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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문화문학음악

김광석 학전블루

by 한국의산천 2008. 1. 20.

영원한 歌客 김광석·학전블루[답사·사진 2008.1.19.(토요일 밤 12시) 한국의산천 우관동 

 

동숭동 소극장 학전블루를 찾아서

▲ 밤 10시 업무를 끝내고 연출가 김민기씨의 학전 블루를 찾았다.ⓒ 2007 한국의산천 우관동

 

학전블루 소극장은 뮤지컬 작곡·연출가 김민기씨가 일구고 가꾸는 ‘경작지’다.

1990년 전후로 대학로 일대에서 일기 시작한 소극장 운동의 한 축이 되고자 김씨는 이름을 학전(學田 : 배움의 밭)으로 짓고 힘차게 출발했다. ‘배우는 밭’이거나 ‘밭이 되어 배움을 전하거나’, 여하튼 그런 의미라고 김씨는 말했다.

그리하여 단체명은 학전이 되고, 공연장은 학전블루가 되었다.

 

김광석의 목소리로 듣습니다. (6곡)1.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2.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3. 서른즈음에 4. 이등병의 편지 5.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6. 변해가네 

 

숭동 대학로를 찾았다. 2008년 1월 19일 토요일 밤 10시. 대학로를 가자니 집사람은 잠이 더 좋다고 잠을 자겠다하고, 딸아이는 옷을 챙겨입고 성큼 따라 나선다. 우리집 식구들은 야행성인가? 밤이 되면 눈이 더 초롱초롱해지는 식구들...

 

2008년 1월 6일 오후 3시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 소극장 앞마당에서 故 김광석을 기리는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1990년대 수많은 이의 가슴을 적셨던 가수 김광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12년이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일어나' '사랑했지만' 등 수많은 히트곡들이 세대를 불문하고 사랑을 받아온 김광석은 지난 1996년 1월6일 타계하여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김광석추모사업회(회장 김민기 학전대표)는 이날 김광석이 1991∼1995년까지 1000회 이상 공연을 가졌던 학전블루에서 박학기, 이소라, 성시경, YB밴드, 이적, 드렁큰타이거 등이 참석한 가운데 콘서트 김광석 다시 부르기를 개최했다.

 

▲ 2008년 1월 6일 학전블루앞에 세워진 故 김광석 부론즈 부조 ⓒ 2008 한국의산천 우관동

 

1996년 1월 6일(음력 11월 15일) 세상을 떠난 고 김광석이 1991년부터 95년까지 1천회 공연을 펼쳤던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 블루 앞마당에서 6일 오후 그를 기리는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병자년(丙子年)에 세상을 떠나 무자년(戊子年)인 올해로 꼭 12주기가 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인 조각가 안규철 교수가 만든, 브론즈 부조가 대리석 단상에 얹힌 노래비에는 통기타를 치고 있는 생전의 김광석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름다운 노래들을 수없이 찾아내 우리들에게 들려준 영원한 가객(歌客) 김광석(64~96), 그가 95년 8월 11일 이곳 학전 소극장에서 콘서트 1천회를 맞았다'는 글이 함께 새겨져 있다.

 

▲ 대학로 ⓒ 2007 한국의산천

학전블루 소극장은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으로 출발해서 다양한 예술창작 작업을 해온 공연장이다.

이곳은 여러 예술 장르 간의 교류와 접목을 통한 새로운 문화창조 공간으로서 뮤지컬, 연극, 콘서트, 무용 등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하고 있다.

▲ 얼음벽이 쌓아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딸아이 ⓒ 2007 한국의산천

▲ 대학로 근처에 있는 고산 윤선도 생가터 표석 ⓒ 2007 한국의산천

대학로 근처에 있는 고산 윤선도 생가터 표석 ⓒ 2007 한국의산천 

▲ 학전블루(대표 김민기) ⓒ 2007 한국의산천 우관동

서울 동숭동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고산 윤선도의 생가터가 있으며 그 옆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소로길 왼쪽에 학전블루라는 소극장이 자리하고 있다. 김광석은 1991∼1995년까지 1000회 이상 공연을 가졌다.초대권을 안돌리고 팜플렛을 안돌려도 그의 공연에는 항상 통로에 보조석을 놓을 정도로 만원이었다.

 

 

ⓒ 2007 한국의산천

 

학전블루(대표 김민기)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학전블루는  1991년 3월 15일 개관한 소극장으로 지하 2층의 소극장 연극, 콘서트등 다양한 문화 예술의 장르가 공연되고 있는 곳이다.현재 학전블루(구 학전 소극장)와 학전그린 두 소극장과 극단 학전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존의 대관 위주의 공연장 운영에서 탈피, 기획 중심의 공연장을 표방한 학전소극장은 이후 TV프로그램으로 옮겨가게 된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비롯, 김광석, 안치환 등 대중가수들의 콘서트를 기획, 공연하면서 대학로에 소극장 콘서트 문화를 만들어냈고,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좌', 클래식 음악회, 현대 무용 등 다양한 공연물의 기획을 통해 종합적인 실험공간으로 운영되었다.

