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인간은 어떻게 맥주 맛을 만들었나
출처 chosun.com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 2016.09.27 06:55
◀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우리의 책은 쓰레기, 위대하게 하는 건 맥주뿐,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맥주에 바친 찬사다.
실제로 맥주는 사람이 행복감을 감지하는 능력을 높여준다. 스위스 바젤대 연구진은 지난 23일 국제 학술지 '심리약리학'에 맥주를 마신 사람은 마시지 않은 사람보다 얼굴 사진에서 여러 가지 감정 중 특히 행복감을 감지하는 데 뛰어났다고 밝혔다. 맥주를 마시면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마음도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누가 이 '행복 바이러스'를 만든 것일까. 맥주 원료는 보리와 홉, 물이다. 단지 이들을 섞는다고 맥주가 되지 않는다. 발효 세균인 효모(酵母)가 있어야 보리의 당분인 맥아당이 알코올로 변신한다. 덴마크 맥주 회사 칼스버그는 1875년 세계 최초로 맥주 발효를 연구하는 생물학 연구소를 만들었다.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은 그곳에서 1883년 인류 최초로 효모균을 순수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효모는 사람이 그 존재를 알아주기 오래전부터 맥주를 빚어왔다. 기록에는 7000년 전 중동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수메르인들이 맥주를 즐겼다고 나온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지난 5월 중국에서 5000년 전 만들어진 맥주를 발견했다.
중국 북부 웨이허(渭河) 유역 부근 유적지에서 발굴한 도기에 맥주로 추정되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수메르인이나 고대 중국인이 마신 맥주와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맥주는 같은 맛이었을까. 벨기에 루뱅대의 유전학자 케빈 베르스티펜 교수는 이달 초 국제 학술지 '셀'에 오늘날과 같은 맥주의 맛은 16세기 이후 나왔다고 밝혔다..
이철원 기자
맥주 발효균 酵母 19세기 발견…
덴마크 칼스버그 연구소서 배양
맥주 맛은 16세기 유럽서 비롯…
수도원서 대량 생산하면서 진화
효모 연구는 기초·응용 융합 덕분…
유전자 편집 기술로 발전 가속화
루뱅대 연구진은 전 세계에서 와인·사케·맥주 등 주류에서부터 빵, 심지어 바이오 연료 제조에 쓰이는 효모까지 150여 종을 모았다. 이들의 유전자를 일일이 해독한 다음, 돌연변이가 일어난 정도를 비교해 역으로 기원을 찾았다.
같은 생물이라면 DNA의 돌연변이는 시간에 따라 동일한 비율로 일어난다. 분석 결과 오늘날의 산업용 효모는 16세기부터 야생종과 구분돼 진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맥주와 와인, 빵용 효모도 그때부터 서로 다르게 진화했다. 이는 역사와도 맞는다. 이 시기부터 유럽에서 맥주가 가정을 벗어나 술집과 수도원에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독일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가 물과 홉, 보리로만 맥주를 만들라는 '맥주 순수 칙령(Reinheitsgebot)'을 내린 것도 1516년의 일이다.
베르스티펜 교수는 "중세의 양조장 장인들은 효모의 정체를 모르면서도 오늘날 과학자가 하는 유전자 개량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종갓집에 가면 오래전 담근 간장을 씨간장 삼아 그 위에 새 간장을 채운다. 같은 방법으로 중세 양조장에서도 맥주를 새로 빚을 때 직전 맥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추가했다. 중세 장인들은 더 좋은 맛을 찾아 다른 양조장의 찌꺼기도 썼다. 때론 훔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효모균끼리 교배가 일어나 더 좋은 품종이 탄생했다.
루뱅대 연구진은 효모균 교배를 통해 사람들이 싫어하는 향기를 내는 유전자가 점점 사라졌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것이 연기 냄새를 내는 '4-비닐 과이어콜(4-VG)' 유전자이다. 오늘날 이 향기는 헤페바이젠 맥주 발효균에서만 나온다. 반대로 알코올에 대한 내성(耐性)은 더욱 강화됐다. 곰팡이에 강한 유전자는 와인에서 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 효모균은 사람을 따라 전 세계로 이동했다. 이번 연구에서 독일과 벨기에 맥주의 효모는 한 뿌리에서 나왔고, 미국과 영국 맥주의 효모는 한집안이었다. 영국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하면서 맥주 효모도 따라간 것이다.
