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많이 내린날 방학을 맞은 딸과 함께
1. 양평 두물머리 (兩水里) 둘러보기 [2010 ·12 · 28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
2. 다산 정약용 선생 생가 둘러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4853
3. 화서 이항로 선생 생가 둘러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4852
눈이 내린다.
이별이 두렵다면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이며
눈길이 무섭다면 여행을 떠나지 못할것이다.
우리는 양수리로 떠난다.
※ 자동카메라 설경 촬영시 주의사항
온 천지가 하얗게 변해버린 설경 촬영시 지동카메라 노출 보정을 꼭 해주어야 제 색깔의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카메라 노출 보정이 왜 필요한가?
카메라에 내장되어있는 노출계는 피사체 본래의 색상을 고려치 않은채 피사체로부터 반사되어 나온 광량만을 측정하여 기준에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이 기준보다 밝거나 어두운 경우에는 피사체의 정확한 농도를 재현해 낼수 없게 된다. 흔히 회색빛이 짙거나 눈의 색상이 푸르스름하게 나오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렇기에 노출보정을 하여 본연의 색상을 나타낼수있도록 조절을 해줘야 한다.
노출보정 (수동 카메라의 경우, 임의대로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를 조절해 노출을 보정해 준다)
+/-로 표시되며, 때로는 E/V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노출보정은 카메라가 정한 적정노출이 아닌 본인의 임의대로 설정가능하며 보정한 후에는 18% 반사율이 아닌 보정치를 감안한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 수치를 자동으로 찾기 때문에 따로 조절할 필요가 없다.
▲ 나는 카메라만 있으면 어디던지 즐겁게 떠날수있다 ⓒ 2010 한국의산천
지금의 양평은 옛 양근(楊根)과 지평(砥平)을 1914년에 합쳐서 이루어진 고을이다. 우리 땅 이름에서 평지나 큰 들이 있는 곳엔 坪(평)·平(평)·原(원) 등의 한자가 많이 쓰였다. 경기도의 양평을 비롯해 가평·청평·부평·수원, 강원도의 철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대동여지도에서 당시 두 고을의 경역을 살펴보면 경기도 남양주·광주 등과 맞닿은 서쪽의 양서·서종·옥천·강상·강하면과 양평읍 등이 양근 고을이요, 강원도 횡성·홍천군 등과 가까운 동쪽의 지제·양동·청운·단월면, 그리고 용문산을 포함한 용문면 지역이 지평 고을에 속한다. 양근 관아가 있던 곳은 현재 양평읍인데, 양근리라는 지명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지평현의 중심은 지금의 지평리라는 지명으로 전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평은 동쪽과 서쪽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엔 양근의 토산물이 쏘가리요, 지평의 토산물은 송이버섯으로 적고 있으니 조선시대 양쪽의 차이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북한강과 남한강 두 강물이 만나는 양평의 두물머리(兩水里). ⓒ 2010 한국의산천
이곳은 오랜 세월을 그랬던 것처럼 아직도 연인들의 대표적인 데이트 코스이며 영화 또는 TV 드라마 단골 촬영지라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입니다.
두물거리·두머리·두거리·양수두·양수 등으로 불렸던 양평의 두물머리는 적어도 남한에선 규모가 가장 큰 합수점이다. 한반도의 중심을 적시고 흐르는 큰 물줄기인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평 두물머리는 좀 특별한 감이 있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려와 남한강과 북한강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한강기맥의 끝자락이기도 한 두물머리엔 늙은 느티나무가 전설처럼 서있다. 400년쯤 전부터 이곳에 뿌리박고서 남한강이나 북한강 물길을 따라 한양으로 오가던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고 쉼터 역할을 하던 나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도당 할아버지’라 부르며, 지금도 매년 가을 젯상을 차려놓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제를 지낸다. 하지만 ‘도당 할아버지’는 자신의 배필이었던 ‘도당 할머니’가 1974년 팔당호가 생기며 물에 잠겨버린 바람에 아직까지 울적하다.
