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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바람의노래] 모란동백

by 한국의산천 2012. 4. 20.

봄 바람속에 꽃이 피고 

봄 바람 맞으며 꽃잎이 진다 [ 2012· 4· 20 · 화창한 금요일 · 한국의산천 ]

 

봄에는 꽃이 피네

산에도 꽃이 피네

 

길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러다가 살포시 바람이 불면 마치 눈발이 날리듯 바람을 타고 꽃잎들이 흩어져 내린다. 이 꽃잎들도, 내년 봄이 오기 전까지는 다시는 볼 수 없겠지. 

주말에 한바탕 비가 내리고나면 지나간 빛바랜 추억처럼 그렇게 모두 지고 말것이다. 그렇기에 열흘 내내 붉은 꽃은 없다더니.

花無十日紅 다시한번 선현들의 그 말을 돼새겨 본다.   

 

▲ 내부순환도로를 달리며 구리부근에서 車가 밀려 정차중에 길가 풍경을 스마트폰으로 한장 ⓒ 2012 한국의산천

유비쿼터스 (Ubiqutous :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인하여 DSLR도 똑딱이도 번거롭다. 언제 어디서나 촬영과 동시에 web top service가 가능한 스마트폰. 참 편리하다.

 

▲ 모란꽃 ⓒ 2012 한국의산천

 

또 한번 모란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마세요

또 다시 동백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마세요

 

모란 동백 [원제: 김영랑 조두남 모란동백 / 작사 · 작곡 · 노래 이제하 (리메이크 조영남)]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번 모란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 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 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 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번 동백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또 한번 모란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 또 다시 산수유가 필때까지 저를 잊지마세요 ⓒ 2012 한국의산천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상냥한 동백 아가씨 꿈속에 웃고있네. 요즘 한참 피어나는 산수유, 그리운 산수유 아가씨 나를 오라 손짓하네 

 

매화가 피었다. 1월 중순에 눈 속에서 봉우리가 맺혔고 이제 활짝 피었다. 매화는 잎이 없는 마른 가지로 꽃을 피운다. 나무가 몸속의 꽃을 밖으로 밀어내서. 꽃은 품어져 나오듯이 피어난다. 매화는 피어서 군집을 이룬다. 꽃핀 매화숲은 구름처럼 보인다. 이 꽃구름은 그 경계선이 흔들리는 봄의 대기속에서 풀어져 있다. 그래서 매화의 구름은 혼곤하고 몽롱하다. 이것은 신기루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배꽃과 복사꽃과 벚꽃이 다 이와 같다.

 

▲ 남자한테 참 좋은데...남자한테 정말 좋은데...어떻게 설명할 방뻡이 엄눼~ ㅎ ⓒ 2012 한국의산천

 

선암사 뒷산에는 산수유가 피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람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 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보인다.

 

▲ 이천 산수유마을에서 ⓒ 2012한국의산천

 

산수유가 사라지면 목련이핀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떄가 목련의 절정이다.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꽃이 질떄,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목련꽃은 냉큼 죽지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목련은 살아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건 것이다.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꽃은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봄빛 부서지는 먼 바다를 쳐다본다. 바닷가에 핀 매화 꽃잎은 바람에 날려서 눈처럼 바다로 떨어져내린다.

매화꽃잎 떨어지는 봄바다에는,나고 또 죽는 시간의 가루들이 수억만 개의 물비늘로 반짝이며 명멸을 거듭했다. 사람의 생명 속을 흐르는 시간의 풍경도 저러할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봄 바다 위의 그 순결한 시간의 빛들은 사람의 손가락 사이를 다 빠져 나가서 사람이 그것을 움켜쥘 수 없을 듯 싶어고, 그 손댈수 없는 시간의 바다위에 꽃잎은막무가내로 쏟아져내렸다.

 

봄은 숨어 있던 운명의 모습들을 가차없이 드러내보이고, 거기에 마음이 부대끼는 사람들은 봄빛 속에서 몸이 파리하게 마른다. 봄에 몸이 마르는 슬픔이 춘수다.

 

▲ 초파일 전후로 피어나는 개심사 겹벚꽃 ⓒ 2012 한국의산천 

 

13세기 고려 선종 불교의 6세 조사 충지는 지눌 문중의 대선사였다. 송광사에 오래 머무르면서 왕이 불러도 칭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충지는 초봄에 입적했다. 충지는 숨을 거둘 때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평탄하구나. 너희들은 잘 있으라"라고 말했다. 대지팡이 하나로 삶을 마친 이 고승도 때때로 봄날의 적막을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산사의 어느 봄날에 충지는 시 한 줄을 썼다.

 

아침 내내 오는이 없어

귀촉도는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이것은 꺠달은 자의 오도송이 아니라, 사람사는 마을의 봄을 그리워하는 노래다. 이 그리움은 설명적 언어의 탈을 쓰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그리움의 길은 출구가 없다. 봄의 새들은 저마다 제 이름을 부르며 울고,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울음은 끝끝내 위로받지 못한다. 봄에 지는 모든 꽃들도 다 제 이름을 부르며 죽는 모양이다.

 

설요는 한국 한문학사의 첫장에 나온다. 7세기 신라의 젊은 여승이다. 그 여자의 몸의 아름다움과 시 한줄만이 후세에 전해진다. 그 시 한줄은 봄마다 새롭다. 이 젊은 여승의 몸은 꽃피는 봄 산의 관능을 건딜수 없었다. 그 여자는 시 한 줄을 써놓고 절을 떠나 속세로 내려왔다.

 

꽃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글 발췌 : '김훈 자전거 여행'에서]

 

▲ 남산 기슭에 있는 소월 詩碑 앞에서 ⓒ 2012 한국의산천

 

님과 벗
                 - 김소월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향기(香氣)로운 때를
고초(苦草)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 퇴근길에 만난 아름다운 석양과 노을을 폰으로 한컷 ⓒ 2012 한국의산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