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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강화도 고려산 진달래 축제

by 한국의산천 2012. 4. 4.

강화도 고려산 진달래 축제

개최 날짜 : 2012년 4월 20일(금) ~ 5월 4일(토) 15일간

 

문화행사 : 4월 21일, 22일, 28일, 29일
개최장소 : 강화군 고인돌광장 및 고려산 일원 . 강화도 고려산 (백련사 방향) 진달래 능선
강화군 문화예술과 (032-930-3623)

 

중부권에서 이처럼 넓은 진달래 군락지가 어디 있을까? 특히 서울 또는 인천에서는 1시간이면 다가 갈수있는 곳이다.

[챌린지팀은 4월 22일(일요일) 강화대교 ~ 고인돌 광장 주차장 ~ 고려산~ 낙조대 ~ 미꾸지고개 ~ 도로이용 원점회기 라이딩 예정입니다 ]

 

강화 고려산은 해발 436m로 치마대전설과 오련지·오련사의 전설이 있는 곳으로 정상에서 능선 북사면을 따라 낙조봉까지 4km 약 20만평에 분홍빛 진달래 꽃밭이 아름다운 수를 놓고 있다.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볼거리와 편의시설을 마련, 수도권 제일의 봄 축제입니다.

 

* 행사기간중 주말에는 교통이 혼잡하여 진입이 어려우니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시기 바라며 자가용 운전시 교통안내 요원의 지시에 따라 인근 임시 주차장에 주차를 하시고 도보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고려산은 진달래의 명산이라는 화왕산,비음산,영취산,무학산,비슬산 등 어느산 못지않게 넓은 면적과 조밀한 밀도를 가진 진달래밭이다. 

진달래 능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하점면 고인돌이 있는 삼거리에서 백련사를 통해 오르는 코스가 많이 이용됩니다.

 

※ 아래의 진달래 사진은 제가 2007년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  고려산 진달래 ⓒ 2012 한국의산천

 

▲ 강화도의 오밀조밀한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고려산 낙조대. 해넘이 명소로 적석사 절 바로 뒤편에 있다 - chosun.com-  ⓒ 2012 한국의산천   

 

2012 제 5회 고려산 진달래 축제

발길 닿는 곳마다 진분홍빛 꽃의 향연을 느낄 수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 강화도 대표적인 고려산 진달래 축제가 펼쳐진다.
                                                 
올해로 5 회째를 맞이하는 '2012 고려산 진달래 축제'가 진달래 개화 예정 시기에 맞춰 4월 20~5월4일까지 15일간 열린다 (문화행사 주말4일간 운영)

해마다 고려산 일원에서 펼쳐지는 행사는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해 지역 경제를 되살리고 국내 최고의 봄꽃 축제장으로 만들어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도록 마련돼 즐거움은 배가된다.

특히 고려산 정상과 백련사 등산로에는 방문객들에게 삶의 여유와 사색, 봄 정취를 가득 느낄 수 있도록 진달래 포토존과 강화나들길 사진을 전시해 아름다운 강화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어 좋다.

 

  영변에 약산이 있다면 수도권엔 고려산이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연인도 차마 즈려 밟고 갈 수 없을 거라 믿었던 연분홍 꽃 진달래. 김소월이 몰랐던 진달래 천국이 강화도 고려산에 있다. 산 이름은 고려시대 고려(高麗)와 한자가 같다. 몽골 침입으로 고려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시기에 고려산이란 이름을 얻었다.

 
산에 담긴 역사적 의미에 비해 산세는 얕다. 흔한 시골 뒷산 분위기다. 군시설물이 곳곳에 있고 정상까지 콘크리트 임도(林道)가 나 있어 자연미가 빼어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진달래만큼은 수도권에 견줄 산이 없다. 4월 중순이면 산불이 난 것처럼 정상 일대가 벌겋게 달아올라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강화군에서도 2003년부터 '고려산 진달래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평소보다 늦은 20일부터 축제가 열린다. 축제 관계자는 "20일쯤 본격적으로 꽃이 피기 시작해 28일쯤 절정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백련사로 간다. 백련사는 진달래 군락지로 이어진 가장 가까운 산행 기점이다. 해발 고도 30m인 산 아래에서 258m지점 언저리에 있는 백련사까지 차로 오른다.

