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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성준경 가옥 충남 아산

by 한국의산천 2007. 12. 8.

고택을 찾아서

충남 아산 성준경가옥 (牙山 成俊慶 家屋)  

답사일 : 2007. 12. 2. 비 내리는 일요일 [ 한국의산천 ]

답사코스: 도고산 성준경 가옥 - 추사고택 - 면천읍성. 

답사: 산정, 혜진, 추억의연가,평행선,한국의산천 5명. 

 

아산에는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고택이 적지 않다. 아산지역의 고택은 대부분 외암민속마을과 인근의 맹사성고택, 그리고 윤보선 전 대통령을 비롯한 그의 일족이 살고 있었던 신양리의 윤씨가옥들이 있다.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 528번지 중요민속자료 제194호로 지정 보호되는 성준경 가옥 (牙山 成俊慶 家屋)은 다른 마을의 고택과 달리 마을 깊숙히 따로 떨어져 있다.   
낮은 구릉과 숲에 둘러싸여 밖에서 보이지 않는 이 가옥은 조선시대 중부지방의 특색을 지니고 있는 기와집이다.
수림(樹林)으로 둘러싸인 진입로 입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무지개처럼 휘어진 소나무 등걸이 대문을 대신하고 있는 등, 집 주위에 아름다운 나무가 꽉 차 있다.
여기에 “ㄷ”자형의 안채, “ㅡ”자형의 중간문채, “ㄱ”자형의 사랑채가 日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의 축(軸)은 거의 남북향에 가깝다. 

 

특별한 정원시설은 하지 않았으나 지형을 이용하여 적당히 축대를 쌓아 전통 가옥에서 흔히 보는 매화, 비자, 소나무, 향나무, 감나무,대나무 등을 울창하게 심어 외부공간을 아름답게 꾸몄다.
입구에서 보면 계곡에 자리한 것은 느낌이 들지만 좁은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복주머니처럼 넓은 터에 자리하고 있는 아늑한 느낌을 주는 가옥이다.

 

 

▲ 도고온천역 ⓒ 2007 한국의산천

신 도고온천역으로 이전하게 될 구역사 도고온천역 

아산시에는 온양온천, 도고온천, 아산온천이 있으며, 온양온천은 지금부터 천여년 전인 백제시대부터 온천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세종, 세조, 현종, 숙종, 영조 등 다섯 임금이 온양온천에 온궁을 짓고 피부병을 치료하고 온천욕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온양온천에서 10㎞ 정도 떨어진 도고온천은 신라시대부터 약수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유황성분이 함유된 광천수로 입욕과 음용이 가능한 온천이다.

최근에 개발된 아산온천은 중탄산나트륨을 포함한 알카리성 온천으로 20여종의 인체에 유익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주변이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여 있고 넓은 주차공간과 1천1백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온천 대욕장과 노천탕이 인기가 높다. 또 8개소의 호텔, 3개소의 콘도미니엄, 수백개소의 깨끗한 여관이 있어 언제나 본인의 나이, 취향, 신체조건에 맞는 온천수를 선택하여 즐길 수 있다. 
 

▲ 도고온천역 ⓒ 2007 한국의산천

구 도고온천역에서 철도 직선화의 일환으로 새로 지어진 도고온천역을 지나 도고산 방향으로 가다보면 성준경 가옥 이정표를 보게 된다.

   

 

▲ 고즈넉한 풍경의 성준경 가옥 입구ⓒ 2007 한국의산천

 

 

▲ 고즈넉한 풍경의 성준경 가옥 입구ⓒ 2007 한국의산천

 

▲ 수령 400년의 예산 보호수 은행나무 ⓒ 2007 한국의산천 

 

 

▲ 대나무 숲이 있는 성준경 가옥 입구ⓒ 2007 한국의산천 

노거수 은행나무가 호휘하고 있는 길을 지나 양편에 나즈막한 구릉 사이로 대나무 숲길을 지나 오붓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오랜 시간속에 갇혀있는듯한 느낌을 주는 고색창연한 성준경 고택이 나타난다.

