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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백영옥의 말과 글 백년달력. 미호천 보롬교 일출

by 한국의산천 2019. 12. 29.

미호천 보롬교 일출[2019 · 12 · 28 · 토요일 07:50]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미호천 보롬교)


일출을 보러 떠난 길은 아니었다  

단지 일출 사진으로 이름있는 곳을 지나다가 그냥 지나 칠 수 없기에 잠시 차를 세우고 먼지묻은 카메라로 한 컷

교량 중간쯤 나가서 강줄기를 넣고 촬영을 했으면 더욱 구도가 달라졌을것인데 시간 관계상.








아래는 경기 화성 송산의 일출






[백영옥의 말과 글] [130] 백 년 달력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19.12.28 03:12

  
 

백영옥 소설가
 

2000년이 되고 난 후, 백 년 달력을 샀다. 홍대 앞 '아티누스'라는 예술 전문 서점이었다. 달력은 커다란 포스터 형식이었는데 신문을 펼친 것보다도 컸다. 그 종이 한 장에 2001년부터 2100년까지 3만6500일이 빽빽이 인쇄되어 있는 걸 보니, 그중 어느 날 내가 사라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이 얼마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죽음이 분명 이 달력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메멘토 모리(네 죽음을 기억하라)'의 형상을 본 듯 시간이 날카롭고 선명하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달력 위에 형광펜으로 미래의 소망을 적었다. 소설가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등단이 첫째 꿈이었다. 이루어지길 원하는 날짜 위에 가지고 싶은 것, 살고 싶은 집, 가보고 싶은 곳을 적기 시작했다. 그 후 20년이 지난 얼마 전, 상자에 고이 넣어둔 백 년 달력을 다시 펼쳐보았다. 안타깝게도 형광펜으로 쓴 글씨가 세월에 날아가 있었다.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는 그 글자를 몇 번이고 헤아렸는데, 어떤 건 이루어졌고, 어떤 건 진행 중이고, 어떤 건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놀라운 건 대체 내가 왜 이런 걸 꿈꾸었을까 싶은 것도 많다는 점이었다. 지금으로선 전혀 중요하지 않은데 말이다. 꿈도 소망도 변하는 걸까. 돌이켜 보니 시간이 바꾸지 못하는 게 없었다. 시간은 느리지만 끝내 꽃을 피우고, 나무를 키워 커다란 그늘을 만든다. 그러니 이루어진 게 성공이고, 이루지 못한 것을 실패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배움이 있었다면 성장했다고 믿고 싶다  . 2020년의 달력을 보다가 셰릴 샌드버그의 말을 보았다.


"사람들은 계획을 세울 때 삶을 오직 직선형으로, 단계별로 올라가는 사다리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꿈으로 가는 길은 사다리가 아니라 경력과 경험들이 엮인 정글짐에 가깝죠. 그러니 계획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2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100년 달력 앞에 선다면 나는 무엇을 소망하고 계획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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