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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산악회 OB모임

by 한국의산천 2019. 6. 18.

북인천 산악회 OB모임  [ 2019 6 17 월요일]

 

※ ob와 yb

YB는 young boy (젊은 층)

OB는 old boy.  (논 네 ㅎ)


오늘 이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북인천 산악회에 가입하여 산악활동을 한지 적어도 30년이 넘은 회원들의 모임이다

오늘 이자리에 참석을 하지 못한 여러분도 많다.

그 이름하여 북인천산악회 OB 


언제만나도 반가운 산친구들

오랫만에 선후배 岳友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까까머리 중학교 3학년(1972년)때 산악회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암벽등반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산악회 선 ·후배님들   

건강관리를 잘하여 오래도록 만나기를 바랍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는것을.

- 칼릴 지브란(Kahn Gibran)의 '예언자' 중에서







추억의 사진들





사춘기 까까머리 학창시절, 우울했던 젊음을 배낭에 넣고 산행을 같이 했던 岳友들...

그들중에는 대부분 산을 떠나 사회에 안착하고 살거나 또 다른 취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부 친구들은 아직도 산으로의 끝나지 않은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려 진짜 산꾼은 산에 집착하지 않는다.

산은 이미 우리들의 가슴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산 자체로부터 초월해 있지 않다면 산을 오르는 행위는 가치없는 일이다. 

내가슴에 존재하는 산 정상에 올라 하늘로 통하는 문의 빗장을 열수있을까? 

그래 사람은 각자대로 운명의 길을 살아갈 따름이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되면 사람들은 원하던 원치않던 울타리를 갖게된다. 세월이 지나면서 울은 높아지고 두터워간다.

여자는 울타리 속에 영원히 남자를 가두려 하고 남자는 한사코 그곳을 뛰어 넘으려 한다. 가정에 대한 저버릴수없는 끈끈한 집착은 순수한 애정과 피할길 없는 의무가 혼합되어 남자의 목덜미를 휘어잡고 있는 셈이다.

 

가정은 모든것을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지녔지만 또한 동시에 하고자 하는 어떤것도 단념하게 하는 제약성도 갖는다. 길들여 지지 않는 자는 부단히 담을 부수려 든다. 그리하여 거침없이 광야로 내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유는 단지 자신을 찾아가는 힘든 구현일지 모르나 때로 그것을 스스로에게 증명되기 위해 피를 말리는 투쟁을 해야한다.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로,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아예 울을 박차고 나갈 생각을 버리고 숨죽여 사는것이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자기 몸에 가장 잘 맞는 옷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듯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만이 최선의 선택이다.


배우는 산 느끼는 산

어떤 산행이던 자기가 하는 등산만이 정통이라고 생각하는것은 광신이며 그 자체가 아집을 낳아 산에 다니는 사람끼리 편가르기를 하게되고 다툼을 낳은다. 바위를 오르던 백두대간을 타던 집뒤의 작은 동산을 오르건 간에 진정한 자연의 소리를 느끼면 되는것이다. 산에 오르는 진정한 그 무엇인가를 느끼지 못한다면 산을 오르는 의미가 없는것이다. 

산에는 변수가 많은곳이기에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준비된 장비와 마음가짐, 그리고 등산에 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안된다.

 



▲ 1985년 설악산 동계훈련중 마등령 표석 옆에서...한국의산천  

그간 어떻게 살아왔나 산 정상만을 추구하며 돌쇠처럼 산을 오르고 삶 또한 앞만보고 달려오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나에게 남은것이 무엇이었던가? 그래 정상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오를만큼 오르는거야. 지쳐 더이상 오르지 못하겠다면 돌아서며 그곳이 자기가 선택한 종착지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 삶 또한 그렇게 살아야해. 자신의영혼이 잘 따라오나 뒤를 돌아보면서... 


▲ 설악산 천화대 등반 중 잦은바위골을 배경으로 한컷


▲ 용어천계곡 치마바위



여울처럼 지나간 날들의 후회스런 시간들 끊임없이 삶의 고난과 마주치며 외로운 궤적을 밟고 온 세월, 뛰어넘어도 상관없을 지나간 공백의 시간, 삶에 진공이 생길 때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나태와 자폐뿐이다.

 

삶은 조여진 줄처럼 긴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경직되어 있기만 한다면 그 생 또한 쉽게 부서지기 쉽다.  삶을 시행착오 없이 살기란 힘들다. 착오는 시간의 낭비를 가지고 오지만 어쩔도리가 없다. 미래를 살아보지 않는 한 수레바퀴 돌 듯 쉬지않고 진행되는 일상을 정지 시킬 방법은 부재하다. 후회하면서도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미답의 산을 처음 오르려는, 그래서 정상에는 무엇인가 기대할 만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산행과 동질성을 띤다.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미지의 산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나간 족적을 헤아려 보는 회상과 다를바 없다. 우리는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힘겹게 산을 오른 후 더 올라설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그때는 어디를 가고 싶게 될까?

하늘로 오를 것인가?

정상의 마지막 바위 끝에는 하늘문을 여는 빗장이 놓여 있는가?

우리는 그 빗장의 문고리를 잡기위해 끝이 보이지 않게 반복되는 길고 긴 산행의 장막을 한겹 한겹 헤치고 있는지 모른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지 또 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움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 정비석 산정무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