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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내일로 여행 첫날 전주 남원

by 한국의산천 2009. 8. 26.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스승은 책과 여행이다.

 

54,700원으로 일주일간 전국 기차여행 

딸아이 내일로 기차 여행 첫날 전주 남원 2009 · 8 · 14

가족들과 홍천강에서의 4박 5일의 휴가를 마치고 연이어 대학 같은과 학생과 둘이서 6박7일의 여행을 떠났다.

일주일 동안 전국을 마음대로 승차 할 수 있는 레일로(Rail路) 티켙을 끊어서 ...

 

첫날 서울에서 남원으로 이동.

 

▲ 너에게 있어서 고민이 없는 가장 행복한 시간은 학창시절일 것이다. 즐겁게 인생을 즐겨라 ⓒ 2009 한국의산천

돌이켜 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 할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동경로 (6박7일; 숙박은 찜질방과 기차 그리고 친구집)

소요경비 : 기차티켙 포함  210,000원

8월 14일 남원 전주 - 8.15일  곡성 여수 - 8. 16일 순천 보성 - 8 . 17일 진주 마산 - 8. 18일 부산 - 8.19일 경주- 8.20일 정동진 영월

 

코레일 새마을호와 기타 기차 1주일간 무제한 이용 여행권 '내일로(Rail路)'  
 
코레일이 판매하는 ‘내일로(Rail路)’ 티켓.

이 기획 티켓은 만 18세부터 24세까지의 청소년에게만 발부되며 티켓을 구입하면 5만4700원으로 새마을호와 무궁화호의 일반실, 그리고 통근열차를 일주일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지난 달 7월 19일부터 발매에 들어가 8월 31일까지 대부분의 전철역에서 구입, 이용할 수 있다.

이미 지난 2007년부터 매해 휴가철에 맞춰 판매돼 온 이 티켓은 이미 많은 젊은 여행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내일로 여행객들은 대부분 혼자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지역에 친척이나 친구가 있지 않다면 일반적으로는 찜질방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기도 한다. 

 

내일로 티켓은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기차여행을 할 수 있도록 청소년만을 위해 초저가 특별상품으로 기획되었다 
 

운영대상

사용개시일 기준 만 18세부터~24세까지 청소년
청소년기본법 제3조에 따르면 “청소년”을 9세이상 24세 이하의 자로 정의하고 있으며, 청소년보호법 제2조에서는 만 19세 미만의 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가격 : 54,700원(추가할인 없음) 분실재발매 1회, 지연 및 운행중지 보상없음 
목걸이 형태 승차권케이스(15,000개 한정)을 기념품으로 제공, 전국 19개역에서 발매기준으로 역별 선착순 지급

운영기간 :'08.6.14(토)~'08.8.31(일) 연속 7일간 일반철도 자유이용(좌석미지정)
발매기간 : '08.6.10(화)~'08.8.31(일)
※ 8월31일 승차권은 9월6일까지 사용가능 판매추이에 따라 여행시작일 기준으로 일자별 총판매량을 제한합니다.(일일 최대500매)

대상열차 : 새마을호와 무궁화호의 일반실, 통근열차 

 

▲ 전주역사 ⓒ 2009 한국의산천

전주에 관한 택리지의 기록

주줄산 이북의 여러 골짜기 물이 고산현을 지나 전주 경내로 들어와 율담 양전포 오백주 등의 큰 시내가 되어 농사에 이용되기 때문에 땅이 아주 기름지다. 그리고 벼 생선 생강 토란 대나무 감 등의 생산이 활발해서 천개의 마을 만개의 마을의 삶에 이용할 생활 필수품이 다 갖추어져 있고 서쪽의 사탄(斜灘 : 만경강의 옛이름) 에는 생선과 소금을 실은 배가 자주 통한다.

전주 관아가 자리잡은 곳은 인구가 조밀하고 물자가 쌓여 있어 경성과 다름없으니, 하나의 큰 도회지이다.