 

ⓒ 2007 한국의산천

1994년 <지하철 1호선>, <아파트의 류씨스트라테> 등을 시작으로 극단 학전의 작업을 시작하였고, 1996년 5월 1일 뮤지컬과 아동·청소년극 전용극장을 표방하는 학전그린 소극장이 개관하면서 기존의 학전소극장은 학전블루 소극장으로 개칭되었다. 
학전그린 소극장은 극단 학전의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전용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학전블루 소극장은 학전의 기획공연과 대관공연이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다. 현재 '고추장 떡볶기'가 공연중이다.

 

ⓒ 2007 한국의산천

 

김광석 1964년 1월 22일 대구에서 태어난 김광석은 82년 명지대에 입학한 뒤, 신촌 카페 등지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84년 '노찾사' 1집에 참여하면서 노래운동에 몸담았고, 88년 동물원으로 데뷔하면서 포크음악으로 전환했다. 89년 솔로데뷔 후 95년까지 음반 6장을 내고 공연 1000회를 넘기며 '가객(歌客)'으로 불렸다.  고(故) 김광석은 1984년 당시 대학가 운동권 노래패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이 결성되면서 데뷔했다. 이후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탈퇴한 후 그룹 '동물원'에서 활동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어 다시 1989년에 솔로로 데뷔, 2집 수록곡 '사랑했지만'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노찾사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를 주름잡았던 노래패로 대표적인 노찾사 출신의 가수로는 "살다보면"의 권진원이 있으며 노찾사와 연계하여 활동했던 사람들로는, 안치환, 김광석, 백창우, 정태춘·박은옥 등이 있다.


ⓒ 2007 한국의산천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동물원 시절 부른 거리에서,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서른즈음에, 이등병의 편지,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등 수많은 곳을 부르고 또 리메이크하며 원곡보더 더 낫다는 평을 들었다. 김광석은 남이 쓴 곡을 받아서 탁월하게 해석하는 보컬리스트였다.그는 '나의 노래', '일어나', '이등병의 편지', '광야에서', 등 우리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표현해 90년대를 대표하는 포크가수로서 자리매김했다. 또한 1989년부터 1995년까지 1000여회의 라이브 콘서트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팬들과 다정다감한 음악적 교감을 이루어냈다. 
2000년에 영화 '공동경비구역'에 '부치지 못한 편지'와 '이등병의 편지'가 삽입되어 입대를 앞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가슴을 파고 들며 공식 주제가가 되었으며 김광석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0년 11월에는 'Anthology'라는 트리뷰트 앨범이 출시되었다.  
 

ⓒ 2007 한국의산천

꿈꿀 수 있는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늘 꿈을 꾸면서 살아갑니다. 그 꿈이 실현 가능한 것도 있고, 전혀 황당한 것일 수도 있지만요. 꿈을 꾸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늘 희망 적입니다. 이룰 수 있는 꿈이건, 이루지 못한 꿈이건 꿈을 꿀 수 있 다는 자체만으로도 우린 행복합니다. 꿈을 꾸는 사람의 얼굴. 저는 언제나 그 얼굴이 되고 싶습니다.[김광석의 '수첩' 중에서]

 

 

▲ 김광석 브론즈앞에서 ⓒ 2007 한국의산천 우관동

 

그는 지난 96년 서른 둘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지만 그의 노래는 여전히 뭇 '대중'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 4장의 정규 음반과 베스트 앨범 등 그의 음반 판매량은 500만장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왜 그의 노래를 잊지 못하는 것일까. 그의 노래는 대중가요나 민중가요이기 이전에 ‘삶의 노래’였다. 사람들의 인생 안에 녹아들어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군대에서 혼자 부르기 시작한 '이등병의 편지'..., 연인과 헤어진 후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던 '잊어야한다는 마음으로' 등 추억담은 끝이 없다. 무언가 뜨겁고 절실했던 시절, 시대적인 집단 기억도 한몫했다. ‘광야에서’ ‘아스팔트 열기 속에서’ 등의 노래는 민주화의 열망으로 가득찼던 청년들을 울렸다.

 

 

그룹 동물원 멤버들은 86~87년 김광석이 고려대 앞에서 '고리'란 카페를 운영할 때부터 함께 지냈다. 당시 김광석은 노래패 '새벽' 멤버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 첫 공연을 준비하면서 동물원 데뷔작업을 했다.

 

▲ 김광석 브론즈 부조 앞에서 딸아이 ⓒ 2007 한국의산천 우관동

 

 

ⓒ 2007 한국의산천  

동숭동 대학로에서 소설가, 시인, 교수이신 이제하(李祭夏)님이 운영하신다는 카페 '마리안느'를 찾으려 몇바퀴 돌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끔 가수 조영남님의 목소리로 듣는 '모란동백'을 작사 작곡 하였다.문화 · 예술방면에 대단하신 내공이 있으신 분이라 생각한다.  

 

이제하 (소설가 · 시인· 화가) 
1953년 학원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85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로 제9회 이상문학상을, 1987년 '광화사'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 편운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수상 : 학원문학상(1953), 이상문학상(1985), 한국일보문학상(1987), 편운문학상(1999)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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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대한민국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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