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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면천읍성

by 한국의산천 2007. 12. 2.

면천읍성   

 

답사일 : 2007. 12. 2. 비 내리는 일요일 [ 한국의산천 ]

답사코스: 도고산 성준경 가옥 - 추사고택 - 면천읍성. 

답사: 산정, 혜진, 추억의연가,평행선,한국의산천 5명. 

 

 조선시대 서해안권 내포지역의 대표적인 정치, 군사 요충지로 자리매김했던 600여년 역사의 면천읍성(城)

면천은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당진에 맞먹는 중요한 지방행정의 중심지였다. 예당(예산과 당진)평야의 중심에 있어 당진, 신창, 덕산, 예산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당진군은 서산, 태안 등과 더불어 옛부터 중국으로 통하는 중요한 바닷길이 있었던 곳이다. 이처럼 중국과의 통상에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국방상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했다.
 
면천읍성은 고려시대 충렬왕 16년(1290)에 세워졌다고 하나 실은 백제 초기부터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면천읍성은 동, 서, 남, 북의 사대문까지 갖춘 성이었다. 조선 태종13년에 다시 쌓았으며 경종 때 중수되었다.
면천에 읍성이 있었던 것은 이곳이 1914년까지 당진에 버금가는 주요 군소재지였기 때문이다.
 
 

▲ 면천 읍성과 면천군(郡)지 입석 ⓒ 2007 한국의산천 

 

면천읍성

위치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
충남기념물 제91호

분류 성지(성곽)
지정연도 1993년 12월 31일
소재지 충남 당진군 면천면 성상리 821-6 외 9필.


1993년 12월 31일 충청남도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초기에 쌓은 전형적인 평지 읍성으로,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3,235자(약 986m), 높이는 15자(약 4.5m)이고 적대(敵臺 :망루)가 7곳, 문이 3곳, 옹성(甕城)이 1곳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는 서쪽 성벽 일부의 성돌만이 남아 있으며, 성돌에 기미년(己未年)이라 새겨져 있는 것과 1439년(세종 21)에 이 성을 쌓았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성돌에 새겨진 기미년은 이 성을 쌓은 연대임을 알 수 있다.현재 면천사무소, 보건지소, 노인정, 면천초등학교 등을 둘러싸고 있다. 조선시대 관방 시설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 면천군지 표석 ⓒ 2007 한국의산천 

지금은 분명히 당진군 면천읍인데 면천군(郡)이라고 쓰여있다. 

그 이유는 조선 태종13년에 면천으로 바뀌어 서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당진군에 병합 될 때까지 읍내, 죽림, 덕두, 기화, 범천, 손동, 초천, 중흥, 감천, 송산, 승선, 정계, 마산, 송암, 함남, 합북, 비방, 이서, 신남, 신북, 현내, 창택등 22개면을 관할하던 군청소재지였다. 

 

 ▲ 면천 읍성에서 ⓒ 2007 한국의산천 

 

 ▲ 면천 읍성에서 ⓒ 2007 한국의산천 

물이 가득 흘러서 바다로 모여 들어간다. (시경에 나타난 글에서 면천의 이름을 따왔다고 쓰여있다)

 

면천읍성 앞에 세워진 "우리마을의 역사" (당진군 면천면 성상리)


" 이 마을은 면천지역의 중심지로 현재는 면 소재지로 남아있으나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혜군,통일신라 경덕왕때 서기 757년에는 혜성군 행정의 중심지로 삼국이 각축을 벌이던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다.고려 현종때 서기 1018년에는 운주에 속했다가 후에 감무를 두었던 곳으로 고려 충렬왕 서기 1293년 이 고을 사람 복지겸의 후손 복규가 합단의 군병을 막아낸 공로로 그의 출신지인 이 곳을 면주로 승격시켰다. 그 후 조선태종때에 면천으로 바뀌어 서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당진군에 병합 될 때까지 읍내, 죽림, 덕두, 기화, 범천, 손동, 초천, 중흥, 감천, 송산, 승선, 정계, 마산, 송암, 함남, 합북, 비방, 이서, 신남, 신북, 현내, 창택등 22개면을 관할하던 군청소재지였다. 

 

성상리란 동네 이름은 당진군에 병합될 때 면천군 읍내면이 당진군 마암면으로 바뀌면서 면천읍성이 있는 곳이라하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약 1500년간을 면천지역의 주.군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다.

