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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바람의노래] 귀향 -곽성삼 고향 영종도

by 한국의산천 2011. 2. 11.

[바람의노래] 귀향 -곽성삼 ⓒ 2016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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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의 해 뉘엿뉘엿 갈길을 재촉하네 저 눈물의 언덕 넘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리

 

 

▲ 갈꽃(갈대꽃)이 한창 핀 호수 ⓒ 2011 한국의산천

지나는 오솔길에 갈꽃이 한창인데 갈꽃 잎 사이마다 님의 얼굴 맺혀있네

 

귀향

                      - 곽성삼


이제 집으로 돌아가리 험한 산 고개넘어 끝없는 나그네길 이제 쉴 곳 찾으리라

서산의 해 뉘엿뉘엿 갈길을 재촉하네 저 눈물의 언덕 넘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리

 

지나는 오솔길에 갈꽃이 한창인데 갈꽃 잎 사이마다 님의 얼굴 맺혀있네

길 잃은 철새처럼 방황의 길목에서 지쳐진 내 영혼 저 하늘 친구삼네

 

사랑하는 사람들아 나 초저녁 별이 되리 내 영혼 쉴때까지 나 소망을 노래하리

 

 

▲ 왼쪽부터 한국의산천, 창수, 흥남이 모여서 한잔 하면서 ⓒ 2011 한국의산천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같이 자란 친구들입니다. 가끔 만나서 한잔하는 정다운 친구들.  

 

내가 좋아하는 가수 곽성삼

 

이 땅의 많은 가수들이 자신들의 혼을 태우며 노래를 부른다.
삶의 무게와 이 땅의 아름다운 것들을 얘기하지만 곽성삼의 음악세계는 분명히 많은 가수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오늘날 서구문화의 홍수 속에 그 어느 때보다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설움, 방황의 세월을 순수하게 표현하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곽성삼의 작품집 '장돌뱅이'는 지적인 마음과 따스한 정이 단절된 이 시대에,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순박하면서 아름답고,정의롭게 노래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통기타 가수모임의 주전가수로 대중음악을 시작 그후 유한그루의 앨범 제작에 참여. 한국여인의 '한'이 담긴 작품 '물레'를 선보이며 우리의 맥을 지켜 나가는 작가로 알려졌다.

1980년 첫 작품집 [길]에서 '귀향', '소생' 등의 노래를 통해 맑은 영혼의 소리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던 그는 어느 날 음악에 대한 고뇌 속에 홀연히 음악계를 떠났었다.
가수가 노래를 하지 못할 때의 처절함, 그것은 당사자가 아니고선 결코 알 수 없는 고통이다.

 

그는 절박한 현실에 순응키 위해 주유원, 경비원, 보일러공, 외판원 등의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결코 음악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생명력을 지켜 왔다.

그 생명력의 원천은 그가 갖고 있는 음악에 대한 애정이자 삶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작가는 어렵고 외로웠던 먼 길 돌아 20년이란 세월을 깨고 새로운 작품집 [장돌뱅이]를 가지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 왔다.


 

장돌뱅이마냥 인생의 역정을 돌고 돌아 우리 곁에 20년만에 돌아 온 그는 늘 마음의 고향을 그리워했으며 그것을 노래라는 실타래를 통해서 우리에게 한 올 한 올 풀어서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것 같이 우리들의 마음을 대신해 노래하고 있다.

'고향'이란 작품은 도시의 삭막함을 고발하며 역사 속에 숨쉬는 고향의 고귀함을 노래하고, '멀고먼 고향'에서는 부친의 고향 황해도를 그리며 시름없이 떠나 온 고향 하늘, 그 속에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의 애절한 기원, 그리고 인생의 무상함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에서 쓸쓸히 사라져 가는 민족의 애환을 노래했다.

 

그의 노래는 도시의 생활 속에서 기쁨보다는 가슴 깊이 아픔을 더 많이 갖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젖은 가슴을 씻어 주는 맑고 아름다운 한 편의 시를 접하는 느낌이다.

 

 

▲ 나는 그의 고향이 인천 영종도라기에 동향이라 내가 그형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살아온 질곡의 삶을 존중하고 그의 애환이 닮긴 우리내 인생같은 노래가 정말 좋기에 그를 사랑한다. 그래서 곽성삼님의 팬클럽 회원이다 -한국의산천.

 

이제 집으로 돌아가리

봉황산 고개너머

끝없는 나그네길...

이제 쉴 곳 찾으리라

 

서산에 해 뉘엿뉘엿

갈길을 재촉하네..

