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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스치는 바람

두 바퀴에 스치는 바람 27 강화 나들길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 심도기행,

by 한국의산천 2019. 5. 11.

두바퀴에 스치는 바람 스물일곱번째 이야기 2편


강화 나들길 6코스 화남 생가 가는 길 2 


화남생가 가는 길 1 보기 >>>                



심도기행 강화 나들길 6코스

역사와 문화 숨결 따라 걷는 길 


강화에는 아름다운 나들길이 있다.

나들이 가듯 걷는, 들고 나는 길이란 의미의 강화나들길이다.

바로 이 나들길이 화남 고재형 선생께서 강화일대를 다녔던 길과 그 분의 문집 ‘심도기행’을 바탕으로 

끊어진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아 현재의 둘레길과 역사탐방의 길로 조성한것이다. ‘심도’는 강화의 별칭이다. 

그래서 강화나들길 곳곳에 화남의 시가 새겨진 표지석들이 서있다.


강화나들길을 따라 달려 나가니 수려한 자연과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강도가 겪어 온 기나긴 수난의 역사를 돌아보고,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는 시간

불어오는 봄 바람속에 한 낮의 햇살은 따사롭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길 위에서 만나는 생기 가득한 자연.그리고 텅빈듯한 폐사지

들판을 가르는 길게 이어진 길, 한적하고 고즈넉한 길이 나를 반긴다. 너무 좋은 날이다.


1906년 어느 봄날 환갑을 맞은 한 선비가 강화도 순례길에 올랐다.

강화도 곳곳을 누비며 마을을 주제로 256편의 한시를 짓고, 마을 유래와 풍광, 인물, 생활상을 기록한 '심도기행'(沁都紀行)이라는 문집을 남겼다.

그 선비가 불은면 두운리 두두미 마을에서 태어난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선생이다.

화남 고재형 선생께서는 고향땅인 강화의 구석구석을 돌며 마을 유래와 수려한 자연과 사라져가는 풍속, 주민의 생활상을 소재로 시를 읊었다.

 

화남 고재형

1888년(고종 25)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한 화남은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의 선비로 살았다.

화남이 강화순례에 나선 1906년은 을사늑약 이듬해로 일제에 의해 외교권을 빼앗기고 구한말 대한제국의 운명이 저물어가던 암울한 시기였다

세상사 시름을 내려 놓고자 길을 나선 것일까?

환갑의 고재형 선생은 섬의 구석 구석을 돌아보고 들은 감상을 7언 절구 한시로 남긴다.

그 256수가 화남의 '심도 기행'이라는 기행문집으로 전해 내려온다. '심도(沁島)'는 강화의 옛 이름이다.


화남 고재형 선생의 심도기행 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6878




▲ MTB를 타고 급경사 산길에서는 끌바도 하면서.


▲ 바람이 불면 송홧가루가 안개처럼 내리는 날이다




어우아 어우아

거친 호흡 내쉬며 고개를 오른다


그리운 것은 다 산뒤에 있다.

 

                           -  김  용  택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난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벗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는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연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뒤에 있다.



▲ 연동고개 사거리에서 도로를 건너서 직진

그리고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서 바로 좌회전  



▲ 이 느티나무를 지나서 바로 좌회전


▲ 느티나무를 지나서 그물망 펜스를 따라 좌회전 


▲ 하얀집 앞마당을 지나고 황토방 앞으로 직진 후 소로길로 진입

좁은 소로길이지만 아름다운 길이다

 





▲ 끝없이 이어지는 직선 농로길을 따라 다리를 지나고 계속해서 또 직선 농로를 지나야 한다.


▲ 상동암천 

강화도는 고려때부터 간척지 사업으로 땅을 넓혀왔으며 그로인해 내륙의 농로와 수로 정비가 매우 잘 정비된곳이다.  


혈구산과 덕정상에서 시작된 물이 삼동암리와 만월평의 대청수로를 통해 화도돈대 쪽으로 흐른다. 삼동암천이다.

선원면과 불은면에 걸쳐 있는 넓은 평야 사이의 이 물길을 흔히 대청개라고 한다.

