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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무의공 이순신 장군

by 한국의산천 2007. 5. 2.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자주 배우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의공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배이름을 가지고도 의견이 분분하기에 답사를 통하여 그분의 생애를 다시 되돌아 보았습니다.  

 

경기 광명 서독산 자락에 자리한 무의공이순신 묘역 답사 2007. 5. 2 (수요일)  

 

무의공 이순신 (李純信, 1554~1611 명종9 ~광해군3)  

(참고: 충무공 이순신 1545년 - 1598년)   무의공 이순신은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이  원균( 元均)의 후임으로 다시 통제사가 되자 휘하의 중위장으로 활약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방답진첨절제사로서 충무공 이순신장군 막하에서 중위장으로 옥포해전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운 뒤 전부장으로서 항상 선봉이 되어 당항포, 한산, 부산포 등의 해전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으며

노량해전에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후, 수군을 통제해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역할을 대신했다.
 
 

 

▲ 바다위를 지키는 구축함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함 

 

충무공 이순신함은 우리나라 최초의 4,000톤급 전투함으로 ‘두번째 한국형구축함 사업(KDX-II)’에 따라 2003년 해군에 인도됐다. 현재 경남 진해의 해군작전사령부 5전단에 실전배치 돼 기동함대의 최선봉을 맡고 있다. 

 

▲ 바다 밑을 지키는 잠수함 무의공(武毅公) 이순신(李純信) 함ss-68 (무의공) 이순신함(잠수함)입니다.

209급 장보고 급으로 화력이 막강합니다. 잠수함 이순신함은 독일의 209급 잠수함을 국내에서 조립한 장보고급 잠수함 9척 가운데 7번함으로 역시 진해의 해군작전사 9전단에 실전배치 돼 있다.

장보고급 잠수함은 하와이 근해에서 펼쳐진 다국적 해상훈련인 ‘림팩’(RIMPAC)에서 가상교전이지만 미 항공모함과 잠수함을 격침시켜 참가국들을 놀라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의공 이순신 ( 武毅公 李純信 1554~1611)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 전주, 자 입부(立夫), 시호 무의(武毅)이다. 

 

무의공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만드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시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우신 분이다.

무의공 이순신 장군은 광명시 일직동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학문에 열중하고 청년이 되면서 말타기와 활쏘기등 무예를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그의 무예솜씨는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전한다.

후에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고 의주(義州)판관으로 있다가 상관의 뜻에 거슬려 해임당하고 집에 돌아와 있었는데 북변(北邊)이 소란하자 혜산진(惠山鎭) 첨절제사(僉節制使)로 특명을 받고 북쪽 오랑케를 물리치도록 하였다.

 

장군은 1611년(광해군3년)에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근무하다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장군의 죽음을 전해들은 임금은 조회도 받지않고 슬퍼하였다고 한다. 현재 장군의 묘소는 광명시 일직동 광명역사 앞 서독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 광명 역사 앞에 있는 이정표 ⓒ 2007 한국의산천   

 

▲ 광명 역사 앞에 있는 이정표 ⓒ 2007 한국의산천   

 

▲ 광명 역사 앞 지하차도 앞에 있는 이정표 ⓒ 2007 한국의산천   

 

▲ 입구로 들어서면 약 5~600여평의 밭이 나온다 ⓒ 2007 한국의산천   

 

  ▲ 광명 서독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와 나란히 가는 이정표 ⓒ 2007 한국의산천  

 

  

▲ 오월의 신록, 초록빛으로 가득산 호젓한 산길 ⓒ 2007 한국의산천   

 

 ▲ 걷기 좋은 숲길을 약 200m 걷는다 ⓒ 2007 한국의산천   

 

 

▲ 무의공 이순신 장군 묘 ⓒ 2007 한국의산천   

 

향토유적 제 4호소재지: 경기 광명시 일직동 산 26-7 

묘역 전체는 약 100평정도에 호화스랍지 않은 단순하기까지한 이순신장군 묘묘의 봉분은 호석을 두른 사각형분으로 호석 앞면은 장대석 두개를 둘렀고 측면은 장대석 2개를 놓았다.분 앞에는 문인석,망주석(망주석 하나는 부러져있음),상석, 향로석, 문방석등 옛 석물이 놓여있다. 문인석은 금관조복형으로 몸통이 두터운 점이 특징이다.

