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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서운산 청룡사

by 한국의산천 2007. 1. 14.

경기 안성 서운산 청룡사    

[2007. 1. 14.   한국의산천  우관동] 

 

서운산 석남사를 돌아 본 후 서운산 정상에 올라 좌성사를 거쳐서 내려오면 청룡사에 다다르게 된다.   

 

▲ 청룡사 입구의 청룡 저수지 ⓒ 2007.  한국의산천   

 

서운산 정상에서 청룡사로 내려오는 중

산 중턱에 하얀 나무 군락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빛나는 나목(裸木)

은사시 나무인가?

자작나무군락인가? 

 

 ▲ 겨울나무 ⓒ 2007.  한국의산천   

 

가지런히 솟아있는 하얗게 빛나는 나목 군락을 보며 정비석의 "산정무한"을 떠올렸다.

왜 갑자기 "산정무한"이 떠올랐을까? 

 

아! 바로 그거다 

오래된 기억속에 잠깐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편린처럼 떠오르는 그 대목.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자작나무의 수해(樹海)였다. 설자리를 삼가, 구중심처(九重深處)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 공주(樹中公主)이던가! 길이 저물어, 지친 다리를 끌며 찾아든 곳이 애화(哀話) 맺혀 있는 용마석(龍馬石)― 마의 태자의 무덤이 황혼에 고독했다. 

 

능(陵)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무덤― 철책(鐵柵)도 상석(床石)도 없고, 풍림(風霖)에 시달려 비문(碑文)조차 읽을 수 없는 화강암 비석이 오히려 처량하다. 무덤가 비에 젖은 두어 평 잔디밭 테두리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석양이 저무는 서녘 하늘에 화석(化石)된 태자의 애기(愛騎) 용마(龍馬)의 고영(孤影)이 슬프다. 무심히 떠도는 구름도 여기서는 잠시 머무르는 듯, 소복(素服)한 백화(百花)는 한결 같이 슬프게 서 있고, 눈물 머금은 초저녁 달이 중천에 서럽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麻衣)를 걸치고 스스로 험산(險山)에 들어온 것은, 천 년 사직(千年社稷)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몸에 짊어지려는 고행(苦行)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공주(樂浪公主)의 섬섬옥수(纖纖玉手)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入山)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胸裡)가 어떠했을까? 흥망(興亡)이 재천(在天)이라. 천운(天運)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信義)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蒼氓)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慈惠)가 천 년 후에 따습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悠久)한 영겁(永劫)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須臾)던가! 고작 칠십 생애(七十生涯)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角逐)하다가 한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愁愁)롭다". 

 

대충 떠오르는 구절만 읊조리며 나는 생각했다. 

"산정무한"의 맨 마지막 구절을 되새기는 "나", 의지없는 내 자신의 마음이 암연히 수수(愁愁)롭다고.....  

 

 ▲ 청룡사 입구 ⓒ 2007.  한국의산천  

 

청룡사는 1256년(고려원종6년)서운산 기슭에 명본국사가 창건하였고, 당시에는 대장암(大藏菴)이라 하였으나 1364년(고려 공민왕13)나옹화상이 중창하고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사당패의 근거지 이기도 했는데, 황석영의 대하소설'장길산', 김윤배의 장시'사당 바우덕이'는 청룡사의 사당골에 터를 잡았던 사당패를 소재로 삼고 있다.

몇해전 드라마에도 방영된 적이 있는 장길산의 연인 묘옥이 끼어있는 고달근패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 사천왕상이 있을 법한 청룡사 입구 ⓒ 2007.  한국의산천  

 

사찰의 규모도 그리 크지않고 번잡스럽지 않은 조용하고 단아한 느낌이 드는 사찰 청룡사.

가을이나 흰눈이 쌓인 겨울에 찾으면 더욱 멋진 추억으로 남을 곳.

 

안성 청룡사

차량을 이동 할 경우 청룡호수를 지나면 청룡사에 닿는다. 충남 천안시 입장면과 맞닿은 청룡사 쪽은 안성에서 가장 남쪽인 셈이다. 여행객들은 소박하고 아담한 청룡사의 인상에 정겨움을 느낄수 있다. 

 

청룡사는 1265년(고려 원종 6) 서운산 기슭에 명본국사(明本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대장암(大藏庵)이라 하였으나 1364년(공민왕 13)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고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절 안에는 대웅전(보물 824), 관음전, 관음청향각, 명부전 등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명본국사가 세웠다는 삼층석탑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대웅전은 다포계의 팔작집으로 고려말 공민왕 때에 크게 중창하여 고려시대 건축의 원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법당 안에는 1674년(조선 현종 15)에 만든 5톤 청동종이 있고, 큰 괘불이 있어 대웅전 앞에 괘불을 걸 돌지주까지 마련해 놓았다.

 

  

 ▲ 청룡사 대웅전 (보물 824호) ⓒ 2007.  한국의산천   

 

인평대군(麟平大君)의 원찰(願刹)이었다는 청룡사는 1900년대부터 남사당패는 불당골에 살면서 겨울을 뺀 세 계절동안 전국을 돌다가 겨울에는 돌아와 기예공부를 익혔으며, 청룡사 사적비에서 부도군을 지나쳐 시멘트길을따라 올라가면 제법 산중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불당골도 볼거리이다.