 

이제부터 산행이다. 물기가 적어 발에 엉기지 않는 말랑말랑한 진흙을 밟고 걷는다. 디딜 때 촉감이 부드러워 오르막이지만 힘들지 않다. 촉감은 부드럽지만 시선은 휑하다. 4월 중순이지만 숲은 앙상하다. 흑백사진 속 한 부분만 컬러를 합성한 것처럼 생강나무꽃이 겨울 풍경에 홀로 반기를 들고 있다.

 

 어렵지 않은 오르막에 몸이 익숙해진다 싶을 즈음 콘크리트 임도다. 임도 따라 오르는 길, 곳곳에 데크 전망대가 있어 눈이 시원하다. 섬산답게 산과 바다, 논밭과 마을을 균형 있게 품은 그림이 조화롭다. 여느 섬산과 달리 시선이 계속 산 안으로 향하는 건 진달래 때문이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좋은 전망대가 연이어 나타나지만 진달래는 여전히 침묵이다. "예년 같았으면 연분홍색으로 가득 찼을 텐데" 하는 소리가 등산객들 사이에서 들린다. 정상은 미군부대가 있어 갈 수 없다. 부대 정문 앞의 너른 터가 등산객들의 정상이다. 산줄기를 따라 길게 이어진 데크가 발걸음을 유혹한다. 데크를 따라 진달래 동산 한가운데로 향한다.

 

주능선에서 툭 튀어나온 지능선 줄기가 진달래 군락지의 중심이다. 데크를 따라가면 전망대가 있다. 황사 때문인지 필터를 씌운 듯 흐릿한 하늘은 바다를 회색으로 만들어 놓았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 청련사 쪽으로 길을 잡는다. 평범한 소나무 숲길이 더없이 편안한 솔 향기와 발디딤 푹신한 촉감으로 마음을 어루만진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를 때, 길이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올 뿐 아니라 기어의 톱니까지도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내 몸이 나의 기어인 것이다.

오르막에서, 땀에 젖은 등판과 터질 듯한 심장과 허파는 바퀴와 길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땅에 들러붙어서, 그것들은 함께 가거나, 함께 쓰러진다. 

 

▲  고려산 진달래 능선 ⓒ 2012 한국의산천    

고려산은 인천 강화읍과 내가면, 하점면, 송해면 등 4개 읍·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436m로 강화 최고의 낙조 포인트로도 꼽힌다. 특히 한강, 임진강, 예성강, 송악산, 영종 대교, 63빌딩 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사통팔달 전망좋은 곳이다. 

 

고려산은 고구려 장수왕 4년, 인도의 천축 조사가 이곳에서 가람 터를 찾던 중 정상 연못에 피어있는 오색 연꽃을 날려 하얀 연꽃이 떨어진 곳에 백련사를, 노란 연꽃이 떨어진 곳에 황련사를, 청색은 청련사, 적색은 적석사, 흑색이 떨어진 곳에는 흑련사를 지었으나, 현재는 백련사, 청련사, 적석사가 1600년의 역사를 지켜오고 있다.

 

고려산 진달래 축제는 도시의 복잡함과 스트레스로 치진 몸과 마음을 다잡고 눈을 즐겁게 하는 축제로써 진달래 군락지로 오르기 위해서는 백련사, 청련사, 적석사 방면으로 등반할 수 있으며 주요 등산로 및 고인돌 광장에서는 강화도의 해풍과 비옥한 옥토를 머금고 자란 강화 농수특산물과 시골의 투박하지만 정성과 소박한 맛을 담은 친환경 먹을거리를 소규모 장터에서 맛볼 수 있어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다.

 

▲ 강화도는 볼것이 너무 많아서 그냥 지나치기 쉽다 ⓒ 2012 한국의산천  

 

강화도는 노천박물관이자 우리 역사의 축소판이다. 강화도는 섬 전체가 '지붕없는 역사박물관'으로 불릴 정도로 문화유적이 산재한 곳이다.