 

 

 무의공 이순신 장군 묘 ⓒ 2007 한국의산천

   임진왜란 때 이순신(충무공 李舜臣) 휘하의 중위장(中衛將)으로 옥포(玉浦) 등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뒤로는 항상 선봉장이 되어 부산(釜山), 안골포(安骨浦) 등지에서 적군을 무찔렀다. 

 

왕의 특지(特旨)로 호서(湖西)수군절도사가 되었으나 얼마 후 좌천되고, 1년 만에 유도방호(留都防護)대장에 오르고 이순신(李舜臣)이  원균( 元均)의 후임으로 다시 통제사가 되자, 또 휘하의 중위장으로 활약하였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한 후 모든 군사를 이끌고 개선하니 선무공신이 되고 완천군(完川君)에 피봉되었으며, 그 후 전라도병마절도사로 재임 중 병사하였다.  시호는 무의(武毅) 이다.

 

 

▲ 무의공 이순신 장군 안내문 ⓒ 2007 한국의산천

    

충무공 이순신 수군통제사

무의공 이순신 수군절도사

 

수군통제사 (水軍統制使) 
임진왜란 중에 설치된 종2품 외관직의 무관. 삼도통제사·삼도수군통제사라고도 한다.
경상, 전라, 충청도 등 3도의 수군을 지휘 통솔한 삼남지방의 수군 총사령관이다. 1593년(선조 26) 8월 평양과 서울 수복 이후 조정에서는 일본군의 해상 퇴로를 차단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수군에 통제사라는 새로운 직제를 만들고, 초대 수군통제사에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李舜臣)을 임명하였다.

 

전(全)수군을 통솔할 지휘관이 없어 왜적의 침입에 즉각 진압할 체제를 갖추지 못하였고, 조정의 명령에 따라 연합함대를 구성한 후에도 각도 수사(水使)가 도별로 선단(船團)을 지휘, 각 선단간의 의견이 상충하여 효과적으로 전국(戰局)을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순신에게 수사 이하 각 지휘관들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군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지휘권을 부여하였다.  


통제사는 정3품 수군절도사보다 상위직으로, 각 도의 지방행정의 최고직인 관찰사와는 같은 품계였으나, 그보다 상위 품계에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2대 수군통제사는 원균(元均)이었고, 4대 통제사 이시언(李時言)부터는 거의 경상우수사가 겸직하였다. 


 
법제적으로는 임기 2년이었고, 그 아래 수사나 수령과는 엄격한 상피제(相避制)가 적용되었다. 수군통제사가 지휘하는 곳을 통제영(統制營) 또는 통영(統營)이라 하는데, 처음에는 한산도에 두었다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두룡포(豆龍浦:충무시)로 옮겨 1895년(고종 32) 7월 폐영될 때까지 300년간 존치되었고, 그 동안 208명의 수군통제사가 체임되었다.

수군절도사(水軍統制使)
수사(水使)라고도 한다. 1466년(세조 12) 세종 때 두었던 수군도안무처치사(水軍都按撫處置使)를 개칭한 것이다. 수군절도사는 예하의 진(鎭), 포(浦), 보(堡)와 그에 딸려 있는 전함(戰艦), 첨절제사(僉節制使:종3품), 우후(虞侯:정4품),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종4품), 만호(萬戶:종4품), 권관(權管:종9품), 별장(別將:종9품) 등을 통솔하였는데, 교동(喬桐), 보령(保寧), 동래(東萊), 거제도(巨濟島), 순천(順天), 남해(南海), 옹진(甕津) 등은 유명한 절도사의 수영(水營)이었다.