노령 북쪽의 10여 고을은 모두 좋지 못한 기운이 있지만 오직 전주만 맑고 서늘하여 가장 살만한 곳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주를 두고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곳이 반반이며, 민간풍속이 장사를 좋아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남국의 인재가 몰려 있는 전주

풍수지리상 전주는 행주형(行舟形)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한 배 가득 싣고서 순풍에 돛을 달아 항로에 오른배를 지긋이 잡아 매어둔 형상이라는 뜻이다. 서거정은 기(記)에서 "(전주는) 남국의 인재가 몰려 있는 곳이다. 물건을 싣는데 수레를 사용하며, 저자는 줄을 지어 상품을 교역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말처럼 전주에서는 수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세조때 우의정을 지낸 이사철과 명종때 우의정을 지낸 황헌 선조때 우의정을 지낸 전언신, 숙종때 우의정을 지낸 의정 이상진이 그들이고 기축옥사 또는 정여립의 난의 주인공인 정여립이 이곳 사람이다.     

 

▲ 전동성당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 288호로 지정 ⓒ 2009 한국의산천

 

떠나라 !
낯선곳으로
그대 하루 하루의 반복으로부터 !!


낯선 곳

                  -  고  은 -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 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낯선 곳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 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의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 전동성당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 288호로 지정 ⓒ 2009 한국의산천

전동성당은 전라북도 전주시에 위치한 천주교의 성당이다. 현재 전주시 안에 세워진 성당 중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호남 전체에서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건물이다. 1937년에서 1957년까지 천주교 전주교구의 주교좌 성당이었으며, 건축물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영화의 촬영지나 결혼식 장소로 자주 쓰이기도 한다. 본당의 수호 성인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다.


원래 전동성당이 위치한 자리는 풍남문의 밖으로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을 비롯하여 그의 외종형 권상연과 유항검 등 호남 지역의 많은 천주교 신자가 참수당한 순교한 자리였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천주교 신앙이 허용되면서 개항지가 아니었던 전주시에도 선교사가 들어왔으며, 1891년에는 전주성당 (현재의 전동성당) 주임인 보두네 신부가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민가를 사들여 임시 본당으로 삼았다.

 

본당이 처음 생겼을 때에 전주읍성 주변에 신자는 거의 없었고, 주로 산골인 대성리 등에 신자가 밀집해 있었으나,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는 등 여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신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따라서 기존의 성당보다 더 큰 성당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후 1908년 명동성당의 내부를 건축한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성당이 착공되었다. 성당은 1914년에 비로소 외관 공사가 끝났으며, 이후로도 계속 공사가 진행되어 1931년에 완공되었고, 그 해 6월 18일에 대구대목구의 드망즈 교구장을 주례로 하여 축성식을 가졌다.
  

▲ 전동성당의 아름다운 내부 ⓒ 2009 한국의산천

 
전동성당은 호남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며, 중앙의 종탑과 양쪽 계단에는 비잔틴 양식의 뾰족 돔을 올렸으며, 성당 내부의 석조 기둥에도 비잔틴 양식이 녹아 있다.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

성당은 화강암을 주춧돌로 하여,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성당을 착공한 1908년에는 대한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일본 제국의 통감부가 전주읍성을 헐었기 때문에, 성당의 주춧돌은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 돌을 이용하였다. 또한 성당을 구성하는 벽돌의 일부 또한 전주읍성의 성벽에서 나온 흙을 이용하여 중국인 인부 100여 명이 직접 구워 사용하였다. 나머지 석재와 목재들은 각각 익산시 황등면의 채석장과 승암산의 목재를 사용하였다. 190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931년에 최종 완공되었다.

 

 

진정한 여행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詩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수 없을 때
그 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풍남문 ⓒ 2009 한국의산천

호남제일문이라고도 부르는 풍남문은 전주부성의 남문으로 성 밖에는 남문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1894년에는 동학농민군이 남문을 열고 나가 완산칠봉에 진을 치고 있던 홍계훈의 관군과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새벽 3시에 칼스바트(체코에 있는 온천도시)를 몰래 빠져 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

1829년 탈고된 괴테(1749~1832)의 기행집 '이탈리아 기행'은 이렇게 시작한다.