몽골 침입때까지 40년 가까이 고려의 수도였던 이곳은 경주 못지 않은 문화 유적이 많은 곳이다. 읍내 송악산 기슭에 자리잡은 고려궁지는 몽골의 침입으로 천도한 고려 고종과 원종이 도합 39년간이나 숨죽인 채 지냈던 곳이다 

 

또한 덮개바위 무게만 해도 50톤에 이르는 강화지석묘(사적 제137호)를 비롯해 섬 곳곳에 있는 지석묘는 선사시대의 유물이다. 전 세계에 약 6만여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놀랍게도 그중 절반이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있다.

 

섬 내 최고봉 마니산(摩尼山·469.4m)은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를 지내기 위해 참성단을 세운 곳이고, 전등사(傳燈寺)는 단군이 세 아들(三郞)들을 시켜 쌓았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하는 토성 위에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세워진 고찰이다.

 

해안에 구축되어 있는 5진(鎭) 7보(堡) 53돈대(墩臺)는 조선 때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요새이자 망대였다. 그렇기에 강화도는 우리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적지와 산과 벌판, 산골마을과 갯마을, 그리고 갯벌과 철새 서식지를 잇는 역사 문화 자연 도보여행길이다.

  

강화

강화읍은 고려전기에 강화현에 속하였고 고려 1232년(고종 19) 몽골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천도 한후 강도의 소재지였으며 1377년(우왕 3) 강화현이 강화부로 승격된 이후 부치(府治)가 자리하고 있어 조선시대이래 부내면(府內面)이라 칭하다가 1938년 강화군의 이름을 따라 강화면으로 개칭하였고 1973년 7월 1일 강화읍으로 승격되었다.
강화는 강과 연관된 지명으로 강(한강, 임진, 예성)을 끼고 있는 아랫고을이라 강하(江下)라 부르다가 강아래 아름다운 고을이란 뜻으로 강화(江華)로 개명한 듯 하다

 

고려산 가는 길

 

▲ 고려산을 배경으로 서있는 하점면의 고인돌(사적 137호) ⓒ 2010 한국의산천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무덤으로, 한자로는 지석묘(支石墓)라 한다. 지석, 즉 굄돌 이 덮개돌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강화도에는 이러한 고인돌이 무려 120기가 분포하고 있다. 이 중 강화도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사적 제 137호)은 덮개돌 긴축의 길이가 7.10m로 무게는 무려 50톤에 달한다.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 고인돌 ⓒ 2012 한국의산천  

고려산 진달래 능선 탐방객이 많아 이곳 고인돌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백련사를 통해 정상까지 걸어가야 한다. (주차비:무료)

평일에는 백련사까지 승용차 운행 가능합니다. 백련사 대웅전 축대 왼편의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쉽게 올라 갈 수 있다.

 

인천직할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로서 사적 제137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상에서의 높이 2.6m,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7.1m, 너비 5.5m이며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이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장정수는 최소한 500명.. 그렇다면 당시 장정 한 사람이 거느린 가족을 5명으로 잡아도 이 무덤의 주인은 2,500명 이상을 거느린 족장 쯤으로 추정해 볼수 있다.

 

축조방법은 뚜껑돌은 자연암석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큰 바위에서 일부를 떼낸 것으로 실지로 그러한 채석장이 서북지방에서 여러 군데 발견되고 있다. 돌을 떼내는 방법으로 바위틈이나 인공적인 구멍에 나무쐐기를 박아서 물로 불리어 떼내는 방법이 일반적으로 이용되었으며, 운반은 지렛대와 밧줄을 이용하거나 수로를 이용했을 것이다. 뚜껑돌을 들어올릴 때에는 받침돌을 세우고 그것과 같은 높이의 봉토를 쌓아 경사면을 이용, 끌어 올린다음 봉토를 제거하는 방법이 이용되었것으로 추정한다.

 

▲  고려산 진달래 능선의 탐방객 ⓒ 2012 한국의산천  
 
고려산은 비록 큰산은 아니지만 정상 부근의 진달래 군락만큼은 수준급이다. 4월중순, 20여 만평 산능선과 비탈에 연분홍 물감을 풀어 놓기라도 한듯 천지가 꽃바다를 이룬다. 