 

▲ 성준경 가옥 ⓒ 2007 한국의산천

 

아산 성준경가옥 (牙山 成俊慶 家屋 :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옥)

지정번호  중요민속자료 제194호
지정연도  1984년 12월 24일
소재지  충남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 528
시대  조선시대 
 

성준경 가옥은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 제194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중부 지방의 특색을 지닌 기와집으로 1825년(순조 25) 무렵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향집으로 집의 진입로 입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고 대문을 대신하여 줄기가 휘어진 소나무가 서 있다. 이 집은 ‘ㄷ’자형의 안채와 일자형(一字形)의 고방채, ‘ㄴ’자형의 사랑채가 일자형(日字形)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ㄷ’자형으로 5칸 겹집인 몸채에 날개는 맞걸이 홑집인데 왼쪽 3칸, 오른쪽 4칸이다. 막돌허튼층쌓기한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3평주(平柱) 5량(樑)의 양통집 구조이고 대청만 긴보 5량으로 처리했다.

 

사랑채는 ‘ㄴ’자형의 5칸 전퇴집으로 오른쪽에서부터 갓사랑방, 사랑 대청, 가운뎃방과 2칸 큰사랑방이 있고 앞에는 툇마루가 놓여 있다. 1고주(高柱) 5량가로 안채의 구조와 비슷하다. 막돌을 쌓아 댓돌을 마련하였으며 기단과 축대는 3단이고 덤벙주초 위에 네모기둥을 세운 홑처마집이다. 일자형으로 안마당을 가로막고 있는 고방채는 4칸 맞배지붕으로 왼쪽에 3칸의 광과 오른쪽에 중문칸이 있다. 이 가옥은 축대를 적당히 쌓고 향나무, 감나무, 소나무 등을 심어 공간을 꾸몄다. 

 

 

▲ 성준경 가옥 사랑채 ⓒ 2007 한국의산천

 

남녀유별에 따른 폐쇄적인 구조

성준경 가옥은 전면에 사랑채를 일자형으로 배치하고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샛마당을 설치한 후, 그 뒤에 안채를 두었다. 사랑채는 전면 4칸 규모로 좌측에서부터 방 2칸, 대청 1칸, 방으로 구성돼 있다. 사랑채는 전퇴집으로 맨 왼쪽 방은 뒤로 1칸을 더 늘여 2칸 규모로 꾸몄는데 이러한 구성 때문에 사랑채는 ㄴ자 형태다. 

 

 

▲ 사랑채 측면 ⓒ 2007 한국의산천

 안채는 중부지방에서 보기 드문 폐쇄형 구조다. 안채로 드나드는 중문은 사랑채 우측에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중문을 지나서 안채로 들어가려면 사랑채와 안채 사이 샛마당에 있는 또 하나의 문을 지나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시 사랑채의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안채로 가는 문조차 2중이고 집 전체가 담으로 둘려 있어 쉽게 안채로 드나들 수 없다. 폐쇄형의 집은 충청도 지역에서 몇 곳 찾아볼 수 있으나 이처럼 사랑채를 독립시키면서 안채를 ㅁ자 형으로 만든 경우는 이곳이 유일하다. 이러한 형태로 집을 지은 것은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이 집을 지은 8대조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당시 내외법이 더 심화돼 집의 폐쇄성을 예전보다 강하게 요구했는데, 마침 9대 조부와 집을 지은 8대 조부는 모두 경상도 지방에서 현감을 지냈기에 폐쇄성이 강조된 경상도의 집을 참고했을 것이다.

  

 

▲ 사랑채 측면 ⓒ 2007 한국의산천 

 

 

 

 

 

▲ 현재 보수공사중인 안채 ⓒ 2007 한국의산천  

안채는 ㄷ자형 몸체에 일자형 문간채를 붙인 ㅁ자 형태다. 경상북도 지방에서 주로 보이는 전체가 한 몸체인 ㅁ자형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튼 ㅁ자 집인데 건물 간의 간격을 좁게 만들고 담으로 막아 ㅁ자 형태로 느껴지는 것뿐이다. 안채는 가운데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건물을 붙여 ㄷ자형으로 구성했다. 마당을 3칸 폭으로 한정해 안마당을 좁게 느껴진다.

 

안채는 중문에서 바라보았을 때 좌측 즉, 동쪽은 아래로부터 부엌 2칸, 안방 2칸, 머릿방 2칸으로 구성돼 있다. 윗방의 1칸은 마루 쪽으로 돌출돼 있다. 따라서 마루는 6칸 통이 아닌 5칸으로 되어 있고 대청의 측면 간살이 안방이나 건넌방의 측면 간살보다 작게 잡혀 대청이 조금 협소해 보인다. 서쪽 부분은 조금 더 길어서 방과 부엌 1칸 그리고 건넌방 2칸 마지막으로 사당으로 쓰던 마루 2칸이 배치돼 있다. 이 집도 별도로 사당을 두지 않고 안채 대청을 확장시켜 사당으로 사용했다. 사당은 남쪽 즉, 뒷마당 쪽이 아닌 서쪽 방향 벽에 나란히 위패를 모셨다고 한다. 

