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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중앙탑.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

by 한국의산천 2007. 5. 6.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 (中原 塔坪里七層石塔 : 국보 제6호

 

강물 따라 떠나는 충주

역사를 품고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물줄기  

답사 2007년 5월 5~6일.날씨 흐림 [한국의산천 ] 

 

답사코스

목계나루터 - 봉황리 마애석불 - 장미산성 - 고구려비 - 중앙탑 - 누암리 고분군 - 창동 5층석탑 - 창동마애불 - 탄금대.


우리 국토의 한가운데라고 말하는 중원(中原) , 중원문화권의 중심에 우뚝 서있는 탑평리 칠층석탑 (일명 중앙탑) 

 

문화사적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그 한가운데 우똑 솟아있는 칠층석탑은 2층의 기단위에 7개의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절제된듯한 심플한 느낌을 주며 미끈하게 솟아있다.
 

 

▲ 국보 제 6호 중원 탑평리 7층 석탑.(일명 중앙탑)  ⓒ 2007. 한국의산천

 

  

▲ 남한강가에 있는 중앙탑 공원 입구 (입장료,주차료 없음) ⓒ 2007. 한국의산천

 

 

▲ 국립 충주 박물관 ⓒ 2007. 한국의산천

 

국립충주박물관 바로 앞에 통일신라 때 세운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 (중앙탑)이 있다.

 

 

 

국보 제 6호 중원 탑평리 7층 석탑 ⓒ 2007. 한국의산천  

 

삼국시대의 중원(中原) 남한강 유역의 중원(中原) 지방은 본래 마한에 속한 지역이었다. 근초고왕 때 백제가 마한을 평정하고 이 지역은 백제에 복속되어 '낭자곡성(娘子谷城)'으로 불리웠다. 그런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혹은 장수왕) 때에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장수왕 63년(A.D 475)에 고구려에 전속되어 '국원성(國原城)'이라고 불렸다. 이에 대하여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중원경(中原京)은 본시 고구려의 영토로 이름을 국원성이라 하였다. 이를 신라가 평정하여 진흥왕 때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문무왕 때 성을 쌓았는데 주위가 2천5백92보이다. 경덕왕 때 이를 고치어 중원경이라 하였으니 곧 지금의 충주이다.” 즉, 그 후 신라의 북진 정책으로 진흥왕 14년(A.D 553) 신라에 편입되어 경주의 귀척 자제와 6부 호민을 옮겨 살게 하였고, 진흥왕 34년(A.D 573)에는 소경부(小京府) 또는 사천성(四川省)이라 칭하여 큰 번영을 이루었고, 신라 경덕왕 원년(A.D 742)에 '중원경(中原京)' 또는 '태원(太原)'이라 칭하여 신라의 중앙임을 표방하였다.
중원(충주)은 남북의 요충지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려고 각축을 벌인 곳이며 예로부터 양질의 철이 생산된 우리나라 3대 철산지 중의 한 곳이었다.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고장이라는 이유로 삼국의 각축장이 되었던 충주는 아직도 그 주변에 많은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 국보 제 6호 중원 탑평리 7층 석탑.(일명 중앙탑) ⓒ 2007. 한국의산천

 

중원 탑평리 7층 석탑 국보 제 6호

 

소재지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11번지 (중앙공원內)
수 량 1기
규 모 높이 14,5m
자 료 석조(화강암)
시 대 통일신라
지 정 국보 제6호(1934년 8월 27일 지정)

신라가 삼국통일 후 옛 고구려의 세력을 진압한다는 목적으로 세웠다는 탑평리7층탑으로 중앙탑으로도 불린다. 이 탑은 통일 신라 때 이곳이 나라의 중앙임을 나타내기 위해 탑을 세웠다는 유래담이 전해오는 이곳은 충주일대 중원문화권의 한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존 신라 석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탑평리 칠층석탑'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국보 제6호로서 신라 원성왕 1년에 건립된 석탑으로 높이 14.5m로, 현재 남아 있는 신라의 석탑으로 최고의 석탑이며 통일신라 때의 중앙에 건립하였다 하여 중앙탑이라고 부른다 한다.

 

 

 

▲ 국보 제 6호 중원 탑평리 7층 석탑.(일명 중앙탑) ⓒ 2007. 한국의산천

 

탑의 층수는 어떻게 세나? 

 

탑의 아랫부분은 받침돌, 기단이다. 이 위에서 부터 처마 모양의 지붕돌만 세어보면 된다. 지붕돌이 3개면 3층탑, 5개면 5층탑이다.

 

탑은 부처의 사리를 넣기 위한 것이었으나 후에 佛法의 상징물로 변했다. 탑 안에는 사리함 같은 보물을 넣었다.

고(古)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불국사 석가탑 안에서 발견된 보물이다.

 

 

 ▲ 국보 제 6호 중원 탑평리 7층 석탑.(일명 중앙탑) ⓒ 2007. 한국의산천

 

 

▲ 국보 제 6호 중원 탑평리 7층 석탑.(일명 중앙탑) ⓒ 2007. 한국의산천

 

 

▲ 국보 제 6호 중원 탑평리 7층 석탑.(일명 중앙탑) ⓒ 2007. 한국의산천

 

석탑의 구조는 이층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형성하고 그 정상에 상륜부를 구성한 방형 중층의 일반형 석탑이다. 기단부는 10여 매의 장대석으로 구축한 지대석 위에 놓였는데 상하층의 면석과 갑석은 모두 여러장의 판석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석탑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상·하 기단부 면석에는 탱주와 우주가 여럿 새겨져 있고, 각 기단 갑석 위에는 호형과 각형의 받침이 2단 있다. 옥신석 모서리에는 각층 모두 우주가 정연하게 모각되어 있고 옥개받침은 각층이 모두 5단이다. 상륜부에는 노반, 복발, 앙화가 있는데 특히 노반이 2개 겹쳐 있는 것이 특이하다.

 

1917년 해체 복원 때에 6층과 기단 밑에서 신라와 고려시대의 사리구가 발견되어 과거 여러 번의 중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탑 앞에 석등이 꽂혔을 법한 팔각연화대석 ⓒ 2007. 한국의산천

 

 

▲ 중앙탑의 상단부 ⓒ 2007. 한국의산천  

 

 

▲ 국보 제 6호 중원 탑평리 7층 석탑.(일명 중앙탑) ⓒ 2007. 한국의산천

 

 

▲ 국보 제 6호 중원 탑평리 7층 석탑.(일명 중앙탑) ⓒ 2007. 한국의산천

 

 

▲ 조각공원 ⓒ 2007. 한국의산천

 

 

 

▲ 공원내의 조각 예술품 ⓒ 2007. 한국의산천


이 탑이 있는 곳은 중원지방을 대표하고 있으며, 주변에 충주조정지댐, 고구려비 등 여러 문화유적과 더불어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고 있다. 특히 1992년 중앙탑 주변을 문화사적 공원으로 조성하여 향토자료전시관, 수석전시관 등을 건립하여 이곳에서 출토되고 있는 유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중앙탑 주변은 잔디가 넓은데다 남한강을 끼고 있어 고요한 운치 속에서 휴식하기에 알맞은 공원이다. 

 

문화유산해설사 이길순님의 상세하고 친절한 안내와 해설에 감사드립니다.

 

주변 유적지 둘러보기

 

목계나루 http://blog.daum.net/koreasan/11441424
중앙탑.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 http://blog.daum.net/koreasan/1144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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