 

봄철에는 진달래 군락지가 있어 장관을 이루는 산이며 또한 서쪽으로 이어져 나간 낙조봉과 그 서릉상의 진달래빛은 상봉일대의 그것에 못지않다. 고려산 진달래꽃 등산의 백미는 고려산 정상에서 능선 북사면을 따라 펼쳐진 진달래 군락지와  또한 낙조봉까지 4킬로미터 능선 20여만평을 진달래 꽃밭이 수놓아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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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차향따라'란 이름의 전통찻집이 있다. 이곳에서는 고려산의 맑은 물과 전통차의 만남, 그 차향이 가람에 그윽하다.
또한 고려산 서쪽 자락엔 적석사(적련사라고도 불림)가 있는데 이곳은 적련(赤蓮)이 떨어져 가람을 지은 후 적석사로 바뀌었으며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병자호란 때에는 정명공주가 이곳으로 피란을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 길과 길 사이에는 사람이 있고, 길과 사람 사이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자전거가 있다. ⓒ 2012 한국의산천

자전거를 저어서 나아갈 때 풍경은 흘러와 마음에 스민다. 스미는 풍경은 머무르지 않고 닥치고 스쳐서 불려가는데, 그때 풍경을 받아내는 것이 몸인지 마음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

풍경은 바람과도 같다. 방한복을 벗어 버리고 반바지와 티셔츠로 봄의 산하를 달릴 때 몸은 바람 속으로 넓어지고 마음과 풍경이 만난다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 천 상 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 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 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보물 10호 강화 하점면 5층 석탑을 배경으로 ⓒ 2012 한국의산천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고려시대 석탑
인천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 산193

 

봉은사지 오층석탑으로도 불린다.봉은사는 고려시대 개성에 있던 국가 사찰로 고종 19년 (1232년)에 수도를 강화로 옮길 때 같이 이전되었다.

이 탑은 무너져 있었으나 1960년 수리하여 다시 세운 것이다. 파손된 곳도 많고, 없어진 부재도 많아서 3층 이상의 몸돌과 5층의 지붕돌, 머리장식 부분 등이 모두 사라진 상태이다. 낮은 언덕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절터 로 그 규모를 알 수가 없으며, 가람을 배치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탑은 1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은 1층 몸돌만 두 장의 돌로 짜여있고, 그 이상은 각각 하나의 돌이다. 1층 몸돌의 크기에 비해 2층 몸돌의 크기가 급격히 줄어들어 있다. 지붕돌은 밑면에 1층은 4단, 나머지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추녀 밑은 반듯하다가 네 귀퉁이에서 약간 치켜올려져 있다. 탑이 무너졌을 때 추녀 마루가 깨어져, 치켜오른 정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주며, 각 부분에 두는 장식이 많이 생략되었고, 형식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많은 탑이다. 신라석탑의 양식을 이어받아 변형된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참고]

 

생각처럼 그리움처럼... 길은 실낱 같다 ⓒ 2012 한국의산천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 기진한 삶 속에도 신비는 있다.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자전거 바퀴에 공기를 가득넣고 다시 길을 나선다. 팽팽한 바퀴는 길을 깊이 밀어낸다. 바퀴가 길을 밀면 길이 바퀴를 밀고, 바퀴를 미는 힘이 허벅지에 감긴다. 몸속의 길과 세상의 길이 이어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간다. 길은 멀거나 가깝지 않았고 다만 벋어 있었는데, 기진한 봄속의 오지에서 새 힘은 돋았다.

 

 

진정한 여행                     
              
                    -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詩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수 없을 때
그 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봄빛이 내린다. 산이 열리고 강이 풀려서 물은 수목의 봄내음을 실어내린다. 대지의 향기가 봄바람에 실려온다. 다시, 자전거를 저어서 바람 속으로 나선다.

  봄에는 자전거 바퀴가 흙 속으로 빨려든다. 이제 흙의 알맹이들은 녹고 또 부풀면서 숨을 쉬느라 바쁘다. 부푼 흙은 바퀴를 밀어서 튕겨주지 않고, 바퀴를 흙의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그래서 봄에는 페달을 돌리는 허벅지에 더 많은 힘이 들어간다. 허벅지에 가득 찬 힘이 체인의 마디를 돌리고, 앞선 마디와 뒤따르는 마디가 당기고 끌리면서 바퀴를 굴린다.