 

 

▲ 성준경 가옥 입구에 있는 대나무 숲 ⓒ 2007 한국의산천

  

  

 

▲ 새로 지은듯한 초가집  ⓒ 2007 한국의산천  

대기업의 임원으로 있는 현재의 주인은 복원해 놓은 바깥채와 같이 하인이 거처하거나 곳간으로 쓰이던 초가가 주변에 6~7채 더 있었다고 한다. 건물이 많았던 것은 이 집안의 재력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현 종손의 부친 때 이르러서는 5000석의 큰 부를 쌓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주변에 많은 가랍집(외거 노비가 살던 집)이 있었을 것이다.

큰 부를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준경 선생의 생활은 매우 검박했다고 한다. 이렇듯 검박함이 몸에 뱄기에 5000석의 큰 부를 이루었으면서도 집을 새로 늘려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 오래 전 할아버지가 두루마리를 입으시고 외출하실때 쓰시던 중절모. ⓒ 2007 한국의산천 

 

북으로 창을 낸 까닭은, 예산 성준경 가옥 
 
‘집이 고즈넉하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러나 실제로 고즈넉한 집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충남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에 자리한 성준경 가옥(중요민속자료 194호)은 고즈넉하다는 표현이 잘 들어맞는 집이다. 완만한 경사지에 깊은 숲을 배경으로 사뿐히 앉은 아담한 한옥이다.


성준경 가옥은 안내판이 없다면 마을 어귀에서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옛 마을에서 지배 계층 가문의 집은 대부분 멀리서도 눈에 띄는데 그 까닭은 권위를 마음껏 드러내는 위치에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옥은 마치 산 속에 있는 별장을 찾아가는 기분이다.

예전에 주로 드나들던 입구에서 사랑채에 이르는 길은 숲이 우거져 좀처럼 집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집을 지을 때부터 숲이 어느 정도 형성됐던 것 같다. 입구 좌우에 나란히 서서 대문 역할을 하는 은행나무 두 그루 중 하나는 수령이 400년이 넘어 예산시 보호수로 지정 받았고 주변의 소나무들도 꽤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풍광이 집터를 잡게 된 연유가 아닌가 한다.

이 가옥은 현 주인의 8대조가 부친을 모시고자 지은 집이라고 한다. 1989년 보수공사 때 발견된 상량문에는 1825년에 건립했다고 적혀 있다.

 

풍수를 살펴 지은 북향집

성준경 가옥은 일반적으로 꺼리는 북향을 하고 있다. 지형을 따르다 보면 집을 북향으로 앉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치에 대해 창령 성씨 27대 손인 종손은 임금이 사는 쪽을 향함으로써 임금을 생각한다는 마음을 바탕으로 풍수를 고려해 집을 배치한 듯하다고 한다. 어쨌든 풍수의 영향은 확실한 것 같다. 뒤의 도고산을 배산(背山)하고 앞에 조그마한 동산을 안산(案山)으로 삼아 집터를 잡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앞에서 언급한 은행나무를 고려한 듯하다.

이 집에 솟을대문이 없는 것은 집을 지을 당시 가문의 위세가 그리 크지 않아 자제한 듯하다. 이는 다른 대가에 비해 아담한 집의 규모와도 상관이 있다. 사랑채는 4칸 규모고 안채도 마당이 3칸 규모여서 좁게 느껴진다. 여기에 대해 종손은 중시조인 우계 성혼으로부터 내려오는 이 집안의 가훈인 ‘근검소이勤儉素履’의 이행과 집 지을 당시 8대조가 높은 직책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산이 많아도 마음대로 큰 집을 지을 수 없는 사회 여건상 자신의 분수에 맞는 소박한 집을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가옥에 관한글은 산솔도시건축연구소 소장이시며 전주대 최성호교수님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 도고저수지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도고산 입구 주차장 ⓒ 2007 한국의산천

 

▲ 빗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도고 저수지 ⓒ 2007 한국의산천 

성준경 가옥이나 도고저수지는 도고산 산행을 마친 후 잠시 둘러보아도 좋은 곳이다.

