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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스치는 바람

두 바퀴에 스치는 바람 24 솔뫼성지 버그내 순례길 라이딩

by 한국의산천 2016. 9. 28.

두바퀴에 스치는 바람 스물네번째 이야기

솔뫼성지~ 신리성지를 잇는 버그내 순례길 왕복라이딩 30km


버그내 순례길 : 솔뫼성지 ~ 합덕성당~ 합덕제 ~ 무명 순교자의 묘 ~ 신리성지 (13.4㎞) 


버그내 순례길

13.4㎞에 이르는 버그내순례길은 솔뫼성지를 시작해 천주교 탄압기 신자들의 만남의 공간이었던 버그내시장과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합덕성당, 조선시대 3대 방죽 하나인 합덕제를 지나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샘인 원시장 우물터와 무명순교자의 묘역을 거쳐 제5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다블뤼주교가 거처하던 신리성지까지 이어지는 길로서 내포지역 천주교 문화의 역사성뿐만 아니라 지역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



   충청도는 전라도와 경기도 사이에 있다.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에서 첫글자 한자씩 따왔다고 한다. 서쪽은 바다에 닿았고 동쪽의 동북편 모퉁이가 되는 충주,제천,단양 등은 강원도 남쪽에 불쑥 들어가 있으며 그 아랫녘은 백두대간을 경계로 경상도의 접경지역이다. 금북정맥과 금남정맥에 위치하여 전라도와 가깝고, 일부분은 금북정맥 북쪽에 있기 때문에 경기도와 가깝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다" 라고 했다.

'가야산 앞뒤에 있는 예산, 당진,서산,홍성 등 열 현을 내포라 한다. 지세가 한 구석에 막히어 끊기었고, 또 큰 길목이 아니므로 임진·병자년 두 차례의 난리에도 여기에는 적군이 들어오지 않았다.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며, 생선과 소금이 넉넉해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고 적고 있다.


그 옛날 서해가 내륙 깊숙히까지 만이 들어와 있기에 내포라고 부르며 해운교통이 발달했고, 땅이 넓고 기름져 곡식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비산비야 내포지방은 딱히 눈길을 끌 만한 빼어난 절경은 없어도 부드러운 구릉과 들판, 풍요로운 갯벌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그 순박한 말씨처럼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충청도 중의 충청도’로 꼽히면서, 오래 전부터 살기도 좋고 인심도 좋은 곳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허나 이중환의 지적대로 만(灣)에 길이 끊겨 육로로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000년 총길이 7,310m의 서해대교가 개통되자 모두 옛말이 되고 말았다.

내포지방도 그렇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 도보 순례’행사에 참여한 사제와 수녀, 수도자, 천주교 신자들이 버그내 순례길 구간인 충남 당진시의 합덕평야를 걸어가고 있다. / 출처 당진시


솔뫼성지


  충남 내포 일원은 서구 문물의 유입이 가장 활발했던 당진을 중심으로 한국 천주교 역사의 시작점으로 불린다. 한국 천주교 최초의 사도인 이존창이 내포(內浦)에서 활동했고, 조선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세례명 안드레아)가 당진에서 태어났다. 또 그 무게 만큼 절절한 순교의 역사가 충남 곳곳에 남아있다.

천주교 대전교구가 관리하는 성지는 모두 17곳에 달한다. 국내외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 코스도 밀집돼 있다.


▲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에 자리한 솔뫼성지 표지석

 광활한 내포평야 가운데에 '신앙의 못자리'라 불리는 '솔뫼성지'(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46호)가 있다


   솔뫼는 ‘소나무가 우거진 산’이라는 뜻.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1822~1846) 안드레아가 태어난 곳이다.

그의 증조부부터 자신까지 4대에 걸쳐 이 아름다운 송림에 기대어 살았다. 증조할아버지 김진후는 이곳에서 50세의 나이에 천주교를 받아들여 신앙생활을 하다 해미에서 순교했고,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은 대구에서, 아버지 김제준은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마카오에서 신학 공부를 했던 김대건 신부는 1845년 24세의 나이에 사제품을 받았지만 1년 후 서울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김대건 신부 집안은 4대에 걸쳐 무려 11명의 순교자를 냈다. 그가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냈던 생가는 ‘한국의 베들레헴’이라 불리며 솔뫼성지의 모태로 자리하고 있다.