 

  몸의 힘은 체인을 따라 흐르고, 기어는 땅의 저항을 나누고 또 합쳐서 허벅지에 전한다. 몸의 힘이 흐르는 체인의 마디에서 봄빛이 빛나고, 몸을 지나온 시간이 밖으로 퍼져서 흙속에 스민다. 다가오는 시간과 사라지는 시간이 체인의 마디에서 만나고 또 헤어지고 바퀴는 구른다. 바퀴를 굴리는 몸의 힘은 절반쯤은 땅 속으로 잠기고 절반쯤이 작전거를 밀어주는데, 허벅지의 힘이 흙 속으로 깊이 스밀 때 자전거를 밀어주는 흙의 힘은 몸속에 가득찬다.

 

 

 봄의 부푼 땅 위로 자전거를 저어갈 때 흙속으로 스미는 몸의 힘과 몸속으로 스미는 흙의 힘 사이에서 나는 쩔쩔맸다 페달을 돌리는 허벅지와 장딴지에 힘이 많이 들어가면 봄은 몸속 깊이 들어 온것이다. 봄에는 근력이 필요하고, 봄은 필요한 만큼의 근력을 가져다준다. 자전거를 멈추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몸을 떠난 힘은 흙속에 녹아서 보이지 않는다. 지나간 힘을 거둘수 없고 닥쳐올 힘은 경험되지 않는데 지쳐서 주저앉은 허벅지에 새 힘은 가득하다. 기진한 힘속에서 새 힘의 싹들이 돋아나오고 . 나는 그 비밀을 누릴 수 있지만 설명할 수 없다.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행동으로 옮긴다면 꿈을 이룰 수 있다.

 

▲ 동력은 풍문처럼 아득히 멀어져서 목마른 바퀴는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데, 가장 완강한 가파름을 가장 연약한 힘으로 쓰다듬어가며 자전거는 굽이굽이 산맥 속을 돌아서 마루턱에 닿는다.

 

 

하늘을 보면 하늘이 마음에 펼쳐지고
꽃을 보면 꽃이 내 안에서 피어난다.
바람을 안는 이 새가 되어 허공을 날고
구름은 품은 이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신다.

 

불타는 고려산

 

▲  고려산 진달래 능선 ⓒ 2012 한국의산천 

고려산(高麗山)은 고리산이라고도 불려지며 고려시대 때 몽고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천도한 후 고려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산이라는 이름은 송도의 고려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 한다.

 

▲  고려산 진달래 능선 ⓒ 2012 한국의산천

 

고려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2.6km 떨어진 낙조봉 정상에 서면 석모도 앞 잔잔한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해넘이를 볼 수 있는데 강화 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고려산 정상에서 이어지는 적석사의 서쪽 상봉은 낙조대를 만들어 서해 수평선이 붉게 물들며 해가 떨어지는 장면은 가히 장관을 이루고 있어 일몰을 찍는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  고려산 진달래 능선 ⓒ 2012 한국의산천 

 

고려산은 고구려 장수왕 4년(416년)에 창건됐다는 천년고찰 백련사와 적석사를 비롯해, 북릉 산자락의 백련사 철아미타불좌상(보물 제994호)등 볼거리가 무진장한 곳으로 강화 6대산 중하나이다. 또한 강화도내의 약 120기에 달하는 고인돌 중 수십기가 고려산 주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고려산 정상은 최전방 휴전선이 내려다보이는 전략 요충지이고, 이 때문에 민간인 출입을 금하고 있다.

고려산 정상에서 이어지는 능선 서남쪽에는 낙조봉 등산 코스를 마련해 놓았다. 등산객들의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낙조봉 코스는 강화읍에서 고비고개를 넘어 고천 4리 고비마을을 기점으로 적석사를 지나 억새군락지를 경유할 때는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풍광을 맛볼 수 있으며 낙조봉에 이르러 미꾸지 고개로 내려서는 종주산행코스다.

 

길처럼

             -  박 목 월


머언 산 구비구비 돌아갔기로
山 구비마다 구비마다

절로 슬픔은 일어...


뵈일 듯 말 듯한 산길

산울림 멀리 울려나가다
산울림 홀로 돌아나가다
어쩐지 어쩐지 울음이 돌고
 
생각처럼 그리움처럼...