 

참고 도고산

철도산행지로 떠오른 충남 아산 도고산 481.8m 

2007년 12월 21일 부터 도고온천역이 도고산  아래로 이전합니다.무궁화호가 정차합니다.
예당평야, 삽교호, 아산만 서해대교가 한 눈에 드는 망루 서울 용산역에서 출발, 장항까지 242.2km 길이로 이어지는 장항선 주변에는 철길을 이용해 다녀 올 수 있는 산이 의외로 많다. 역전에서 목적지로 정한 산과 연계되는 대중교통편을 잘만 이용하면 천안역에서 광덕산, 망경산, 태화산 등을 다녀오는 데 불편함이 없다. 온양온천역을 기점으로는 도고산(道高山 481.8m)이나 자연휴양림이 있는 영인산(364m)을 다녀올 수 있다.


온양온천역에서 열차로 8~9분 더 가면 도고온천역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도고산이 가깝다. 이 역 다음역인 예산역에서는 용굴봉(414.5m)과 안락산(424m) 등을 다녀올 수 있다.

 

도고산은 충남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와 예산군 예산읍 간량리 사이에 솟은 산이다. 아산만을 내려다보는 이 산은 옛날부터 서해안을 감시하는 군사적 요새 역할을 했던 산으로서, 정상인 국사봉에는 봉수대(烽燧臺)가 자리하고 있다.


1390년(고려 공양왕 2년) 6월에는 서해안으로 침입한 왜구들이 이 산에 진을 치고 약탈 등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때 장수 윤사덕과 유용생이 이끈 관군이 100여 명의 왜구를 전멸시켰다고 한다. 2년 후인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개국하면서 고려 때의 소부소감(小府少監)을 지냈던 김질(金秩)이 이 산에다 거적을 치고 기거하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다가 순절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6.25 때에는 도고산에서 피아간에 전투가 벌어져 수많은 인명피해도 났던 곳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산자락에서는 6.25 때 격전지였음을 말해주는 찢어진 군화조각과 녹슨 철모들이 목격되기도 했다.


도고산은 비록 높이는 낮지만 바다와 가까워 해발이 낮은 곳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내륙 산간의 600~700m급 산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코스는 시전리에서 오르내리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시전리(枾田里)는 이름 그대로 감나무가 밭을 이루고 있다는 뜻으로, 이 마을의 토속 이름은 감밭이다.


도고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도고중학교 방면 북동릉과 금산리 방면 북서릉 두 개 능선이 있다. 이 두 능선 사이에 움푹하게 패인  동막골(한골, 절골, 넓은골 전체를 일컫는 계곡) 하단부가 시전리 감밭 마을이다. 산행은 도고중학교에서 북동릉을 경유해 정상에 오른 다음, 기호에 따라 동막골 방면 한골, 절골, 넓은골로 하산하거나, 또는 서봉~북서릉을 경유하여 230m봉을 지난 안부에서 감밭 마을로 내려오는 코스가 있다.


도고중학교 정문 왼쪽에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30m 가면 오른쪽 지능선으로 오르는 철도 침목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을 올라서면 곧이어 북동릉으로 길이 이어진다. 도고산 일원은 유난히 소나무가 많다. 송림 아래 능선을 따라 약 10분 가면 첫번째 밧줄(길이 약 25m)이 나타난다.

밧줄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송림 아래 능선길로 5분 거리에 이르면 두번째 밧줄(약 25m)에 닿는다. 두번째 밧줄을 지나면 곧이어 세번째 밧줄(약 25m)을 지나간다. 세번째 밧줄을 지나 5분 가면 안내판(도고중학교 1.0km, 정상 1.9km, 성준경 고택 1.0km)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를 지나면 급경사로 이어진다. 길이 약 40m 되는 네번째 밧줄이 있는 급경사  능선길을 타고 5~6분 올라서면 다섯번째 밧줄이 나온다. 이 밧줄을 지나면 곧이어 케언이 나타나고, 3~4분 더 오르면 332m봉에 닿는다.