맥주 효모 연구가 루뱅대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벨기에는 맥주 강국이다. 맥주 종류만 450여 가지나 된다. 호가든·코로나·버드와이저 등으로 세계 맥주 시장의 3분의 1을 장악하고 있는 안호이저부시 인베브도 벨기에 회사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연구의 때가 따로 있었다.
베르스티펜 교수가 대학원에 다니던 1990년대 후반 루뱅대에서는 맥주 회사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만 하고 있었지, 효모 자체에 대한 기초연구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화이트헤드 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맥주가 관심 밖이었다. 베르스티펜 교수는 2009년 다시 루뱅대로 복귀하고서야 비로소 두 연구를 하나로 합쳤다. 그는 향후 효모에 최신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해 맥주 맛을 높이는 연구를 할 계획이다. 머지않아 맥주병 라벨에 어떤 유전자가 효모에 추가됐는지 적힐지도 모를 일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K푸드를 이끄는 맛의 과학
한국 맥주가 北의 대동강 맥주보다 못한 이유
오진영신세계푸드 R&D센터 브루마스터 입력 : 2015.10.19 11:03
몇 해 전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한 외신기자의 기사가 국내 맥주시장의 변화를 예고하는 큰 울림을 일으켰다. 맥주 양조기술자로서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봤다. 정말 그에게는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에 비할 정도로 맛이 없었던 걸까? 나는 그 의미를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 맥주 시장의 다양성 결여를 지적한 것으로 이해했다.
사실 한국 맥주시장은 라거맥주(Lager Beer)가 전체 시장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획일화 되어 있다. 전세계 맥주 시장에서 라거(Lager) 맥주와 에일(Ale) 맥주의 점유율 비중이 각각 70%와 30%인 점과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의 맥주시장이 세계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신세계푸드 게스트로펍 데블스도어에서 브루마스터가 에일맥주를 양조하고 있다. /신세계푸드 제공
가장 큰 이유는 한국 맥주시장의 기형적인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맥주를 제조하기 시작한 1930년대부터 거의 80여년 동안 2~3개의 대기업이 전체 맥주시장의 95% 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국내 맥주의 99% 이상을 이들 대기업에서 생산할 정도로 독과점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 맥주는 브랜드만 다를 뿐 맥주의 맛과 품질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대동소이한 것이 현실이다. 맥주의 맛과 품질 향상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팔릴 수 밖에 없는 시장구도가 고착화 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또 한국은 맥주 고유의 맛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보다는 소주와 맥주, 양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독특한 음주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맑고 깨끗하고 시원한 즉, 청량감이 특징인 라거 맥주가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었기도 하다.
결국 그 외신기자는 한국에서는 소비자가 다양한 맥주를 경험해볼 수 있는 선택권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신세계푸드 제공
외국만 하더라도 지역 또는 중소 규모 맥주기업들이 다양한 맥주를 개발하고 대기업 브랜드들과 경쟁하며 함께 성장 발전하는 모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3000여개, 독일 1300여개, 일본 240여개에 달하는 소규모 맥주 제조기업들이 성업 중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맥주 제조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가 70여개 수준이다. 독과점하고 있는 대기업을 제외하고 중소 맥주제조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0.5%가 채 되지 않는다. 수입 맥주의 시장 점유율 4%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다양한 맥주를 개발할 수 있는 자생적 토대 마련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다면 정말 대동강 맥주보다 맛있는 국산 맥주는 만들 수는 없을까?
몇 개 대기업의 독과점 구조를 깨고 소비자가 다양한 맥주를 선택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드는 가장 쉽고 빠른 해결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결국, 다른 대기업들이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다. 최근 주세법 개정을 통해서 중소기업과 소규모 맥주제조업체를 지원하여 경쟁력을 높이자는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는 입장이다.
다만 맥주 양조기술자로서 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제안을 해본다. 대기업이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가장 큰 이유는 규제와 세금 등 맥주시장의 진입장벽이 높은 상황에서 중소 규모의 업체들이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맥주 제조업은 규모가 클수록 생산단가가 낮아지는 장치산업의 특성이 있다. 현재 맥주시장의 주류인 라거맥주의 경우 규모의 경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현재 독과점 업체들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추고 대량 생산을 통해 생산비를 낮추면서 높은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중소맥주제조업체가 좋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규모의 경제 하에서 생산 단가가 대기업 보다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게임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각에서 최근 롯데 주류가 맥주시장에 진출해 기존 독과점 대기업과의 새로운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선택권이 넓어지고
단기간에 국산 맥주의 맛과 품질의 향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
또, 신세계푸드가 레스토랑과 에일맥주(Ale)를 접목시켜 새롭게 론칭한 게스트로펍(Gastro Pub) 데블스도어(Devil’s Door)도 주목을 받고 있다.