  솔뫼성지는 1906년 성역화돼 40년 후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기념해 조성되기 시작했다. 붉은색을 띤 성당과 기념관은 물 위에 떠 있는 수반의 형상이다. 김대건 신부가 중국을 오가던 라파엘호를 상징한다. 건물 가장자리는 물을 채울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기념관에는 충청도 지방의 가톨릭 역사를 비롯해 김대건 신부의 유품과 유골이 전시돼 있다.



솔뫼성지(신앙의 못자리)

 

 충남 당진에는 유난히 소나무가 우거진 곳이 있다. 바로 우강면 송산리의 '솔뫼'다. 솔뫼는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다.

김대건 신부는 1821년 솔뫼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이곳은 김대건의 증조부인 김진후(세례명 비오)가 50세에 영세한 뒤로 천주교 마을이 된 곳이다.


  김진후는 면천군수로 재직 할 때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에게 복음을 전해듣고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정조 15년인 1791년 신해박해 때 체포돼 해미감옥에서 10년의 옥살이 끝에 순교했다.


  2년 뒤에는 셋째 아들 김한현이 순교했고, 23년 뒤에는 손자 김제준이, 또 7년 뒤에는 김제준의 아들 김대건이 순교함으로써 4대에 걸쳐 순교자를 냈다.

솔뫼가 '신앙의 못자리'로 불리게 된 이유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언제나 꿈꾼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 돌아볼것이라고.... 

  

그래 떠나는거야

그날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설레임

나는 알았다 삶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 그 이상임을.

나의 기쁨은 도착이 아니라 그 여정에 있음을.

그래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기쁨. 즐거운 마음으로 달리는거야~!



순교자들의 거룩한 희생으로 인해 이 나라 이 땅이 이렇게 아름다운가보다.






▲ 버그내길 출발지는 솔뫼성지를 둘러보고 나오면서 입구에서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지하도 고가다리를 건너가는것으로 길은 시작된다 ⓒ 2016 한국의산천


‘버그내’란 합덕읍내를 거쳐 삽교천으로 흘러드는 물길 이름이면서, 조선말 천주교 신자들이 비밀리에 만나던 장소인 합덕장터의 옛 지명이다.

버그내 순례길의 출발지가 김대건(1821~1846) 신부의 생가 터인 솔뫼성지다.


▲ 가을의 전령사 은빛 억새가 피어나는 들길을 달렸다 ⓒ 2016 한국의산천


▲ 보도에 있는 버그내 순례길 이정표 ⓒ 2016 한국의산천

 

  버그내 순례길을 탐방하려면, 물고기 그림 안에 ‘버그내순례길’을 뜻하는 ‘ㅂㄱㄴㅅㄹㄱ’을 써넣은 표지를 따라가면 된다.

순례길의 코스의 대부분이 드넓은 평야지대로 그늘이 별로 없는곳이다. 여름철엔 말 그대로 고행의 길이 되겠다. 이른 아침 시간을 이용해 걷는다면 좋을것이다. 


합덕

합덕은 합덕방죽의 보수·개축에 참여한 장정들이 ‘힘을 합해 덕을 쌓았다’는 뜻의 ‘합심적덕’(合心積德)에서 지명이 유래한 곳이다.

1000여년에 걸친 주민들의 덕이 쌓여 비옥한 땅을 이룬 합덕과 그 일대는,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순례 코스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첫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솔뫼성지)이자, 조선말 무수한 천주교 신자들이 피 흘리며 죽어간 지역이다.



  신자들이 남의 눈을 피해 만나 안부를 묻고 정보를 나누며 신심을 다지던, 합덕읍내 버그내장터에선 지금도 닷새마다 합덕장(1, 6일장)이 열린다.


읍내에서 남쪽으로 합덕삼거리 지나면, 합덕의 지명이 유래한 합덕방죽 옆 언덕에 합덕성당이 나온다.

붉은 벽돌을 쌓아올려 지은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이다. 예산에 있던 양촌성당이 옮겨온 뒤 한옥으로 지었던 것을 페랭(백문필) 신부가 1929년 새로 지은 것이다.

전면에 세워진 2개의 종탑이, 최근 지은 것처럼 깨끗하고 탄탄한 건물 외관을 돋보이게 한다.


▲ 합덕성당 ⓒ 2016 한국의산천


 내포지역에 박해가 끝난 1890년, 아산시 공세리성당과 함께 이 땅에 첫 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다.

입구 계단을 오르면 자그마한 언덕에 붉은색 벽돌 건물이 두 개의 첨탑을 이고 있는 고딕풍의 성당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한국 천주교회 역사의 산 증인인 합덕성당은 7대 사제인 프랑스 선교사 페랭 신부가 30년간 주임 신부로 활동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홀로 성당에 남아있다 북한군에 의해 납치, 피살됐다.