 

저 눈물에 언덕 너머

이제 집으로 돌아가리

 

지나온 오솔길에

갈꽃이 한창인데

갈꽃잎 사이마다 님의 얼굴 맺혀있네

 

길잃은 철새처럼 방황에 길목에서

뒤쳐진 내영혼 저하늘 친구삼네

사랑하는 사람들아 나 초저녁 별이되리

 

내 영혼 쉴 때까지 나 소원 노래하리

 

 

곽성삼..

위에 적은 노랫말은 '귀향'(歸鄕)이라는 곽성삼의 노래말이다..

 

90년대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가 KBS 주말연속극에 꽂혀서 대박이 났다.

그리고 나서 몇 달후.. 초췌한 모습의 사십대 후반에서 오십대 초반의 남자로 보이는 이가 찾아왔다.

손에는 달랑 자기 음반 하나...바로 위에 적은 '귀향'이라는 노래를 방송에 꽂아달라고..

어디 사냐고 물었더니 용인 원삼면에 산다는 말과 자기 집전화번호 적어주고 간다.

그리고 다음날..

대성음반 김모 회장의 전화가 왔다. 곽성삼이라는 가수좀 도와달라고..

저녁에 막걸리 한 병 사서 적어준 주소로 찾아갔다.

용인이라는 도시가 에버랜드와 민속촌이 있는 도시로만 아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면적이 서울과 같고 인구 90만이 넘었지만 아직 반절은 개발도 안된 산골 동네가 많다.

앞은 넓은 논과 밭.. 초라한 집안에 앉은 곽성삼은 혼자다..

혼자서 막걸리 마시며 기타치며 노래 부르니 동네에선 이상하게 볼 수 밖에...

말은 안했지만 그렇게 그냥 혼자 사는게 틀림없었다.

 

그 당시 괜찮은 드라마에 음악 꽂으려면 음악감독에게만 해도( 다 그렇다는 말은 절대 아님^^)

오백만원 이상 건네줘야 회당 한 번은 틀어줬으니 그런 그에게 돈이 있을리 없었고

고속도로용이나 행사용 편집음반에 넣어서 운전자들에게 향수를 달래는 목적으로 쓰는게 최상이라 생각했다.

드라마도 사실 남녀간의 사랑이야기에 배경으로 깔 수 있는 노래는 아니고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나 <전원일기> 추석특집에 깔아주는게 훨씬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그렇게 설명했지만

 가수 곽성삼의 마지막 자존심은 편집음반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년에 두 세번 만나 그냥 막걸리 한 잔에 지나온 안부를 상상하고 했던 그..

 어쩌면 그처럼 가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준 경우가 드물다..

 오늘 아침 평소 퍼오던 음악카페에 그의 노래 있어서 검색했더니 몇 곡 올라 있어서

 마을 음악방에 올렸다... 여기 '귀향' 말고 한 곡 더...'나그네'

 재밌는 일은 이 양반 가끔 오바하면 댄스곡 비스므리하게 작곡해서 들어보라고 부른다...

 난 일초의 망설임 없이 최고의 곡이라고 하고 덧붙인다...세상에 알려서는 안되니 꼭 간직하고 있으라고..

언젠가 연락하면 그 때 들고나와서 백만장 넘기자고...아직 연락 못하고 있지만..인터넷에 보니 올라있는 곡도 있네..ㅋ

하나 더 비밀을 말하자면 지금 이 톤 아니면 정말 들어주기 힘들다는...ㅎㅎ

내 전화번호가 016 에서 011 로...그리고 010 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연락이 끊겼다. 집도 잊혀졌고...

가수 곽성삼 처럼 여러분들이 아는 화려함과는 아주아주 먼 가수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음반은 내고 싶은데 기본제작(테잎, CD 각 2천장)비도 없어서 사정사정하다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어렵사리 

찍어내고 시중에 풀렸던 음반 반품 들어오면 정산도 못하고 다시 초야로...

여러분이 아시는 이진관씨...'인생은 미완성'

이분은 가수하면서 성남의 동네 골목에서 레코드 가게를 하면서 자주 왕래했고

미사리의 몇 몇 무명 가수들...이렇게 제작해서 자신의 라이브 타임에 직매하며 살아갔다..

이제 그 마저도 팔리지 않는다.

한 달에 4천원 내면 맘껏 듣는다..

 

술취했지만 술취함을 인정하기 싫었던 가수 곽성삼의 목소리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지려하면 막걸리로 적셔가며 그냥 힘듦을 받아들였던...

 

 

어떻게 살까...육십이 넘었을텐데..혹시..

괜히 그 사람 생각했다가 나까지 기분이 다운됐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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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장네 마을사람들 | 글쓴이 : shinsabu |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