두물머리의 지금 풍경은 한가한 수채화지만, 팔당호라는 인공호수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한강에서 제법 번잡한 편에 속하는 나루터였을 것이다.
그 옛날 삼남대로의 갈림길인 천안삼거리가 유명했다면, 물길에선 양평의 두물머리도 제법 큰 삼거리였다. 서울과 강원·충청지방 간의 수송물자 나르는 배가 휴식하던 곳이며, 예전엔 술을 파는 객주집도 넘칠 정도였다. 양평엔 남한강의 양근나루·앙덕나루, 북한강의 내미연나루·수입나루 등이 있었지만, 이들은 상징성에 있어서 두물머리나루에 떨어진다.
▲ 딸과 함께 걷는 길은 행복한 일이다 ⓒ 2010 한국의산천
디지털 카메라는 예전처럼 필름값이 안들기에 셔터를 여러번 눌러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 가을에는 노란 은행잎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는 곳입니다 ⓒ 2010 한국의산천
▲ 이곳의 가을 풍경 아래 사진 참고 하세요
▲ 몇해전 촬영한 두물머리 느티나무로 가는 진입로의 가을 풍경입니다 ⓒ 2010 한국의산천
우리는 공간들을 하나씩 지나가야 한다. 어느 장소에서도 고향에서와 같은 집착을 가져선 안 된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숲은 오늘도 내게 속삭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라.
그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 아침고요 수목원 설립자 한상경의 '아침고요 산책길'중에서 -
▲ 두물머리 느티나무 ⓒ 2010 한국의산천
한강이 시작되는 곳 여기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로 만나 한강을 이루는 곳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곳 양서면 양수리 일대를 큰 줄기 두곳이 머리를 맞대는 곳, 즉 <두물머리>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여기서 부터 발원지까지의 거리가 남한강 줄기가 394.25km, 북한강 줄기가 325,5km 에 이릅니다. 이곳 두물머리 느티나무 수령은 약 400 여년으로 양평군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 30m에 둘레 8m 입니다.
한말당시에는 이곳을 말죽거리로 불렸습니다. 강물을 건너 말에 죽을 먹이고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고 주막에서 목을 축이는, 서울로 오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느티나무 아래를 말을 타고 지나가면 말의 말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말에서 내려 지나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한강을 옆구리에 끼고 거슬러 오른다. 양평 나들이 길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언제나 한강 줄기다. 한강을 이루는 두 개의 큰 물줄기, 곧 남한강과 북한강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 양평은 한강을 빼놓고는 결코 한 마디도 이야기할 수가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엔 ‘왼쪽은 용문을 의지하고 오른쪽으로는 호수를 베고 누워있다(左據龍文右枕湖)’는 기록으로 양평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사족을 붙이자면 호수란 바로 남한강과 북한강을 일컫는다. 거기에 용문산은 백두대간의 오대산에서 뻗어 내려오며 두 강을 가르는 한강기맥의 맹주니, 양평은 한강기맥을 중심으로 양쪽 날개에 남한강과 북한강을 거느린 형국이 된다. 그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 바로 두물머리다.
우리 땅이름에서 물줄기가 합수하는 곳을 일컫는 명칭은 다양하다. 정선 아라리로 잘 알려진 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이 하나로 모이는 곳이다. 또 3·1만세운동의 기개가 살아있는 천안 아오내(아우내)는 광기천·서원천·병천천이 하나가 되는 곳인데, 병천(竝川)은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임진강이 흘러드는 한강 하류의 교하(交河)는 옛 이름이 어을매(於乙買)로서 ‘물(매)이 서로 어울리는 고을’임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지도를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물줄기가 하나로 만나는 곳임을 알려주는 땅이름을 적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민병준의 향토기행 참고]
한강을 옆구리에 끼고 거슬러 오른다. 양평 나들이 길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언제나 한강 줄기다. 한강을 이루는 두 개의 큰 물줄기, 곧 남한강과 북한강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 양평은 한강을 빼놓고는 결코 한 마디도 이야기할 수가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엔 ‘왼쪽은 용문을 의지하고 오른쪽으로는 호수를 베고 누워있다(左據龍文右枕湖)’는 기록으로 양평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사족을 붙이자면 호수란 바로 남한강과 북한강을 일컫는다. 거기에 용문산은 백두대간의 오대산에서 뻗어 내려오며 두 강을 가르는 한강기맥의 맹주니, 양평은 한강기맥을 중심으로 양쪽 날개에 남한강과 북한강을 거느린 형국이 된다. 그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 바로 두물머리다.
