 사이에 낀 무른 메주콩이 아니겠는가? 저 먼 길을 돌아 비로소 깨닫나니, 신과 신 사이에 다시 신이 있다.

하늘과 땅과 저 자신, 지붕과 기둥과 주추가 모두 신인 저 놀라운 사원을 보라. 신 밖에 신이 없고 신 속에 신이 있으니, 세상 만유가 신이며 저 또한 신 자체가 된 사람을 보라. 그러나 ‘어디에도 아는 길’ 하나 없이 새 신 꿰고 길 떠나는 저 외로운 신을 보아라.

(신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기도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내가 나의 사원이며 나의 신이니 나에게 간절히 경배할진저! 신은 자신의 우주를 한눈에 보기 위해 곳곳에 작은 사원을 만들었다. 꽃 한 송이, 티끌 하나에 우주가 담긴 것은 그 때문이다.)
반칠환 시인

 

한계령을 위한 연가(수능시험 출제예상문제 )

                -문 정 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남자를 위하여>(1996) 

문정희 시인 (1947. 5. 25~) 현, 국립한국문학관 관장.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현대문학상(1976), 소월시문학상(1996), 등 다수 수상.

겨울사랑
   -  문 정 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싶다.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