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팝의 전설 엘튼 존
영국의 록·팝 싱어송라이터이자 피아니스트 영화·뮤지컬 음악가 엘튼 존
40년간 3,000회 이상 공연기록
출시 앨범 182장, 2억 5천만장의 앨범판매!
엄청난 사치가이면서 적극적인 기부자
살아있는 마지막 팝의 전설 엘튼 존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없는 아티스트 엘튼 존 내한공연
11월 27일(화) 올림픽 체조경기장,
11월 29일(목) 부산 벡스코
'팝의 전설' 엘튼 존(Elton John)이 한국을 찾는다.
엘튼 존은 오는 11월27일과 29일 서울과 부산에서 내한공연을 연다. 2004년 잠실 주경기장에서 펼쳐진 첫 내한공연 이후 8년 만의 콘서트다.
싱어송라이터이자 피아니스트인 엘튼 존은 지난 40여 년간 세대와 국경을 넘어 음악으로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뮤지션. 음악과 무대예술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에는 음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폴라음악상도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이번 내한은 대표적인 히트곡이자 별명이기도 한 'Rocket Man' 발매 40주년을 기념하는 '40th Anniversary of the Rocket Man Tour'의 일환으로 펼쳐진다.
50여 명의 제작진이 입국하며 한층 더 크고 정교한 규모로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미주 공연 후 캐나다, 영국 공연을 마치고 11월부터 본격적으로 '40th Anniversary of the Rocket Man Tour'에 돌입하는 엘튼 존은 호주, 중국, 홍콩을 거쳐 서울과 부산을 찾을 계획이다.
내가 이노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저 멋진 모습을 봐라 ~~
오호 ~ 엘튼 존 정말 멋지다 ~ㅎ
직접가서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시여 안녕 (Goodbye Yellow Brick Road)
언제 시골의 농장으로 갈까. 언제 농장에 정착할까.
난 진작 농장에 머물러야 했었어. 진작 어른들의 말을 들어야 했어.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도시는 날 영원히 잡을 수는 없지.
난 사치한 도시인의 장난감이 아니야.
이 소년은 블루스를 노래하기에는 너무 어려.
도시여 잘 있어요. 사회적 개들이 짖어대는 곳. 당신들은 나를 다락방에 가둘 수는 없지.
난 경작지로 돌아가겠어. 숲에는 늙은 부엉이가 두꺼비를 잡는 곳으로 말야.
난 이제 결심했어. 이 도시를 떠나 살겠다고.
도시인이여. 내가 떠나면 당신들이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마도 걷잡을 수 없는 방황의 연속이겠지.
보드카나 코냑같은 술이 필요할 거야. 그리고 나같은 다른 사람을 찾겠지.
한푼 없는 사람이 당신과 같이 그 생활을 위해 노래하겠지.
엘튼 존 [ Sir Elton Hercules John ]
영국의 가수·작곡가·피아노 연주자. 1961년 밴드 블루솔로지를 결성하여 활동했고 이후 솔로로서 《엘턴 존》, 《메이드 인 잉글랜드》 등의 히트 앨범을 발표했다.
199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공연자 부문에 올랐으며, 1998년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출생 1947.3.25 ~
본명 레지널드 케니스 드와이트
국적 영국
출생지 영국 미들섹스주 피너
주요작품 《유어 송》(1970)
엘튼 존은 미들섹스주(州) 피너(Pinner)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레지널드 케니스 드와이트(Reginald Kenneth Dwight)이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였고 11세 때 장학금을 받고 왕립음악원에 들어갔다. 이후 리듬앤드블루스에 심취하여 팝음악을 하게 되었으며 1961년 밴드 블루솔로지(Bluesology)를 결성하여 1968년까지 3장의 싱글을 발표하였다.
1967년 한 레코드 회사의 오디션장에서 버니 토핀(Bernie Taupin:1950∼)을 만났으며 버니는 이후 그의 노래 대부분의 가사를 만들었다.
1968년 블루솔로지를 나와 이름을 엘턴 존이라 바꾸고 솔로로 몇장의 싱글을 낸 뒤 데뷔 앨범 《엠티 스카이 Empty Sky》(1969)를 발표하였다.
1970년 발표한 두번째 앨범 《엘튼 존 Elton John》이 성공하였으며 그 가운데 《유어 송 Your Song》은 미국에서 6위에 오르는 등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어서 《텀블위드 커넥션 Tumbleweed Connection》(1971), 《홍키 샤토 Honkey Chateau》(1972), 《굿바이 옐로우 브릭 로드 Goodbye Yellow Brick Road》(1973) 등의 앨범을 잇달아 냈으며 1976년의 《블루 무브스 Blue Moves》까지 데뷔 8년만에 11장의 앨범을 발표하여 7장의 앨범과 6곡의 싱글이 1위에 오르는 등 황금시기를 구가하였다.