우리 땅이름에서 물줄기가 합수하는 곳을 일컫는 명칭은 다양하다. 정선 아라리로 잘 알려진 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이 하나로 모이는 곳이다. 또 3·1만세운동의 기개가 살아있는 천안 아오내(아우내)는 광기천·서원천·병천천이 하나가 되는 곳인데, 병천(竝川)은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임진강이 흘러드는 한강 하류의 교하(交河)는 옛 이름이 어을매(於乙買)로서 ‘물(매)이 서로 어울리는 고을’임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지도를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물줄기가 하나로 만나는 곳임을 알려주는 땅이름을 적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두 강물이 만나는 양평의 두물머리(兩水里).
두물거리·두머리·두거리·양수두·양수 등으로 불렸던 양평의 두물머리는 적어도 남한에선 규모가 가장 큰 합수점이다. 한반도의 중심을 적시고 흐르는 큰 물줄기인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평 두물머리는 좀 특별한 감이 있다.
한 물길은 강원도 북녘 땅 금강산(1,638m) 기슭에서 시작해 휴전선 넘어 북한강으로, 다른 물길은 태백 금대봉(1,418m) 자락의 검룡소에서 발원해 남한강으로 흐르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비로소 한강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 두 강물은 “언제 산을 떠나와 그 먼 길을 얼마나 어렵게 흘러왔을까” 위로하며 서로 몸을 섞는다.
물은 어우러짐의 상징이다. 자연에서 가장 자연스런 어우러짐은 암수의 만남이 아닐까. 우리 조상은 물에 생명력을 부여해 암수로 나누기도 했는데, 영월 주민들은 동강을 수캉, 서강을 암캉이라 나눠서 불렀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양평 주민들은 깊은 산속을 거칠게 휘감고 흘러온 차가운 북한강을 숫물(雄水), 비교적 부드럽고 따뜻한 남한강을 암물(雌水)이라 했다.
두물머리는 특별히 눈을 자극하는 볼거리는 없지만 화해와 융화를 배울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아이 손을 잡은 부모는 가정의 행복을 빌고, 연인들은 순탄한 사랑의 완성에 이르기를 기원한다. 시인은 서로 질시하는 인간들을 꾸짖으며 거스르지 않는 물에서 화합을 배우라고 일갈한다. 또 장자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물을 보면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觀水洗心 觀花美心)’고. 두물머리 앞에 있는 세미원(洗美苑)은 이런 의미를 담아 만든 정원이다.
여기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삼월삼짇날에 두물머리의 강심수(江心水)를 길어다 장독대에 올려놓고 나라의 안녕과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길손은 비록 강심수를 길어 올릴 수는 없으나 북한강과 남한강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두물머리에서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빌어본다.