 

<속대전(續大典)>의 기록을 보면 경상, 전라, 함경도에 각 3명, 경기, 충청,평안도에 각 2명, 황해·강원도에 각 1명을 두었다. 1명이 배정된 황해,강원도의 수군절도사는 그 도의 관찰사가 겸임하였고, 2명이 배정된 경기, 충청도에서는 1명은 도의 관찰사가 겸임하고, 나머지 1명은 정직(正職) 무관이 임명되었으며, 평안도에서는 관찰사와 병마절도사가 겸임하였다.

또한 3명이 배정된 함경도는 관찰사, 남,북도 병마절도사 3명이 겸임하고, 경상,전라도는 좌·우도 모두 정직(正職)의 무관으로 임명하여 정직의 수군절도사가 통솔한 것은 경상,전라도 각 2명, 경기·충청도에 각 1명으로 모두 6명에 불과하였다.

 

 

▲ 무의공 이순신 장군 묘 ⓒ 2007 한국의산천   

 

 

▲ 무의공 이순신 장군 묘역의 문인석 ⓒ 2007 한국의산천     

 

 

▲ 멀리 비닐하우스처럼 보이는 곳이 광명역사 지붕이다. ⓒ 2007 한국의산천

     

 

▲ 무의공 이순신 장군 묘 옆에 있는 문인석 ⓒ 2007 한국의산천   

 

 

▲ 나오는 길 농부들의 봄 맞이가 한창이다.ⓒ 2007 한국의산천     

 

 

▲ 농부의 봄맞이 풍경 ⓒ 2007 한국의산천   

 

 

▲ 광명역사앞의 서독 터널 ⓒ 2007 한국의산천   

 

 

▲ 서독산과 광명역사 앞의 서독터널 ⓒ 2007 한국의산천   

 

 

▲ 광명 칠리 저수지  ⓒ 2007 한국의산천

   

[관련기사]400여년 세월넘어 두 이순신의 애국魂 조국의 바다 지킨다 [한국일보 2005. 11. 24]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 함 , 잠수함 무의공 이순신     두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지킨다.

해상은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바다 속은 무의공(武毅公) 이순신(李純信). 해군에 따르면 해군이 보유한 전함(戰艦) 가운데 전투함에도 이순신이 있고 잠수함에도 이순신이 있다. 같은 이름이지만 전투함은 충무공의 이름을 땄고, 잠수함은 동명이인 무의공의 이름을 땄다.

해군 정훈공보실장은 “잠수함 이순신은 해군들도 종종 충무공의 이름을 딴 전함으로 혼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무공 이순신함은 우리나라 최초의 4,000톤급 전투함으로 ‘두번째 한국형구축함 사업(KDX-II)’에 따라 2003년 해군에 인도됐다. 현재 경남 진해의 해군작전사령부 5전단에 실전배치 돼 기동함대의 최선봉을 맡고 있다.

 

잠수함 이순신함은 독일의 209급 잠수함을 국내에서 조립한 장보고급 잠수함 9척 가운데 7번함으로 역시 진해의 해군작전사 9전단에 실전배치 돼 있다.

장보고급 잠수함은 하와이 근해에서 펼쳐진 다국적 해상훈련인 ‘림팩’(RIMPAC)에서 가상교전이지만 미 항공모함과 잠수함을 격침시켜 참가국들을 놀라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해군은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최신 전함의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KDX- II의 경우 국내에서 건조한 4대는 1번함 이순신함에 이어 문무대왕함 대조영함 왕건함 등으로 명명했다.  

 

잠수함 이순신함은 충무공의 부하장수로 임진왜란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무의공 이순신 장군에서 이름을 따왔다. 무의공은 방답진(防踏鎭) 첨사와 중위장(中衛將) 등을 지낸 충무공 ‘전라좌수영 군단’의 측근 장수. 임진왜란이 끝난 뒤 전라병마절도사까지 올랐다.

 

얼마 전 끝난 TV드라마에서 방답첨사 무의공 이순신이 나오자 충무공과 헷갈린 시청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특히 9전단 예하 93전대는 무의공 이순신과 나대용(羅大用) 이억기(李億祺) 등 충무공의 부하장수 이름을 단 잠수함들이 대거 포진, ‘이순신 전대’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충무공과 무의공이 400여년의 세월을 지나 새로운 인연으로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고 말했다.   