1976년 은퇴를 선언한 뒤 2년간의 충전기를 거쳐 《어 싱글 맨 A Single Man》(1979), 《투 로 포 제로 Too Low For Zero》(1983), 《슬리핑 위드 더 패스트 Sleeping with the Past》(1989) 등의 앨범을 냈으나 1990년대 이전까지는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으며 약물과 알코올로 인해 입원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1990년대 들어 《더 원 The one》(1992)이 비평가의 찬사와 함께 상업적으로 성공하여 제2의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으며 1994년에는 디즈니의 만화 영화 《라이언 킹 The Lion King》의 주제가를 작곡하여 앨범이 대히트를 기록하였다. 그 뒤에도 걸작으로 꼽히는 《메이드 인 잉글랜드 Made In England》(1995)를 냈으며 1997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Spencer Diana)의 장례식에서 부른 《캔들 인 더 윈드 Candle in the Wind》는 전세계에서 3,300만 장이나 팔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199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올랐으며, 1998년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참조항목 : 로큰롤, 록뮤직, 로큰롤 명예의 전당 [출처] 두산백과
관련기사 (헤럴드 경제)
존 레넌도 격찬…살아있는 `팝의 전설`
엘튼 존 17일 첫 내한공연
`Your Song` 등 주옥같은 히트곡도 15분만에 완성
가을밤 수놓을 마법의 선율…국내팬 가슴설레
비틀스가 낳은 위대한 영웅 존 레넌은 공연을 위해 미국 LA공항에 내린 엘튼 존(57)을 향해 무릎을 꿇고 "당신을 환영합니다"라며 극빈 대접을 했다. 그러자 엘튼 존이 답변한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일어나세요. 당신은 존 레넌입니다."
70년대 세계 대중음악계는 이미 새로운 영웅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비틀스와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변되던 록 음악의 힘은 서서히 팝 음악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 위세의 중심엔 물론 엘튼 존이 있었다. 존 레넌은 "70년대부터 엘튼 존의 시대다"라며 당당하게 외쳤다.
엘튼 존은 팝의 기틀을 마련하고 그 역사를 완성해가는 현재진행형의 팝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팝의 역사`인 셈이다.
유니버설뮤직의 조혜림 과장은 "지금까지 나온 앨범 판매량이나 차트 순위를 종합해 보면 엘튼 존은 비틀스와 겨룰 만한 유일한 팝아티스트로 여겨진다"면서 "비틀스보다 더 대중적인 엘튼 존은 70년대부터 지금까지 팝 음악의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할 만큼 전설적인 존재"라고 치켜세웠다.
70년대 개막과 함께 불꽃처럼 치솟아 오른 엘튼 존의 인기는 뭐니뭐니 해도 그의 수려한 작곡력에 있다. 대중의 귀를 비켜가지 않는 탁월한 작곡력은 수많은 불멸의 히트곡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Your Song` `Daniel` `Goodbye Yellow Brick Road`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등 주옥같은 곡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갔다. 엘튼 존은 특히 한 곡 완성하는 데 15분 이상 소요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명곡이 얼마나 많았으면 나라마다 엘튼 존의 레퍼토리가 따로 존재할 정도였다"면서 "그는 피아노의 도사일 뿐 아니라 장단조를 완벽하게 이해하면서 발라드와 록의 리듬을 동시에 구현해낸 뮤지션"이라고 평가했다.
음(音)에 대한 창작력과 함께 그는 요란한 의상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공연에선 언제나 첨단 유행의 안경과 굽높은 구두, 중성적 이미지가 강한 의상 등으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제임스 테일러나 잭슨 브라운 등 당시 포크가수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엘튼 존은 "내가 그런 의상을 즐겨 입는 이유는 우습게 보이기 위해서"라면서 "하지만 어릴 때 엄격한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내 의상이 결코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엘튼 존의 인기는 70년대 불어닥친 개인주의적 성향과 맞물리며 급속도로 치솟았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반항의 정서가 지배하던 60년대 히피와 사이키델릭 운동이 무너지면서 개성적인 예술을 찾는 세대들이 수면 위로 점차 부상하기 시작했다. 70년대는 바로 `전체(Social Decade)`보다 `나(My Decade)`를 위주로 풍요로운 소비를 맛보던 세대들을 위한 시대였다. 음악적으로는 시끄러운 록보단 아름다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피아노 선율에 끌리게 됐고, 인권이나 반전을 노래한 가사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노래말을 더 선호하게 됐다.
몇몇 평론가들은 엘튼 존의 노래에 대해 "사회성이 없다"고 질책을 퍼부었지만, 엘튼 존은 "정치적 음악은 영향력이 없다. 세상을 바꾸려는 60년대 가수들을 보라. 삶은 여전히 똑같지 않은가"라고 반박했다.
엘튼 존은 위대한 팝 가수의 명성만큼 많은 돈을 벌어들였지만 번 만큼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엄청난 사치가이면서 적극적인 기부자이기도 했다.
오는 11월 새 정규 앨범 발매를 앞두고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17일 오후 7시30분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 엘튼 존. 그의 무대가 기대되는 건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선율의 미학과 팬들을 즐겁게 하는 엔터테이너의 기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엘튼 존의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79년 빌보드 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키 작고 뚱뚱한 그는 그 앞에 나타난 모든 것을 록 음악 속에 동화시켜 자신의 음악세계로 농축시켰다. 우리는 다른 곡들이 음악적인가, 아닌가를 알기 위해 엘튼 존이 만든 음악들과 비교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 김고금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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