겨 울 나 무
- 이수인 -
나무도 생각을 한다
벗어버린 허전함에 눈물이 난다
빈가지 세워 올려다 본 회색빛 바다
구름 몇 점 잔잔한 파도를 타고
아직 남겨진 몇 개의 사연들은
미련 없이 저 자유의 바다로 보내리라
나무는 제 몸에서 뻗어나간
많은 가지와 그 가지에서 피어나는
꽃과 이파리 열매를 위하여
그 깊고 차가운 어둠 속을 향해 치열하게
뿌리를 내려가며 고독의 길을 끝없이 간다
인생 그 누구라도 겨울나무처럼
홀로된 외로움 벗어버린 부끄러움에
울어보지 않았으리
수없이 많은 사연의 가지를 지니고
여러 갈래의 뿌리를 두르고도
단 하나의 심장으로만 살아가지 않는가
빈 가지마다 눈꽃 피어났던 자리에
봉긋 봉긋 솟아나는 봄의 푸르름도
겨울가면 반드시 온다는 진리이기 보다
시련 뒤에 찾아오는 선물이라는 것을
겨울나무는 벌써 알고 있다
설야(雪夜)
-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밑에 호롱불 야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 두물머리 느티나무 (나무이름 : 도당 할아버지) ⓒ2010 국의산천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려와 남한강과 북한강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한강기맥의 끝자락이기도 한 두물머리엔 늙은 느티나무가 전설처럼 서있다. 400년쯤 전부터 이곳에 뿌리박고서 남한강이나 북한강 물길을 따라 한양으로 오가던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고 쉼터 역할을 하던 나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도당 할아버지’라 부르며, 지금도 매년 가을 젯상을 차려놓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제를 지낸다. 하지만 ‘도당 할아버지’는 자신의 배필이었던 ‘도당 할머니’가 1974년 팔당호가 생기며 물에 잠겨버린 바람에 아직까지 울적하다.
두물머리의 지금 풍경은 한가한 수채화지만, 팔당호라는 인공호수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한강에서 제법 번잡한 편에 속하는 나루터였을 것이다. 그 옛날 삼남대로의 갈림길인 천안삼거리가 유명했다면, 물길에선 양평의 두물머리도 제법 큰 삼거리였다. 서울과 강원·충청지방 간의 수송물자 나르는 배가 휴식하던 곳이며, 예전엔 술을 파는 객주집도 넘칠 정도였다. 양평엔 남한강의 양근나루·앙덕나루, 북한강의 내미연나루·수입나루 등이 있었지만, 이들은 상징성에 있어서 두물머리나루에 떨어진다.
▲ 참고 사진 2006년 7월 1일 촬영한 사진입니다 ⓒ 2010 한국의산천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며 수려한 풍광으로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단골 출사지인 '두물머리'
두물머리는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서울로 가는 뱃길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그래서 외지의 배들이 쉬었다 가기도 하고 내륙에서 강을 건너 광주로 넘어가기도 했다. 가장 성한 시기에는 120가구까지 살았었고, 나루터에 들어 온 물건들로 장이 들어서기도 했다.
▲ 당제를 지내기 위해 예쁘게 치장한 느티나무 ⓒ 2010 한국의산천
매년 음력 9월 2일은 이 마을의 전통 축제, '두물머리 당제사(도당제)'가 열린다
예전에는 2년에 한번씩 무당과 화랭이들이 와서 도당굿을 벌이며 마을 사람들은 모여서 밤새 음식을 나누어 먹고 놀았으나 을축년(1925년) 장마로 마을이 망가지자 굿은 더 이상 못하고 제만 유지해오고 있다.
▲ 참고 사진 2007년 3월 25일 촬영 ⓒ 2010 한국의산천
길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마음의 길을 마음 밖으로 밀어내어 세상의 길과 맞닿게 해서 마음과 세상이 한줄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삶의 길은 열린다.
▲ 딸과 같이 떠나는 답사는 정말 행복한 일이다 ⓒ 2010 한국의산천
생의 계단
- 헤르만 헤세
모든 꽃이 시들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깨달음도
그때그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진 않으리.
삶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슬퍼하지 않고 새로운 문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만 한다.
무릇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공간들을 하나씩 지나가야 한다.
어느 장소에서도 고향에서와 같은 집착을 가져선 안 된다.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아 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높이며 넓히려 한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면 임종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하리라.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은 결코
그치는 일이 없으리라.
그러면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에서
- 류시화 엮음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 받지 않은것 처럼 중에서 -
▲ 노거수와 가까운 미술관에서 따듯한 차 한잔 마시러 고고씽~ ⓒ 20910 한국의산천
계속해서 이항로 선생 생가로 이동합니다
2. 화서 이항로 선생 생가 둘러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4852
3. 다산 정약용 선생 생가 둘러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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