문화재와 사적지로는 조선초기에 축조된 둘레 980미터의 높이 5미터의 돌성이 있으나 지금은 많이 허물어져 그 일부가 남아 잇고 그 때 우물중(화정)한개가 두견주의 전설과 함께 보존되어 오고 있다.지금의 면사무소 자리는 동헌의 터이고 국민학교 자리에는 객사가 1971년까지 있던 곳이다.

 

복지겸의 딸이 심었다는 1000년 넘은 은행나무 두 그루는 도기념물 82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으며 고려때 지군사(知郡事) 곽충룡이 못을 파고 정자를 지었다는 군자지(君子池)와 군자정(君子亭)이 아직도 남아있다.

해발 298미터의 몽산에는 산의 능선을 따라 옛 성터가 남아 잇으며 조선 태조때 서기 1392년에 세웠다는 면천향교가 있다.산물로는 두견주가 토속주로 오늘까지 유명하다.역사적인 인물로는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 훈요십조를 전수받은 박술희, 효자 박희란, 박희전, 명신으로는 신라 진성여왕때 혜성군태수 김준, 고려시대 지주사(知州事)서인, 조선시대 면천지군사 맹사성, 박안신, 박지원이 있었다.이 지역 주변의 아름다움을 읊은..(한자생략).. 이라 전해오는 면천팔경이 있어 좋은 풍치와 인심이 두터웠던 조상의 숨결이 배어 있는 마을이다" 


 

▲ 큰돌로 지어진 면천읍성 ⓒ 2007. 한국의산천 

 

 조선실록 등의 문헌을 면밀히 살펴보면 조선 세종21년(기미년)조에 쌓은 성이다.
지금은 버스정류장 앞에서 면천시장 남쪽입구 부근까지만 돌성으로 약간 남아있고 나머지 부분은 토성 형태로 남아있다.
성둘레는 900m에서 1㎞정도가 된다. 면천읍성은 조선초에 많이 쌓은 평지성의 전형적인 형태라는 점에서 귀중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에 안면도에 한 노인이 살았다.30년 넘게 머슴살이를 하다가 처음으로 서산읍내에 나가게 되었다.난생 처음보는 으리으리한 건물인 군청을 보고는 " 그것 참 잘 지었다"하고 감탄하고 있자니 어떤 사람이 " 그까짓 것 보고 뭘 놀라세요. 해미읍에 가서 성문 구경을 해 보쇼"했다. 노인은 기왕 나선 길이니 하룻밤을 자고 해미로 갔다.과연 멋이 있기에 " 이 정도면 사람이 지은 것 같지 않으니 구경할 만하다"하고 감탄하고 있는데 또 한 사람이 " 면천읍내 성 쌓은 것을 보면 정말 사람이 쌓은 것 같지 않지요"했다. 그 길로 면천읍내에 갔더니 성은 크지 않으나 돌이 정말 컸다.이 얘기는 당진군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 면천읍성의 시면석. ⓒ 2007. 한국의산천

 

기미년에 4치 크기의 돌로 길이 6천자의 성을 쌓기 시작한 면이라는 뜻으로 마을별로 쌓아야되는 성의 길이가 있어서 어느 구간에 어느 마을 사람들이 쌓았는지 알 수 있었다 전한다. 

 

 ▲ 면천읍성 ⓒ 2007 한국의산천 

당진군에서는 점차로 객사와 동헌, 내아, 외책실, 사령청 등 관아건물은 물론 읍성에 위치해 있던 남문과 북문, 동문을 복원하고 군자정 및 건곤일초정 등 정자와 사업 구역내 민가를 정비하게 된다.

성문 복원도 실시돼 옹기 형태의 옹성 25,4m에 2층 문루와 석성, 여장(성벽 화살쏘는 구멍)으로 홍예문을 건립하고 관아 건물인 내책실과 급창방, 군기고 등을 조선시대 건축양식으로 철저한 고증에 근거 원형 복원키로 했다. 

면천음성 바로 주변에는 풍악루와 군자정, 면천향교가 있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 당진IC - 32번 국도 - 당진읍내 - 용연리 - 면천면 송학리 - 면천읍성
서해안고속도로 - 서산IC - 32번 국도 - 구룡 2교 - 면천면 사기소리 - 70번 지방도 - 면천 
경부고속도로 천안IC - 아산시 -24번 국도 - 추사고택 입구 - 32번 국도 - 합덕읍 - 70번 지방도 - 쑥고개 - 면천면

 

주변의 볼거리

영탑사, 추사고택,안국사지, 천주교 솔뫼성지, 영랑사, 필경사, 석문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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