강화는 이처럼 관개수로가 많고 정비가 잘되어 늘 풍년을 이루는 곳이다  


▲ 들판을 지나서 끝에 다다르면 아래 오른쪽 길을 따라 약 50m 전진한 다음 뚝 위로 올라서면 소로 뚝방길이 나온다


▲ 리본이 달린 뚝방길로 올라선다


▲ 뚝방에 올라선 다음 좁은 소로 뚝을 따라서 이동 후 도로를 건너서 직진



▲ 도로를 건너서 농로길을 따라 직진


▲ 도로를 건너서 직진


▲ 기와집 끝에서 좌회전하여 산길로 올라갑니다


▲ 맑은 공기 가득한 산 길

이 산길을 잠시 오르면 평탄한 임도길이 나옵니다



▲ 고씨 사당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곳이 고재형 생가


▲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가득한 두두미 마을


斗頭我步帶春風(두두아보대춘풍)
봄바람 맞으며 두두미를 걷노라니


 一府山川兩眼中(일부산천양안중)
온 마을의 산과 내가 한 눈에 들어오네.


明月綠楊諸具榻(명월녹양제구탑)
밝은 달 푸른 버들 여러 구(具)씨 탁상에서


滿杯麯味使人雄(만배국미사인웅)
잔 가득한 술 맛이 힘을 내게 하는구나.


여기 소개한 시는 그 첫 수이다. 이곳 '두두미 마을'은 기행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다.

고재형이 살던 인정면(현 불은면) 두운리 두두미 마을 입구 안내판에 이 시구가 그대로 적혀 있다.

'띠를 두른 듯 살랑대는 봄바람을 허리에 차고 거닌다'(步帶春風)는 첫 구절에서 여유를 즐기며 봄을 만끽하는 화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 화남 고재형 생가

집 앞 대문앞에 순한 래브라도 리트리버? 대형견이 있는 집이다  

고재형 선생이 책을 읽고 글을 썼던 집이다. 19세기 중반에 지어진 집으로 옆에는 새로운 건물도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에

사생활이 침해된다는 말도 있기에 밖에서 둘러보고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고재형 선생님의 후손들이 지금도 아름답게 삶을 이루시며 학업에 열중하시는 현직 대학 교수분도 계시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곳 옆집에 계시는 후손께 전해들었다.




100년 전 강화도 마을답사기

≪심도기행沁都紀行≫ 
 

1906년 봄, 강화도에 살던 고재형(高在亨, 1846-1916)이라는 선비가 여행길을 떠났다.

돌아와서 ≪심도기행沁都紀行≫이라는 한권의 책을 썼는데, '심도'는 강화(江華)의 별칭이다.

‘심도기행’은 곧 ‘강화기행’이니 고향을 여행하고서 쓴 기행문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여행한다는 것이 어딘지 어색하다.

하지만 그는 강화도의 거의 모든 마을이라 할 수 있는 200여 곳을 직접 가서 살펴보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서 그 마을들을 주제로 모두 256수의 한시(漢詩)를 지었고, 거기에 덧붙여 마을 유래와 자연 경관, 풍습,

주민들의 생활모습 등을 설명한 산문을 곁들인 ≪심도기행≫이란 기행시문집을 지었다.


그는 책의 맨 첫머리에

'강화도 전체의 자연과 역사 유적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 위하여 길을 떠난다.'고 여행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두두미 마을을 출발하여 강화도를 일주하고 다시 두두미 마을로 돌아왔다.

인근의 몇몇 명소를 둘러 본 것이 아니고, 강화도 거의 모든 마을을 직접 답사했다.

자신을 키워준 삶의 터전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갖고자 했던 것이다.


그 당시는 근대 서구 문명에 의해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가 점차 사라져 가던 무렵이었고, 일제에 의해 국운이 기울어 가던 때였다.

순례자가 되어 어떻게 변할지 모를 고향 강화 땅 구석구석을 돌며 가슴으로 느끼려 했다.

직접 가서 보고 거기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느낀 점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분량이 적지 않다. 100년 전 강화도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특히 산문으로 기술된 부분은 강화의 자연경관 풍속 생활상 인물 등에 해한 풍부한 자료를 전해주고 있다.

기행시문집으로, 지리지로, 민속지로도 손색이 없다.



◀ 고재형의 ≪심도기행≫(고승국 소장) 표지

≪심도기행≫의 본문 부분


요즈음 '걷기운동'이 큰 흐름으로 퍼져가고 있다.

아름다운 도보여행길의 발굴이 한창이다.