 

 참고 현충사 단풍길 2005년 11월 25일 촬영  [한국의산천]

영인산 가는 길에 현충사 풍경 

 

 ▲ 현충사 ⓒ 2005 한국의산천

   

현충사   

충남 아산시 영치면 백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사당이다.

1706년(숙종 32) 지방 유생들이 조정에 건의하여 세웠으며 이듬해 사액(賜額) ‘顯忠祠’를 받았다.

1865년(고종 2) 대원군(大院君)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일시 철폐되었고, 국권피탈 이후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20여년 간 향불이 끊겼다.  

 

1932년 동아일보사가 주최가 되어 전국민의 성금을 모아 현충사를 보수하고 다시 영정을 모셨고, 1962년에는 유물전시관이 건립되었다. 또한 1966년에는 현충사의 경역을 확대, 성역화하였는데, 1967년에 준공하여 경내에 본전(本殿)·고택(古宅)·정문(旌門)·유물전시관·활터 등이 마련되었다.

 

1969년에는 현충사 관리사무소를 설치하고 관리와 제전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도록 하였다.   

현재 면적은 16만 3096평이고 주요시설로는 본전, 구 본전, 유물관, 고택, 활터, 홍살문, 정려, 이순신 장군의 아들인 이면의 묘소가 있다. 이순신장군 묘는 현재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 있다.  

 

시설물 안내

① 유물전시관  : 총 150평. 화강암 건물로 유물·유적의 사진, 거북선 모형, <난중일기(亂中日記)> 서간첩(書簡帖) 및 <임진장초(壬辰狀草)>, 장검(長劍), 무과급제 교지, 사부유서(賜符諭書), 증시교지(贈諡敎旨), 옥로(玉鷺), 도배(桃盃), 요대(腰帶) 등과 각종 무기가 보존되어 있다.

② 충무문(忠武門) : 현충사의 정문.

③ 홍살문 : 현충사 입구에 세운 문으로서 홍문이라고도 한다.

④ 충의문 :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현충사 본전으로 인도하는 문.

⑤ 본전 : 총 62평.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한국식 청기와 철근 콘크리트 건물.

⑥ 고택 : 이순신이 유년기·소년기·청년기를 보낸 집. 앞에 충무정(忠武井)이 있다.

⑦ 연지(蓮池):현충사 경내에 새로 만들어 놓은 연못이다.  

 

 

▲ 현충사 앞 은행나무 길 ⓒ 2005 한국의산천

   

임께서 부르시면
                   -  신석정  -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호수(湖水)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포근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 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파란 하늘에 백로(白鷺)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볓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 동광(1931) -
 

 

▲ 현충사 앞 은행나무 길 ⓒ 2005 한국의산천   

 

 

 ▲ 현충사 앞 은행나무 길 ⓒ 2005 한국의산천   

 

 

 ▲ 현충사 앞 은행나무 길 ⓒ 2005 한국의산천   

 

 

 ▲ 현충사 앞 은행나무 길 ⓒ 2005 한국의산천   

 

여행과 山行은 갈망되고 이어 준비된다.  

 

광명 서독산

가학동,일직동,노온사동,소하동에 걸쳐 있으며,이 산은 국립 지리원 발행 지형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으나 해발 200여m의 산이다. 산세는 동쪽으로 오리동 계곡이 발달되어 있는 반면, 서쪽으로는 크게 두 산줄기가 뻗어 있다.

능선은 남북으로 길게 흐르며 구름산과 이어진다. 동쪽에는 광명역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멀리 관악산이 자리하고 있다. 서독산 정상에는 페러글라이딩 훈련장으로 각광을 받고있다.

 

▲ 광명 서독산에서 죽마고우 브라보의 비행모습 ⓒ 한국의산천

 

▲ 죽마고우 브라보의 멋진 착륙 ⓒ 2007. 한국의산천

지족불욕(知足不辱)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이장구(可以長久) 오래도록 편안할 것이다.  - 노자 도덕경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대한민국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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