성당 옆에는 페랭 신부의 묘소가 유해도 없이 유물만 묻힌 채 홀연히 자리하고 있다.


  아시아 주교들을 만나고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해미성지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가 순교자들의 성지다. 무명 순교자들의 땅이다. 이름 없이 자신의 믿음을 위해 순교한 수많은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 126년의 역사를 지닌 합덕성당. 이건물은 1929년 지은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 2016 한국의산천


 1890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세워진 양촌성당으로 출발하여, 1899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명칭도 합덕성당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29년에 신축된 것인데,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건축양식으로서 벽돌과 목재를 사용한 연와조 구조로 지었으며,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61년 합덕읍 운산리에 신합덕성당이 생김으로써 구합덕성당으로 불리다가, 1997년 다시 합덕성당의 명칭을 되찾았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29년에 준공된 것으로, 벽돌과 목재를 사용한 연와조 구조에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 설계를  담당한 페랭(Perrin) 신부는 6 25때 납치되고, 현재 성당 구내에 있는 그의 묘소에는 유해가 없이 유물만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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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교천은 충남 홍성에서 발원해 북으로 흘러, 당진·예산·아산의 넓은 들을 적시고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조영남이 노래 불러 유명해기도 한 지명 ‘삽다리’(섶다리, 예산군 삽교읍)에서 강 이름이 유래했다.

삽교천 하류 서쪽 너른 평야지대에 당진시 합덕읍이 있다. 백제 때부터 있던 저수지, 조선 3대 방죽으로 불린 합덕방죽(합덕제·연제)으로 이름난 마을이다.





▲ 억새와 더불어 코스모스도 활짝 핀 들길 ⓒ 2016 한국의산천



조선 3대 방죽의 하나인 합덕방죽


  합덕성당 뒤로 보이는 광활한 평야지대 들머리에 합덕의 지명 유래가 된 합덕방죽(합덕제)이 있다. 합덕수리민속박물관 옆이다. 길이 약 1.7㎞에 이르는 제방으로 제방 양쪽 끝 일부와 수문 등은 석축으로 이뤄져 있다. 김제 벽골제, 황해도 연안 남대지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방죽으로 꼽히며 삽교천 하류 농경지에 물을 대던 저수지였다.


  본디 후백제의 견훤이 왕건과의 전투에 대비해, 부근 성동산에 산성을 쌓고 병사와 군마를 주둔시킨 뒤 식수와 군량미 확보를 위해 못을 만들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저수지에 연꽃이 많이 피어 연제·연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60년대 중반 예산의 예당저수지가 만들어진 뒤 저수지로서의 구실을 잃어 제방만 남고 내부는 농경지로 개간됐다.

 

  합덕방죽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요한 저수지였다는 사실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여러 사람이나 물건이 줄지어 늘어선 것을 뜻하는 ‘합덕방죽에 줄남생이 늘어앉듯 하다’는 속담이 여기서 나왔고, <조선왕조실록> 곳곳에서 보수와 중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은 천주교 박해사뿐 아니라 우리 역사와 건축물, 농경수리 발달사를 두루 알아보는 알찬 탐방길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강물이 생사가 명멸하는 시간 속을 흐르면서 낡은 시간의 흔적을 물 위에 남기지 않듯이, 자전거를 저어갈 때 25,000분의 1 지도 위에 머리카락처럼 표기된 지방도·우마차로·소로·임도·등산로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몸 밖으로 흘러 나간다.


  흘러 오고 흘러 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생사가 명멸하는 현재의 몸이다.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현재의 몸 속에서 합쳐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가려는 몸과 가지 못하는 몸이 화해하는 저녁 무렵의 산 속 오르막길 위에서 자전거는 멈춘다. 그 나아감과 멈춤이 오직 한 몸의 일이어서, 자전거는 땅 위의 일엽편주처럼 외롭고 새롭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 기진한 삶 속에도 신비는 있다.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김훈 자전거 여행 중에서)








  폭 5~6m의 방죽길을 따라 가면 방죽끝에서 오른쪽으로 꺽으면 대합덕리 농가의 밭둑 언덕에서 8개의 빗돌 무리를 볼 수 있다.

19세기 전후 합덕제의 보수와 중수를 기념해 세운 빗돌들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데 모아놓은 것이다.

1800년과 1827년, 그리고 1911년에 세운 연제중수비와 1851년에 세운 암행어사 김유연 영세불망비 등이다.