길은 실낱 같다

 

 

▲ 고려산 정상에서 혈구산을 바라보며 ⓒ 2012 한국의산천

 

고려산 정상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면 고려산 적석사,낙조봉으로 가는 삼거리가 실오라기처럼 보이고 멀리 석모도가 앉아있다. 마치 지도를 펴고 보는 듯한 그림같은 풍경이다. 이러한 풍경을 산악인 김장호 교수께서는 멋진 詩로 표현 하셨다.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시의 일부분 참고 하였습니다)

 

그 감동의 연원에서 떠나야 한다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네 아름다움을 한폭의 그림으로 그려내어본들
그 그림, 네가 주는 감동만 붙안고는
네 정수리, 그 상상봉으로 헤쳐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五萬分之一地圖 한 장을 펴들고 너를 대하면 거기,
二次元 平面위에 환원되는 點과 線의 記號밭,
無聊한 黑白의 네모판,
기슭에서 바라보던 네 아름다움도 웅장함도 마침내
구름위에서 내다보는 매마른 갯바닥의 금이다.
 
하늘은 어디가고, 햇살이며 빗줄기며
안개, 산새소리, 물소리, 저녁 노을은 모두 어디 갔는가.
바람 한줄기, 낙엽 한 잎, 다람쥐 한 마리, 눈부신 雪景,
自由의 空間도 거기에는 없다.

진실로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나는 이 삭막한 空虛로 되돌아서야 한다.

.

.

 

꿈속에서 깨어나듯 地圖(지도) 한 장을 펼쳐들고 앉으면
목욕에서 돌아오는 누이의 세수 비누에 엉긴
머리카락같은 計曲線(계곡선) 오라기를 따라
그 어깨죽지에 앉은 새침한 點. (김장호 교수의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中에서)

 

 

붉은 진달래에 취하고, 낙조봉에서 바라보는 붉은 석양 노을에 취하고, 막걸릭 한사발에 취하는곳

 

▲  고려산 진달래 능선 ⓒ 2012 한국의산천  

 

진달래 꽃

                       - 김 소 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영변

북한이 옛 소련의 도움을 받아 핵 연구를 시작하던 1960년대 초, 터를 잡았던 것이 바로 영변이다.

최근에 북한 핵시설의 중심지인 영변. '국경(邊)을 편안하게 한다(寧)'는 뜻의 영변(寧邊)은 고구려 때부터 산성이 있어 외적을 방어하던 곳이다. 11세기 초 거란의 공격을, 13세기와 14세기에는 몽골과 홍건적을,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청나라 군대를 막아낸 곳이다. 그 결과 영변읍성의 이름이 '철옹산성'이란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바뀐다. 철옹성이란 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하게 둘러쌓은 성을 뜻한다. 백두산에서 시작한 청북정맥의 중심 지맥이 서쪽으로 뻗어가다가 매화령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런데 이 지맥은 청천강이 3면으로 감싸 막아 세우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춘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고을이 영변이다.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은 이곳 형국을 '철옹' '하늘이 만든 성' '뭇 병사들이 모이는 곳' 등으로 표현했다. 옛 지도들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철옹산성(영변)은 북성, 본성, 신성 그리고 약산성 등 네 개의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약산성은 철옹성 중에서도 철옹성이다. 김소월 시인의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으로 더 유명한 바로 그 약산이다. 철옹산성은 전체적으로 산세가 높고 험한데 그 가운데서도 동쪽 약산은 기암절벽으로 이뤄져 있고, 그 남쪽은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핵 재처리 시설물과 원자로가 위치한 곳은 바로 약산을 등지고 그 아래 펼쳐진 들판에 자리한다. 약산이 주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하 시설물은 당연히 웬만한 폭격에도 끄떡없을 약산 땅 밑이 될 것이다.