 

삼십대 중반에 이미 부와 명성과 권력까지 손에 쥔 괴테는 그의 37세 생일을 맞아 축하 파티가 한창 무르익던 1786년 9월3일의 일이었다. 새벽녘이 되어 축하객들 곁을 살며시 빠져나온 괴테는 여행 가방과 오소리 가죽 배낭만 간단히 꾸린 채 인생의 혁명을 위해 가진 것 모두를 뒤로 하고 신화의 땅 이탈리아를 향해 훌쩍 떠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등 많은 문학작품으로 그의 명성은 이미 전 유럽에 자자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추밀고문관으로 10여년간 지내면서 정치가로서의 역량 또한 크게 떨치던 무렵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그는 심한 상상력의 고갈을 느꼈고 작가로서의 앞날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된다. 바이마르에서의 궁정생활 10년간의 복잡한 정무(政務) 때문에 문인으로서의 활동이 위축된 것과 또 슈타인 부인에 대한 정신적인 사랑의 중압감에서 헤어나기 위하여 독일의 미학자 빙켈만에 의해 '온 세계를 위한 위대한 학교'라고까지 칭송되던 로마를 향해 휙 몸을 날렸다. 

 

“정말이지 로마에 와보지 않고서는 여기서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를 전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개념들을 돌이켜 보면 마치 어릴 적에 신던 신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평범한 사람도 이곳에 오면 상당한 인물이 되며 그것이 그의 본질로 바뀔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하나의 독특한 개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위대한 학교’ 로마에서 3개월 이상을 지내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한 뒤 괴테는 애초에 마지막 여정으로 생각했던 나폴리로 떠났다. 그러나 나폴리 지방의 그 풍부한 색채와 눈부신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이탈리아 체류 기간을 연장할 생각을 굳히고 시칠리아 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3개월 만에 로마로 되돌아와 1년 가깝게 더 체류하였다.
 

정치가로서의 책임감 보다는 문학가다운 멋진 반란을 택한 것이다. 괴테 스스로가 '제2의 탄생일'이자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까지 표현한 그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786년 9월 3일의 일이다. 그렇게 그는 1년 9개월 동안 마음껏 이탈리아 전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눈과 마음을 열고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호흡한다.

 

떠나라 !
낯선곳으로
그대 하루 하루의 반복으로부터 !

 

 

 

 

 

살제 남원 죽어 임실 

▲ 남원역사 앞에서 ⓒ2009 한국의산천

살제 남원 죽어 임실

"살제 남원 죽어 임실" 이라는 말은 살아사는 물자가 풍부한 남원에서 즐겁게 살고, 죽어서는 산세가 아름다운 임실에 묻히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말이다.

 

교룡산 자락에 펼쳐진 남원

순창 동쪽에 자리잡은 남원은 백제 때의 교룡군이며 , 신라 경덕왕때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1914년 운봉군을 통합하였고 1981년 시로 승격하였다.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남원에는 유달리 높은 산이 많다. 지리산과 만복대 고리봉 세길산 등의 높은 산들이 동쪽에 우뚝 서있고 남원 서편에 교룡산이 있으며, 광한루 앞을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이 흐르고 있다. 

 

 

남원부지에는 " 동쪽에는 지리산이 병풍을 두른듯이 서있고 서쪽에는 중진이 띠를 두른것처럼 흐르고 있으며, 인물이 번성하여 남방에 하나의 큰 도회가 되었다" 하였고, 황수신은 광한루기에서 "남원은 옛이름이 대방인데, 산천이 수려하고 옥야가 100리에 벋쳐 실로 천연의 부자고을"이라 하였다.

 

남원의 인물로는 성종실록과 경국대전을 편찬한 윤호손이 남원 주생면 출신이고, 운봉에서 판소리의 시조라고 일컫는 송흥록과 그의 맥을 이은 박초원, 강도근 등 수많은 소리끈이 태어났다.  

 

 

 

내일은 곡성 여수... 향일암으로 이동합니다.

 

▲ 곡성에서 ⓒ 2009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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