합덕성당에서 3.7㎞ 떨어진 지점엔 성동리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샘인 '원시장·원시보 우물'이 나온다.

내포지역(충남 서북부) 첫 순교자인 원시장과 사촌 원시보가 함께 물을 마셨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버그내 순례길' 팻말을 따라 한동안 마을길 산길을 지나면 성동리의 ‘원시장(1792년 순교)·원시보(1799년 순교) 우물’을 거쳐 무명 순교자의 묘에 이른다.

쌉사리방죽(백미제)이 내려다보이는, 무덤들 무수히 흩어진 야산이다.

1972년 주변에서 목이 없는 시신 32구가 무수한 묵주와 십자가들과 함께 발굴됐는데, 이를 여섯 봉분에 합장한 것이다.

그 위쪽엔 얼마 전, 옆 공동묘역에서 옮겨온 손자선 순교자 가족 묘 14기도 모아 놓았다.

여기서 2.4㎞ 떨어진 신리성지 성당의 수녀들은 매일 이곳을 찾아 무명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내포 천주교는 1784년 예산 여사울 출신 이존창이 첫 신자가 된 후 충청도 일대에 전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한국 천주교의 4대 박해(신유·기해·병오·병인)를 모두 겪어 순교자 없는 마을이 없을 정도다. 이후 1876년 강화도조약을 통해 서양 각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으면서 100년간 지속됐던 천주교 박해도 종지부를 찍는다.






▲ 때마침 신리성당에서 오신 신부님의 설명까지 듣는 좋은 기회를 만났다 ⓒ 2016 한국의산천






▲ 풍요로운 내포평야 중간에 서있는 신리성지 성당 ⓒ 2016 한국의산천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황봉(1,058m)에서 갈라진 금북정맥이 금강 이북 땅의 근간을 이루며 서해로 가다가 세력을 다하기 전에 예산과 서산 사이에 힘을 쏟아 빚은 산이 바로 가야산(伽倻山·678m)이다. 전통적으로 이 가야산 둘레의 여러 고을을 내포(內浦) 지방이라 불렀고, 이 일대를 내포평야라 부른다.






800㎞에 이르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비교하면 대단하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버그내 순례길에 담긴 순교자들의 정신만큼은 지극히 숭고하다







초가집은 손자선 성인의 생가이다.

김대건 신부와 함께 중국에서 조선으로 들어온 프랑스 출신의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다블뤼(Daveluy) 주교가 21년간 사목 활동을 했다.


▲ 신리성지의 다블뤼주교관 ⓒ 2016 한국의산천


   신리는 19세기 중반 천주교 탄압기의 가장 중요하고 규모 큰 천주교 교우촌으로,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의 비밀교회)로 불린다.

신리성지의 핵심 유적은 내포 지역 천주교 유력자였던 손자선의 생가이자, 이곳에 머물며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고 한글로 번역하던 다블뤼 주교의 유허지인 작은 초가다. 1845년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 땅에 첫발을 내디딘 뒤 1866년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간 수많은 저술과 자료 수집을 통해 조선 천주교회사의 기초를 닦은 이다.


  초가를 복원할 때 옛집에 쓰였던 주춧돌, 기둥 등의 일부를 그대로 사용해 옛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신리성지엔 최근 천주교 박해기를 그린 미술작품들을 전시하는 순교자기록화관을 짓고,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이제 다시 왔던 길을 따라서 솔뫼성지를 향하여 ~






















▲ 순교자의 뜻을 돌아보며 왕복 30여km의 순례길과 들판을 샤방 샤방 다녀왔습니다 ⓒ 2016 한국의산천

위 내용은 책을 통하여 준비한 자료와 신문기사와 종교 문헌을 찾아보고 작성되었습니다.  





충남 당진에 자리한 신평양조장


 1933년부터 지금까지 3대에 걸쳐 장인정신이 이어지는 집안이 있다. 당진시 신평면 금천리 도로 변에 자리한 '신평 양조장'. 한 눈에도 세월을 머금은 듯한 건물에 들어서자 시큼한 막걸리와 은은한 연꽃 향기가 절묘하게 코를 찌른다. 

  


  1933년부터 지금까지 3대에걸쳐서 83년간을 이어온 '신평 양조장'은 지난 2013년 삼성그룹의 신년 만찬주로 '백련 맑은 술'이 사용되면서 관심을 받았다.

최근엔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 주안상특집에도 소개됐다.

최근엔 해방 이후 만들어진 미곡창고를 다듬어 '백련 양조문화원'이란 갤러리를 개소했다.





▶ 신평 양조장 둘러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6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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