 

김소월이 노래한 약산의 진달래가 유명한 것은 이 기암절벽에 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핵폭탄과 진달래꽃이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 신은 인간에게 자전거를 선물했고, 인간은 자전거에게 산길을 선물했다 ⓒ 2012 한국의산천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를 때, 길이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올 뿐 아니라 기어의 톱니까지도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내 몸이 나의 기어인 것이다. 오르막에서, 땀에 젖은 등판과 터질 듯한 심장과 허파는 바퀴와 길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땅에 들러붙어서, 그것들은 함께 가거나, 함께 쓰러진다.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 기진한 삶 속에도 신비는 있다.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 강화도 해안 일주 라이딩때 동막해수욕장에서 ⓒ 2012 한국의산천

그해 초여름은 뜨거웠다. 내리쏟는 했볕 아래서 여름의 산하는 푸르고 강성하였다.

 

 

교통

강화대교 - 강화시내 직진 - 고인돌 가는 길,48번 국도 계속직진 - 강화시내통과 - 송해 파출소 - 엘리제궁 여관 지나서 150m  - 하도리 마을 회관 - 고인돌 유적지 삼거리 좌회전 - 백련사 입구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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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둘러 볼 곳

강화도 유적지 답사일기

 

교동도 연산군 유배지 >>http://blog.daum.net/koreasan/1560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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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창 생가, 사기리 탱자나무 http://blog.daum.net/koreasan/12618711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곤아! (박중훈 역)

이 세상에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 태양빛을 받아서 빛나는것이야...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므로써 빛나는 것이란다. - 라디오 스타 대사 중에서 - 

 

오늘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사노라면
둘이지만 하나임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부부 사이에서,
친구 사이에서,
교우 사이에서...
마치 하나의 막대기 양 끝을 잡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듯, 외모는 달라도 생각이 같을 때
그런 순간을 느낀다.
살맛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내가 행복할 때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처럼,
내가 슬프면 그 끝을 잡고 있는 상대도 슬프기에,
되도록이면 나는 언제나 행복해야 한다.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오늘 하루의 행복을 위하여 목숨을 걸자

민주현 - "가슴에 묻어둘 수 없는 사랑" 책에서(카톨릭 출판사)

오늘도 모든 분들 幸福하세요.

 

▲ 최고는 아니어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 싶다 ⓒ 2012 한국의산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무엇이 있으랴만은 그래도 나에게는 언제나 모든것이 새롭다.

오만분의 일(1/50,000) 지도와 손때 묻은 등산장비를 틈나는대로 어루만지며

주말이 오면 배낭과 카메라 둘러메고 산에 오르고, mtb를 타고 어디로 떠날까 궁리하는 男子.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 박용재 -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 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 강화대교 너머로 지는 장려한 석양 노을 ⓒ 2012 한국의산천

밀물에 가득 차고 썰물에 아득하다. 가득 차고 아득한 물이 멀어서 닿을 수 없는 공간속으로 나아간다. 하구의 시간과 공간은 크나큰 용해의 힘으로 느리고 평화롭다.

지금, 내 자전거는 노을에 젖고 바람에 젖는다. 저물어도 잠들지 않는 내 허벅지의 힘을 달래가면서 나는 풍경과 말들을 데리고 천천히, 조금씩 아껴서 나아가겠다.

 

여·행·수·첩  산행 가이드

편안한 육산이라 가족 산행이나 실버 산행지로 좋다. 대표적인 산행기점은 백련사·청련사·적석사·미꾸지고개가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들머리는 백련사다. 군락지와 가깝고 원점 회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달래 군락지는 군부대가 있는 정상을 기준으로 서쪽 방면에 지천을 이루고 있다. 백련사에서 570m 가면 임도를 만나고 임도 따라 900m 가면 정상이다.

 

하산은 온 길을 되돌아가 이정표 옆 대형 진달래 사진이 있는 청련사 갈림길에서 능선을 따라가야 한다. 이어 참호가 있는 갈림길에서 백련사 방향으로 가면 백련사에서 300m 떨어진 차단기 앞 갓길 주차장에 닿는다.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있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백련사를 기점으로 한 원점 회귀는 3.8㎞에 두시간 정도 걸린다. 진달래축제 기간에는 백련사 차량 출입을 통제한다. 고인돌광장에 주차를 하고 포장도로를 따라 3㎞를 걸어야 한다. 주차료는 무료다. 백련사에 비해 한가한 미꾸지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해 진달래 군락지를 거쳐 백련사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미꾸지고개에서 백련사까지 종주할 경우 약 9.5㎞에 4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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