걸어야 느낄 수 있고, 되도록 천천히 걸어야 더 많은 것을 보고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강화도의 옛길을 걸으면 우리는 아득한 선사시대로부터

오늘날 국토 분단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겪어온 영광과 수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3천여 년 전에 진지한 자세로 고인돌을 세우던 선사시대

조상들의 목소리도,

7백여 년 전 대제국 몽골에 맞서 싸우려고 북산 아래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던 고려인의 비장한 음성도 들을 수 있다.

고려의 온 국민이 정성을 모아 완성한 팔만대장경 경판을 서문 밖 대장경판당에 봉안하고 모두 함께 감격하던 그날의 분위기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시와 술과 거문고를 좋아하던 백운 이규보 선생의 목소리도, 참된 지식인의 자세를 보여준 하곡 정제두선생의 가르침도 우리는 강화도에서 만날 수 있다.

140여년 전 프랑스 군이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가고 궁궐들을 불태우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강화도 주민들의 안타까운 한숨소리도, 며칠 동안만 피난하면 곧 돌아갈 줄 알았던 50년 실향민의 망향가도 들을 수 있는 곳이 강화도이다.


역사의 섬 강화도의 오래된 길을 걸으면 역사를 보는 안목을 더욱 넓힐 수 있다.

역사 속으로 떠나는 이 강화도 도보여행의 본보기는 100년 전 고재형 선생의 ≪심도기행≫에서 찾을 수 있다.


글 : 문화재청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김형우 감정위원 [김형우] 2009-06-23 


▲ 고재형 선생님의 옆집에는 지금도 구씨 집안 종손이 계신다

그때처럼 지금도 친하게 지내신다는.....


화남 선생이 1906년 봄 강화도 일주를 시작하며 쓴 '심도기행'(沁都紀行)의 첫 부분이다.       

화남 고재형 선생은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두두미마을)에서 1846년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
1888년(고종25년)에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평소 충의와 대의를 쫓은 인물들을 흠모하였으며 전통이 급속히 사라져가는 풍속을 개탄하였다”고 한다.
화남 선생은 자신이 태어난 두두미 마을에서 출발하여 당시 강화군 17개면 100여 마을을 필마(匹馬)에 의지하여 빠짐없이 찾아나섰다.
그리고 마을의 유래, 풍물이나 사람들이 사는 생생한 모습을 256수나 되는 칠언절구 한시로 엮어 후세에 남겼다.
오늘날 강화나들길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심도기행'에 따르면, 화남 선생이 찾은 마을 가운데 청주한씨가 사는 마을이 모두 14개 마을, 창원황씨가 8개 마을, 능성구씨가 9개 마을, 함열남궁씨 7개 마을, 안동권씨가 7개 마을, 제주고씨 6개 마을, 전주이씨가 5개 마을이다.

두두미마을(두운리)은 고려 시대 대문장가 이규보(호 : 백운거사, 1168 ~ 1241)의 숨결이 깃든 유서 깊은 마을이기도 하다.(두두미동의 '두頭'와 백운동의 '운雲'을 합해서 두운리.)


* 역주 심도기행(譯註 沁都紀行) : (고재형 저, 김형우. 강신엽 역, 인천학연구원, 도서출판 아진, 2008)


▲ 두두촌 마을 입구에 서있는 장승과 두두촌 시


▲ 두두촌

화남 선생께서 강화도 일주를 마치시고 

제일 마지막으로 쓰신 심도기행 256번째 시<두두촌>










▲ 강화 나들길 6코스

이곳까지 산길을 지나서 18.85km를 달려 왔다.

이곳에서 부터 다시 양호한 도로를 따라 강화 풍물시장까지 13km를 더 가야 한다. 

오늘은 산을 3개 넘고 많이 걸었네 . 라이딩 거리는 총 32km


▲ 이곳까지 안전하게 알바없이 잘 마친것을 자축한다.  



▲ 화도수문 개축기사비 

나들길 2코스를 따라 강화 출발지로 다시 돌아가는 길


화도수문개축기사비 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6831


▲ 오두돈대를 다시 지나며 .










▲ 도로 왼쪽 이 산 위에 가리산 돈대터가 남아있다






▲ 수로에 가득한 물

요즘 모내기로 한창 바쁜철에 수로에 가득한 물을 보니 마음이 흡족하다. 







▲ 강화 나들길 라이딩을 잘 마쳤기에

강화 시민에게 감사드리며

강화도에서 젓갈과 순무를 구입하고 귀가하기.


화남생가 가는 길 1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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