332m봉을 뒤로하고 5분 내려서면 안내판(동막골 1.5km, 정상 1.0km)이 있는 안부 삼거리를 지나간다. 안부를 뒤로하고 10분 오르면 약 40m 길이 밧줄 구간에 닿는다. 밧줄을 다 오르면 정면으로 정상이 마주보이는 385m봉 전망바위에 닿는다. 전망바위에서는 남동쪽 하천리 분지 뒤로 하늘금을 이루는 광덕산과 멀리 금북정맥도 조망된다.


전망바위를 뒤로하고 10분 거리인 427m봉을 지나 7~8분 더 오르면 안내판(도고중학 2.9km, 동막골 1.8km, 시전리 2.6km)에 닿는다. 안내판에서 오른쪽 봉수대 축대 위로 올라서면 도고산 정상이다. 봉수대에는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송전철탑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송전탑이 서봉(475m)으로 옮겨진 다음인 1999년 본래의 모습대로 복원됐다.    


정상에서는 사방으로 조망이 막힘없이 펼쳐진다. 북으로는 도고온천장과 골프장 뒤로 선장면 예당평야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예당평야 뒤로는 삽교호와 서해대교도 보인다. 삽교호에서 오른쪽으로는 거대한 수석을 보는 듯한 영인산이 그림처럼 조망된다.


동으로는 도고저수지 뒤로 온양 번화가가 멀리 천안시내와 함께 보인다. 천안시내 뒤로는 흑성산과 태조산 등도 보인다. 남동으로는 배방산, 설화산, 태화산, 망경산, 광덕산 등이 걱정봉이 돋보이는 멀리 금북정맥과 어우러져 첩첩산중에 든 기분이 난다. 남서쪽으로는 도고산과 맥락을 같이하는 덕봉산과 안락산이 멀리 예산 방면 봉수산과 함께 조망된다.   


하산은 일단 서릉으로 내려선다. 서릉으로 내려서면 20m와 35m 거리 숲 그늘에 평상이 한 개씩 놓여 있다. 이 평상에서 중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 두번째 평상을 지난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송전탑이 있는 서봉으로 가게 된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급경사 내리막 산길은 절골로 가는 길이다. 절골 방면 길로 들어서면 밧줄(약 100m)이 걸려 있다.

밧줄을 지나 10분 거리에 이르면 길 오른쪽으로 평상 1개가 있는 절약수에 닿는다. 갈수기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이 약수는 보기 드물게 물맛이 담백하고 차갑다. 약수터 옆 절터에서는 북쪽 절골 건너로 도고온천이 조망된다.

 

절약수를 뒤로하고 10분 내려서면 임도에 닿는다. 임도를 건너 계곡길로 내려서서 12분 내려서면 임도 차단기가 나타난다. 차단기를 지나 15분 가량 나오면 길 오른쪽으로 시(市)나무로 지정되어 있는 큰 은행나무(수령 360년.수고 32m, 나무밑둥 둘레 5.50m)에 닿는다(성준경 가옥). 은행나무를 뒤로하면 시전2리 감밭 마을이다. 마을길로 15분 더 나오면 버스길과 만나는 시전교에 닿는다. 시전교에서 오른쪽 50m 거리에 도고중학교가 있다.


도고중학교를 출발, 북릉~385m봉 전망바위를 경유해 정상에 오른 다음, 서릉 삼거리~절약수~절골~은행나무를 경유해 시전교로 나오는 산행거리는 약 6km로, 3시간 30분 안팎 소요. 

 

  

교통

서울 용산역~도고온천역 새마을호 어른 10,400원(어린이 5,200원), 무궁화호 어른 7,000원(3,500원), 천안역~도고역 새마을호 6,700원(3,400원), 장항역~도고온천역 새마을호 9,300원(4,700원), 무궁화호 6,300원(3,200원).


온양터미널에서 1일 13회(07:15 농은리, 08:05 대술, 08:40 농, 09:25 대, 09:50 농, 11:05 대, 13:20 농, 13:55 대, 15:40 대, 16:20 농, 17:40 대, 19:25 농, 20:25 대) 운행하는 농은리·대술행 버스(아산여객·온양교통·예산교통) 이용, 시전 정류소나 도고중학교 앞에서 하차. 요금 830원. 15분 소요. (월간 산 참고)

시전리에서 온양행 버스 1시간 간격(06:40~20:10)으로 운행. 시전리에서 온양역행 버스를 오래 기다려야할 경우 택시 이용. 온천운수(041-542-0240), 아산택시(541-4040), 아산시 개인택시지부(544-1140), 도고온천 개인택시(541-6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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