 

 ▲ 대웅전 오른쪽 벽체 ⓒ 2007.  한국의산천  

구불구불한 아름드리 나무를 껍질만 벗긴 채 본래의 나무 모양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세웠다. 

 

  ▲ 대웅전 왼쪽 벽체 ⓒ 2007.  한국의산천  

 

청룡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전면 3칸, 측면 4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짠 구조, 즉 공포(包)가 기둥 위에도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앙서(仰舌), 수서(垂舌) 등에 새긴 연꽃과 연꽃봉오리 장식에서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이 건물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런 건축 장식의 아름다움보다는 전혀 가공하지 않은 원목을 생긴 모양 그대로 기둥과 대들보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곧은 나무가 귀했던 그 시절 장인의 기술이 돋보이는 건축미가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 생긴 모습 그대로를 기둥으로 사용한 장인의 기술이 오히려 놀랍다.ⓒ 2007.  한국의산천  

 

생긴대로 살면서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서산의 개심사와 양주에 있는 묘적사에서도 이러한 자연적인 기둥을 그대로 사용한 모습을 볼수있다. 

 

공포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짠 구조, 즉 공포(包)가 기둥 위에도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앙서(仰舌), 수서(垂舌) 등에 새긴 연꽃과 연꽃봉오리 등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 예술품이다. 

 

  ▲ 대웅전 후면 ⓒ 2007.  한국의산천  

 

 ▲ 청룡사 대웅전 (보물 824호)ⓒ 2007.  한국의산천  

 

바우덕이와 청룡사

이 청룡사는 고려 공민왕 때 나옹화상에 의하여 세워졌다고 하는데, 불교사적으로보다 민속사적으로 더 많이 알려져있는 절이다. 한 때는 남사당패의 본거지이기도 하여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사찰로 유명한데 안성이 남사당의 본고장이라면 이 청룡사는 그 남사당패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청룡사 앞 바우덕이 사당에 있는 동상 ⓒ 2007.  한국의산천  

 

옛날 남사당패들은 이 청룡사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절에서 발급해준 신표를 들고 안성장과 전국의 저자거리를 떠돌며 기예를 팔아 먹고사는 천민집단이었다.

백여 년 전 안성에는 개다리패, 심선옥패, 오명선패, 안성복만이패, 이원보패, 안성원육덕패 같은 남사당패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바우덕이”패였다고 전한다.

 

바우덕이는 남사당패의 우두머리인 유일한 여성꼭두쇠였는데 미모가 뛰어나서 많은 사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미모 뿐만 아니라 소리가락 솜씨도 일품이었으며 특히 바람에 휘날리는 듯 하는 줄타기 솜씨가 당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바우덕이는 조선시대 유일의 남사당패 여성 꼭두쇠로 본명은 김암덕(金岩德)이다. 

 

 ▲ 범종각 ⓒ 2007.  한국의산천  

 

 

 ▲ 바우덕이 사당이 있는 불거촌 입구에 있는 청룡사 부도군 ⓒ 2007.  한국의산천   

    고승들의 흔적이 한줌의 재로 남아있는 고색창연한 부도군.

 

 ▲ 오랜 풍상을 겪으며 대웅전 앞에 서있는 보리수 ⓒ 2007.  한국의산천  

 

주요 문화재  

 

청룡사 대웅전 : 보물 824호

청룡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전면 3칸, 측면 4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짠 구조, 즉 공포(包)가 기둥 위에도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앙서(仰舌), 수서(垂舌) 등에 새긴 연꽃과 연꽃봉오리 장식에서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청룡사 삼층석탑
2.2미터 높이의 아담한 삼층석탑, 대웅전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게 보인다. 고려 원종 6년(1265) 명본국사가 세운 것으로 당대의 불탑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청룡사 동종 : 보물 11-4호
법당안에 있으며, 종신에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표면의 문양이나 양식, 수법이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법종이다.높이 128, 밑지름 89, 위지름 56, 두께 7.5Cm. 

 

가는 길 (청룡사 031-672-9103, 서운면사무소 031-678-2635) 

 

 ▲석남사 - 서운산 -청룡사 코스 ⓒ 2007.  한국의산천  

 
1) 안성 시내 → 서운면 방향 → 다리를 건너 → 청룡사 이정표를 따라 직진 → 서운면소재지 못미쳐 두 갈래길이 나오면 57번 지방도로 진천방향 → 34번 국도가 나오면 좌회전 → 2㎞정도 고개길을 오르면 좌측에 청룡호수 → 둑방길을 따라 산으로 들어간다 → 청룡사는 길 끝에 있다.
 
2) 안성시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339번 지방도(서운방면)로 11Km 쯤 가면 34번 국도와 만나는 산평 삼거리가 나온다 산평 삼거리에서 진천쪽으로 죄회전하여 2.2Km 정도가면 오른쪽에 주유소, 왼쪽에 청룡저수지가 있는데 좌회전하여 저수지 제방으로 부터 1.3Km 더 들어가면 청룡사 주차장이다.
 

현지교통 : 안성시에서 청룡사까지 군내버스 1일 13회운행. 30분 소요.
청룡리 버스정류장에서 200미터.

주변명소 : 박우덕이 묘, 청룡호수, 서운산과 서운산성, 이덕남장군묘
낚시터 : 국도에서 청룡사로 들어서는 입구에 청룡저수지 낚시터가 있다. 좌대 20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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