신세계푸드 게스트로펍 데블스도어에서 고객들이 매장에서 직접 생산한 다양한 에일맥주를 즐기고 있다. /신세계푸드 제공
거맥주로 획일화 되어있는 국내 주류시장에서 소외되었던 에일맥주를 재조명하게 된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판로 개척이 어려운 중소 지역맥주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또한, 기형적인 독과점 구조를 타파하고 자본과 기술력으로 국산 맥주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소규모 맥주제조업체가 중소기업으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와 세제를 완화하는 제도적 지원정책이 함께 병행되면서 외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특화된 맛과 품질 경쟁력을 갖춘 중소 지역 맥주 브랜드와 대기업의 브랜드 맥주가 함께 성장 발전하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수입맥주의 시장점유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씁쓸한 현실 속에서 맛과 품질이 뛰어난 다양한 국산 맥주를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만물상]맥주의 맛
선우정 논설위원 입력 : 2016.09.01 07:52
몇 년 전 일본 맥주회사 간부를 만나 일본 맥주가 맛있는 이유를 물었다. 몇 가지를 말했는데 하나가 뜻밖이었다. 일본 맥주 역시 옛날엔 맛없기로 유명했다가 100년 전 큰 기회를 잡았다고 했다. 1차대전 패전국 독일의 중국 조차지 칭다오(靑島)를 일본이 점령했다. 독일은 그곳에 큰 맥주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공장을 일본이 접수해 선진 맥주 공법을 홀랑 베꼈다고 했다.
▶ 이 공장을 차지한 회사가 다이닛폰(大日本) 맥주였다. 지금 아사히와 삿포로 맥주의 전신이다.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하면서 이 공장은 중국에 넘어갔고 거기서 생산한 것이 양꼬치와 궁합이 맞는다는 칭다오 맥주다.
다이닛폰 맥주는 일본이 강점하던 조선에도 공장을 만들었다. 이 공장이 해방 후 한국인에게 넘어가 지금의 하이트맥주가 됐다. 오비맥주 역시 일본 기린 맥주의 조선 공장에서 출발했다. 둘 다 칭다오 점령 후 세웠기에 독일 공법이 적용됐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중국 맥주보다 훨씬 박한 평가를 받고 있으니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
▶ 몇 년 전 어느 영국 기자가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고 꼬집었다. 대동강 맥주는 16년 전 생겼다. 처조카에게 삐딱하게 굴었다가 사형당한 장성택이 김정일 지시를 받고 만들었다고 한다. 짧은 역사에도 좋은 맥주를 빚는 비결이 뭘까. 대동강 물맛도 있지만 영국 양조장을 통째로 들여온 덕분이다. '어셔'라는 회사의 양조장 문짝과 바닥 타일, 변기 뚜껑까지 싹 쓸어 왔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
▶ 맥주 맛은 단순한 듯하지만 아주 미묘하다. 축적된 노하우와 전통이 필요하다. 뜻밖의 나라가 만드는 맛있는 맥주는 칭다오처럼 대개 식민지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자부하는 빈탕 맥주도 지배국이던 네덜란드가 하이네켄 맥주의 공법을 들여다 생산했다. 물론 전통만으론 안 된다. 맥주 시장은 사람들 미감(味感)이 조금만 바뀌어도 일거에 뒤집히기 때문에 끝없는 혁신이 필요하다. 일본 맥주의 오늘은 30년 넘게 업체들이 맛을 놓고 경쟁한 '드라이 전쟁'의 산물이다.
▶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 맥주가 뒤떨어진 이유를 정리해 발표했다. 시설·유통망 규제, 종가제 세금, 가격 결정 구조를 꼽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빠졌다. 혁신 노력이다. 엄혹한 독재 왕국의 대동강 맥주, 술에 완고한 이슬람 국가의 빈탕 맥주가 설마 적은 규제와 많은 자유 덕분에 맛있을까. 한국 맥주 업계는 폭탄주용 맥주에 만족하다 이 지경이 됐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새로운 맛 개발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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